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5화 〉 926. 음양마의 전언.
".......어떻게..알고 계신 것입니까?"
선우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음양마가 자신의 스승이라는 사실은 자신의 정인들을 제외하면다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다.
그런데 어찌 곤륜의 장문인이라는 자가 그런 비밀을 알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무엇을 말입니까?"
선우의 물음에 무양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제 스승이 음양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음양마 어르신의 전언을 가지고 왔다고 말입니다..그런데 어찌 어르신의 제자분을 못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무양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부정을 하였다.
"스승님께서는 이미 등선하여 선계에 오르신 몸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런 스승님의 전언을 가지고 올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선우는 의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스승인 음양마는 등선하여 선계에 들게 되었다.
인간을 완전히 초월하여 신선이 된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음양마의 전언을 가지고 올 수 있다는 말인가
"곤륜산은 선계와 인계를 맞닿는 경계선이지요...신선들이 현신하는 일 또한 그리 드문 일은 아니옵니다."
무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스승님께서 현신하였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고 하더군요."
무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직접 보신 게 아니군요."
무양의 말을 들은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제가 직접 본 건 아닙니다....저 또한 귀동냥으로 전해들은 사실이지요."
선우의 물음에 무양은 긍정을 하였다.
그 또한 사조에게 전해들었을 뿐 음양마를 직접 대면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입니까?....스승님을 직접 뵈었다는 분이."
선우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제 사조입니다."
"장문인의...사조 말씀입니까?"
선우는 놀랐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장문인에게 사조가 있다는 말이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조라면 사부의 사부뻘에 해당하는 배분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백발 성성한 곤륜의 장문인에게 사조가 남아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무림인이 아무리 오래산다지만 이는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무양은 선우의 반응을 이해한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믿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사조뻘이라면 백여 년이 넘는 세월을 그대로 겪은 이일테니 말이다.
".............."
선우는 침묵을 하기 시작하였다.
하나같이 믿기 힘든 발언에 할 말을 잃어버린 까닭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침묵을 흘렀을까
"그렇다면 장문인의 사조께서...등선하신 스승님을 만났다는 말씀입니까?"
이내 선우는 정리하듯 말을 내뱉었다.
"맞습니다."
"어쩌다가요?"
선우는 궁금하다는듯 물음을 던졌다.
대체 어떤 사정이 있길래
전혀 상관없는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선 일단...곤륜파에 일어난 일들 부터 설명해야할듯 하군요."
무양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대략 한 달전...곤륜은..대막을 지배하고 있는 무림세력인 태양열궁으로부터 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그 당시...사조와..염재炎災라고 불리우는 태양열궁의 궁주..구양진이 맞붙게 되었는데......."
무양은 그간 곤륜에 일어났던 일들을 무척이나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선우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무척이나 자세히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새롭게 알게된 놀라운 사실에 경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얼마니 지났을까
"그렇게...위기에 빠진 사조를...태청 태사조와....음양마 어르신께서..구해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내 무양은 곤륜파가 처한 상황을 비롯하여 운설로부터 전해들었던 사실까지 전부 말해주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무척이나 세세하게 말이다.
"...솔직히...말하면...믿기 힘들군요."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솔직한 속내를 내뱉었다.
하나같이 믿기지 않은 말들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장문인의 사조뻘 되는 이가 아직까지도 살아있다는 말도
위기에 순간 등선하였던 태청진인과 음양마가 현신하여
천마와 염재를 내쫓아버렸다는 말도
전부 말이다.
"충분히 이해합니다.....쉽사리 믿을만한 말들은 아니지요."
무양은 공감하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쉽사리 믿을만한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하지만 장문인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구태여 거짓말을 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진 않았을테니까요."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이 믿기지는 않았지만 그가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거짓말을 하기 위해 곤륜산에서 남창까지 먼걸음을 옮기지는 않았을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만나게 해주십시오......장문인의 사조라는 분을 말입니다....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선우는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믿기지 않는 말이었지만
마냥 불신할 수는 없었다.
곤륜의 장문인라는 자가 거짓을 고할 리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당사자를 만나 볼 생각이었다.
스승님과 직접 대면하였다는 당사자를 말이다.
"아쉽지만.....지금은 불가능합니다."
무양은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입니까?"
"사조께서...북경으로 가신터라.."
"북경으로요?"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도사라는 작자가 뜬금없이 북경엔 왜 갔다는 말인가
"조사께서는......선우님이..북경에..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그 길로 북경으로 떠나셨습니다."
"............그게 언제쯤이었습니까?"
"대략 이주 전이었습니다."
'완전히....엇갈렸네.'
선우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길이 완전히 엇갈렸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남창으로 향하는 동안 사조라는 작자는 북경으로 향했던 것이다.
"결국 진위 여부를 확인해줄 당사자를 만날 수 없다는 말이군요."
선우는 골치아프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확인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지금은 그렇습니다...하지만 머지 않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선우님이 북경에 없다는 걸 알게된다면 필히 의천맹이 있는 남창으로 향하실테니까요."
무양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후우우...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진위여부는 나중에 판단할 수밖에......"
선우는 가벼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일단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스승님께서....남기신 전언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무양은 안도하며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혹여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축객령을 내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해소된 까닭이었다.
