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8화 〉 929. 걱정말거라, 내가 왔으니.
연설장
가슴팍에 의천義天이라고 쓰여져있는 무복을 입은 이들이 각기 다른 무기들을 손에 쥔 채 연설장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무척이나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끼이이익
이내 연설대 뒤편에 있던 전각의 문이 열리더니
새하얀 백의를 입고 절세미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의천맹주, 주소양이었다.
저벅 저벅
바깥으로 나온 주소양은 빠르게 걸음을 옮겨 연설대에 올랐다.
그리고 좌중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맹원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럽게 소집령이 내려진 이유는 맹원 여러분들 모두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내 그녀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맹원들은 수긍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 또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남만야수궁이 득세하여 운남성 전역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만야수궁이 득세하여 무고한 민초들은 학살하고 그들의 생활 터전을 폐허로 만들며 운남성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운남의 관군들을 몰살당하였고 운남에 위치한 중소문파들은 무참히 무너져내렸습니다......운남의 백성들을 지켜줄 이가 누가 하나 남아있지 않은 상황인 것입니다."
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말을 들은 맹원들은 얼굴을 잔뜩 붉히며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
남만야수궁에 대한 적의가 미친듯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주소양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전쟁입니다."
주소양은 선언하듯 말을 내뱉었다.
""충! 명을 따르겠습니다!""
""충!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연설장이 일제히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말을 들은 맹원들이 뜨거운 목소리를 그대로 토해내었기 때문이었다.
"보여주도록 합시다. 넘보면 안될 것을 넘본 멍청한 이의 말로를 말입니다."
주소양의 눈빛이 남만야수궁에 대한 적대감으로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보여주자! 남만의 짐승에게!"
"어디 짐승따위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단 말인가!"
"중원 무림의 저력을 보여줍시다!"
"건방진 짐승새끼들에게 격의 차이를 보여줍시다!"
"미개한 남만의 촌놈들이 주제 파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아아!!"
이내 연설장 내부는 맹원들의 환호성으로 가득차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강경한 태도에 사기가 급속도로 증진된 까닭이었다.
주소양은 그 모습을 흡족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바라보았다.
맹원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 높아졌다는 것을 느낀 까닭이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녀는 생각하였다.
전쟁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충분한 전력.
하늘을 찌를듯한 사기
그리고 전황을 뒤집을 수 있는 일기당천의 절대고수까지
전부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오직 정면대결 뿐이었다.
주소양의 눈빛이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하였다.
**********
운남성 임창시
임창시는 운남성에 위치해있는 도시로 그 규모는 작지만 자원의 매장량만큼은 운남의 그 어떤 도시와도 비견할 수 없는 최대 탄광도시이다.
임창시의 대다수 지역민들은 탄광업에 종사하였는데 그때문인지는 몰라도 임창시의 지역민들 간에는 불화가 거의 없다시피하였다.
너도나도 결국 광부였기에 서로간의 열등감이나 시기심같은 게 존재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어찌보면 가장 행복한 도시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곳인 것이다.
"아아아아악!!!"
"살..살려줘어어어!!"
"끄아아아악!"
그런데 그런 행복의 도시, 임창시에 비명성이 난무하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럽게 쳐들어온 짐승들이 임창시의 지역민들을 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습격 시작은 새벽이었다.
걸어잠궈둔 성문이 부서지면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짐승들이 도시 내부로 한꺼번에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하나같이 흉악하기 그지없는 맹수들로 말이다.
도시 내부로 들어온 맹수들은 지역민들은 모조리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할퀴고 물고 뜯고 집어던지고 나중에는 식인마저 꺼릴 것 없이 자행하였다.
포식자로서의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짐승들의 침공 소식에 임창시의 지부대인이 다급히 관군이 투입시켰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화살조차 박히지 않는 제대로 박히지 않은 두터운 가죽을 지니고 있는 맹수들에게 관군마저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웃음이 꽃피는 행복의 도시 임창시는 비명과 절규 그리고 죽음이 난부하는 절망의 도시로 탈바꿈되게 되었다.
불과 하룻밤새 말이다.
