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2화 〉 893. 미래를 보다.
활 활
겁화와도 같은 거대한 불길이 온세상을 불태우고 있었다.
끊임없이
쉴새없이 타고 또 타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
이내 여기저기서 끔찍한 비명성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불길에 덮쳐진 이들이 내지르는 끔찍한 비명성이었다.
'대체..이게...무슨..'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럽게 펼쳐진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자신은 화룡도를 든 괴인을 죽이고 그대로 기절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별안간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때 어디선가 처절하기 그지없는 비명성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어찌나 처절하고 슬프게 울부짖는 지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겨지는듯한 먹먹함이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뭐지?'
선우는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여인을 품에 안은 채 울부짖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어?'
순간 선우는 의아함을 느꼈다.
울부짖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본듯한 시원스러운 인상의 얼굴
돌덩이와 같은 근육이 가득 차 있는 단련된 육체.
육 척에 다다르는 장신의 키.
금색의 용이 자수놓아져있는 흑색의 용포까지
익숙해도 너무 익숙하였다.
마치 제 얼굴처럼 말이다.
'얼굴처럼이 아니고....저건..나잖아!?'
이내 선우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울부짖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자신과 판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뭐..야...대체..내가..왜?..'
선우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갈등과 불화를 전부 해소시킨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이 어찌 세상의 모든 슬픔을 다안은 듯 처참하고 비참한 표정을 지은 채 울부짖고 있다는 말인가
대적자이자 원수였던 이재원은 죽었다.
이제 목숨의 위협을 받거나 개같은 상황에 연루될 일이 없어진 것이다.
처가인 황실의 반란 또한 성공적으로 잠재웠고
황제와 황태자의 목숨을 구하였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군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으며 사천성을 영토로 하사 받게 되었다.
광서성에서 학살을 벌였던 화룡도를 든 괴인을 완전히 소멸이 시켜버렸다.
울부짖으며 처절한 비명을 지를만한 요소가 전혀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설..설마!?'
그때 선우의 머릿속에 무언가 불안감이 스쳐지나갔다.
감히 상상하기도 싫은
결코 일어나서도 안되는
그런 불안감이 말이다.
'아닐거야...그럴 리 없어.'
선우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떠오른 불안을 애써 부정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입가에 피를 흘린 채 잠들어있는 여인의 모습을 말이다.
'...........옥령'
그녀는 옥령이었다.
처음으로 만난 연인이자
자신이 무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여인.
그녀가 지금 잠들어있었다.
입가에 진한 피를 흘린 채 말이다.
추욱
그때 그녀의 고개가 아래로 축 처지기 시작하였다.
'아......'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영원한 잠들어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째서....어째서..옥령이..'
선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그녀가 죽을 만한 요소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유일한 원수이자 악연인 이재원은 죽어버렸고
현경에 다다른 그녀를 대적할만한 이는 중원에 존재치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말인가
저벅 저벅 저벅
그렇게 한창 의문에 빠져들고 있을 때였다.
"여기 있었군."
어디선가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선우는 그 목소리를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칠흑보다 어두운 용포를 입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남자는 옥령을 안고 있는 선우를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서있었다.
"..죽을 때가 되니 지아비를 찾아간 건가?....눈물 겨운 사랑이군."
남자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전부..다...죽인건가?"
그때 옥령을 안고 있던 선우가 슬픔에 잠겨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녀가 마지막이었다."
남자는 심유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아......나 하나로 끝냈어도 됐잖아.."
"후환을 남겨두는 편이 아니라서 말이야."
투욱
그때 옥령을 안아들었던 선우가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옆구리에 찬 검을 빼들었다.
죽일듯이 남자를 노려본 채 말이다.
"상대가 안된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그 모습에 남자는 무심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발악하는 건 특기라서 말이야."
자신은 핏발에 선 눈빛으로 천마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내 여자들을 죽인 새끼한테.....한 칼도 못 쑤시고 죽으면 억울할 것 같아서 말이야."
"부질없는 짓이다."
"그걸 정하는 건 네놈이 아니야."
선우는 어마어마한 살의를 뿜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검이 칠흑보다 어둡게 물들기 시작하였다.
모든 것을 죽이는 검.
살검殺劍이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정하는 건 나다!"
그리고 살검殺劍을 든 선우는 그대로 달려들었다.
남자를 향해서 말이다.
휘익
남자는 그런 선우를 향해 가벼이 팔을 휘저었다.
펑
그러자 폭음이 터지면서 왼팔이 터져나갔다.
하지만 선우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펑
이번에는 오른 다리가 터져나갔다
펑
그리고 남아있는 왼쪽 다리가 터져나갔다.
쿵
이내 선우의 신형이 그대로 땅에 처박히게 되었다.
하지만 선우는 검을 쥔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강하게 틀어쥐며 앞으로 내밀기 시작하였다.
바악 바악
그리고 이빨로 땅을 긁으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닿고 말겠다는듯이 말이다.
