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6화 〉 927. 앞당겨진 전쟁.
날먹이란 무엇인가
본디 사람은 노력에 비해 과한 성취를 바라기 마련이었다.
욕망의 본질은 개인에게 주어진 능력과 노력에 비해 과한 성공을 바라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경우
그런 본질이 실현될 확률은 거의 없다시피하였다.
노력에 걸맞는 성취조차 얻기 힘든 세상에서
노력 이상의 성취를 이뤄내는 것은 요원하기 그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예외는 있는 법.
무척이나 낮은 확률로
극미하기 그지없는 경우의 수가 일어나고
행운과 행운이 겹치는 천운이 생겼을 때
노력에 비한 과한 성취를 이루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를 사람들은 날먹이라고 한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혹은 극소의 노력으로 거대한 보상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극미하기 그지없는 성공적인 사례를 보면서
자신에게도 이런 날먹의 기회가 오기를
고대하며 언제나 상황을 주시한다.
평생 올까말까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선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음양마와 만남을 가진 이후
선우는 조력자를 통해 자연검의 경지를 날로 먹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철두철미한 스승이라면 조력자를 통해 완전한 깨달음을 전해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산산히 부숴지고 말았다.
조력자인 곤륜 장문인에게 전해진 깨달음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날먹은 무리였던 것인가..'
선우는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날로 경지를 상승하는 건 무리인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는 게 없는데 어찌 경지 상승을 노려볼 수있다는 말인가
".......진짜..진짜...더 전할 말이 없는 것입니까?...지나가는 말이라도...정말로 없던 것입니까?"
선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금 무양을 찔러보기 시작하였다.
혹시라도 그가 스승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전달을 잘못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제가 전해들은 내용은 이게 다입니다....애초에 전 음양마 어르신을 면전에서 만나본 게 아닌터라....지나가는 말이 있는 지 없는 지 조차 알 수 없습니다."
무양은 난감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자신 또한 사조인 운설을 통해 전해들은 내용에 불과하였다.
지나가는 말따위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그렇습니까..."
선우는 실망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무양의 반응을 보아하니 정말 더이상은 아는 게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조라면 무언가....다른 말을 전달 받았을 지도 모릅니다..........사조께서는 음양마 어르신께 직접적으로 부탁을 받은 장본인이니 말입니다.."
그런 선우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것일까
무양은 뒷말을 덧붙여 그를 격려하였다.
단순히 귀동냥을 한 자신과는 달리 사조인 운설은 음양마와 직접 대면하고 그에게 직접적인 부탁을 받은 장본인이었다.
자연검을 익히라는 말이외에 다른 말을 전달받았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확실히..스승님과.직접 대면한 장문인의 사조라면 무언가 알고 있을 지도 모르겠군요."
선우는 납득했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달만 받은 장문인과 달리 직접 음양마와 대면한 장문인의 사조라면 무언가 깨달음을 전달받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 스승님이 말한 조력자는..장문인이 아니라..사조였던거야....분명..스승님으로부터 자연검에 도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전달 받았을 거야.....아암..그렇고 말고'
선우는 생각을 전환하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경지 상승을 날먹하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분명 그럴 것입니다......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지요...검신이여....음양마 어르신께서 어떠한 안배도 없이 자연검에 도달하라고 할 리 없지 않겠습니까?"
무양은 선우의 말에 긍정하며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장문인, 그리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군요."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자신을 격려해주는 장문인의 태도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기 때문이었다.
"검신께 힘이 되었다니....오히려 다행입니다."
무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절로 훈훈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내 접객실 내부에는 훈훈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훈훈하였을까
"이제 곤륜 측에서는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선우는 무양을 바라보며 대뜸 질문을 던졌다.
마교로부터 피신한 곤륜파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였기 때문이었다.
"일단 구파측으로 가서 연합을 구성할 심산입니다."
"연합이요?
"그렇습니다."