******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젊은 광부 함복은 쉴새없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인 너무나 끔찍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이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툴툴거리지만 알게 모르게 자신을 챙겨주던 맞선임은 호랑이보다 거대한 표범에게 머리통이 뜯겨나갔고
젊은 놈이 꾀부리지 않고 건실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광산소장은 사람보다 거대한 독수리에게 잡혀가더니 그대로 추락사하여 온몸이 터져나갔다.
대취한 광산소장을 데려다줄 때마다 은근한 눈빛을 보내던 광산소장의 부인은 이무기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대한 구렁이의 한끼 식사로 전락해버렸으며
어미와 아비 몰래 뜨거운 밤을 보냈던 광산소장의 딸은 집채만한 흑곰이 휘두른 팔에 목이 세바퀴나 돌아가버렸다.
고향에 자신 또래 아들이 있다던 조선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김선달은 흉폭한 원숭이 떼에 의해 온몸이 낱낱히 파헤쳐졌으며
결혼자금을 모으겠다고 광산업에 뛰어든 곤륜노 출신 노동자 흑피黑皮는 식인마食人馬에 의해 산채로 먹혀지게 되었다.
모두가 짐승들에 의해 끔찍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어째서..어째서..이런 일이..'
함복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자신에게 이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된것인지 말이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평소대로 일하기 싫다며 틱틱대고
그런 자신에게 선임은 틱틱대며 당과 하나를 물려주고
인생은 원래 고달프다며 개똥철학을 펼치는 광산소장과 거하게 술을 한잔하고
광산소장을 데려다주며 그 부인과 은근한 눈빛 교환을 하고
나오는 길에 갈대밭에서 그 딸과 사랑을 확인하는 그런 평범한 일상을 보낼 뿐이었다.
그런데 그 평범한 일상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갑작스럽게 쳐들어온 짐승들에 의해서 말이다.
'시발...시발...시바아아알..'
욕이 안나올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지...어디로 도망가야하지?'
함복은 깊은 고심에 빠졌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헛간에 숨어있던 탓에
무참히 죽음을 맞이한 다른 이들과 달리 운좋게 맹수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년 만년이고 이 속에 숨어있을 수는 없었다.
눈에 띄지 않는다지만 오래 머무르다보면 결국을 발견 될 수밖에 없을테니까 말이다.
'어떻게 하지....대체..어떻게해야..'
함복은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헛간을 빠져나와 도시 밖으로 줄행랑을 쳐야할지
아니면 좀더 숨은 채로 상황을 지켜봐야할 지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고민에 빠졌을까
'그래...이래 죽으나...저래..죽으나..똑같다면..최소한의 발악이라도 하자!'
이내 그는 결심한듯한 표정을 짓더니 헛간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죽음을 기다리기 보단 스스로 생존을 쟁취하고자하는 것이다.
끼이이이익
함복은 조심스레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혹여나 짐승이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 까닭이었다.
'후우..'
그리고 이내 함복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짐승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발 다먹고 가버려라.'
그는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사람들을 잡아먹고 배가 부른 짐승들이 모두 떠났기를 말이다.
살금 살금
이내 함복은 도시 밖을 향해 조심스레 걸음을 떼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흐아아아아아아앙!!!!"
어디선가 찢는듯한 울음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뭐..뭐야!?'
화들짝 놀란 함복은 울음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서럽게 울부짖고 있는 여자 아이의 모습을 말이다.
'울지마..울지마..제발..'
그 모습을 본 함복은 간절히 부탁하고 또 부탁하였다.
제발 울지말라고
제발 조용히 해달라고 말이다.
"흐아아아아아앙~!!! 엄마아아아아!!"
하지만 그런 함복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여아는 울음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서럽게 울어젖히기 시작한 것이다.
'안되겠어.'
함복은 여아가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이러다간 남아있는 맹수들의 이목을 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어린 아이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한창 걸음을 옮길 떄였다.
쿵 쿵 쿵
어디선가 거대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발소리!?'
순간 함복을 걸음을 멈춰세웠다.
들려오는 소리가 짐승의 발소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한 까닭이었다.
