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5화 〉 896. 이젠 놓치지 않아...장선우
타타탁
타타탁
요랑은 달렸다.
최선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한시라도 빨리 정문에 도달하기 위해서 말이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먼거야!'
요랑은 짜증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평소라면 한달음처럼 느껴졌던 정문과의 거리였다.
그런데 마음이 급박하니 마치 천리길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멀게만 느껴진 것이다.
'더 빨리..더 빨리가야해!'
그녀는 무척이나 급박하였다.
자칫 잘못했다간 음양마에게 맞아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스스로의 말이 법이라며
어기는 즉시 머리통을 터트려버리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던 영감탱이였다.
만약 자신이 보낸 전령이 문전박대당했다는 말을 전해듣게된다면
분명 분풀이를 삼아 머리통을 터트려버릴 것이다.
그럴만한 인성과 실력을 충분히 갖춘 이였으니 말이다.
'안돼! 안돼!'
요랑은 죽기 싫었다.
이대로 죽기엔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였다.
사랑하는 정인과 친구들이 있었고
자신을 떠받들어주는 부하들도 있으며
넘칠 정도의 재화 또한 쌓여있었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입이 심심하며 간식을 주워먹었다.
졸리면 낮잠을 잤고
심심하면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아무런 근심과 걱정이 없었으며 내일에 대한 기대만이 가득 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죽고 싶겠는가
요랑은 속도를 더욱더 높이기 시작하였다.
생존 의지를 강하게 불태운 채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이내 그녀의 시야에 정문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도착했다!'
그 모습을 본 요랑은 쾌재를 불렀다.
멀게만 느껴졌던 정문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꾸우욱
그녀는 몸을 활처럼 휘게 만들었다.
콰쾅
그리고 그대로 몸을 튕겨 그대로 쏘아내었다.
쇄애애애애액
그러자 그녀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빛살처럼 말이다.
********
운설은 정문 한 쪽에 시립한 채 얌전히 기다렸다.
차분히 가라앉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햇볕이 강합니다. 그늘쪽에서 서있는 게 어떻겠습니까?"
당훈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곧있으면 안으로 들어가게 될텐데요. 뭐."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후우...소저, 아까도 말했다시피 선우님을 찾아온 이들은 하나같이 문전박대를 당하였습니다.....아마 이번에도 그 경우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당훈은 걱정 어린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근거없는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는 그녀에게 경고를 하듯이 말이다.
"글쎄요, 전 조금 다를 것 같네요."
운설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후우."
그녀의 반응에 당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아가씨의 머리에는 아름다운 꽃길만이 펼쳐져있는듯하였다.
'많이 상처 안받으면 좋겠구만.'
당훈은 속으로 작게 빌었다.
이 활달한 아가씨가 냉혹한 현실에 큰 상처 안받기를 말이다.
쇄애애애애애액
그때 당훈의 귓가에 바람을 꿰뚫는 날카로운 파공성이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뒤?'
당훈은 그 소리를 따라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정문을 향해 날아들고 있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인의 모습을 말이다.
'재경각주!?'
그 모습을 본 당훈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너무나 익숙한 여인의 등장에 당혹스러움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콰쾅
이내 굉음성이 터지고 재경각주, 요랑이 그대로 정문 코앞에서 착지를 하였다.
"하아...하아...하아..하아아.."
그리고 고개를 아래로 처박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급박한듯이 말이다.
"....재..재경각주..괜찮으십니까?"
당훈은 그런 요랑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저러다간 숨이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인 든 까닭이었다.
"하아...하아..괜찮아...괜찮아.."
요랑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처박았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저..저나..여기.....하아...이호선의...하아...전령이..왔다고....들었는데..."
요랑은 호흡을 고르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이..호선의 전령말씀입니까?"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당훈은 놀랐다는듯한 어조로 되물었다.
설마하니 재경각주가 알고 있는 이름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어디있어?"
요랑은 당훈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저기...뒤편에.."
