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8화 〉 939. 구태여 기억해둘 필요는 없다.
사천성 달주시
달주시는 소향항小香港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발달한 부유한 도시였다.
내륙지방과 밀접한 지역적 이점을 노리고 모여든 거부들과 부유하기 짝이 없는 상인들이 거대한 상업지구를 형성한 까닭이었다.
더불어 명산 대천, 호수와 강의 풍경, 화초, 무고 등 자연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는데
이 풍경을 즐기기 위해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여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데 일조를 하였다.
부유하면서도 아름다운 도시
그곳이 바로 달주시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달주시에 거센 폭풍이 불어닥치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들에 의해 일방적인 유린을 당하였기 때문이었다.
칠흑보다 어두운 흑색 갑주 입고
실용성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커다랗기 짝이 없는 거창 쥐고
족히 천근은 넘어보이는 거대한 전마戰馬를 탄 기병들이
달주시 전체를 헤집고 다니기 시작하였다.
푸우욱
"꺼으으윽...."
푸우욱
"아아아아악!"
푸우욱
"어으윽..꺼으윽..살..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체에게 창을 내질러 평등한 죽음을 선하였다.
부자가 되었든 거지가 되었든
평민이 되었든 관리가 되었든
무인이 되었든 관군이 되었다.
어린아이가 되었든 어른이 되었든
남자가 되었든 여자가 되었든
너도나도 창 한방에 평등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들에게 자비따위는 존재치 않았으며
회유나 타협따위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저 감정이 없는 살인병기처럼 말없이 창을 내지르고 평등한 죽음을 선사할 뿐이었다.
달주시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향해서 말이다.
그런 무자비한 모습에 달주시의 지역민들은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눈에 띄는 순간 자신들 또한 평등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렇기에 달주시의 지역민들은 도망치고 도망쳤다.
어떻게든 저 살인병기들의 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쇄애애액
파공성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창이 날아들었다.
"꺼으으윽.."
푸욱
그러자 이내 도망가던 상인의 심장이 그댈 꿰뚫리기 시작하였다.
평등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것이다.
"히이익!"
같이 도망치던 동료 상인, 왕포는 기겁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허무하게 죽어나간 동료의 모습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까닭이었다.
쑤우우욱
이내 상인의 심장을 꿰뚫어버린 기병이 천천히 창을 빼내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창을 돌려 왕포를 겨냥하기 시작하였다.
'...죽..죽는다.'
왕포의 눈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이미 도망치기엔 글렀다.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등한 죽음이 찾아오기를 말이다.
'젠장..젠장..아직.....동정도 못 벗어났건만.'
왕포는 쉴새없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진정한 사랑을 위해 아껴두겠다며 마흔 넘도록 동정을 유지했던 왕포였다.
죽을 위기에 처하자 그런 자신의 행동이 후회가 되었다.
괜히 객기 부리다가 총각으로 죽게 생긴 것이다.
'....총각으로 죽는구나.'
왕포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예정된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다음생에는 송옥, 반안 저리가게 잘생기게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빌었다.
부디 다음생에는 선택받은 먹이사슬 최상층권자인 잘생긴 남자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말이다.
쾅
그때 코앞에서 어마어마한 굉음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번쩍
화들짝 놀란 왕포는 감았던 눈을 재빨리 떠버렸다.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검?'
눈앞을 보니 날아드는 창을 막아선 한 자루의 검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왕포는 검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청수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 중년인의 모습을 말이다.
"지금 뭐하는 겐가! 당장 도망가게!"
중년인은 꾸짖듯이 고함을 내질렀다.
급박해죽겠는데 멍때리고 있는 왕포를 보니 짜증이 절로 솟구쳤기 때문이었다.
"아..예엡!"
그의 꾸짖음에 왕포는 곧바로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몸을 돌려 필사적으로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생존에 의지가 가득 찬 몸놀림이었다.
"으읍!"
그가 도망친 것을 확인한 중년인은 검을 쥔 손에 더욱더 힘을 주었다.
