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7화 〉 918. 기쁠 땐 웃어야지.
"차기 맹주라고?...천검후께서!?"
"허어어...이런 일이."
"잠깐 그럼 의천맹이 해체가 되는 게 아닌가?"
"해체가 되면 차기 맹주를 왜 뽑았겠어?"
"맹주직을 잘 수행하실 수 있을까?
웅성 웅성
웅혼한 기운에 압도되어 침묵을 하고 있던 맹원들이 저마다 입을 놀리기 시작하였다.
누군가는 놀라워하였다.
꼼짝없이 해체가 되는 줄 알았건만
차기맹주를 뽑고 맹이 보존된다는 사실에
누군가는 안도를 하였다.
평생 직장을 잃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누군가는 걱정하였다.
과연 주소양이 맹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으면서 말이다.
웅성 웅성
이내 장내는 그전과 마찬가지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우웅
주소양은 둔중하고 거대한 기운을 서서히 흩뿌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흩뿌려진 기운들이 맹원들을 그대로 짓누르기 시작하였다.
"흐으음...."
"크으음.."
기운에 짓눌려진 맹원들은 불편한 표정을 지은 채 옅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온몸에 스며드는 둔중하고 거대한 기운이 다시금 압도된 까닭이었다.
"맹원 여러분 모두, 많은 의문을 품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결론부터 말한터라..제대로된 사유를 알 수 없을테니까요."
주소양은 조용해진 장내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그 의문을 차근차근 풀어볼까합니다...어째서....검신께서 맹주직을 내려놓게 되었는지....제가 어째서 차기 맹주를 맡게 되었는지 전부 말입니다."
주소양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맹원들은 그녀에게 다시금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궁금한 것이다.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인지 말이다.
"먼저 초대 맹주께서 맹주직을 사퇴한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맹원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초대 맹주께서는 산동성 도지휘사의 부정을 고발하기 위해 황궁으로 몸소 걸음을 옮겼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주소양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러자 맹원들은 수긍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관련된 비화는 내부자인 그들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초대 맹주께서는 도지휘사의 부정을 고발을 위해 황궁을 향하던 중 뜻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바로 산동성의 도지휘사를 비롯한 황궁 세력 일부가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뭐..뭣?!"
"아니! 어찌!"
"역모라니!?!"
주소양의 말을 들은 맹원들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별안간 역모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 사실을 알게된 검신께서는 검을 뽑아들었습니다. 천자天子의 그늘 아래 살아온 백성으로서 역천을 꿈꾸는 그들의 행태에 크나큰 경멸과 분노를 느낀 탓이지요."
주소양은 그들의 반응을 가벼이 넘기며 할 말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한마디 한마디 대꾸해주다간 말을 끝맺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검을 뽑아든 초대 맹주는 역천을 꿈꾸던 모든 역적들을 일거에 소탕하였고 천자께 그 공훈을 인정받아 무림인 최초로 군왕君王으로서 봉해지게 되었습니다."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맹원들은 입을 턱하고 벌리게 되었다.
연속되는 경악스러운 사실에 도저히 입을 다물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황실에서 역모가 일어났다는 건만으로도 머리가 충분히 과열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군왕이라니?
어찌 무림인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군왕으로 봉해질 수 있다는 말인가
놀라웠다.
너무 놀라워서 도저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본디 관과 무림은 불가침의 관계인 법, 군왕君王이 되어버린 초대 맹주께서는 의천맹의 맹주직을 겸임할 수 없었고 결국 맹주직을 사퇴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주소양은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한 수뇌부들은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황제께서 직접 봉해주신 왕의 자리입니다.....일개 야인으로서 어찌 반발할 수 있겠습니까?.....그렇다고 의천맹을 위해 초대 맹주께 왕위를 거절하라는 말 또한 할 수 없는 노릇이였습니다.....욕심을 위해 희생을 강요하는 건 의천맹의 창립 이념, 의천義天에 어긋나는 행위니까요."
주소양은 맹원들을 하나하나에 눈을 맞추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저를 비롯한 수뇌부는 선택에 기로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검신劍神이라는 구심점을 잃게된 맹을 이대로 해체해야할 지........아니면 새로운 구심점을 만들어 의천맹을 운영해야할 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주소양은 힘 있는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일부러 감정을 고조시키면서 말이다.
"밤새 토의를 하고 설전을 오가며 고심하고 또 고심하였습니다. 저희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말입니다......그리고....이내 한 가지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그건 바로 새로운 구심점을 만들어 맹을 운영해야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이내 주소양의 목소리가 온 사방에 진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결론에 도달할 수록 점점 더 소리를 키워나갔기 때문이었다.
가벼운 연설 기술이었다.
강조되는 부분에 목소리를 더욱더 크게 울리게 만들어 민중들의 마음을 고조되게 만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척이나 부담되는 결정이긴 하였습니다...다들 아시다피시 천무맹의 사업적 기반을 전부 버리고 온터라 재정적이 부담이 제대로 해소되지도 않았고......창립자이자 구심점인 검신이 탈맹은 의천맹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될테니까요....하지만 저희는 최종적으로 새로운 구심점을 만들어 맹을 존속시켜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소양은 별빛보다 빛나는 눈동자를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이렇다할 성과조차 낸 적 없는 의천맹에 의협심 하나만으로 입맹해주신 수 많은 협객들, 의천맹의 가치를 믿고 망설임없이 투자해주신 수많은 상인들, 의천맹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신 수많은 민중들의 신뢰를 배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놓아버린다면 의천맹을 믿고 지지해준 여러분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꼴이 되어버릴테니까요."
우우우우우우웅
주소양의 기운이 부드러이 연설장 내부를 감싸기 시작하였다.