무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마교가 득세하여 중원 무림을 노리고 있는 상황입니다.....그런 상황에서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이럴 때일수록 더욱더 단합하고 똘똘 뭉쳐 그들과 대적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그러니...구파측으로 가서 연합을 구성할 생각입니다......마교의 야욕을 알게된다면 다른 구파들 또한 흔쾌히 연합을 구성할 것입니다."
무양은 선우를 바라보며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현재 무림은 위기에 봉착해있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중원 무림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구파가 똘똘 뭉쳐야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마교와 대적해야하는 것이다.
마치 이십 여년 전 마교의 침공에 맞섰을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직 협의되지는 않았지만...감히 의천맹주께도 협력을 구할 심산입니다....마교의 침공은 비단 구파뿐 아니라 전 무림이 나서야할 일이니까요."
무양은 사명감 어린 눈빛을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중원을 구해야한다는 불타는 사명감으로 말이다.
"......저어 장문인.."
그런 무양을 바라보며 선우는 난감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말씀하시지요."
무양은 올곧은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장문인께서..나서서...구파를 소집하실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지금 저보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입니까?"
선우의 말을 들은 무양은 언성을 높이며 말을 내뱉었다.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다니?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찌 무림의 위기에 곤륜의 장문인이라는 작자가 침묵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어불성설입니다! 제가 나서서 구파 연합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필시 무림은 크나큰 혼란과 위기에 빠질 게 자명할 것입니다!"
무양은 선우를 바라보며 열변을 토해기 시작하였다.
"구축되었습니다."
그의 열변을 들은 선우는 대뜸 말을 내뱉었다.
"예에?"
선우의 말을 들은 무양은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순간적으로 선우가 한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구축되었다니?
뭐가 구축되었다는 말인가
"구파 연합 말입니다....이미 구축되었습니다."
"네에에에!?!?"
무양은 경악스럽다는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마교의 대대적인 침공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않았건만
어찌 연합이 구축되었다는 말인가
"역시..연합이 구성되었다는 걸..모르고 계셨나보군요."
선우는 이해했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이야기의 초점 자꾸 엇나간다했더니
곤륜 측에선 연합이 구축된 사실을 전혀 모르는듯하였다.
"대체...어찌..연합이 구성된 것입니까?"
무양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찌하여 연합이 구성되었는 지 말이다.
"마교의 대대적인 중원 침공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장문인."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설명해주기 시작하였다.
그간 중원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말이다.
남만야수궁이 득세하여 구파 중 하나인 점창파를 멸문시켰던 일.
화룡도를 든 괴인, 염재炎災가 광서성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일.
해왕海王의 선단이 상륙하여 광동성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일.
몽고기병이 섬서성에 있는 종남파를 멸문시켜버린 일.
위기감을 깨달은 구파에서 연합을 구축한 일.
구파 연합과 의천맹 그리고 황실이 협력하여 마교의 침공을 맞서기로 한 일까지 전부 말이다.
"아...아니..어찌..그런.."
선우로부터 그간 일어났던 모든 이야기를 들은 무양은 충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나같이 충격적이지 않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구파 중 두 곳이 멸문당하였고
무림인에 의해 민간인들마저 학살을 당하였다.
어찌 충격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종남이...검종劍宗이....정말..무너져내렸다는 말입니까?"
무양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듯이 말이다.
종남의 장문인이 검종劍宗은
화산의 장문인 검공劍工과 더불어 구파 장문인들 중 가장 강한 이 중 하나였다.
곤륜제일검이라고 불리우는 자신보다 반수나 우위에 서 있는 절대강자인 것이다.
그런 그가 있는 종남이 무너져내렸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렇습니다."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어찌..종남이...어찌..검종이..이렇게..맥없이."
"..............."
그의 부정에 선우는 침묵으로 답을 하였다.
부정하고 싶은 심정은 알겠지만
종남의 멸문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결국엔 받아들여야하는 것이다.
"허어.."
침묵 어린 선우의 모습에 무양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진짜로 멸문한 것이다.
최고의 성세를 구가하고 있는 종남이 말이다.
".....그래서 연합이 구축되었던 거군요."
이내 무양은 깨달았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알 수 있었다.
연합이 구축된 이유를 말이다.
