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9화 〉 950. 있었죠, 근데 이제 없어요.
스윽
운설은 시선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마치 운석을 맞은 것처럼 커다랗게 패여있는 땅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개같은 땡중이 완전히 소멸했다는 사실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말이다.
털썩
이내 운설의 신형이 뒤쪽으로 나자빠져버렸다.
모든 사태가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에 전신의 힘이 쭉 빠져버린 까닭이었다.
'망할.'
운설은 몸을 일으켜세우려고 하였다.
아직은 할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간힘을 써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전신골절에 내상까지 입은 몸이
움직이는 걸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휴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더이상은 움직이지 말라면서 말이다.
'무리를 너무했나보네.'
무리를 하긴 했다.
온몸이 박살난 상황에서
무리하게 자연검自連劍까지
사용하였으니까 말이다.
'처음부터 자연검을 쓸걸.'
후회가 절로 들었다.
강정시 전체가 휘말릴 걸
생각하여 힘을 적당히 조절하였건만
아무래도 그런 안일함이 쓸데없는 부상을 야기한 것 같았다.
처음부터 공터로 유인해 자연검으로 사용했었더라면
지금처럼 전신 뼈가 골절이 되고 내상을 입을 일은 없었으리라
오만하였다.
아직 생사경에 도달하지도 못한 주제에
쓸데없는 자신감만 넘쳤던 것이다.
'어떻게 한다...아직...그 새끼 부하들이 남아있을텐데.'
그녀는 괜스레 걱정이 되었다.
혈불을 죽이긴 하였지만
강정시에는 그의 부하인 혈승들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모조리 죽이지 않는한 안심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네........하윤 소저를 믿는 수밖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남은 전력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전 봉황당주인 강하윤이라는 거대 전력을 말이다.
'부탁해요....하윤 소저.'
스르르륵
이내 운설의 눈이 스르륵 감겨졌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 그녀의 몸 주위에 내력이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선기에 가깝다고 칭해도 무방할 정도로 청명하기 그지없는 기운들이 말이다.
************
강정시
"크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살...살려..퀘엑!"
강정시 내부에는 혈승들의 처절한 비명성이 가득 메워지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레 찾아온 거대한 재앙에 의해 무차별적인 학살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젠장할! 젠장할!"
혈불의 두 번째 제자이자 혈천 케두콰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저항조차 제대로 못한 채 죽어나가는 혈승들의 모습에 무력감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재앙 앞
혈승들은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저항다운 저항조차 못한 채 그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축 최악의 무력집단이라고 불리우는 소뢰음사의 혈승들이 말이다.
어찌 무력감이 차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젠장할, 스승님은 어디 계신거야!'
케두콰는 행방이 묘연해진 혈불은 원망하였다.
저 여자는 혈불이 아니라면 막을 수조차 없었다.
혈승들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디를 갔다는 말인가
콰지지지직
콰지지지직
그때 귓가에 박이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그 소리에 놀란 케두콰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머리가 터져나간 두 명의 혈승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 모두 자신과 마찬가지로 혈불로부터 직접 사사받은 직전 제자들이었다.
케두콰의 안색이 더욱더 파리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 모두 자신과 큰 실력 차가 없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저항조차 하지못한 채 머리가 터져나간 것이다.
두려웠다.
너무 두려웠다.
스으윽
그때 두 혈승들의 머리통을 터트린 장본인이 케두콰를 쳐다보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무심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젠장할! 혈승들이여! 모두 힘을 합쳐 저년을 견제하라! 내가 혈불을 모셔오겠다!"
케두콰는 다급한 어조로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달려드는 이는 없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케두콰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텅 빈 거리가 눈앞에 가득히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어?"
순간 케두콰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뒤편에 기세등등하게 서있던 수백의 혈승들이 일제히 사라져있으니 당혹스러움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네놈은 산수가 약하군.."
그때 그의 귓가에 고혹적인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그...그게..무슨 말이더냐!"
그 말을 들은 케두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혈승들은 모조리 죽었다."
학살의 장본인, 강하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말..말도..안된다! 내 뒤편에는 삼백이 넘는 정예 혈승들이 있었다!....그들이 어찌 전부 죽었다는 말이더냐!"
케두콰는 부정을 하였다.
삼백이 넘는 혈승들이 전멸당했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닥에 널부러진 시체들을 보거라. 얼추 삼백이 될 것 같지 않더냐?"
강하윤은 양손을 펼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케두콰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시산혈해라는 말이 절로 떠올려질 정도로 끔찍한 참상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여인의 말처럼 삼백의 혈승들이 모조리 전멸하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아있는 혈승은 이제 너 하나뿐인듯 하구나."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강하윤은 케두콰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떼기 시작하였다.
두근 두근 두근
그리고 발소리에 따라 케두콰의 심장 소리 또한 점점 더 빨리 뛰기 시작하였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온몸을 휘감은 채 그대로 조여들었기 때문이었다.
"살..살려주시오!"
털썩
케두콰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죽기는 싫었다.
어떻게든 생을 이어가며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남의 목숨은 파리목숨처럼 여기던 놈이 제 목숨만큼은 중요시 여기는구나."
강하윤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이기적인 그의 모습에 차가운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평생 반성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저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부디 용서를 해주십시오!"
"죽어서 반성하거라."
강하윤은 천천히 손을 들어올리기 시작하였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를 죽여봤자 또다른 복수를 낳게 될 뿐입니다!"
케두콰는 발악하듯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발현한 것이다.
"상관없다."
강하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쓰레기같은 네 놈의 죽음에 앙심을 품고 달려드는 놈들이 있다면 몇 번이고 죽여주겠다. 어차피 네놈과 똑같은 놈일테니."
부우웅
이내 강하윤의 주먹이 그대로 케두콰의 머리를 가격하였다.
