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6화 〉 897. 군왕君王 전하를 뵙습니다!
광서성 내빈
커다란 청사 안
한 남자가 눈을 감은 채 규칙적으로 고른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가면서 말이다.
"흐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의관 종태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덥석
그다음 맥을 붙잡 뒤 눈을 감고 그 태동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두근 두근
그러자 이내 규칙적인 맥박의 움직임이 손끝을 통해 그대로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후우우."
이내 눈을 뜬 종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큰 이상은 없는듯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창 안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은인의 상태는 어떠한가?"
옆에 잠자코 서있던 광서성의 도지휘사, 백광이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종태를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습니다."
그의 물음에 종태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럼...곧 깨어나는 건가?"
백광은 화색을 띈 채 그에게 되물었다.
은인이 깨어날 수 있을 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쁨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아쉽게도...그건 알 수가 없습니다.......곧 깨어날 수고 있고.....아니면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니! 이상이 없는데 어찌 깨어날 수 있을 지 없을 지 모른다는 말인가!"
의관 종태의 말을 들은 백광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이해할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건강에 이상이 없다면 깨어나는 게 당연한 수순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이런 그런 당연한 수순을 역으로 부정한다는 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종태는 송구스럽다는듯한 어조로 사과를 하였다.
"내가 듣고 싶은 건 사과가 아닐세! 난 어째서 은인이 깨어나지 못하는지 묻는 걸세!"
백광은 잔뜩 성이난 얼굴로 종태를 노려보았다.
자신은 사과따위를 듣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은인의 회복이 더딘 이유를 묻는 것이다.
"소관의 실력으로는 도무지 원인을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종태는 면목없다는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상태만 놓고 보면 은인의 상태는 당장 깨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최상의 상태였다.
맥박과 호흡은 물론 정상화되어있고 자잘한 외상은 전부 회복되었으며 내상의 흔적 또한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었으면 일어나도 진즉 일어났을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은인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고른 호흡을 내뱉으며 깊은 잠에 빠져있을 뿐인 것이다.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은인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않는지 말이다.
"되었다! 내 네놈ㄷ보다 더 실력있는 이를 불러 진료토록 하겠다!"
도지휘사 백광은 언성을 높이며 말을 내뱉었다.
"게 아무도 없더냐!"
그리고 바깥쪽을 향해 큰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벌컥
"신 고택, 명을 받아 부름에 응하였나이다."
그때 문이 열리고 동지휘동지 고택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당장 의원을 찾거라! 이자보다 더욱더 뛰어난 의원을!"
백광은 종태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도지휘사.......종태 의관 보다 뛰어난 의원은 근방에는 없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고택은 난감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종태는 근방에서도 알아주는 명의였다.
운수만 좋았다면 황실어의로 근무했을 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정도로 말이다.
그런 그 보다 뛰어난 의원을 찾을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근방이 아니라 다른 성도 좋다! 아니 성이 아니라 중원 전역이라도 좋다! 최고의 의원을 데려오란 말이다!"
백광은 잔뜩 흥분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광서성을 구한 은인이 의식을 잃은 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 은혜를 입은 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화타나 편작이라도 강제로 머리 끄댕이를 붙잡고 저승에서 데려와야할 판국인 것이다.
"알..알겠습니다...명을 수행하겠습니다."
고택은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답을 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돌려 바깥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주어진 명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 말이다.
"종태!"
이내 그 모습을 본 백광은 몸을 돌려 의관 종태를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도지휘사."
종태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답을 하였다.
"그대를 대신할 다른 의원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 돌보도록 하라! 땀이 난다면 몇 번이고 닦아드리고 침구를 매일 갈아드리며 검진을 몇 번이고 하고 또 하고 또 하도록 하라! 그대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대우를 하라는 말이다! 알겠는가! "
"그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꾸벅
종태는 허리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은인을 허투루대한다면 내 가만두지 않으리라!"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종태는 굽신거리며 정중히 답을 하였다
"흥."
말을 마친 백광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바깥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그 또한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새로운 의원을 찾아볼 심산이었다.