창
그러자 이내 거창이 그대로 튕겨나가버렸다.
순간 기병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검이 튕겨나갈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이었다.
'빈틈.'
그 모습을 본 중년인은 눈을 반짝였다.
파고들 틈이 그대로 노출되었다고 느낌 까닭이었다.
중년인은 검날에 최대한 빨리 내력을 불어넣었다.
쇄애애애액
그리고 허공에 몸을 띄운 뒤 망설임없이 곧바로 내질러버렸다.
푸우우욱
그러자 내질러진 검이 기병의 목을 그대로 꿰뚫어버렸다.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어마어마한 쾌검이었다.
"꺼으으으윽.."
쿵
목이 꿰뚫린 기병은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뱉더니
그대로 낙마落馬를 하고 말았다.
완전히 절명해버린 것이다.
히이이이잉
그러자 전마가 날뛰기 시작하였다.
주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듯한 모습이었다.
서걱
중년인은 그런 전마를 향해 망설임없이 검을 휘둘러버렸다.
쿵
이내 목이 베어진 전마戰馬는 주인의 시체 위에 주저앉게 되었다.
콰지지직
그러자 깔린 기병의 시체가 찌부라지며 터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천근이 넘는 전마의 몸을 견뎌낼 수 없는 까닭이었다.
'생전에는 말을 깔고 앉은 채 천하를 호령하더니.....죽어서는 말에 깔려 비참하게 죽어나갔구나.'
그 모습을 본 중년인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눈앞에 펼쳐진 모순적인 상황에 헛웃음이 절로 새어나온 까닭이었다.
그렇게 허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었다.
두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두
어디선가 격렬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땅이 뒤흔들리는 진동이 전해져오기 시작하였다.
'젠장, 한 놈이 아니군.'
중년인은 검을 늘어뜨린 채 정면을 응시하였다.
만반의 태세를 갖춘 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흑갑을 입고 있는 수 백의 기병들이 중년인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생각보다 더 많다.'
중년인은 긴장 어린 표정을 지었다.
끽해야 몇 십기가 전부일 줄 알았건만
예상보다 숫자가 많았다.
설마하니 수백 기의 기병들이 모습을 나타냈으니 말이다.
쿵 쿵 쿵 쿵
그때 가장 선두에 서있는 기병 하나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다음 시선을 아래로 내려 목이 달아난 기병과 전마를 바라보았다.
"네놈이 그런 것인가?"
그리고 중년인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그렇다."
"대단하군."
철기병은 감탄하듯 말을 내뱉었다.
"설마하니 철기병을 검 한자루로 참살할 줄이야."
고작 검 한자루로 거창과 기동력을 갖추고 있는 철기병을 감당하였다는 사실에 말이다.
"네놈도 다를 신세는 아닐 것이다."
중년인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자신감이 마음에 드는구나."
철기병은 재밌다는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난 혁단경이다. 흑갑철기병의 우두머리지."
흑갑철기병의 우두머리, 혁단경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이었다.
"갈지천이다,"
중년인, 갈지천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갈지천? 설마 청수검왕?"
그 말을 들은 혁단경은 놀랍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그렇게도 불리웠지."
갈지천은 그의 물음을 부정치 않았다.
"어찌 네놈이.....이곳에 있는거지?'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갈지천이라고 하면
천무맹이 자랑하는 사대 무력단체 중 백호당의 당주이자 청수검왕이라고 불리우던 절대고수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어찌 사천에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말인가
"보은報恩을 위해서다."
"보은報恩?"
혁단경은 모르겠다는듯 다시금 되물었다.
대체 누구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말인가
"자세한 사정따위는 중요치 않을텐데?"
갈지천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네놈들과 내가 생사대적이라는 사실이 아니던가?"
그의 입가에 살기 어린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네놈 혼자 흑갑철기병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미소를 마주한 혁단경은 우습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청수검왕이라고 불리우는 절대고수라고는 하지만 그는 혼자였다.
수백의 흑갑 철기병을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는 것이다.
"혼자라면 무리겠지."
갈지천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하였다.