"음양마 어르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자연검自然劍을 익혀야한다고."
무양은 차분히 가라앉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불가해不可解의 존재인 천마天魔를 상대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자연검自然劍."
무양의 말을 들은 선우는 침중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었다.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양이 전해들은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과거 흑야를 해방한 대가로 기절했던 때
꿈을 통해 현신한 음양마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만난 음양마는 자신에게 말하였다.
자연검을 익히라고
자연검만이 천마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이다.
'스승님이..말한 조력자가..바로...곤륜의 도사였구나.'
선우는 알 수 있었다.
그때 음양마가 언급했던 조력자의 정체가 바로 곤륜의 도사라는 것을 말이다.
'....스승님..'
선우는 눈이 잘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등선한 이후에도 자신을 위하여 안배를 마련준 스승님의 배려에 감격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분명 스승님의 깨달음을 전해주겠지?'
그리고 생각하였다.
자신을 위한 전언의 정체가
스승님으로부터 받은 깨달음이 분명하다고 말이다.
"물론 허황되게 들리실 수도 있습니다....믿기지 않으시겠지요....자연검이라니....초월의 경지에 다다라야만 비로소 구현할 수 있다는 신선의 검을......아직은 인간을 초월치 못한 검신께 구현하라고 했으니 말입니다........하지만 검신께서는 전적으로 스스로를 믿으셔야합니다..."
선우가 말이 없자 무양은 설득하듯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음양마 어르신께서 결코 허언을 하신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본디 스승이란 누구보다 제자를 잘알고 있기 마련입니다.....한계나......노력...재능...열정..이 모든 것들을 말입니다....아마 음양마 어르신께서는...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검신이라면...자연검을 익힐 수있을 것이라고...자신의 제자라면....신선의 경지에..충분히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무양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 또한 제자를 가지고 있는 스승이였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음양마가 어떠한 근거로 자연검을 익힐 수 있다는 말을 하였는지 말이다.
제자를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의 재능을
제자의 가능성을
제자의 노력을 말이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던 것이다.
스승이란 무릇 제자에 대해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전적으로 스스로를 믿으며..."
"믿습니다."
그때 선우가 대뜸 무양의 말을 끊어버렸다.
"네에?"
"저 스스로도 자연검自然劍을 익힐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우는 올곧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스승님께서는 허언을 하실 리 없지 않습니까?"
선우의 눈빛에는 스승인 음양마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담겨져있었다.
그가 아는 음양마는 헛된 말을 할 이가 아니었다.
없는 말을 지어내는 이도 아니였으며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이도 아니었다.
그저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그대로 내뱉는
오만하고 거만하며 위대한 스승인 것이다.
그런 음양마가 한 말이 허언일 리 만무하였다.
음양마는 진실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자연검을 익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어찌 제자로서 스승의 확신을 믿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그렇지요....음양마..어르신께서..허언을 하실 리 없으시죠.."
선우의 대답을 들은 무양은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의 격려를 해주려고 마음먹은 그였다.
자연검이라는 위대한 경지에 지레 겁먹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생각은 기우인듯 싶었다.
이렇게 스승에 대한 믿음과 본인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이에게 대체 무슨 격려를 해주겠는가
오히려 이쪽에서 격려를 받아야할 판이었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실로 대단하기 그지없구나.'
무양은 생각하였다.
음양마와 검신, 이 두 사람의 유대가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깊다고 말이다.
부러울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한창 두 사제의 깊은 유대에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지그시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그 느낌에 딴생각을 하던 무양은 정신을 번뜩 차린 후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검신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저.....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무양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없습니다."
"그럼 왜 그렇게 지그시 바라보시는 지...."
"장문인께서 스승님의 전언을 마저 전해주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에?"
"혹여 긴 전언이라면 미리 말씀해주십시오, 지필묵을 준비해두겠습니다."
"......전언은...방금 전부 전하였는데요?"
"네에?"
순간 선우는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아직 무양으로부터 어떠한 깨달음도 전해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전언을 전부 전했다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전언이 그게 끝이라구요?"
"............끝입니다."
"깨달음은요?"
"무슨 깨달음을?"
".............."
"............."
이내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스승님께서 전하라는 말이 그게 다였습니까? 비급이라던가 깨달음 같은 걸 전해 받은 게 전혀 없는 것입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무양은 단호한 어조로 답을 하였다.
"..........그럼 저보고 자연검을 어떻게 익히라는 것입니까?"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거야...전적으로..검신께서..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뭐 별다른 조언같은 건 없었습니까?"
"제가 사조로부터 들은 건 방금 한 말이 전부였습니다."
무양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사조로부터 전해들은 것은 사건에 대한 전말과
자연검을 익히라는 음양마의 전언뿐이었다.
자연검에 관한 깨달음에 대해선 일언반구조차 들어본 적 없는 것이다.
'아니 조력자라면서요! 스승님!'
선우는 속으로 음양마를 원망하였다.
무슨 조력자라는 작자가 전해줄 깨달음도 없고
전해줄 비급도 없다는 말인가
'아...망할.'
선우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자연검을 홀로 깨달을 생각을 하니
막막함이 차오른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