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6화 〉 907. 모용세가의 멸문.
비밀 통로 끝 천수산
타타타타타탁
"서둘러야한다! 어서 어서!"
모용란은 뒤편에서 따라오고 있는 세가의 아이들을 독촉을 하기 시작하였다.
"...네..네넵!"
그녀의 독촉에 아이들은 더욱더 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하지만 짧은 다리와 미숙한 신법의 성취로는 그 한계가 명확하였다.
속도가 영 나아지지 않는 것이다.
'안되겠어.'
그 모습을 본 모용란은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다간 잡히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십 칠세 이상의 세가원들은 십세 이하 세가원들을 전부 등에 엎거라!"
그녀는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알겠습니다!""
모용가의 후기지수들은 재빨리 답을 하였다.
그리고 하나 둘 어린 세가원들을 업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숫자가 맞지 않은 탓인 몇 몇이 남아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모용계! 이화영! 앞뒤로 두 명씩 붙잡거라!"
그녀는 소가주인 모용계와 딸인 이화영에게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남아있는 어린 세가원들을 앞뒤로 안고 업어버렸다.
"알..알겠습니다! 고모님!"
"알겠어요. 어머님!"
모용계와 이화영은 남은 세가원들을 다급히 부여잡기 시작하였다.
상황의 급박함을 충분히 인지한 까닭이었다.
이내 어린 세가원들 모두가 후지기수들에게 업히고 안기게 되었다.
"자아! 어서 이동하자구나!"
모용란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타타타탁
타타타탁
그녀는 최선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세가원들은 그런 그녀의 뒷꽁무니를 그저 쫓아갔다.
목숨을 위협하는 세가의 마귀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
모용세가
요동의 왕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대단한 권세를 자랑하던 최고의 무림세가.
그곳에는 지옥도를 방불케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대궐을 연상시킬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하기 그지없는 전각들은 겁화에 휘말려 불타고 있었고
온 사방에는 모용세가가 자랑하는 타격부대의 시체들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었다.
온몸 이곳저곳에 길죽한 창이 쑤셔진 채 말이다.
"싫어어어!!!!!!"
"하아아아악!"
또한 여기저기선 아랫도리를 내린 몽고 기병들이 기품 어린 모용가의 여인들을 간하고 있었다.
지옥이라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로 끔찍한 참상이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참상 속에서
뻐끔 뻐끔
한 거한은 시체 위에 걸터앉은 채 입에 머금은 장죽을 뻐끔거렸다.
"후우우우우우....."
그리고 이내 그대로 연기를 내뱉었다.
그러자 새하얀 연기가 일대를 가득히 메우기 시작하였다.
짜악 짜악
그때 어디선가 귓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거한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목마木魔인가?"
남자를 본 거한은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정말 대단하십니다.....설마하니..모용가주를 단 일격에 절명시키다니 말입니다."
목마라고 불린 남자는 감탄했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고강하기 짝이 없는 무력으로 요동성에서 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이가 바로 모용세가의 가주, 검호劍豪 모용진한이었다.
그런 그를 단 일격에 한줌의 고혼으로 만들어버렸다.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모용진한이 약했던 걸까요? 아니면 칸께서 강대했던 걸까요?......아니면 둘다?"
목마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는 훌륭한 전사였다."
칸이라고 불린 남자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칸께서 강대했다는 말이군요."
목마는 이해했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
칸은 그의 말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엄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영광입니다. 이렇게 강대한 칸을 모시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목마는 과장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안타깝군요.....제 진심을 이리도 몰라주시다니 말입니다."
"헛소리는 되었다. 다음 목적지부터 말하라."
칸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벌써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조금 더 쉬셔도 됩니다.....모용세가의 귀부인들과 콧대높은 아가씨들에게 칸의 위대한 씨앗을 뿌려주어야지요."
목마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두 번 말하는 건 싫어한다."
칸은 고저없는 무심한 눈빛으로 목마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하하, 장난입니다....뭐 그리 정색을 하고 그러십니까?"
그 눈빛을 마주한 목마는 너스레를 떨며 손사래를 쳤다.
더 이상 장난을 이어갔다간 거창이 나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섬서입니다."
"섬서라....꽤나 돌아가야하는 군."
