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4화 〉 935. 밥값
"전쟁입니다."
당서윤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당장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간부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타타타탁
타타타탁
가주전에는 간부들의 다급한 발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가주전에는 요랑과 당서윤 외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서윤아, 난 뭘하면 돼?"
요랑은 앙증맞은 두 주먹을 힘껏 움켜쥔 채 말을 이었다.
의욕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아무것도.....하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하면 좋을 것 같지만.......아무래도 자존심을 세울 상황이 아닌 것 같네요."
당서윤은 면목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웬만해선 요랑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비록 그녀가 재경각주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긴 하였지만
당서윤은 그녀를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고맙고 귀한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찌 도움을 청할 수 있겠는가
이미 재경각주로서 당가의 재정에 크나큰 도움을 주고 있는 그녀에게 말이다.
'하지만..상황이 여의치 않아.'
하지만 자존심을 세우기엔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동쪽에는 마교 최고의 타격부대라는 흑갑철기병이
서쪽에는 천축 무림을 지배하는 소뢰음사가
남쪽에는 남만의 절대자라고 불리우는 남만 야수궁이
북쪽에는 마교가 만들어낸 역천의 인간 병기인 강시 부대가
사천성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괜한 자존심을 세우는 것은 주제파악도 제대로 못한 어리석은 행동이리라
사천은 지금 도움이 필요하였다.
요랑과 같은 초월자의 도움이 말이다.
"........요랑님....도와주세요."
이내 당서윤은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빚지는 걸 죽어도 싫어하는 그녀였기에
쉽사리 입이 떼어지지 않았지만 강제로 입을 열었다.
자존심따위보단 모두의 안위가 더욱더 중요하였으니 말이다.
"당연하지."
그녀의 부탁에 요랑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을 하였다.
"........감사해요, 요랑님."
그 말을 들은 당서윤은 그녀에게 곧바로 고마움을 표하였다.
자신의 부탁을 선뜻 수락해준 그녀가 너무나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감사할 필요 없어, 친우의 부탁인걸?"
요랑은 해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당서윤이 좋았다.
항상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무척이나 유쾌한 그녀가
항상 철두철미하고 사무적으로 행동하지만
속내는 그 누구보다 따스하고 잔정이 많은 그녀가 말이다.
그렇기에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친우의 부탁을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럼 이제 말해줘."
요랑은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당서윤을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하는 지 말이야."
그녀는 눈빛에는 뜨거운 열정이 가득 차 있었다.
**********
"사방위 중 한 곳을 맡아주셨으면 해요."
"한 곳을?"
"네에.....지금 사천성을 동서남북, 각기 다른 방위에서 동시에 침공을 받고 있는 형국이예요.....이런 상황에서 요랑님이 일각을 맡아주신다면....부담을 많이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서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디로 가면 되는데?"
"이왕이면 강시부대가 있는 북문이나 남만야수궁이 침공하고 있는 남문이였으면 해요......그들에겐 독이 통할 것 같지 않거든요."
당서윤은 조심스레 의견을 제시하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강시에게는 독이 통하지 않았다.
이미 모든 신경이 죽은 자들에게 무슨 독이 통하겠는가
온몸을 녹여버릴 정도의 극독이 아니라면 전혀 소용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남만의 짐승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으로 남만의 야수들은 독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인 독으로는 중독조차 시킬 수 없었으며
어거지로 중독시킨다해도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독이 필요하였다.
독을 주력으로 삼는 당가 입장에선 두 존재 모두 난감하기 그지없는 존재인 것이다.
"알았어, 그렇게 하도록 할게."
요랑은 수긍하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감사해요, 요랑님. 정말 큰힘이 될거예요."
당서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한 축을 맡아준다면 걱정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런데 서윤아,다른 곳들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
요랑은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자신이 사방위 중 한 축을 맡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세 곳이 남아있었다.
위협이 완전히 해소가 되는 게 아니다.
"다른 곳들은 사천 연맹과 군부 세력만으로 맞설 생각이에요.......청성의 운적자 어르신도 계시고....아미의 설향 소저도 있으니......쉽사리 밀리진 않을 거예요.."
"부족하진 않겠어?"
요랑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천하의 당서윤이 과민반응할 정도의 상대들이었다.
전력이 충분한게 맞는지 걱정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어요.......부족한 건지....아니면 충분히 당해낼 수 있는 전력인지 말이에요."
