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897화 (898/1,419)

〈 897화 〉 898. 덕을 베풀다.

털썩

백광은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다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머리를 바닥에 처박아버렸다.

"신 도지휘사 백광, 군왕君王 전하를 뵙습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우렁찬 목소리로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어..어?"

그 모습을 본 의관 종태는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도지휘사 백광에 땅에 머리를 박은 채 저자세를 취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백광이 누구란 말인가

광서성 내에서라면 무소불위라는 말이 부족치 않는 거대한 권력을 쥐고 있는 도지휘사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어찌 무릎을 꿇고 바짝 엎드린 채 머리를 땅에 박는다는 말인가

'잠깐...군왕?'

그렇게 한창 당황하던 종태의 머릿속에 백광의 말이 스쳐지나기 시작하였다.

분명 백광은 군왕君王이라고 하였다.

장선우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말이다.

"히익!"

이내 종태의 얼굴이 사색이 되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대충 어림짐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신 의관 종태, 군왕 전하를 뵙습니다!"

종태는 이어 백광을 따라 머리를 처박고 절을 하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다급하게 말이다.

"저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것 같군요."

선우는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며칠 전 황실에서 군왕 전하에 대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백광은 머리를 처박은 채 말을 이었다.

며칠 전 중원 전역에 공문이 내려왔었다.

역모를 꾸민 반역자들을 몰아내고 영웅적인 행보로 인해 군왕君王으로서 봉해진 위대한 영웅에 관한 내용이 서술되어있는 공문이 말이다.

"제가 군왕 전하를 몰라뵙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죽여주십시오!"

백광은 머리를 땅에 처박은 채 용서를 빌었다.

감히 왕의 직위를 가진 그를 아랫사람 대하듯 대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목이 달아난다해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무례랄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절한 저를 보살펴주지 않았습니까?"

선우는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딱히 무례라고 부를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 백광이었다.

그는 시종일관 무척이나 정중하였고 자신을 존중하였기 때문이었다.

"군왕 전하의 하해와도 같은 넓은 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선우의 말을 들은 백광은 감격 어린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그의 넓은 마음에 참을 수 없는 감동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두 사람 모두 머리를 드시지요. 예가 지나치십니다."

선우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머리를 처박고 있는 백광의 모습을 보니 괜스레 불편함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제가 감히 어찌 전하를 면전에 두고 머리를 들어올릴 수 있겠습니까? 거두어주십시오."

"왕명입니다."

선우는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왕명을 받들겠습니다!""

스르륵

그러자 이내 백광과 종태는 곧바로 머리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무척이나 감격 어린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몸도 일으키십시오. 내려다보려니 불편하군요."

"아닙니다! 어찌 동등한 위치에 서서 전하를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부디 말씀을 거두어주십시오!"

"왕명입니다."

"왕명을 받들겠습니다!"

벌떡

이내 두 사람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세웠다.

왕명이라는 말에 발작하듯 즉각적인 반응을 하는 것이다.

'효력 보소.'

선우는 감탄하였다.

저 고집불통의 도지휘사 백광이 왕명이라는 말 한마디에 껌뻑 죽는 모습이 꽤나 신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게 바로 무소불위라는 것인가?'

한 성의 최고 권력자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력이라니.

무소불위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권력인 것이다.

'나쁘진 않네.'

선우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대우 받는 느낌이 그리 싫게 느껴지진 않은 까닭이었다.

'자아, 그럼 이제 슬슬 정리해볼까?'

선우는 이내 신색을 회복한 뒤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백광을 바라보았다.

신분을 밝힌 주 목적을 처리할 심산이었다.

"크흠..흠....저에 대해 아신다면 도지휘사께서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사실 또한 잘알고 있을 것라고 생각합니다."

선우는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자신은 왕이었다.

황제를 제외한다면 권력의 정점이라고 칭할 수 있는 위치인 것이다.

또한 반역자들로부터 환수한 재산들 또한 포상으로 받아 주머니가 두둑하다 못해 터질 정도로 가득 차 있었고 천하에 다시없을 경국지색의 여인들과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황제도 부럽지 않을 인생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자신에게 한낱 도지휘사 따위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존재할 리 만무하였다.

"................"