당훈은 손가락으로 뒤편을 가리키며 입을 떼었다.
그러자 요랑의 시선이 뒤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선녀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인의 모습을 말이다.
"......네가...이호선의...전령이야?"
요랑은 가쁜 숨을 가라앉힌 채 입을 떼었다.
"맞아요."
운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정말..이호선이...그...영감탱이가..아니 영감님이 보낸 거야?"
요랑은 떨리는 눈동자로 운설을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네에, 맞아요, 그분의 부탁을 받고 이곳에 찾아온 것이랍니다."
요랑의 물음에 운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얘...아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데리고 갈게."
그녀의 대답을 들은 요랑은 고개를 돌려 당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가주 대리님의 허락이.."
"서윤이한텐 내가 직접 말해둘게. 어떻게든 피해 안가게 할테니까, 면 좀 세워주겠어?"
요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당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서열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경각주의 부탁이다.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따라와."
타박 타박
요랑은 그대로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운설은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당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가 말했죠? 들어갈 수 있게 될 거라구요,"
그리고 당훈을 향해 상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다음 요랑의 뒤를 따라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무척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말이다.
당훈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디든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면서 말이다.
********
저벅 저벅
걸어가는 두 여인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궁금한 게 있어요."
갑자기 운설이 입을 떼었다.
"......뭔데?"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요랑."
"예쁜 이름이네요."
운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저는 운설이라고 해요."
".............알아."
"요랑님께서는 제가 불편하신가요?"
"........완전 많이 불편해."
요랑은 솔직한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었다.
어찌 불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괴물같은 노인네가 보내온 인간을 말이다.
"불편해 하시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적이 아닌걸요."
"네가 불편하다기보단 널 이곳으로 보낸 인간이 불편해."
"음양마 선배님 말인가요."
파르르르
요랑은 몸을 파르르 떨기 시작하였다.
별호를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처맞았던 과거의 기억이 그대로 떠올려진 까닭이었다.
'반응이 재밌네.'
그 모습을 본 운설은 피식 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즉각적인 요랑의 반응이 꽤나 재밌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저는 요랑님이 음양마 선배와 친한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요랑은 단호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그럼 어째서 저를 들여보내주신 거죠?"
"그 괴물 영감은 무시 당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거든, 만약 너를 문전박대한 걸 알게되면.......분풀이로 나를 줘패버렸을거야."
요랑은 두려운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음양마.....선배님께서요? ....그럴 리가요.."
운설은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현신하여 자신은 물론 사조부까지 지켜주었던 음양마였다.
그런 그가 그런 흉악스러운 짓을 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괴물 영감은 네 생각보다 휠씬 더 나쁜 영감탱이야. 내키는 대로 손이 나가는 연쇄폭력마라고.."
요랑은 눈을 잘게 떨며 말을 이었다.
말하면 할수록 음양마에 대한 두려움이 한층 더 차오른 까닭이었다.
"하하하하하, 재밌네요, 그렇게 무서워하시면서...전령 앞에서 이렇게 욕을 하시다니......"
그녀의 반응에 운설은 재밌다는듯 웃음을 터트렸다.
"........말하면 안돼..알았지?"
그 말을 들은 요랑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글쎄요.....이걸...어떻게 해야하나.."
운설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안돼...절대...절대..말하면 안돼에에.."
요랑은 간절한 표정을 지은 채 부탁을 하기 시작하였다.
만약 뒷욕을 했다는 사실이 들켰다간
머리통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장난이에요."
운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정말?"
요랑은 화색을 띈 채 입을 떼었다.
"네에, 절대 안말할게요."
"헤헤헤헤...고마워."
요랑은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물밀듯 차오른 불안감이 안도감으로 완전히 치환된 까닭이었다.
"그나저나 요랑님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뭐든 물어봐!"
"어째서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거죠?"
"............"
뚝
순간 걸어가던 요랑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그리고 이내 요랑은 고개를 돌려 운설을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으로 말이다
"어떻게...알았어?"