칸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요동에서 섬서를 가려면 상당한 시간을 돌아가야하였다
수도인 북경을 관통해지나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
"예에, 하지만 충분히 만족하실 만한 원정이 되실 것입니다....섬서의 계집들은 아름답기로 정평나있으니 씨앗을 뿌리기에 무척 적절하실 것입니다.......그리고 무엇보다..."
목마는 은근한 목소리로 칸을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그곳에는 검공劍工과 검종劍宗이라고 있습니다."
"검공劍工과 검종劍宗?"
"네에, 각각 화산제일검과 종남제일검이라고 불리우는 노고수들이지요."
"그들은 강한가?"
"실망치 않을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목마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검공劍工과 검종劍宗 모두
과거 정마대전 당시 수많은 마교의 타격부대를 참살하였던 검귀들이었다.
그런 그들이라면 이 오만할 정도로 강한 칸에게 충분한 만족을 줄 수 있으리라
"좋군."
그의 답을 들은 칸은 살며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스르르륵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바로 가시는 것입니까?"
그 모습에 목마는 의아한듯 물었다.
"목적지가 정해졌다. 구태여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지."
말을 마친 칸은 거창을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걸음을 떼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말이 매여있는 곳을 향해서 말이다.
"크크크큭.......과연 초원의 황제다운 실행력입니다."
그 모습을 본 목마는 재밌다는듯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경쾌한 발걸음으로 말이다.
***************
의천맹
이소란은 경대에 앉은 채 열심히 치창을 하기 시작하였다.
평소라면 화장기 하나 없이 선머슴처럼 하고 다녔을 그녀였지만
오늘만큼은 그리 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주인님이 돌아오신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박하향 가득한 미안수를 얼굴을 한 차례 씻어내었다.
그리고는 꿀로 만든 면약을 곱게 펴 여기저기 바르기 시작하였다.
'좋아, 이제 기초 화장은 됐고.'
톡 톡 톡
그다음 얼굴에 분을 칠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안그래도 우유빛 같았던 그녀의 얼굴이 더욱더 새하얗게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숯을 가루내어 만든 미묵으로 눈썹을 조심스레 칠하였다.
그러자 눈썹의 음영이 짙어지며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하였다.
"흐으음...마음에 들어."
이소란은 동경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오랜만에 하는 화장임에도 불구하고 어색함 하나 없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원판이 워낙 괜찮아서 그런 지 화장조차 잘먹혀든듯 하였다.
'그럼 이제 화룡점정으로..'
드르르륵
이소란은 경대 아래쪽 서랍을 천천히 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동그란 원형 모양의 물체를 꺼내들었다.
달칵
그다음 천천히 뚜껑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분홍빛 감도는 색조가 감도는 고형체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흐흐흐흐.."
그 고형체를 본 이소란은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색조에 만족스러운 감정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어디...그럼.'
쓱 쓱
그녀는 새끼 손가락을 편 뒤 고형체를 매만졌다.
그러자 손가락 끝에 분홍빛 색조가 가득 묻었다.
쓰으윽 쓰으윽
이소란은 색조 묻은 연지를 입가에 매만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앵두같은 입술이 영롱한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역시 돈 값을 하는구나.'
그 모습을 본 이소란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중원에서는 존재치 않는 영롱한 빛깔을 가진 서역산 분홍빛 연지.
가격만 따지면 한달 봉급을 훌쩍 뛰어넘는 파격적인 가격이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아하였다.
이정도 아름다움이면 충분한 값어치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나한테 밖에 안팔았다고 했으니까..'
게다가 서역 장물아비는 말하였다.
자신 이외에 다른 이들에게는 이 분홍빛 연지를 팔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중원에서 유일무이하게 이 색조연지를 바를 수 있는 특별한 여인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헤헤헤헤헤, 선우님이 기뻐하겠지?'
그녀는 헤픈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그다음 이동을 하였다.
선우가 머물고 있는 거처를 향해서 말이다.
.
.
.
.
.
그렇게 얼마나 되었을까
멀지 않은 곳에 선우의 거처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더욱더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한시라도 빨리 이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머, 소란."
그때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이소란은 살짝 시선을 뒤편으로 돌렸다.
