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7화 〉 928. 목숨 걸고 지켜줄게.
"남만야수궁이 운남성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대요!"
이소란이 다급한 어조로 언상을 높였다.
".....남만야수궁이?!"
선우는 놀랐다는듯한 어조로 그녀에게 물음을 던졌다.
진짜로 그들이 맞느냐는 확인이었다.
"네에...확실하대요.......남방부족 특유의 개방적인 복색과....셀 수도 없이 많은 짐승들을 다루는 이들은...남만야수궁밖에 없다고....그들이 쳐들어온 게 확실하다고..몇 번이고 강조했어요."
이소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망할...'
선우는 눈살을 찌푸린 채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수많은 짐승을 다룰 수 있는 곳은 중원과 새외를 포함하여 오직 한 곳 남만야수궁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남만야수궁이 다시금 득세하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너무 빨라.'
빨랐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점창파를 멸문시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득세하여 침공을 시작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남만야수궁이 강대하다고 해도 점창과 같은 대문파를 상대하였다면
어느정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록 맥없이 멸문하였다고는 하지만 점창파는 정파 무림을 대표하는 명문대파였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다시금 득세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점창파와 전쟁을 통해 입을 피해를 복구하며 재정비하는데 시간이 걸릴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듯 싶었다.
이렇게 빨리 득세하여 중원 침공을 재개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이러면 곤란한데..'
선우는 난감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곤란하였다.
기껏 세운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원래 계획은 급습이었다.
재정비를 하고 있는 새외 세력을
급습하여 단숨에 우위에 설 심산이었다.
자고로 선방만큼 이득을 가져가는 행위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남만이 득세하게 되며
모든 계획이 어그러져버렸다.
급습하기도 전에 먼저 처맞게된 것이다.
박 박
'미치겠군.'
선우는 머리를 박박 긁었다.
계획이 어그러졌다는 생각이 짜증이 절로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피해규모는?"
"열 두개의 마을과...세 개의 도시가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그곳에 살던 지역민들은 생사는 불분명하다고 했어요...."
"관군은? 그정도로 피해를 입었다면 관군이 나섰을텐데?"
기본적으로 중원에서 관과 무림은 불가침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웬만해선 서로 자극하거나 침범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무림인이 민간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말이 달라진다.
군부가 직접 나서서 재제를 가하게 되는 것이다.
"운남성의 도지휘사가..오천의 병력을 출병시켜 토벌을 명하시긴 했는데........"
선우의 물음에 이소란은 말끝을 흐리기 시작하였다.
"했는데?"
"전부....전멸했어요...."
"전부?"
"네에...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말이에요."
"미치겠군."
선우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설마하니 오천의 병력이 이렇게 한 번에 쓸려나갈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어떻게..해야하죠..?"
이소란은 불안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소란, 당장 소양한테 가서 수뇌부들을 소집해달라고 전해줄래?"
"수뇌부들을요?"
이소란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래."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전쟁이다."
선우의 눈빛이 차갑게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
회의실
의천맹의 중역이라고 불리우는 수뇌부들이 자리에 착석한 채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끼이이익
이내 문이 열리고 두 남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의천맹주 주소양과 군왕君王 장선우였다.
벌떡
그 모습을 확인한 수뇌부들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천 맹주와 군왕 전하를 뵙습니다.""
그리고 회의실 내부로 들어온 두 지배자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네었다.
"과례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주소양은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모두 자리에 착석해주십시오....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할듯 싶습니다."
주소양은 허리를 숙이고 있는 수뇌부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무척이나 다급하다는듯이 말이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녀의 명에 수뇌부들은 일제히 답을 하였다.
털썩
그리고 곧바로 자리에 착석하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남만야수궁이 운남성을 침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이 전부 자리에 앉자 주소양은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뭣!?"
"아니..벌써!?"
"...그들이..."
그러자 수뇌부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예상보다 빠른 남만야수궁의 활동이 경악스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점창파를 멸문시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활동을 재개한다는 말인가
"현재 운남성의 피해가 극심하다고 합니다....열 두 개의 마을과 두 개의 대도시가 반파되었고 지역민들의 생사는 불분명하다고 하더군요."
주소양은 침중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민간인을 건드린 것입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이세진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관군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텐데요?"
이세진은 의아한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무림 세력이 민간인을 건든다는 건 관군이 끼어들 명분을 주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운남성의 마을을 습격했다면 분명 관군과 충돌이 있었을 것이다.
"운남성의 도지휘사가 급히 오 천의 병력을 출병시켰다고 들었습니다....지역민들을 학살하는 남만야수궁을 상대하기 위해서 말입니다......하지만.."
"하지만?"
"단 한 시진만에 전부 궤멸하였다고 합니다."
"오 천의 병력이 말입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이세진은 놀란듯 되물었다.
오 천에 이르는 병력이라면 웬만한 대문파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는 전력이었다.
오 천의 병사가 활만 쏘아도 웬만한 무림인들은 여지없이 목숨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어찌 단 한 시진만에 궤멸을 한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주소양은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세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믿기지 않겠지만 엄연히 현실에서 일어난 사실이었다.
받아들여야하는 것이다.
이세진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가기 시작하였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까닭이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장 전력을 급파할 생각입니다."
주소양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전쟁입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맹주... 이성을 찾으셔야합니다....지금 감정적으로 나선다면.....저들의 꾀에 넘어가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좀더 상황을 지켜봐야합니다........애초에 지금 이대로 나선가면 구파 연합과 황실과 연계하려던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지지 않겠습니까?"
이세진은 주소양을 극구 만류하기 시작하였다.
지금 당장 남만야수궁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악수였다.