함복은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서 걸어오고 있는 집채만한 흑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쿵 쿵 쿵 쿵
흑곰은 집채만한 몸뚱이를 뒤뚱거리며 여유롭게 걸어오기 시작하였다.
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를 향해서 말이다.
'젠장..도망가..도망가라고.'
함복은 여아를 바라보며 속으로 외치고 또 외쳤다.
도망가라고
이대로 가다간 죽을 거라고
하지만 여아는 그 압도적인 덩치에 압도를 당한 것인지
그저 울음을 터트릴 뿐
어떠한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젠장할...젠장할...젠장할..'
함복은 쉴새없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대로 가다간 아이가 끔찍하게 살해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소리치고 싶었다.
당장에라도 도망을 가라고
하지만 차마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흑곰의 시선이 이쪽으로 돌려지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미안하다...미안해.........'
함복은 몸을 돌렸다.
아이를 희생양으로 바친 뒤 도망갈 심산이었다.
둘다 죽을 바엔 한 명이라도 사는 게 낫지 않냐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뚝
하지만 도저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아이의 물기 가득한 눈동자로 머릿속에서 쉴새없이 떠올라졌기 때문이었다.
'가야해...가야한다고!'
머리가 명령을 한다.
가라고 어서 도망가라고
혼자서 추하게 살아남으라고 말이다.
하지만 몸이 말을 안들었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시발."
함복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금 몸을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울고 있는 여아의 코앞까지 다가선 집채만한 흑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야이 멍청한 곰새끼야!!!!!"
이내 함복은 흑곰을 바라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자신이 내지를 수 있는 최대의 음량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미 작은 먹잇감에 현혹된 흑곰을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함복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던지기 딱 알맞는 크기의 돌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부웅
함복은 재빨리 돌을 집어들어 그대로 투척을 하였다.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흑곰을 향해서 말이다.
퍽
이내 흑곰의 뒤통수에 돌이 직격을 하였다.
뚝
순간 아가리를 벌리며 다가가던 흑곰의 움직임이 멈춰섰다.
"야이 멍청한 금수새끼야! 말귀도 못알아듣냐? 여기라고 여기! 웅담빼면 볼 것도 없는 머저리 새끼야!"
흑곰이 움직임을 멈추자 함복은 도발하듯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흑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인상을 와락 찌푸리고 있는 흑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좆됐다.'
함복은 알 수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저 집채만한 흑곰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는 것을 말이다.
쿵 쿵 쿵 쿵 쿵 쿵
집채만한 흑곰이 네 발로 뛰어오기 시작하였다.
여유롭게 두발로 걸어오던 때와는 그 결이 다를 정도로 폭급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시발'
그 폭급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압도된 함복은 도망칠 생각조차 못하였다.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 까닭이었다.
'그냥...시발..모른 척할 걸.'
함복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후회를 하였다.
무척이나 멋없는 생각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오니 절로 후회가 들 수밖에 없던 것이다.
쿵 쿵 쿵 쿵 쿵
그렇게 한창 후회하고 있는 사이
흑곰이 함복의 코앞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죽는구나.'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함복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예정된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각오한 것이다.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그때였다.
콰지지직
무언가 터지는듯한 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내 머리가 터진 건가?'
함복은 생각하였다.
죽는 게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고 말이다.
착 착 착
그때 얼굴에 무언가 끈적한 게 튀기 시작하였다.
닿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무언가가
"뭐야, 시발!"
그 감촉에 화들짝 놀란 함복은 재빨리 눈을 떴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흑곰의 머리통을 짓이긴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말이다.
"고생하였다. 젊은 협객이여, 그대가 목숨을 걸고 만들어낸 용기있는 몇 초가 울고 있는 아이를 구하였다."
남자는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함복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하여 자신을 협객이라고 지칭하는 남자의 모습에 당혹스러움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장선우라고 한다."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천자天子로부터 왕의 칭호를 내려받은 사천의 왕君王이니라."
그리고 차분히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함복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궤멸 직전에 소도시에 어찌 왕이 직접 행차하였다는 말인가
"그러니 이제 걱정말거라, 젊은 협객이여, 내가 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