광서성을 구한 의인을 당장에라도 회복시킬 수 있는 최상의 명의를 말이다.
'걱정마시오, 은인, 내 황궁 어의의 머리채를 끌고 와서라도 치료를 받게 해줄터이니.'
백광의 눈빛이 의욕으로 활활 불타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그렇게 바깥쪽으로 완전히 걸음을 옮긴 순간이었다.
"도...도지휘사!"
뒤편에서 종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대체 뭔가?"
그 목소리에 백광은 걸음을 멈춰선 채 귀찮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은..은인께서..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뭐..뭐라!"
종태의 말을 들은 백광은 재빨리 몸을 돌렸다.
성큼 성큼
그리고 누워있는 은인을 향해 재빨리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그게 정말인가!"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소인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럴 수가! 그렇다면 정신이 돌아온게 아닌가!"
백광은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은인의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곧바로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바라보았을까
움찔 움찔
갑자기 남자의 몸이 쉴새없이 움찔거리기 시작하였다.
당장에라도 깨어날 것처럼 말이다.
"은인!! 일어나야합니다! 일어나십시오!"
그 모습을 본 백광은 다급히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일어날듯 말듯한 그의 움직임에 애가 탔기 때문이었다.
"으으으...으으.."
그때 남자의 입에서 옅은 신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스르륵
그러더니 굳게 닫혀있던 눈이 살며시 뜨여지기 시작하였다.
"은인!!!!!!!"
그 모습에 백광은 기쁨의 환호성을 내뱉었다.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광서성을 구한 위대한 영웅께서 말이다.
"..아...아저씨.."
그때 눈을 뜬 남자가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하였다.
"소인은 백광이라고 합니다. 광서성의 도지휘사이지요. 하지만 편하실대로 부르셔도 됩니다. 어찌 광서성을 구한 은인께 존칭을 강요하겠나이까? 그저 편한 동네 아저씨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아저씨라는 자칫 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 호칭을 내뱉었음에도 백광은 그저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은인이 그리 부르겠다는데 무슨 반박을 하겠는가
".....시끄러워요."
".......네에?"
".......더 잘거니까, 깨우지마요."
스르륵
이내 말을 마친 남자는 다시금 눈을 감아버렸다.
"..............."
백광은 무척이나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간 자신이 은인의 휴식을 방해하고 있던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다시 오겠네."
이내 백광은 축처진 표정으로 종태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아..예에,...저는 곁에서..차도를 지켜보겠습니다."
종태는 뻘쭘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받았다.
터벅 터벅 터벅
이내 백광은 청사 밖으로 완전히 나가버렸다.
그리고 청사 안에는 곤히 자고 있는 영웅과 늙은 의원만이 남게 되었다.
*******
"죄송합니다. 제가 비몽사몽했던터라....무례하게 말을 내뱉었군요."
잠에서 깨어난 선우는 죄송스럽다는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일주일 간 자신을 보살펴준 이에게 너무 무례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하하, 아닙니다. 내 시끄러웠으니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내 잘못입니다."
선우의 사과에 백광은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처음엔 당황하긴 하였지만 지나고보니 자신의 잘못같았다.
얼마나 시끄러웠으면 이 의협심 넘치는 영웅이 그런 말을 했겠는가
반성하고 또 반성할 일이었다.
"넓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선우는 호탕하게 넘어가준 그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도지휘사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야인이나 다를바 없는 이였다.
자신의 군왕君王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를테니 말이다.
그런 자신에게 이렇게 관대하게 대해준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리라
"아닐세, 오히려 감사할 사람을 나일세.....아니 나 뿐만 아니라 광서성의 모든 백성들이 자네에게 감사를 해야할 걸세......."
백광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오히려 감사해야할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가 아니였으면 광서성 전역은 불바다가 되었을 것이고
자신은 물론이고 광서성에서 살아가는 모든 백성들은 꼼짝없이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감사 인사를 받겠는가
어불성설이었다.
"그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선우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딱히 정의감이 넘치는 성격은 아니였지만
적어도 인간으로서의 윤리정도는 갖추고 있는 선우였다.