자신이 강하긴 하였지만 수백에 다다르는 흑갑철기병을 홀로 감당하는 것은 무리였다.
자신은 독왕毒王이 아니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함께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갈지천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모두 쏴라!"
그리고 곧바로 고함을 내질렀다.
쇄애애애액
쇄애애애액
그러자 허공에서 수많은 암기의 세레가 쉴새없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하였다.
흑갑철기병들을 향해서 말이다.
"아아아악!"
"아아아악!"
"끄아아악!"
곧이어 찢는듯한 비명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럽게 날아든 암기에 미처 대처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이런 제기랄!"
갑작스러운 상황에 혁단경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빈틈을 노린 적의 기습에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다시 내 소개를 하지, 당가 최고의 무력부대, 독천대의 대주, 갈지천이라고 한다."
그런 혁단경을 바라보며 갈지천은 사악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젠장, 함정이다! 모두 방패를 들어올려라!"
그 말을 들은 혁단경은 고개를 돌려 부하들을 바라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모든 게 저 늙은 여우가 만들어낸 함정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빈틈!'
그 모습을 본 갈지천은 눈을 반짝였다.
목을 날려버릴 최적의 기회라고 여긴 까닭이었다.
갈지천은 혁단경을 향해 그대로 몸을 날렸다.
"한눈을 팔면쓰나."
이내 코앞까지 다가온 갈지천은 비웃는듯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쇄애애애액
그리고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머리통을 터트려버릴 기세로 말이다.
혁단경은 재빨리 창을 들어 그의 공격을 막아섰고
이내 창과 검이 맞부딪힌 두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충격파가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
수백에 이르는 흑갑철기병과
당가의 정예들만 모아놓은 독천대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독천대의 무사들은 쉴새없이 암기를 날려
흑갑철기병을 중독시켰고
흑갑철기병들은 날아드는 암기들을 방패로 막아서며 투창을 날려대었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콰쾅
콰쾅
한 편 두 집단의 우두머리인 갈지천과 혁단경은 생사를 넘나드는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누구 하나 양보할 수 없는 진정한 생사결을 말이다.
콰쾅
주르르륵
굉음이 터져나가고 갈지천의 신형이 뒤편으로 쉴새없이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전마의 기동력과 합쳐진 혁단경의 거창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하아...하아..제기랄..더럽게 강하네.'
뒤편으로 밀려난 갈지천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말싸움이나 하는 반푼이인줄 알았건만
예상이상으로 고강한 놈이었다.
특히 말과 하나가 되어 달려드는 기마무예만큼은
화경에 다다른 자신과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은 수준인 것이다.
그렇기에 짜증이 났다.
한시라도 빨리 승부를 내고 부하들을 도와주러 가도 모자랄 판국에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승부가 끌리게 되다니 말이다.
'시간이 없다....단 일검에 모든 걸 걸어야해.'
갈지천은 눈을 반짝였다.
수백 기에 다다르는 흑갑철기병에 비하면 독천대의 숫자는 미미하기 그지없는 숫자였다.
지금이야 기습과 암기를 통한 원거리 공격으로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난다면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검에 모든 걸 걸고 승부를 내야했다.
대장을 잡아 흑갑철기병의 사기를 꺾고
독천대를 돕기 위해서 말이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갈지천은 검 안에 모든 신경과 모든 내력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말겠다는 거대한 의지를 담은 채 말이다.
그러자 이내 그의 검에 강기의 불꽃이 활활 불타기시작하였다.
'충분하다.'
그 모습을 본 갈지천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정도 강기의 불꽃이라면
눈앞에 있는 혁단경과 성가시기 짝이없는 전마戰馬를 한꺼번에 베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우우우우우웅
갈지천은 내력을 집중하여 용천혈에 그대로 흘려보내기 시작하였다.
콰쾅
그리고 일순간에 한번에 터트려버렸다.
그러자 반탄력이 생기며 그의 신형이 마치 빛살처럼 쏘아지기 시작하였다.
'죽어라!'