"요기妖氣가 느껴져서요........인간이라면 품을 수 없는 강대한 요기妖氣가 말이에요."
운설은 눈을 반짝거리며 입을 떼었다.
"..........너 평범한 인간이 아니구나."
요랑은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단번에 자신의 본질을 알아본 이는 지금까지 단 두사람이었다.
이름없던 검객과 음양마 뿐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한 사람이 추가되었다.
눈앞에 있는 운설이라는 여인이 말이다.
"음양마 선배가 보내온 전령이잖아요? 평범하다면 그게더 이상하지 않겠어요?"
운설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도 그렇네."
요랑은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틀린 말이 아니라고 여긴 까닭이었다.
"그럼 제 질문에 답해주시겠어요?"
"중요한 질문이야?"
"아니요, 그냥 순수한 궁금증이에요.. 정순한 요기妖氣를 봤을 때 요선妖仙이 되기위해 수련을 쌓는 요물이신 것 같은데.......구태여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게 신기해서요."
운설은 궁금하다는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보통 요선을 목표로 하는 요물이나 신선을 목표로 하는 영물들은 심산유곡에서 자연의 정기를 받아 수련을 쌓는 게 일반적이었다.
혼잡한 인간들의 품속에서는 제대로 된 수련을 쌓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궁금하였다.
어찌하여 이 강대한 요기를 품고 있는 요물이 인간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지 말이다.
"이곳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거든."
요랑은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선계에 들기위한 수련마저 등한시 할 정도로 소중한 건가요?"
"응!"
요랑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부럽네요.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게."
"너는 없어?"
"제 나이쯤 되면 소중한 이들 대다수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랍니다."
운설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폐관을 마친 이후 세상을 나오니 소중했던 모든 이들이 없어져버렸다.
스승님도 사형제들도
가족들도 모두 말이다.
백여년이 넘는 세월은
인간의 수명으로는 감당키 힘든 세월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소중한 이들이 없었다.
선계에 드는 것을 미룰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요랑이 부러웠다.
등선의 욕심마저 억누를 정도로 소중한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말이다.
".........나이가 생각보다 많나봐?"
"......제가 동안이긴 하죠."
"그래서 몇 살인데?"
"요랑님, 여인한테 그런 질문은 실례예요."
"할머니야?"
"싸우실래요?"
요랑과 운설은 티격태격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
가주전
"안녕하세요. 운설이라고 해요."
운설은 공손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반갑습니다. 가주 대리인 당서윤이라고 합니다."
당서윤은 마주보며 공손히 인사를 건네었다.
"기별을 통해 전해들었습니다.......음양마 선배님의 명으로 선우를 만나러왔다고요?"
"그러합니다."
운설은 고개를 살며시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혹여 실례가 안된다면.....어떤 용건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당서윤은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입을 떼었다.
"실례라뇨, 오히려 이쪽에서 먼저 말씀드려야할 내용인 걸요?"
운설은 맑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검을 전해주기 위해서 왔어요."
"검이요?"
당서윤은 의아한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네에, 천마와 대등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검."
운설은 심유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연검自然劍을 말이에요."
운설의 별빛같은 눈동자가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자..연검自然劍?!"
그녀의 말을 들은 당서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경악스러움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연검이 무엇이란 말인가
심검心劍을 뛰어넘는 신선의 검이자
모든 자연에 의지를 담을 수 있는 물아일체의 경지가 아니던가
자연검을 구사한다는 것은 곧 신선이 되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연검을 전수해주겠다니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가에 머무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겠어요?"
운설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당서윤을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끄덕 끄덕
그리고 그녀의 물음에 당서윤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혼이 나간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씨익
그 말을 들은 운설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허락이 떨어졌으니 이제 걱정이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이젠 놓치지 않아...장선우.'
그녀는 생각하였다.
이곳에 머무른다면 길이 엇갈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결국엔 최종적으로 들리게 될 곳이니 말이다.
운설의 눈빛이 별빛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