당서윤은 솔직한 속내를 내비쳤다.
전력이 충분한지는 그녀조차 미지수였다.
새롭게 나타난 흑갑철기병과
점창을 멸문시킨 남만야수궁
모습을 드러낸 마교의 강시부대
천축의 절대자인 소뢰음사
모두 얼만큼의 전력을 갖추고 있는 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과잉전력으로 가는 게 어때?"
요랑은 그런 그녀에게 제안을 하였다.
"과잉 전력이요?"
"응! 전력은 부족한 것보단 과한 게 낫잖아?"
"하지만 사천에는 더 이상 끌어올 전력이 존재치 않아요.."
당서윤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야, 있어."
요랑은 그녀의 말을 곧바로 부정하였다.
"전황을 뒤집어엎을 정도로 강대한 대전력들이 말이야."
요랑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안돼요."
그 미소를 마주한 당서윤은 곧바로 거절을 하였다.
"아직 말도 안했는데!?"
요랑은 억울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얘기도 안꺼냈는데 부정을 하니
억울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옥령 선배를 비롯한 선우의 정인분들을 끌어들이자는 얘기잖아요."
당서윤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동자로 그녀를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맞아."
요랑은 살짝 고개를 주억거리며 긍정을 하였다.
그녀의 유추가 무척이나 정확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안된다고 한거예요."
"어째서!?"
요랑은 이해가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선우의 정인들
옥령을 비롯한 북궁연, 강하윤의 도움을 받는다면 전황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었다.
그들 모두가 대문파에 버금가는 일기당천의 거대 전력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찌 안된다고 말하는 것인가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폐라니?"
"그분들은 엄연히 당가의 손님으로서 머물고 계신 분들이예요.....그런 분들에게 정의라는 명분을 앞세워 무력을 보태달라는 건 명백한 무례예요...전 그분들에게 그런 무례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당서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그들은 당가의 일원이 아니었다.
엄연히 선우의 사람인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당가의 책임을 강요하는 건 크나큰 무례였다.
어찌 외인에게 그런 막대한 책임을 지우게 한다는 말인가
정의라는 명분으로 빌미로 말이다.
이건 일종의 폭력이자 협박이었다.
"걔들은 폐라고 생각 안할거야."
"분명 그럴거예요....그분들 모두 아량과 이해심이 넓은 분들이니까요....하지만...그렇기에 더더욱 전쟁 참전을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그분들의 친절과 이해심에 기대어 당가의 책임을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부탁하면 되잖아? 나한테 했던 것처럼."
"요랑님과는 경우가 달라요..."
요랑은 엄연히 당가의 일원이었다.
선우뿐 아니라 당가 또한 발을 걸치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장고끝에 부탁을 할 수 있었다.
부디 도움을 달라고 말이다.
"너는 가끔 생각을 너무 깊게해."
요랑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고지식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태도가 영 내키지 않은 까닭이었다.
"어쩔 수 없어요...지금껏 이렇게 살아왔는 걸요?"
당서윤은 처연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답답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런 답답함을 감수하더라도
선우의 소중한 이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흐으음.."
요랑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말이 좀처럼 수긍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장선우라는 우월한 수컷을 모시는 암컷에 불과하거늘
어찌 이렇게 내외를 한다는 말인가
"요랑님, 이 건에 대해선 다른 분들께 절대 발설하시면 안되요...아셨죠?"
"...........내키지 않는데.."
"부탁이에요..."
당서윤은 간절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알았어....비밀로 할게."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요랑은 마지못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간절한 그녀의 눈빛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요랑님."
당서윤은 안심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실이 다른 부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듯 하였기 때문이었다.
******
터벅 터벅
가주전을 나온 요랑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무언가 생각에 빠진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동서남북 중 한쪽을 맡아 사천을 사수해달라라....'
당서윤은 그녀에게 부탁을 하였다.
네 곳의 방위중 한쪽을 맡아 사천성을 사수해달라고 말이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부담을 덜어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또 부탁하였다.
이번 사태에 대해 다른 부인들에게 발설하지 말라고
당가의 책임을 정의라는 명분아래 강제로 지워주기는 싫다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을 하였다.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물론 지킬 생각은 없지만.'
히죽
요랑은 히죽거리기 시작하였다.