선우의 말에 도지휘사 백광은 입을 다물었다.

그또한 선우의 말이 내심 동의하고 있는 터였다.

군왕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완벽한 남자였다.

황제를 제외한다면 권력의 정점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왕이라는 직위.

천하제일미라고 칭해도 전혀 손색이없는 황궁제일미 경화군주.

반역자들의 재산을 포상으로 받아 터질듯이 넘쳐흐르는 재화까지.

그런 그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게 존재할 리 없었다.

"그러니 포상은 없던 걸로 해주게, 그저 왕으로서 백성들을 지킨 것 뿐이네 말일세."

선우는 담담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진심된 마음이면 충분하였다.

그들에게 가진 것 중 그보다 가치있는 것은 없을테니 말이다.

"..........거두어주십시오........전하께서 목숨을 걸고 광서성을 지켜주시지 않으셨습니까?......만약 이대로 그냥 넘어가버린다면.....저는 물론이고 광서성의 모든 백성들이 은혜도 모르는 무뢰배가 될 것입니다."

백광은 올곧은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외골수.'

선우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였음에도 저리 고집을 부리는 것을 보니 절로 외골수라는 말이 떠올려졌다.

'그래도 싫지는 않네.'

하지만 그리 싫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은혜를 모르는 이들이 수두룩한 세상이었다.

현대가 되었든

중원이 되었든

그런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은혜를 갚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백광의 모습이 어찌 싫게 느껴질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더더욱 받을 수 없지.'

선우는 짐짓 굳은 표정을 지었다.

결심을 마친듯이 말이다

"도지휘사께서 제게 무엇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선우는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군왕 전하께서 가지신 재산에 비하면 조촐하기 그지없으나....재화를 포상으로 드리고 싶습니다......본디 돈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

본디 돈은 다다익선이었다.

많아서 손해볼 게 전혀 없는 귀중한 재화라는 것이다.

비록 군왕이 가진 재화에 비하면 조촐하긴 하겠지만

충분한 포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돈을 어떻게 마련하실 생각이십니까? 광서성 전역이 불바다가 되어 수복 비용만으로 이미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될터인데?"

"..........제 개인 재산을 전부 내놓을 심산입니다......어떻게해서든 허리띠를 졸라맨다면....분명 군왕께서도..납득할 만한 금액을.."

"참으로 외골수로군요. 어찌 사유재산까지 내놓으며 보상을 하려고 한다는 말씀입니까?"

"이것이 제 신념입니다.........모든 일에 합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백광은 심지 굳은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선우는 그런 백광의 눈빛을 가만히 마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좋습니다."

이내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도지휘사께서 그렇게해야 마음이 편한다면 제가 받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도지휘사 백광은 허리를 굽히며 연신 고마움을 표하였다.

자신의 신념을 지켜준 군왕에 대한 고마움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대신 확실히 해둘게 있습니다."

선우는 손가락을 들어올리며 조건을 달았다.

"말씀만 하십시오! 어떤 확인이 필요하신 겁니까?"

백광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도지휘사께서 돈을 넘기겠다고 하는 순간 그 돈은 제 사유재산이 됩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보상으로 넘겨받는 순간부터 재화는 온전히 전하의 소유가 됩니다."

백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넘겨받는 순간 사유재산이 되는 건

너무 당연한 말이었다.

구태여 확인할 필요도 없는 너무나 당연한 말말이다.

"그렇다면 그 돈은 제 마음대로 써도 되겠군요."

"그렇지요, 자신의 소유를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대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백광은 당연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물어보고 할 것도 없는 당연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잘되었군요."

그의 확고한 대답을 들은 선우는 안심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포상으로 받은 돈, 모두를 광서성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한 복구 지원금으로 내놓도록 하겠습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네..네에!?"

선우의 말을 들은 백광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당혹스러움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제 사유 재산이니 불만은 없으시겠지요?"

선우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안..안됩니다!"

이내 백광은 다급한 어조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그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한 까닭이었다.

군왕은 다시금 광서성을 도울 심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포상으로 받은 돈을 전부 내놓으면서 말이다.

"어찌하여 안된다는 말씀입니까?"

선우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어찌 포상금을 수복 비용으로 내어놓는다는 말씀입니까!"

