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1화 〉 932. 선 넘네.
"말해, 무슨 꿍꿍이를 속이고 있는지 말이야."
선우는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갈오식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덜 덜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갈오식을 몸을 덜덜 떨기 시작하였다.
태산처럼 거대한 위압감이 온몸을 거세게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인간이...아니다..'
갈오식은 생각하였다.
눈앞에 남자가 인간의 탈을 쓴 무언가가 분명하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나 강대한 존재감을 발산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인외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무섭다.'
두려웠다.
본디 사람은 알 수 없는 미지未知에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알 수 없기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지
모르기에
더욱더 거대한 두려움을 품게되는 것이다.
지금 갈오식의 상황이 딱 그러하였다.
눈앞에 남자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한계를 초월한 인간인지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쓴 괴물인지
현계에 현신을 한 신인지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두려웠다.
갈오식에 눈앞에 남자는 미지未知,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말이 없네."
휘익
갈오식이 말이 없자 선우는 가벼이 손을 휘저었다.
서걱
그러자 무언가 잘려나가는듯한 절삭음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갈오식은 재빨리 절삭음이 들려온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텅 빈 어깨죽지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거대한 팔뚝을 말이다.
'아..'
그 모습을 본 갈오식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팔이 잘려나갔다는 사실을 말이다.
툭
이내 팔이 바닥에 그대로 떨궈져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악!!!"
곧이어 갈오식의 비명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평생을 함께했던 양팔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박탈감
잘려나간 단면에서 전해지는 끔찍한 고통
이 모든 게 혼합되어 그의 정신과 육체에 끔찍하기 그지없는 고통을 선사하였다.
아팠다.
너무 아파서 기절하고 싶은 생각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말했잖아, 말 잘해야한다고 말이야."
선우는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한치의 동정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당연한 일을 했다는듯 의연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다시 묻지, 무슨 꿍꿍이지?"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물음을 던졌다.
"차...차라리 죽여라!"
갈오식은 독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이미 살기는 글렀다.
이런 상황에서 동료를 팔 생각따위는 추호도 없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뿐이다.'
눈앞에 남자가 두렵기 그지없었지만
최악의 경우는 그저 죽음 뿐이었다.
죽음 따위에 타협해서 어찌 남만의 위대한 무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기개 있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는 곧바로 음양조화신공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주위에 있는 자연기들이 선우의 몸속으로 일제히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스며든 자연기들이 온몸의 혈도를 따라 세맥으로 퍼져가며 순환하였다.
이내 퍼져나간 자연기들이 음양조화기로 변환되더니 그대로 선우의 오른손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오른 손이 붉게 달아올랐다.
마치 불꽃을 품은 것처럼 말이다.
주르륵
그 모습을 본 갈오식은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심상치 않은 선우의 모습에 공포감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예감할 수 있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뭐가 되었든 끔찍하기 그지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원래라면 단숨에 목을 쳐줬겠지만....이쪽도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선우는 붉게 달아오른 오른 손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무슨 짓을 하든.....내 입을 열 수는 없을 것이다."
갈오식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그의 눈빛에는 굳은 의지가 한가득 담겨져있었다.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구."
선우는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말을 이었다.
당하기 전에는 모든 이들이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눈앞에 남만인과 똑같이 말하였다.
무슨 짓을 하든 입을 열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근데 나중엔 제발 말하게 해달라고 하더라구."
하지만 결국엔 다들 입을 열었다.
입을 결코 열지 않을 것이라는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말이다.
"나는 다를 것이다."
갈오식은 뜨겁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어디 한 번 보지."
선우는 불꽃처럼 붉게 물든 손을 천천히 뻗었다.
꾸우욱
그다음 그대로 그의 단전을 짓누르기 시작하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이내 갈오식의 찢는듯한 비명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처절하고 끔찍하기 그지없는 고통 어린 비명성이 말이다.
*********
아팠다.
너무 아팠다.
들소의 거대한 뿔이 배를 꿰뚫으며 내장을 헤집었을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흑곰이 휘두른 팔에 머리통을 직격당하였을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사람 팔뚝만한 어금니를 가지고 있는 남만의 범에게 물렸을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집중사격되는 포탄을 수십 발을 맞았을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남만의 정점이자 모든 맹수들 위에 군림하는 자.