짓누르며 위압을 선보이던 때와는 무척이나 상반된 모습이었다.
울컥
부드러운 기운에 감싸진 의천맹의 맹원들은 가슴이 울컥하는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하였다.
자신들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맹의 존속을 선택하였다는 그녀의 말에 감격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구심점이 될 차기 맹주로는 부족하지만 제가 뽑히게 되었습니다. 초대 맹주이신 검신劍神과 수뇌부들의 만장일치로 말입니다."
주소양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한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하여 차기 맹주로서 여러분들께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맹원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맹원들의 표정을 제각각이었다.
감격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몸을 부르르 떠는 이들도 있었고
불안한듯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쇄기를 박아야한다.'
그 모습을 본 주소양은 생각하였다.
이대로 쇄기를 박아야한다고 말이다.
불안에 빠진 이들에게 확신을
감격에 빠진 이들에게는 더욱더 격한 감격을 주어야한다고 말이다.
"저는 천하제일인이자 위대한 영웅인 검신에 비하면 부족하기 그지없는 몸입니다. 무공도, 인품도, 명성도, 모두 말입니다...하지만..단 하나....검신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그건..바로...올바른 협을 행하는 마음. 의천義天 의 정신입니다.......부족한 몸이지만 이 의천의 정신을 교두보로 삼아 의천맹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소양은 차분하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의천義天이 이름이 중원 전체에 울려퍼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내 주소양은 격정적으로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이상입니다."
꾸벅
그리고 다시금 허리를 숙이기 시작하였다.
연설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의천맹의 맹원들을 향해서 말이다.
짜악 짜악 짜악
그때 뒤편에서 찰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주소양은 슬며시 뒤편으로 눈짓을 하였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어느새 바깥으로 나와 박수를 치고 있는 선우의 모습을 말이다.
몸소 모습을 드러내 응원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선우님..'
주소양은 눈빛에 감격이 차올랐다.
끝까지 자신을 챙겨주는 정인에 대한 고마움이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짜악 짜악 짜악 짜악
그때 연설장쪽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저기 시작하였다.
누군가 선우를 따라 박수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짝 짝 짝 짝 짝
짜악 짜악 짜악 짜악
곧이어 박수소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하였다.
'모두가...박수를 치고 있어..'
그 소리를 들은 주소양은 알 수 있었다.
연설장을 가득 메운 맹원들이 자신을 위해 박수를 쳐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주소양은 숙였던 허리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자신을 위해 박수를 쳐주고 있는 수많은 맹원들의 모습을 말이다.
"믿고 있습니다! 맹주님!"
"천검후님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차기 맹주가 되겠습니까!"
"최초의 여자 맹주라니!! 이건 혁명입니다!"
"맹주님이라면 분명 의천맹을 최고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저희는 믿습니다! 중원에 의천의 이름이 울려퍼질 것이라는 사실을!"
"천검후님이시라면 전혀 부족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어찌 스스로를 그리 낮춘다는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천검후님이라면 충분히 저희 위에 설 자격이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응원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믿음이 가득 차 있는 신뢰 어린 목소리였다.
울컥
그 목소리를 들은 주소양은 울컥하고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 따위로는 위대한 검신劍神의 대체재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열등감을 품고 있던 그녀였다.
무력, 명성, 업적, 인품까지
무엇 하나 검신을 앞서는 게 없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한 편으로 걱정을 하였다.
맹원들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초대 맹주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자신을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할지 말이다.
그런데 그런 걱정이 무색해졌다.
이렇게 모두들 자신을 반겨주고 있으니 말이다.
주소양은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차오른 감격이 쉴새없이 눈물샘을 자극하였기 때문이었다.
꼬옥
그때 누군가 오른 손을 부드러이 감싸쥐기 시작하였다.
주소양은 살짝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어느새 다가와 자신의 손을 감싸고 있는 선우의 모습을 말이다.
"기쁜 날 울면 되겠어?.....기쁠 땐 웃어야지."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소근거렸다.
그녀만이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게요....기쁘면 웃어야되는데.....제가 그걸 까먹었네요."
선우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의 응원에 행복한 감정이 절로 차오른 까닭이었다.
선우는 붙잡은 주소양의 손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맹원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와아아아아!!! 의천맹주 주소양 만세!"
"군왕 전하 만세에에!!!!!!"
"천검후 주소양 만세!!"
"초대 맹주님 만세!"
"차기 맹주님 만세!!"
그러자 온 사방에 환호의 함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본 선우와 주소양은 입가에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초대 맹주의 퇴임식과 차기 맹주 즉위식은 성공적으로 끝마친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열광하는 걸 보니 말이다.
"내가 말했지?.....모두가 너를 환영할 거라고."
선우는 환호하는 맹원들을 바라보며 작게 소근거렸다.
".....정말이네요....정말...선우님이..말한대로..이루어졌네요."
"난 거짓말 안한다니까?"
선우는 뿌듯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은 게 꽤나 기분 좋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선우님.....사랑해요."
주소양은 맑은 미소를 지은 채 소근거렸다.
선우만이 들을 수 있도록 은밀하게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야...소양."
꼬오옥
두 사람은 맞잡은 손을 더욱더 꼬옥 움켜잡기 시작하였다.
서로의 체온을 즐기면서 말이다.
"와아아아아! 만세에에! 만세에!"
"의천맹 만세에에! 만세에에!"
그런 두 사람의 은밀한 애정 행각을 알 턱이 없는 맹원들은 그저 함성을 내지를 뿐이었다.
왕과 맹주 이 상반되는 신분을 가졌음에도 깊은 친분을 과시하는 두 사람을 향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