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4화 〉 905. 왕王이 어찌 백성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905. 왕王이 어찌 백성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저벅 저벅 저벅
원로 이세진은 바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레 예정에도 없던 소집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본디 소집령은 하루 전 공지해두는 게 관례였다.
갑작스럽게 호출할 경우
각자 일정 완전히 꼬여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찌보면 무척이나 무례하게 느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세진의 표정에는 불쾌함 따위는 전혀 엿보이지 않았다.
얼굴빛은 밝기 그지없었고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마치 기쁜 일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흐흐흐흐.'
이세진은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전령을 통해 기쁜 소식이 전해져왔기 때문이었다.
바로 맹주의 귀환이라는 기쁜 소식을 말이다.
맹의 우두머리이자 최대 통수권자인
의천맹주 장선우가
모든 일을 끝마치고 맹으로 복귀한 것이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본디 조직이라는 것은 중심을 잡아주는 기둥이 있어야
흔들림이 없는 법이었다.
특히 지금 처럼 어수선한 시기에는 맹주인 장선우의 복귀는 수뇌부인 그에게 호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있다면 어수선한 맹이 좀더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게될테니 말이다.
'빨리 뵙고 싶구나.'
이세진은 빠르게 발걸음을 떼기 시작하였다.
자랑스러운 맹주를 보기위해서 말이다.
.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대회의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벌컥
이세진은 망설임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자신 제외한 모든 수뇌부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가장 늦은듯 싶었다.
"죄송합니다......제가 제일 늦었군요."
이세진은 좌중을 둘러보며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아닐세, 우리도 방금왔다네."
원로 한광은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그들 또한 도착한 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맹주께서는 어디계십니까?"
"아직 회의실에 도착하지 않으셨네. 아무래도 의복을 정비하는듯 하더이."
"그렇군요."
이세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을 하였다.
맹에 도착하자마자 소집령을 내린 맹주였다
분명 의복을 정비할 시간도 없었으리라.
"아무래도 맹주께서는 시간이 더 걸릴듯 하니 자네도 어서 이곳에 앉도록 하게나."
팡 팡
한광은 옆자리를 손으로 두어번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이세진은 곧바로 걸음을 옮겨 한광의 옆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나저나 갑작스레 소집령을 내린 이유가 무엇이랍니까?"
그리고는 궁금하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갑작스럽게 소집령을 내린 이유가 심히 궁금하였기 때문이었다
"흐음...글쎄...자세한 사안은 듣지 못하였다네.....그저 중대사가 있을 것이란 말외엔......"
"중대사 말씀입니까!?"
이세진은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떼었다.
"그래, 분명 그리 말하였네. 중대 발표가 있을 터이니.....수뇌부들은 필히 참석을 하라고 말이야."
".......심히 궁금해지는군요......그 중대 발표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이세진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의천맹에 복귀하자마자 중대사 발표라니
대체 무슨 발표를 하려는 것인가
"나도 마찬가지일세.....아니 여기있는 이들 모두가 마찬가지겠구만.......아무래도 두 달만에 복귀한 맹주의 공식적인 발표니까 말이야."
한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궁금한 거 그 또한 매한가지였다.
"혹여 예상 가는 바가 있으십니까?"
이세진은 눈을 빛내며 한광에게 빛냈다.
"......흐음......확실하지는 않지만.....황실로부터 무언가를 받은 게 아닐까 싶네."
"황실에서 말씀입니까?"
"맹주께서 두 달간 황실에 가있으시지 않으셨나? 두 달이나 그곳에 머물 정도면 꽤나 신임을 받았다는 뜻이니......분명 무언가 대단한 걸 얻어왔을 지도 모를 일이지......."
한광은 입가에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의천맹주가 무언가 대단한 걸 얻어왔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기 때문이었다.
"대단한 것이라면...?"
"지원금이라던가........세금 면제와 같은 법률적인 혜택같은 것 말일세."
".....허어..세금면제라니....."
"뭐, 확실한 건 아닐세......그저 예상을 해본 것 뿐이지."
