〈 951화 〉 952. ....다녀왔어.
호호호홋
후후후훗
꺄르르륵
아부부아아 부부우아우
듣는 것만으로도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바깥에 새어나오기 시작하였다.
여인들의 웃음소리
즐거워보이는 수다
아기의 귀여운 옹알이까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방 안에 분위기가 무척이나 화목하기 그지없는 사실을 말이다.
'어떻게 들어가지.'
그렇기에 선우는 고민이 되었다.
저 화목한 분위기에 어떻게 끼어들어야할 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함박 웃음을 지으며 꽃과 같은 정인들과 사랑스러운 연우를 보기 위해 지체없이 달려들었을 것이다.
순서대로 입을 맞추며 사랑하는 이들의 온기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 할 수 없었다.
커다란 죄책감이 발목의 족쇄처럼 몸을 무겁게 만든 까닭이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탓에
사랑하는 여인들이
언제 죽을 지도 모를 전장에
몸소 나서게 되었다.
무력을 쓰고 타인의 피를 보게 만들었다.
어찌 죄책감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장에라도 달려가
말하고 싶었다.
빈 자리를 채워주어 고맙다고
너희들 있었기에 모두가 안전할 수 있었다고
정말로 사랑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코앞에 도달하니
도저히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무슨 낯짝으로 다가가야할 지
무슨 말부터 꺼내야할 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은 까닭이었다.
선우는 몇 번이고 서성이고
또 서성였다.
마땅한 대안이 나올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서성였을까
달칵
끼이이익
갑자기 방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화들짝 놀란 선우는 무형잠영술을 시전하였다.
스르르르륵
그러자 선우의 신형이 그대로 어둠 속에 녹아들었고
이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존재치 않는 것처럼 말이다.
끼이이익
이내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고풍적인 느낌의 우아하기 그지없는 아름다운 여인
옥령이었다.
"안들어오고 뭐해요?"
그녀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선우는 묵묵부답을 하였다.
무형잠영술은 무림 최고의 은신술이었다.
모습은 물론 기척, 채취, 그림자까지 완벽히 지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자신이 들킬 리 만무하였다.
"거기 있는 거 다 안답니다, 방금까지 기척을 느꼈는데 갑자기 사라진다고 모르겠어요?"
옥령은 선우가 은신해 있는 곳을 정확히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이...바보...'
선우는 스스로의 안일함에 자책을 하였다.
생각해보면 그녀들은 하나같이 경지에 다다른 절대고수들이었다.
자신의 기척따위는 진즉에 느끼고 있던 것이다.
지금와서 은신한다고 해서 자신의 존재를 모를 리 없는 것이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아무래도 그녀들에 대한 고마움과 죄책감으로 인해 이성적인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은듯 하였다.
"그러니 어서 모습을 보여주세요, 선우."
옥령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선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차마 모습을 내보일 면목이 서지 않은 까닭이었다.
뭔가 부끄럽고
미안했다.
사랑하는 여인들을 마주하기 힘든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더하고 올걸..'
선우는 후회하였다.
이렇게 바보처럼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으면 좀더 마음을 다독이고 올 걸 그랬다.
"모습을 드러내기가 싫으신건가요?"
선우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옥령은 의아한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그렇다면 구태여 드러내지 않으셔도 돼요."
옥령은 차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느정도 짐작은 돼요, 어째서 선우가 모습을 드러내는 걸 꺼려하는지......분명 죄책감을 느끼고 계시는 거겠죠? 스스로 비난하고 채찍질하면서요.....선우는 강하지만 누구보다 여린 사람이니까요."
옥령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선우가 은신한 곳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누구보다 선우와 오랫동안 함께해온 그녀였기에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선우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심리를
그는 분명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부족으로
목숨이 위태로울 지 모를 전장에 사랑하는 여인들을 내몰았다는 죄책감을 말이다.
"그러니 언제고 선우의 마음이 준비될 때 드러내셔도 된답니다."
옥령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절로 노곤해지는 자애로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다만 하나만 알아주셨으면 해요, 여기 있는 그 모든 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일이라는 사실을요, 스스로의 보금자리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에요.......저희는 스스로 소중한 것을 지켜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답니다..."
옥령은 올곧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설령 선우가 부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저희는 전장에 참여했을거예요.....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야.......그러니.....죄책감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해요...선우는 잘못이 없으니까요."
그녀의 말을 사실이었다.
선우의 여인들 모두 크나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소중한 것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내었다는 자부심을 말이다.
선우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없었다.
그가 있던 없던
자신들은 몸소 전장에 참전하여 소중한 것들을 지킬터이니
스르르르륵
그때 선우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무형잠영술을 그대로 풀어버린 것이다.
"옥..령."
모습을 드러낸 선우는 눈시울을 붉게 적신 채 옥령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을 찌르는 위로에 감격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마음의 준비는 끝나신건가요?"
옥령은 모습을 드러낸 선우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끄덕 끄덕
선우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벅차오른 감격에 목이 매어왔기 떄문이었다.
"어서와요, 선우."
이내 옥령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양팔을 벌렸다.
"옥려어어엉.."
포옥
선우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옥령을 부른뒤 품안에 그대로 안겼다.
그러자 말캉하고 부드러운 감촉과 따스한 온기가 그대로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분명 옥령의 따스한 품 안이리라
"괜찮아요....다 괜찮아요...그러니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답니다."