이미 시작된 마교의 대대적인 침공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습니다.."
"이거 부끄럽군요.....마을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고 이동을 한터라....소식이 많이 늦었습니다."
무양은 얼굴을 붉혔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함부로 지껄였던 게 심히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아닙니다....중원 무림의 안녕과 평화를 생각하는 마음에 그리 하신 게 아닙니까? 부끄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내뱉었다.
연합 구축에 대해 몰랐던 것은 정보와 소통의 부재로 인한 착각일 뿐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었다.
오해와 착각이 겹치긴 해도 결국은 무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몸소 나서려고 한 그였다.
대체 누가 그런 무양을 비웃을 수 있겠는가
"말씀이라도 그리해주시니...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무양은 송구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선우는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일단.....연합에 합류할 생각입니다..아무래도..의천맹보다는 연합쪽이 좀더 인원이 필요할테니까요."
"...그렇군요."
선우는 납득했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몽고기병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를 자랑하였다.
의천맹과 합류하여 싸우는 것보다는 연합 측에 합류하는 것이 좀더 합리적인 생각이리라
스르륵
이내 무양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지금 가실 생각입니까?"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놀란듯 되물었다.
"음양마 어르신의 전언을 전달하였으니...이제 저도 제 역할을 수행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무양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좀더 쉬셔도 됩니다....이제 막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언제 전쟁이 터질 지 모르는 상황이 아닙니까? 그전에 미리 합류해야지요."
선우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무양은 완고하였다.
고집을 꺾을 생각을 전혀 내보이지 않는 것이다.
"강행군이 될 것입니다...정말..괜찮겠습니까?"
선우는 걱정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재차 물었다.
"허허허허 걱정마십시오.....제가 백발이 성성하긴 하지만 여전히 젊은 무인들 못지 않은 강건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이정도는 강행군도 아닙니다..허허허허..개의치 마십시오."
무양은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선우의 마음에 꽤나 살갑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정....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선우는 아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스승인 음양마의 전언을 전해주기 위해
불철주야 자신 있는 남창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무양이었다.
그런 무양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절로 들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있고 헤어짐이 있다면 만남이 있는 법아니겠습니까?......또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겠습니다...검신이여."
무양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다음에 만날 땐......모든 사태가 정리될 때였으면 좋겠군요."
"저도 그러길 희망하겠습니다..허허허허허'"
두 사람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아쉬운 작별을 고하였다.
다음에 만날 땐 모든 사태들이 정리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
무양이 떠나간 후
접견실에 홀로 남은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생각에 잠겨있었다.
'사조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선우는 궁금하였다.
무양의 사조라는 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무양이 몰랐던 대대적인 중원의 소식을 전해주느라
사조에 관해 물어보는 것을 깜빡하였다.
이름이 무엇인지
별호가 무엇인지
나이가 어떻게 되고
어떤 성격이고
어떤 경지에 올라있는 지
무엇 하나 제대로 물어본 게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궁금하였다.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스승님께서 몸소 현신하여 천마로부터 구해주고
전언을 부탁하였는지 말이다.
'백발 성성한 노인네려나?'
백세가 넘었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무공은...염재炎災와 비슷하려나?'
화룡도를 든 염재炎災와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고 하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선우는 이런 저런 상상을 하였다.
베일에 가려진 사조라는 인물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한창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그때였다.
쾅 쾅 쾅 쾅
누군가 접객실 문을 맹렬히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선우님! 선우님! 선우님!"
곧이어 익숙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들어와."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끼이이익
그러자 문이 열리고 황색 무복을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황보유연의 딸이자
의천맹 최고의 호구.
이소란이었다.
"무슨 일이야?"
선우는 이소란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리도 다급히 자신을 부른다는 말인가
"큰일 났어요!"
이소란은 대뜸 언성을 높이며 말을 이었다.
"남만야수궁이 운남성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대요!"
이내 그녀의 다급한 음성이 접객실 내부를 울렸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의 표정이 마치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하였다.
전쟁이 앞당겨졌음을 본능적으로 느낄수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