"부디 그 예상이 들어맞기를 희망해야겠군요.......만약 그리 된다면 의천맹은 저 하늘을 휠휠 날 수 있는 창룡이 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하하하하하하하, 정말 그랬으면 좋겠구만."
두 사람은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미소를 지었다.
기대감이 물밀듯 차오른 까닭이었다.
그렇게 한창 웃음꽃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끼이이익
갑자기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가 회의실 안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수뇌부들은 그 소리의 근원지인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서서히 열리는 문과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 두 남녀의 모습을 말이다.
"맹주를 뵙습니다!"
"맹주를 뵙습니다!"
이내 수뇌부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대로 포권을 취하였다.
의천맹 최고 책임자에 대한 극진한 예를 취한 것이다.
"오랜만에 원로님들을 뵙습니다."
그들의 인사를 받은 남자, 선우 또한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받았다.
"이만 자리에서 앉으시지요. 예는 그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리에 서서 포권을 취하고 있는 원로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이대로 계속 서있게 냅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존명!""
선우의 말을 들은 원로들은 일제히 대답한 후 빠르게 착석을 하였다.
"일단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갑작스럽게 소집령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리를 빛내주셔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선우는 살짝 고개를 숙여 그들에게 사과를 하였다.
이른 아침부터 소집령을 내려 그들을 불러들인 게 상당히 미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개의치 마십시오.......맹주의 소집에 의문을 품거나 불만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사옵니다!"
"개의치 마십시오! 저희는 괜찮습니다!"
선우의 사과에 원로들은 손사래치며 언성을 높였다.
오랜 시간을 겪은 건 아니지만 그들이 겪은 선우는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오라가라 명령할 이가 아니었다.
적합한 사유가 있을 때 비로소 소집령을 내리는 그런 남자인 것이다.
그런 인품을 잘 알고 있기에 불만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분명 마땅한 이유가 있을테니 말이다.
"이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그럼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선우는 감사를 표한 후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자 원로들은 선우의 입에 시선을 집중시키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기대감 어린 눈빛을 한 채 말이다.
"맹주직을 사퇴하겠습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순간 장내에는 침묵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폭탄 발언에 모두가 넋이 나간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그런 그들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동자로 바라보며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그들이 정신을 완전히 차릴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맹...맹주...그게...무슨..말씀인지?"
이내 정신을 차린 이세진이 더듬거리며 입을 떼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말그대로입니다.........의천맹주직을 사퇴하겠습니다...지금 이 자리에서."
선우는 힘을 주어 다시금 강조하였다.
명백한 사퇴의사를 말이다.
"뭣?!"
"뭐라!?"
"아니...맹주!"
"말도 안됩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원로들은 언성이 터져나왔다.
그의 명백한 사퇴 의사에 정신이 완전히 돌아온 까닭이었다.
"아니, 맹주 사퇴하겠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제 취임하신 지 고작 두 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리 쉽사리 사퇴를 입에 담는다는 말씀입니까!"
"절대 안됩니다! 실질적으로 의천맹 창립을 주도한 이가 바로 맹주가 아니십니까! 그런데 어찌 사퇴를 입에 담는다는 말씀입니까!"
"현재 의천맹은 맹주님의 명성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맹주께서 사퇴를 하신다면 의천맹은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부디 재고해주십시오!"
"수 천에 다다르는 맹원들이 맹주를 믿고 의천맹에 입맹을 하였으며 이 먼 남창까지 직접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들의 믿음을 배신한다는 말씀입니까!"
원로들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사퇴 의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천무맹과 확실한 차별을 보일 수 있는 의천맹의 상징이자
없어서는 안될 핵심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사퇴를 한다면 의천맹의 존립 자체가 불명확해지는 것이다.
"자아..다들..일단 진정하시지요."
선우는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이세진은 잔뜩 흥분한 어조로 언성을 높였다.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들 흥분하시면 제가 사퇴 이유를 밝힐 수 없지 않겠습니까?"
"밝히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슨 이유가 되었든 여기있는 그 누구도 맹주의 사퇴를 인정할 수 없을테니!
이세진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고함을 내질렀다.