남만야수궁의 궁주
야율천과 서열전을 나눴을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그 어떤 고통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온몸 구석구석에 그대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죽고 싶었다.
그저 죽고싶다는 생각 외엔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찌 이렇게 끔찍한 고통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새하얀 흰자에 핏발이 서기 시작하였다.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침과 콧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끔찍한 고통에 정신줄을 완전히 놔버린 것이다.
"끄아아아아악!!!"
갈오식은 비명을 내지르고 또 내질렀다.
이 끔찍한 고통이 부디 종결되기를 빌고 또 빌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슈우우우욱
갑자기 온몸에 퍼져있던 고통의 근원들이 천천히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자 고통 어린 비명성을 내지르던 갈오식의 목소리가 점점 낮춰지기 시작하였다.
근원들이 사라지자 고통이 완전히 씻어내려갔기 때문이었다.
콰당
이내 모든 근원들이 빠져나갔고 갈오식의 몸은 축 늘어지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혀버렸다.
진이 빠질대로 빠져 도저히 몸을 가눌 힘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파들 파들
땅에 처박힌 갈오식은 온몸을 파들파들 떨어대었다.
마치 짓밟힌 벌레처럼 말이다.
"이제 말할 마음이 드나?"
선우는 그런 갈오식을 바라보며 다시금 입을 떼었다.
"..............."
선우의 물음에 갈오식은 짓밟힌 벌레마냥 몸을 파들거릴 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정신 못차렸나보네."
선우는 다시금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음양조화기를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불꽃같았던 오른 손이 이번에는 마치 용암처럼 진한 색을 띄기 시작하였다.
최악의 암살자라고 불리우던 살혼마저 굴복시켰던
최악의 독을 꺼내든 것이다.
땅에 처박혀있는 갈오식을 향해 손을 뻗기 시작하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잠..잠깐!"
그때 갈오식의 다급한 음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뚝
그러자 선우의 손이 그대로 멈춰섰다.
"뭔데?.....유언이라도 남기게?"
선우는 갈오식을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말..하겠다."
갈오식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기어가는듯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고통에 굴복하여 동료들을 배신한다는 생각에 수치심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잘 안들리는데?"
선우는 짓궂은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물론 제대로 들렸지만 일부러 부정을 하였다.
그의 기를 완전히 죽여놓기 위해서 말이다.
으드득
선우의 말을 들은 갈오식은 이를 갈았다.
그가 일부러 자신에게 수치를 주고있다는 것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말...하겠다...부디...부디..그..악랄한 수법은..사용하지 말아다오.."
하지만 수치를 무릅쓰고 갈오식은 다시금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그 악랄하기 그지없는 수법에 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좋아."
선우는 흡족스럽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그리고 천천히 팔을 거둬들이기 시작하였다.
협조적으로 나오는데 구태여 이렇게 위협적인 녀석을 들이밀 필요는 없는 까닭이었다.
"그럼 이제 묻는 말에 대답해라."
선우는 갈오식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말하거라."
"이름은?"
".....갈오식이다."
"직위는?"
".........남만야수궁의 부궁주이다."
갈오식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잘됐네, 부궁주면 아는 것도 많을테니까 말이야."
선우는 만족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다행히 유일하게 남은 놈이 평범한 졸卒은 아닌듯 싶었다.
부궁주라는 직위까지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좋아, 갈오식, 그럼 이제 본론이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
선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갈오식을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뭘 묻는 지는 네놈이 가장 잘알텐데?"
선우는 가소롭다는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대리시에 오기 전 임창시에 들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짐승들을 마주하게 됐지....집채만한 흑곰, 사람만한 원숭이 무리, 황소 두마리를 합친 것처럼 거대한 맷돼지 같은 걸 말이야."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임창시에는 짐승들만 남아있더군, 그놈들을 조련한 남만야수궁의 무인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말이야.....혹여 버려두고 간 건 아닐까 싶어,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짐승들외에 다른 흔적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더군."