지킬 생각 따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그대로 말할 생각인 것이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요랑은 그녀의 부탁이 결코 폐라고 생각지 않았다.
당가를 보금자리로 삼고 있는 여인들에게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엄청 화내겠지?'
분명 이런 자신의 생각을 알게된다면
당서윤은 무척이나 화를 낼 것이다.
엄청 서운해 할 수도 있었다.
자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말이다.
'뭐, 어때.'
하지만 요랑은 대수롭지 않았다.
원래부터 구두약속은 밥먹듯이 어겼던 그녀였다.
몇 번 더 어긴다고 티가 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손가락을 걸었어야지.'
요랑은 입가에 악동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걸음을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여인들이 있는 곳을 향해서 말이다.
*********
당가 내에서도 무척이나 구석진 곳에 위치해있는
커다란 정자
그곳에 다섯 명의 여인들과 한 아이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여인들은 하나같이 선녀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며
아이는 올망졸망한 생김새가 무척이나 귀엽고 깜찍하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훈훈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광경인 것이다.
"어마..어마..어마!"
연우는 옹알이하며 엄마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후후후...모두 들으셨나요? ...이제는 발음조차 완벽히 구사하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북궁연은 자랑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정말이네요.....이제 이빨이 나서 그런지 발음이 잡혀지나봐요."
운가려는 감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연우가 부모를 닮아 머리조차 영특한듯 하군요."
옥령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후후후후.....그럴만도 합니다...우월한 핏줄이 두개나 혼합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녀의 칭찬에 북궁연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식 칭찬에 기분이 끝없이 고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저도 한 번 안아봐도 될까요?......올망졸망한 얼굴을 보니 품에 안고 싶어지네요."
강하윤은 양팔을 살짝 뻗으며 말을 이었다.
임신을 해본 적 없는 그녀였지만
귀엽기 그지없는 연우를 보니 모성애가 절로 차오른 까닭이었다.
"물론이에요."
북궁연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품 안에 안긴 연우를 천천히 건네주었다.
꼬오옥
이내 강하윤은 연우를 품 안에 그대로 안게되었다.
그러자 따스하기 그지없는 아이의 체온과 알 수 없는 향기로운 체향이 온몸에 그대로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아아아....좋구나.'
강하윤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차오른 모성애가 그녀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연우를 중심으로 여인들 간의 즐거운 친목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터벅
터벅
어디선가 균일한 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그 소리에 여인들은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두 명의 여인이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한 명은 자신들을 이곳으로 모이게 한 장본인인 요랑이었고
다른 한 명은 난생 처음보는 인물이었다.
여인들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벌써 다 왔네?"
어느새 정자의 코앞에 도달하게 된 요랑은 흡족스럽다는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자신의 요청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여준 게 무척이나 만족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네에, 모이라고 하셨으니까요."
옥령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옆에 있는 분은...누구신지?"
그녀는 궁금하다는듯 물음을 던졌다.
"인사해! 새로 사귄 친구야!"
요랑은 활기차게 답을 하였다.
"반갑습니다. 운설이라고 해요."
심유한 눈동자를 가진 여인, 운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반가워요, 옥령이라고 해요."
"반가워요, 운가려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강하윤이라고 합니다."
"반갑다, 나는 북궁연이다. 이 아이는 장연우다. 위대한 핏줄을 이은 아이지."
"아부!"
이내 네 명의 여인과 한 명의 아이는 반갑게 그녀를 맞아주었다.
요랑의 친구라면 나쁜 이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한 까닭이었다.
"그럼 인사도 나눴겠다. 본론에 들어가도록 하자."
그 모습을 본 요랑은 곧바로 끼어들어 말을 이었다.
"본론이요?"
옥령은 궁금하다는듯 물음을 던졌다.
"다들 궁금할 거 아니야, 갑자기 왜 모이라고 했는지."
요랑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여인들은 수긍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궁금하긴 하였다.
갑작스레 요랑이 자신들을 한데 모은 이유가 말이다.
"애들아, 밥값할 때가 왔어."
요랑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네에?"
"밥값이요?"
"밥값이라니?"
그녀의 말을 들은 여인들은 하나같이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데 없이 밥값이라니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지금까지 풍족하게 놀고 먹었으니까.......이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뤄야하지 않겠어?"
요랑은 악동같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여인들의 표정은 한층 의문이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다짜고짜 저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