사퇴를 받아들일 생각따윈 존재치 않았다.
사퇴하는 순간부터 의천맹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지는 건 너무나 명백한 일이었다.
무려 두 달동안이나 밤낮 설쳐가며 기틀을 잡아놓은 의천맹이 뻘짓으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의 사퇴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겠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맞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맹주 개인의 결정이 맹의 존립마저 뒤흔들게 됩니다! 원로원은 그러한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내 여기저기서 이세진의 말을 동조하는 고함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그의 말에 동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황명이라 해도 말입니까?"
선우는 반발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
"....................."
순간 여기저기 쏟아지는 고성이 순식간에 사그러들었다.
모두가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한 것이다.
황명이라는 두 글자의 담긴 무게를 누구보다 잘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황..황제 폐하께서......맹주직을 사퇴하라고......황명을 내렸다는 말씀입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황제 폐하로부터 직위를 받게 되었으니까요."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황제 폐하로부터......직위를!?"
"그렇습니다........뜻하지 않게 공훈을 세웠는데......그에 걸맞는 보상으로 직위를 하나 내려주셨습니다."
"그렇다면......직위를 받아 맹주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알다시피 관과 무림은 불가침의 관계가 아닙니까?.......직위를 받은 이상 맹주직을 수행할 수 없는 신분이 되어버린 것이지요......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사퇴 의사를 밝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선우의 말이 끝나자 좌중은 다시금 침묵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그의 사퇴 이유가 충분히 납득될 만한 사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황명으로 인해 관직을 받게 되었는데 어찌 맹주직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두 가지 신분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황실을 기만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기에 납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직을..내려놓을 수는 없는 것입니까?"
그때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이세진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본디 관직이라는 건 개인의 의지로 얼마든지 관둘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맹주께서도....관직을....내려놓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세진은 간절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죄송합니다."
선우는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그의 말을 받아들여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입니까? 어째서...내려놓을 수없다는 것입니까? 어떤 관직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의천맹주직 보다 더욱더 나은 자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의천맹은 중원 전역 아우르는 거대한 무력 단체가 될 것입니다..........한낱 관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그런 상황에서......구태여 관직을 선택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이세진은 진중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어째 반응이 한결 같냐?'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속으로 작게 웃음을 지었다.
주소양과 완전히 동일한 반응을 하는 이세진의 모습을 보니 괜스레 웃음이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무슨 직위를 받았는지 알면 그 또한 주소양과 같이 경악하고 마리라
"함부로 내려놓을 수 없는 자리가 아닙니다."
"황실에서는 개인의 의지를 무척이나 존중해준다고 들었습니다...분명 원치 않는다면 황실 측에서도 배려를 해주실 것입니다."
"아니요, 안해줄 것입니다."
선우는 확신 어린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어찌 그리 확신하십니까?"
선우의 말에 이세진은 이해가 안된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확신에 찬 그의 말투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보지도 않고 어찌 저리 확신한다는 말인가
"관직과는 살짝 다른 직위입니다......관두고 싶다고 관둘 수 있는 자리가 아니지요."
"그게 대체 그 직위가 무엇이길래, 함부로 관둘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이세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듯 언성을 높였다.
그의 상식으로는 선우의 반응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왕王입니다."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체 입을 떼었다.
".......예에?"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세진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우의 말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절 군왕君王으로 봉해주셨고 봉토로 사천성을 받았습니다. 반란군을 진압하고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의 목숨을 구한 공훈을 인정 받아서 말입니다."
선우는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왕王이 어찌 백성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선우는 심유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이세진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털썩
그러자 이내 이세진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쿵
"의천맹의 원로, 이세진이 군왕君王 전하를 뵙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땅에 처박은 채 고함을 내질렀다.
털썩 털썩 털썩 털썩
쿵 쿵 쿵 쿵 쿵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원로들은 이내 곧바로 이세진을 따라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왕의 면전에 두고 감히 건방지게 앉아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군왕君王 전하를 뵙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언성을 높여 고함을 내질렀다.
극진한 예를 담아서 말이다.
선우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