그러자 익숙한 인상의 여인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평균보다 살짝 작은 키
양갈래로 묶은 머리
커다란 눈망울이 인상적인 깜찍한 외모
작은 키에 비해 우월함을 자랑하는 가슴.
팽가련의 딸, 이기연이었다.
"기연...네가..여긴 어떻게?"
"너랑 같은 이유가 아닐까?"
이기연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녀가 미소를 짓자 영롱한 분홍 빛깔의 입술이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너...그...입술.."
그 모습에 이소란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입술에 발라져있는 저 영롱한 분홍빛깔은 분명 자신에게만 한정 판매한다고 하였던 서역산 분홍연지였다.
그런데 어찌 그 연지가 이기연의 입술에 발라져있다는 말인가
"아, 이거? 서역에서 건너온 거라고 하더라고, 수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길래, 냉큼 샀지....보니까 너도 샀나보네?.."
이기연은 작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으드득
'장물아비이이이......가만..안둬어어어!!'
그녀의 말을 들은 이소란은 이를 으득하고 갈았다.
한정판매라고 해놓고 다른 곳에 좌판을 차린 장물아비에 대한 분노가 치솟은 까닭이었다.
"색깔 너무 예쁘지 않아? 열 다섯냥이면 가격이 세긴 하지만 이정도 아름다움이면 충분히..."
"열 다섯냥밖에 안줬다고!?"
이소란은 그녀의 말을 끊어버린 뒤 언성을 높였다.
무려 은자 서른 다섯냥이라는 걸 깎고 깎아
서른 냥에 샀던 분홍 연지였다.
그런데 엿 다섯냥이라니?
반값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응, 열 다섯냥이면 된다고 하던데?"
".....난...난...서른냥 줬는데.."
"저런...."
이기연은 안타까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호구 잡혀 값을 치른 듯하였기 때문이었다.
으드드득
그 안타까운 표정을 마주한 이소란은 이를 으득하고 갈았다.
동정 받았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팍 상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장물아비이이이....가만안둬어어어어..'
그녀는 복수를 다짐하였다.
자신을 등처먹은 장물아비에게 말이다.
휘익
복수를 다짐한 이소란은 이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빠르게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내가 제일 먼저 보여드릴거야!'
그녀는 의지를 다졌다.
돈까지 더 치른 마당에 두 번째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보여드리고 분홍빛깔의 상큼함을 과시할 생각이었다.
'저...여우같은게!'
그 모습을 본 이기연 또한 재빨리 걸음을 떼기 시작하였다.
이소란의 얄팍한 심리를 예측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내 두 사람은 경쟁하듯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덥석
이내 두 여인을 동시에 문고리를 붙잡은 뒤 그대로 열어젖혔다.
선우에게 먼저 보여주고 말겠다는 의지를 담은 채 말이다.
그리고 문을 연 순간 그녀들은 볼 수 있었다.
할짝 할짝 할짝
할짝 할짝 할짝
선우의 아랫도리를 할짝이며 입봉사를 하고 있는 세 명의 귀부인들을 말이다.
"어...어머니!?"
"엄마!?"
이기연과 이소란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이렇게 선수를 빼앗겼을 줄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어머, 우리 딸들이 왔구나."
"어서 오렴."
"자아, 너희도 어서 봉사하렴."
세 명의 귀부인들.
주소양과 팽가련, 황보유연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녀들이 미소를 짓자 영롱한 분홍빛깔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왜 다들 바르고 있는거야!!!!'
그 모습을 본 이소란과 이기연은 울상 어린 표정을 지었다.
무슨 한정판을 너도 나도 바르고 있다는 말인가
"요즘은 분홍빛 연지가 유행인가봐? 너도 나도 바르고 있네?"
이소란과 이기연을 마주한 선우는 의아한듯 물었다.
"네에, 이번에 서역에서 들어왔다고 사은품으로 주더라구요."
"저도 받았답니다......확실히 색조가 예쁘긴 하네요."
"어머, 저만 돈주고 샀나요? 은자 두냥이나 주고 샀는데.."
세 명의 귀부인들은 저마다 말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
그리고 그녀들의 말을 들은 이기연과 이소란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들이 완벽히 호구 잡혔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