무자비하게 학살당하는 이들을 보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당연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걸 실천하는 이는 극히 드무네. 특히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더더욱 실천하는 이가 드물지."
도지휘사 백광은 뜨겁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어떤 게 옳은 지는 세상 사람들 대다수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직접 실천하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스스로의 안위를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앞에 남자는 달랐다.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조차 불타버릴지도 모를 상황에서
직접 나서 모두를 지켜낸 것이다.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하하.."
백광의 뜨거운 눈빛을 마주한 선우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민망한듯 머리를 긁적였다.
진심 어린 눈빛을 마주하니 괜스레 쑥쓰러움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혹여 원하는 게 있는가? 무엇이 되었든 내 힘을 닿는데로 전부 도와주도록 하겠네."
백광은 진심 가득한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선우는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거절을 하였다.
딱히 원하는 바가 없었다.
이미 왕의 자리에 올라 모든 게 풍족한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그저 고마운 마음만 받으면 충분하리라
"아닐세, 그런 영웅적인 행보에 대가가 없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부디 나를 경우에 없는 인간으로 만들지 말아주게나."
백광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무엇이든 말만하게나, 도지휘사라는 직책은 자네가 생각이상으로 막대한 권력을 쥐고 있네, 자네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쉽사리 들어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백광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대궐같은 집을 원한다면 내 당장에라도 인부들을 동원하여 광서성에서 가장 큰 집을 지어주겠네, 금은보화를 원한다면 내 개인재산까지 전부 털어 자네에게 전해주겠네, 꽃같은 미녀를 원한다면 내 천하에 이름 난 여인들을 어떻게든 섭외하여 자네와 자리를 마련토록 하겠네. 관직을 원한다면 내 지금 당장 도지휘동지의 자리를 넘겨주도록 하겠네, 그러니 부디 원하는 바를 말하게나 내 이름을 걸고 무엇이든 들어주겠네!"
백광은 뜨겁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난감하네.'
선우는 난감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쉽사리 물러날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돈이나 달라고 할까?'
하지만 이내 선우는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화룡도를 든 괴인에 의해 광서성전역이 불바다가 되었다.
모든 것을 수복하는데 상당한 비용이 들 것이 자명한 상황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돈을 요구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관직을 요구할 수도 없고..'
이미 왕의 자리에 오른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이 대체 무슨 관직을 받을 수 있겠는가
'여자를 요구했다간 서윤이가 나를 죽일거고..'
결국 무엇하나 요구할 수 없었다.
이미 모든 것들을 전부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선우는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니될 말일세! 내 자네에게 은혜를 갚지 않는다면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고! 하루하루 매말라 죽게 될걸세!"
백광은 강경히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양보할 수 없는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어쩐다....'
선우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해야 백광이 납득할 수 있을 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네.'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최후의 방법을 사용해야할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도지휘사."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원하는 게 생각났는가!?"
백광은 의욕 가득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보니 저희가 통성명을 하지 않지 않았습니까?"
"이런! 내 실례를 하였구만 , 광서성을 구해준 위대한 영웅의 존함조차 묻지 않았다니!"
백광은 아차 싶은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껏 그의 이름을 묻지 않았었다.
최대 불찰이었다.
어찌 이런 실수를 한다는 말인가
"내 은인의 이름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는가? 내 길이길이 자손들에게 전해주고 싶구려."
"제 이름은 장선우라고 합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장선우라 실로 영웅의 풍모를 갖추고 있는 이름이로구만, 어찌 그런 그런 멋진 이름을........."
뚝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백광은 감탄했다는듯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잇더니 이내 그대로 끊어버렸다.
무언가 머릿속을 번뜩이듯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설...설마?...자네..는...아니...당신은..."
이내 백광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가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척이나 위엄있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털썩
이내 도지휘사 백광은 선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쿵
그리고 머리를 땅에 처박아버렸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신 도지휘사 백광, 군왕君王 전하를 뵙습니다!"
이내 청사 안에는 백광의 우렁찬 목소리가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