그들에게 생각이 있다면 의천맹과 구파 연합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고 전면에 나설 리 없었다.
분명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한 것이다.
지금 감정적으로 나서는 것은
상대가 쳐놓은 덫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남만야수궁이 전면에 나선 순간부터 계획은 이미 어그러졌습니다. 이 원로."
주소양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러니 어그러진 계획에 걸맞는 대응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 어그러진 계획에 걸맞는 대응이 전쟁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주소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미 전쟁의 불씨는 타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그걸 가만히 지켜본다고 달라지는 것은 하등 없습니다..아니..오히려 관망만한다면 불씨는 점점 더 거세게 타오를 것이며 운남성 전체를 그대로 집어삼킬 것입니다....."
주소양은 올곧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출전하여 전쟁을 끝내야합니다...전쟁의 불길이 운남을 너머 중원 전체에 퍼지기 전에 말입니다."
주소양은 확고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맹주"
그녀의 말을 들은 이세진은 수긍하듯 고개를 숙였다.
철저히 맹의 손익만을 생각하느라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자책하지 마세요.........맹의 손실을 줄이기 위한 신중함이 아닌가요? 자책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주소양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맹의 손익을 따지고 보면 오히려 이세진이 주장한 대로 상황을 지켜보는 게 나을 것이다.
상대가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나서는 것보단 신중히 관망하는 편이 좀더 안정을 도모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세진을 자책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관점의 차이일 뿐
그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맹주."
이세진은 주소양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협보다 실리를 추구하였다는 허물을 보듬아주는 그녀의 배려가 감사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맹주의 뜻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이세진은 올곧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찬성한 것이다.
"맹주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맹주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뒤이어 다른 수뇌부들 또한 일제히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찬성을 한 것이다.
운남성에 전력을 급파하여 남만야수궁과 전쟁을 벌이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모두들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소양은 고개를 살짝 숙여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였다.
협조적으로 나오는 그들의 태도에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참전이 결정되었으니...당장 맹원들을 집결시켜주십시오."
이내 고개를 들어올린 주소양은 수뇌부들을 바라보며 명을 내렸다.
"어느 정도의 전력을 참전시킬 생각이십니까?"
그녀의 명을 들은 이세진은 궁금하다는듯한 어조로 물음을 던졌다.
의천맹의 맹원은 그 숫자만 따져도 수 천이 넘는 대인원이었다.
그들 중 얼마나 되는 전력을 기용시킬 지 의문이 들었다.
"모든 전력입니다."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예에!?""
주소양은 말을 들은 수뇌부들은 경악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고함을 내질렀다.
모든 전력을 기용하겠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남만야수궁은 적당히 간을 보면서 상대할 정도로 약하지 않습니다...그들을 완전히 궤멸시키기 위해선...이쪽도 ..최선을 다해야할 필요가 있지요."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롷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의천맹의 방위를 위한 최소한의 전력을 제외한 모든 전력을 전부 출전시킬 것입니다...남만야수궁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주소양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수뇌부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철의 의지가 담겨져있었다.
그 의지를 읽어낸 수뇌부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하였다.
무슨 반응을 해야할 지 난감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눈치를 얼마나 보았을까
"맹주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이내 잠자코 있던 이세진이 큰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눈치만 보던 수뇌부들은 일제히 답을 하였다.
맹주의 확고하기 그지없는 명에 수긍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의 반응에 주소양은 흡족스러운듯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녀는 실감할 수 있었다.
진정으로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말이다.
**********
타타타탁
타타타탁
수뇌부들은 재빨리 회의실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한시라도 빨리 맹주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맹원들을 소집시키라는 맹주의 명령을 말이다.
그렇게 얼마니 지났을까
이내 회의실에는 선우와 주소양, 두 남녀만이 남게되었다.
"아까 멋지더라."
선우는 감탄했다는듯한 표정으로 주소양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좌중을 압도하며 휘어잡는 모습이 꽤나 멋지게 느껴진 덕분이었다.
마치 온실의 화초처럼 대우받던 그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전부..선우님 덕분이랍니다..."
그의 칭찬에 주소양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뭘했다고?"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한 게 아무것도 없거늘
뭐가 자신 덕분이란 말인가
"선우님이 뒤에 서있다고 생각하니......절로 힘이 나더라구요..후후.."
주소양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뭘 그런 걸로 내 덕분이래."
선우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말을 이었다
"저한테는 정말정말 큰 도움이였답니다...선우님."
주소양은 별빛같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참나."
그 모습에 선우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끝까지 자신덕분이라는 그녀의 말이 어이없으면서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나저나 소양, 참전할 생각이야?"
"참전해야죠...제가 맹주인걸요?"
"홑몸이 아니잖아...좀더 안정을 취하는 편이..."
"아니요.....그럴 수는 없어요."
주소양은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맹원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야해요....모두 의지할 수 있고..모두가...신뢰할 수 있는 강대한 정신적인 지주가 말이에요.....그래야만 비로소 진정한 의천맹의 맹주로서...인정받을 수 있을테니까요."
주소양은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눈빛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그 눈빛에는 결코 꺾이지 않는 의지가 담겨져있었다.
".......후우......어쩔 수 없네."
그 눈빛을 마주한 선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저리 굳게 마음을 먹었는데 자신이 어찌할 수 있겠는가
"대신 조심해야해...홑몸이 아니니까."
"걱정마세요...절대 다치지 않을 테니까요."
선우의 허락에 주소양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목숨 걸고 지켜줄게...소양.'
그 미소를 마주한 선우는 속으로 다짐하였다.
저 미소가 깨지지 않도록
목숨을 걸고
그녀와 뱃속의 아이를 지켜주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