선우는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걸 보고 알 수 있었지. 처음부터 도시에 입성했던 건 짐승들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다시 묻지, 대체 무슨 꿍꿍이지? 무슨 꿍꿍이길래, 짐승들만 보내 도시를 습격했던 거지? 너희 남만야수궁의 본대는 어디있는거지?"
"...........통찰력이...대단하군.."
"칭찬따위를 바라는 게 아니야, 진실을 원하는 거지. 제대로 말해,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말이야."
선우는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양동 작전이다."
갈오식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양동 작전?"
"그렇다.......짐승들을 보내 도시를 습격했던 건 중원 세력들의 이목을 끌어 그들을 운남성에 묶어두기 위해서였다.....동시다발적으로 짐승들이 창궐한다면....뒷수습을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
갈오식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남만 야수궁의 본대는 다른 곳으로 갔다는거군."
선우는 이해했다는듯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렇다."
갈오식은 선우의 말에 긍정을 하였다.
"그럼 말해라, 너희 남만 야수궁이 진정한 목적을 말이야.....대체 어디를 노리고 있는 거지?"
"당문."
갈오식은 올곧은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천성의 패주이자 무림 세력들 중에서도 강성하기로 소문난 무력집단인 사천당문, 남만 야수궁의 목적은 사천당문의 멸문이다."
'이새끼들이.....이딴..술수를.'
선우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분노가 절로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당문의 자신의 본진이었다.
사랑하는 수 많이들이 머무르고 있는 보금자리였다.
그런 곳을 습격한댄다.
그것도 멸문을 목적으로 말이다.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당가는 멸문할 것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
선우는 그의 말을 부정하였다.
멸문시킬 수 있을 리 없었다.
당가의 전력은 중원 그 어떤 곳보다 강대하였다.
그런 곳을 한낱 남만의 짐승새기들이 넘볼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당가와 관계가 있는 것인가? 목소리가 떨리는군."
갈오식은 재밌다는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가가 거론된 순간부터 눈앞에 남자의 호흡이 좀더 격정적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신이 아닌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소중한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인간으로 말이다.
"네놈 알바가 아니다."
"크흐흐흐흐흐....이제야..인간처럼 보이는구나...괴물.."
갈오식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재밌는 걸 알려주마.......당가로 향하는 건 남만 야수궁만이 아니다."
"...뭐라?"
"마교 최고의 타격부대라고 불리우는 흑갑철기병과 그들을 전두지휘하는 화마火魔, 마교내에서도 이질적이기 그지없는 역천의 존재인 강시들과 시마屍魔, 천축무림의 절대자이자 부처의 재림이라고 칭송받을 정도로 강대한 무공을 갖춘 당대 혈불血佛과 소뢰음사의 주전력이라고 불리우는 혈승들까지"
갈오식은 뜨거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 모든 마귀들이 사천으로 향하고 있다....오직 당가를 멸문시키기 위해서 말이다......중원 무림 전체를 상대해도 부족하지 않을 이들이 전부 당가로 향하고 있는데.....어찌 당가가 멸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크흐흐흐흐"
갈오식은 재밌다는듯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당가는 멸문할 것이다.....당가가 자랑하는 무사들은 모조리 도륙당하게 될 것이고....무림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라고 불리우는 당가의 재산은 모조리 약탈당할 것이며......절세미인들로 가득하다는 당가의 여인들은 모조리 겁탈........."
콰지직
갈오식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였다.
선우가 손을 휘저어 그의 머리통을 그대로 터트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쿵
이내 머리를 잃은 갈오식의 몸통이 그대로 땅에 널부러지게 되었다.
"선 넘네, 시발놈이."
선우는 짜증 어린 눈빛으로 그의 시체를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다음 풍진보를 극성으로 밟으며 곧바로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낭비할 시간따위는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사천에 당도해야하는 것이다.
선우의 신형이 더욱더 쾌속하게 쏘아져나갔다.
이내 그의 신형은 점이 되어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장내에는 머리가 터져나간 갈오식의 비참하게 널부러진 시체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남만을 지배하는 남만야수궁의 부궁주의 죽음이라고 하기엔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