콰지지직
그러자 케두콰의 머리통이 그대로 터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잘익은 수박이 터져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휘익 휘익 휘익
케두콰의 머리를 터트린 강하윤은 천천히 손을 털기 시작하였다.
주먹에 묻은 뇌수와 핏물의 감촉이 꽤나 기분 나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손을 털었을까
이내 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혹시나 남아있을 지 모를 잔당을 찾아서 말이다.
***********
"흐읍."
운설은 몸을 일으켜세우기 위해 천천히 힘을 주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반시진 정도로는 무리인가.'
운설은 귀찮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반시진 동안 연공을 하며 몸을 어느정도 회복시켰건만
아무래도 몸을 움직일 정도로 회복되진 않은 듯 싶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니 고집스러운 눈매가 인상적인 절세미인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여기 계셨군요."
고집스러운 눈매를 가진 여인, 강하윤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떻게 여길..?"
운설은 놀랍다는듯한 어조로 되물었다.
설마하니 자신을 찾아올 줄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의지의 흔적을 따라오다보니 이곳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강하윤은 공손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런..못난 꼴을 보여드렸네요."
그녀의 말을 들은 운설은 부끄럽다는듯 얼굴을 붉혔다.
만신창이가 된 채 널부러진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는 게 부끄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아니에요.....운설님께서 이렇게 될 정도면 필시 난적이었을테니까요."
강하윤은 고개를 살며시 가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운설과 친분이 깊은 건 아니었지만
운설이 자신보다 급이 높은 고수라는 사실은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던 그녀였다.
그런 운설이 만신창이로 만든 이라면 필시 어마어마한 난적이었으리라
"확실히 난적이긴 했죠...."
운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하였다.
난적이긴 하였다.
자연검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이쪽이 당해버렸을테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강정시에 있는 악도들은 어떻게 됐나요? 전부 소탕하신건가요?"
그때 운설이 불현듯 생각난듯 다급한 어조로 물음을 던졌다.
"네에, 전부 소탕했어요. 이제 강정시에 위협이 되는 이들은 없을거예요."
강하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강정시에 남은 모든 잔당들은 한줌의 고혼으로 변해버린 지 오래였다.
기감을 통해 강정시 내에 존재하는 모든 혈승들을 모조리 전멸시켜버린 까닭이었다.
"후우...다행이다."
그녀의 말을 들은 운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강정시 내의 잔당 소탕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듯 하였다.
"고생하셨어요....강 소저."
"아니에요, 고생은 운설님께서 더하셨죠."
두 여인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외적의 무리를 완전히 몰아냈다는 생각에 성취감과 더불어 안도감이 든 까닭이었다.
"그럼....이제 슬슬 돌아갈까요?"
"네에, 그렇게해요, 저도 빨리가서 쉬고 싶네요."
"그럼 저....죄송한데 잠시만 업어주실 수 있나요?..힘이 없어서."
운설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을 이었다.
"얼마든지요."
강하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쓰러진 운설을 천천히 등에 업었다.
그다음 곧바로 달려나가기 시작하였다.
휴식처이자 보금자리인 당가를 향해서 말이다.
**********
선우는 달리고 또 달렸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말이다.
폐가 터질 정도로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터질듯이 벌렁거리며
공기의 저항으로 인해 온몸에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선우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만의 지배자인 남만야수궁
마교 최고의 전력인 흑갑철기병
중원의 공포라고 불리우던 강시부대
악마혈궁이라고 불리우는 소뢰음사까지
하나 하나가 웬만한 대문파는 찜쩌먹을 정도로 강대한 세력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세력들이 연압하여 일제히 사천을 침공한 것이다.
어찌 심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정도 전력들의 연합이라면 중원 무림 전체와 싸워도 이상하지 않을 대전력들이었다.
그런 대전력을 감당하기엔 사천은 너무나 연약하였다.
'제발....제발..내가 갈 때까지만 버티고 있어줘!'
선우는 속으로 쉴새없이 기도를 하였다.
부디 자신이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사천 무림의 세력들이 버텨내주기를 말이다.
쇄애애애애애액
이내 선우의 신형이 더욱더 빠르게 쏘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쏘아졌을까
이내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성벽 하나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서창시다.'
그 성벽을 본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운남과 사천남부를 잇는 실질적인 통로.
서창시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선우는 더욱더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최남부에 위치한 최초의 도시
서창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려갔을까
이내 무언가 타는듯한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하였다.
'설마 시체?'
순간 선우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서창 지역민들의 시체가 타는 게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든 까닭이었다.
달리면서 후각을 더욱더 극대화시켰다.
냄새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응?"
그리고 선우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후각을 극대화하니 타는듯한 냄새가 무척이나 고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탈 때나는 특유의 노린내가 아니었다.
삼겹살을 구울 때나는 특유의 노릇노릇한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한 것이다.
'뭐지?'
선우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냄새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볼 수 있었다.
커다란 불을 가운데 두고
옹기종기 모여서 고기를 나눠먹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이다.
"어...?"
선우는 순간 멍청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침략을 당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이 축제같은 분위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선우가 의구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어머, 오라버니."
어디선가 반가운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낯익은 여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상큼한 인상을 가진 절세미인
약관의 나이로 장문인의 제자로 발탁된
배분깡패
아미 최고의 후기지수로 설향이었다.
"설..설향?!"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지금 이곳에 왜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돼지 뒷다리를 양 손에 쥔 채 말이다.
"오라버니도 고기 축제를 즐기시러 오신건가요?"
"그...아니..저...침공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녀의 물음에 선우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
"있었죠, 근데 이제 없어요."
"응?"
"침공 세력들을 전부 절멸시켰거든요."
설향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지기 시작하였다.
전부 절멸시켰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