쓰담 쓰담 쓰담
옥령은 품 안에 안긴 선우를 부드러이 쓰다듬으며 위로해주기 시작하였다.
마치 토라진 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머리를 쓰다듬었을까
"......고마워.."
이내 어느정도 마음을 진정시킨 선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며 고마움을 표하였다.
자신을 달래준 그녀에게 말이다.
"지아비를 내조하는 건 부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랍니다."
옥령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슬슬 들어가볼까요?...모두들 기다리고 있답니다."
".....응."
선우는 고개를 살짝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의 품안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다음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선뒤 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무척이나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절세미인들과 한 명의 아기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가려야, 선우, 울보야, 내가 우는 거 다봤다니까?"
요랑이 조롱기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요랑님, 말씀드렸잖아요...이럴 때는 모르는 척 해주는 게 관례라니까요?"
운가려는 그런 요랑을 다그치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나름의 배려를 해주려는듯 보였다.
"여인의 눈물만큼이나 남자의 눈물도 파급력이 있군..솔직히 말하면 너무 귀여워 심장이 떨렸다."
북궁연은 얼굴에 홍조를 띄운 채 말을 이었다.
선우의 약한 모습에 암호랑이같은 그녀의 모성애를 미친듯이 자극한 까닭이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저도...이제야 체감되었답니다...선우님이 연하라는 사실을 말이에요....이렇게 귀여울줄이야...후훗"
강하윤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언제나 어른스럽던 낭군의 연약한 모습이 퍽이나 귀여워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가 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아가...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거라."
새하얀 백색의 도복을 여인은 나름의 위로를 건네주었다.
"꺄하아아아아아.."
그리고 그녀의 품에 안긴 연우가 재밌다는듯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생각하였다.
쪽이란 쪽은 다 팔렸다고 말이다.
**********
"우리 연우~! 아빠 보고 싶었지?"
선우는 연우를 안아들어올렸다.
그리고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하였다.
"아부부우우우! 아부우!"
그런 선우의 애정표현에 연우는 박장대소를 하며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이내 두 부자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방 안에 물씬 풍기기 시작하였다.
"왜 저런데? 평소보다 더 과장되게 놀아주는데?"
요랑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아마 부끄러워서 그럴 거예요, 본디 사람은 부끄러울 때 다른 것을 과장시켜 주의를 돌리기 마련이랍니다."
옥령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아...선우가 쪽팔려서 저러는 거구나!"
요랑은 깨달았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선우가 어째서 저렇게 과장되게 행동하는 지
이유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랑님...쉬잇..쉬잇.."
운가려는 그런 요랑을 바라보더니 다급히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대었다.
"이것도 모른 척하는 게 관례야?"
요랑은 그런 그녀에게 되물었다.
"......맞아요..이것도 모른 척하는 게 좋답니다."
"인간 세상은 너무 어려워, 무슨 모른 척해야할 게 이렇게 많아?"
요랑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무슨 조심해야할 게 이리도 많은 지
이해가 가지 않은 까닭이었다.
"............."
한 편 그녀들의 대화를 들은 선우는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속내가 낱낱히 파헤쳐졌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절로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이정도면 쪽팔림이 거의 두 배에 가까웠다.
".....연우야, 잠시만 엄마한테 가있어."
"아바아아..빠아아."
선우는 품에 안은 연우를 천천히 북궁연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차분히 가라앉은 표정을 지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사랑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하나 하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할 말이 있어."
이내 선우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러자 여인들의 시선이 선우에게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의 입술이 떼어지며 말이 내뱉어지기를 말이다.
"일단 사과부터하고 싶어."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미안해.....내 부족으로 인해 너희들을 전장에 끌어들이 말았어....만약 내가..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내가..조금 더...빨리 알아차렸더라면....너희들에게 모든 걸 맡기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거야........정말...미안해."
선우는 고개를 살짝 숙여 사과를 하였다.
평생 물 한방울 묻히지 않게 살아도 모자랄 여인들에게 핏물을 묻히게 만든 것이다.
어찌 사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마워.....내 빈 자리를 메꿔줘서....너희들이 나서주지 않았다면......사천은...당가는....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에 빠져들었을 거야."
전해들은 전력은 기존에 있던 사천 연합과 관군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였다.
만약 그녀들이 나서주지 않았다면 사천은 대혼란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약속할게......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다시는...너희들끼리 모든 걸 감당하게 냅두지 않을 거라고 말이야."
선우는 올곧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진한 진심이 담겨져있었다.
"그리고.......다녀왔어."
이내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서와, 선우야."
"어서오세요, 선우."
"선우님을 기다렸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 내 반쪽이여."
"아부우부 바바!"
"선우님을 다시보니 너무 기뻐요."
선우의 말을 들은 여인들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반겨주었다.
선우와 재회했음을 다시금 실감한 까닭이었다.
그녀들의 미소를 마주한 선우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반겨주는 그녀들의 미소를 보니 행복감이 절로 차오른 까닭이었다.
이내 장내에는 훈훈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운이 말이다.
'....불청객 같네.'
한 편 운설은 꽤나 불편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훈훈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지만
뭔가 혼자 붕 떠있는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진짜로 혼자 붕 떠있었다.
선우의 부인이 아니니
그녀들과 선우의 벅찬 감정에 동조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남편 없는 사람 어디 서러워 살겠나?'
운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눈치를 봐서 빨리 벗어나야할 듯 싶었다.
훈훈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에 열병이 나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