갈지천은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모두를 지키고 말겠다는 의지를 담은 채 말이다.
'.......죽는다.'
그 모습을 본 혁단경은 죽음을 예상하였다.
도저히 막아설만한 힘이 아니라고 느낀 까닭이었다.
화아아아아악!
"끄아아악!"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어디선가 날아온 거대한 불덩어리가 갈지천을 몸통을 그대로 직격해버린 까닭이었다.
부우우우웅
거대한 불덩어리에 직격당한 갈지천은 그대로 날아가버렸고
이내 땅에 처박히게 되었다.
무척이나 꼴사납게 말이다.
"무슨 멍을 때리고 있는 것이더냐!"
그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사방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혁단경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철갑기병대를 통솔하는 책임자, 화마火魔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화마火魔님!"
혁단경은 놀랍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면 합공을 하거나 도망을 쳐야지! 어찌 신교의 병기따위가 무인 흉내를 내는 것이더냐!"
어느새 그의 코앞까지 다가온 화마가 꾸짖듯이 언성을 높였다.
무인 흉내를 내는 혁단경의 행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죄송합니다."
혁단경은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감정을 가지지 말거라, 네놈들에게 감정은 사치이니라."
"알겠습니다."
혁단경은 공손한 태도로 입을 떼었다.
"조심하도록."
그 모습을 본 화마는 그를 바라보며 다시금 경고를 하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땅바닥에 처박혀있는 갈지천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서둘러서 말이다.
"젠장할.."
그 모습을 본 갈지천은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적이 다가오는 와중 누워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크으으윽..."
하지만 좀처럼 몸을 일으켜세울 수 없었다.
가슴에 직격한 불덩어리로 인해 생겨난 화상의 고통이
몸을 일으켜세울 힘을 완전히 앗아가버린 까닭이었다.
'일어냐야한다..어떻게든..'
양팔로 땅을 짚으며 어떻게든 발버둥을 쳤다.
몸을 일으켜세우기 위해서 말이다.
"어딜!"
꾸우욱
"끄아아아악!"
하지만 그런 노력은 허사가 되어버렸다.
어느새 다가온 화마가 발꿈치로 화상부위를 그대로 짓밟아버린 까닭이었다.
"누구 마음대로 일어나느냐! 누구 마음대로!"
꾸우욱 꾸우욱 꾸우욱
화마는 짓밟고 있는 발에 힘을 더욱더 강하게 주기 시작하였다.
"아아아아악!! 아아아악!!"
그리고 그럴 때마다 갈지천의 비명성이 더욱더 커져가기 시작하였다.
끔찍한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온 까닭이었다.
"건방진 새끼, 감히 흑갑철기병을 노려?"
화마는 빠르게 손을 들어올렸다.
화르르륵
그러자 이내 손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그대로 불길이 치솟기 시작하였다.
붉디 붉은 진홍색의 불길이 말이다.
"네놈이 자초한 것이니 후회치 말도록 하거라!"
화마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팔을 휘둘렀다.
그의 머리통을 완전히 녹여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제기랄......아직..제대로 된 보은을 하지 못하였는데..'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갈지천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위대한 은인에게 보은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 까닭이었다.
그렇게 갈지천의 목숨이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인 그 순간이었다.
"그만하지."
그때 한기마저 느껴질 정도로 차갑디 차가운 목소리가 장내 울리기 시작하였다.
뚝
그 소리에 놀란 화마는 그대로 손을 멈춰세웠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여온 곳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고대 여신처럼 신비롭기 그지없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새하얀 여인의 모습을 말이다.
"목숨을 건 생사결에 끼어들다니, 너무 천박하지 않아?"
여인은 청명하기 그지없는 푸른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네년은...누구냐?"
화마는 긴장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심상치 않은 여인의 분위기에 압도가 된 까닭이었다.
"북궁연이다."
새하얀 여인, 북궁연은 차가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구태여 기억해둘 필요는 없다."
그리고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어차피 이번생에선 그리 오래볼 사이는 아닌듯 하니."
이내 그녀의 입가에는 살기 어린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