"제 개인적인 사유 재산이 아닙니까? 어떻게 쓰든 그건 제 마음이 아닙니까?"

선우는 진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하..하지만...그...그건.."

선우의 말에 백광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

떠오르는 생각이 많았지만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 분명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포상금은 넘겨진 순간부터 사유재산이 되는 것이고 그 사유재산을 마음대로 하는 건 제 자유라고 말입니다. 설마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선우는 짓궂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당했다.'

선우의 말을 들은 백광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군왕君王의 술수에 완전히 당해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군왕은 온전히 돈을 받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어찌하여..이렇게까지..하시는 것입니까?"

"제 마음이 그리하라고 시키더군요."

선우는 입가에 부드러이 미소를 지었다.

울컥

그 미소를 마주한 백광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울컥 차오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저 성군聖君이었다.

어질고 덕이 가득차있는 훌륭한 인품을 가진

위대한 성군聖君말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털썩

이내 백광은 다시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곧바로 머리를 땅에 박았다.

군왕의 은혜가 너무 하해와도 같아 도저히 시립한 채로는 받들 수가 없던 탓이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곧이어 옆에 있던 의관 종태 또한 도지휘사 백광을 따라 머리를 박았다.

광서성의 백성들에게 다시금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주는 위대한 성군에 대한 감사함이 절로 차오른 까닭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일어나십시오...예가 지나치십니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선우는 여전히 난감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에게 절을 받는 건 여전히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꾸우욱

꾸우욱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머리를 땅에 깊게 박고 있을 뿐이었다.

위대한 군왕에 대한 감사를 담아서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머리는 오래토록 바닥에서 떼어내질 줄 몰랐다.

당장 일어나라는 왕명이 떨어질 때까지 말이다.

*********

내빈시 정문

수많은 백성들이 오직 한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누군가 보면 과한 처사라고 여길 지 모르지만 광서성의 백성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준 위대한 성군이 떠나는 길을 어찌 배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우는 도지휘사 백광을 비롯한 백성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좀더 머물고 가셔도..될터인데.."

백광은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은인에 대한 충분한 대접을 하지 못한 것이 심히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이미 지체될 정도로 지체되어서 말입니다..."

"심히 안타깝군요....전하를 이리 보내야한다니..."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꼭 다시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선우는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꼭..꼭 약속하신 것입니다."

덥석

백광은 두손으로 선우를 강하게 맞잡으며 말을 내뱉었다.

꽈아악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악력이었다.

"물론이지요."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다시 왔을 땐 광서성이 원래대로 안정화될 수 있도록 빌겠습니다."

"걱정마십시오. 재방문을 하실 때까지 완벽히 꼭 안정화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백광은 의지로 가득 찬 두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 기대하겠습니다........그럼 이만."

선우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대로 몸을 돌렸다.

더이상 붙잡혀있다간 떠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군왕 전하 감사드립니다! 광서성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전하께서 모두를 살리셨습니다!"

"이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전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내 선우가 등을 돌리자 백성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감사인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선행을 모두가 전해들은 까닭이었다.

선우는 손을 들어 가벼이 흔들어준 이후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백성들은 그런 선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였다.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

.

.

.

.

"도지휘동지."

선우가 사라지자 도지휘사 백광은 도지휘동지를 불렀다.

"하명하십시오."

동지휘동지 고택은 정중한 어조로 답을 하였다.

"당장 동銅을 끌어모으도록 하라."

"동銅을 말씀입니까?"

고택은 의아한듯한 어조로 물음을 던졌다.

별안간 동銅은 왜 끌어모으란 말인가

"동상銅像을 세울 걸세."

"네에!?"

고택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위대한 군왕 전하의 업적을 널리 알려야하지 않겠나!?"

백광은 뜨거운 눈빛으로 고택을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광서성 전역에 군왕 전하의 업적이 담긴 동상을 세울 것이네! 이견은 받지 않으니 닥치고 동銅을 수집하도록 하게!"

"알..알겠습니다!"

고택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답을 하였다.

황당한 요구이긴 하지만 감히 도지휘사의 의견에 반론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군왕君王 전하, 다시 광서성에 오시게 된다면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백광의 입가에는 흡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