"가련하구나."
남자는 그런 선우를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어찌 이리도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일을 한다는 말인가."
선우는 그런 남자의 말을 무시하였다.
그저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펑
그때 오른팔이 터져나갔다.
사지를 전부 잃게 된 것이다.
바악 바악
하지만 선우는 멈추지 않았다.
기어가고 또 기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오직 그에게 닿기 위해서 말이다.
남자는 그런 선우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걸음을 떼었다.
저벅 저벅
뚝
그리고 선우의 코앞에서 멈춰서버렸다.
꾸욱
그다음 발을 들어올린 후 그의 뒤통수를 밟은 채 지그시 힘을 주기 시작하였다.
쾅
그러자 선우의 안면이 그대로 땅에 처박히게 되었다.
짓누르는 힘을 도저히 견디지 못한 까닭이었다.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는 법이지."
남자는 짓밟혀진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무無로 돌아가도록 하라."
콰지직
이내 선우의 머리통이 그대로 터져버렸다.
잘익은 수박처럼 말이다.
휘익
그리고 남자는 그대로 몸을 돌려 걸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아무런 볼일도 없다는듯이 말이다.
화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이내 거대한 화마가 두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그대로 집어삼켜버렸다.
처음부터 존재치 않았던 것처럼 흔적도 남김없이 말이다.
이내 세상은 암전이 되었고 어둠만이 펼쳐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는 모든 광경을 방관자로서 지켜보았던 선우만 남게 되었다.
***********
'.................'
선우는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망상에 의한 기분 나쁜 악몽인 것인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순간적으로 떠오르게 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악의적으로 만들어낸 모략인지
무엇 하나 확신이 서는 게 없었다.
그렇기에 복잡했고
그렇기에 머리가 아파왔다.
대체 이런 끔찍한 광경이 왜 펼쳐졌다는 말인가
그렇게 선우가 복잡한 고민에 빠져들 때쯤이었다.
"복잡해 보이는구나"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 목소리를 따라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세상을 발아래로 보는듯한 오만함이 절로 느껴지는 노인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저 노인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다.
"스..스승님!"
선우는 다급한 어조로 언성을 높였다.
하나밖에 없는 스승, 음양마를 향해서 말이다.
"귀청이 떨어지겠구나."
음양마는 귓구멍을 후비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이곳에...?"
선우는 모르겠다는듯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포상받았다."
"포상...말씀입니까?"
"그래, 선행을 하였더니 그 포상으로 짧은 현신을 허락받았느니라."
음양마는 가벼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선행이요?....스승님이요?"
선우는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으로 음양마를 바라보았다.
과거 천하제일마天下第一魔라고 불리우며 악명을 떨쳤던 음양마였다.
그런 음양마가 선행을 하였다니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크하하하하하..이런..불손한 새끼를 봤나!"
그 반응에 음양마는 재밌다는듯 웃음을 터트렸다.
불손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 꽤나 유쾌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보여준 광경은 어떻느냐?"
"그 광경을...스승님께서...보여준 것입니까?"
"맞다."
"장난이 심하셨습니다. 스승님........저는 진짜인줄...알고 얼마나 조마조마.."
선우는 약간 인상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옥령이 죽는 광경을 보여주다니
아무리 존경하는 스승님이라지만 장난이 심하였다.
"장난이 아니다."
그때 음양마가 선우의 말허리를 끊은 채 말을 이었다.
".....네에?"
"내가 보여준 광경은 네놈을 골려줄 생각으로 만들어낸 장난이 아니다."
음양마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그렇다면?"
"방금 본 광경은 네놈의 미래이니라."
음양마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뭐..뭐라구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정인들이 죽어버리고
사지가 잘려나간 뒤 머리가 터져버리는 게
자신의 미래라니.
그런 말을 어찌 믿을 수가 있겠는가
"그...그 말이...사실입니까?"
"한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니라.."
"어찌...어찌...그런 일이.."
선우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천마가 예상보다 더욱더 강해져버렸다."
그의 물음에 음양마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천..천마라면...아까 그 냉막하게 생긴 남자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그 재수없게 생긴 놈이 천마이니라, 마의 종주이자 불가해不可解라고 불리우는 괴물새끼지."
음양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넌 천마에 의해 죽게 될 것이다. 우둔한 제자여."
음양마는 확정되었다는듯한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말을 잃었다.
무슨 반응을 해야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죽음이 확정되었다니
어찌 그런 말을 듣고 무슨 반응을 한다는 말인가
"......스승님..."
선우는 이내 결심한듯 음양마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전......죽기 싫습니다."
그리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여인들과.......사랑하는 자식들과......오래토록 행복하게 하루하루 보내고 싶습니다.....아직 못해본 것도 많았고...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부디...방법을 알려주십시오...저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입니까?"
선우는 간절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음양마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내게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 말을 들은 음양마는 눈을 반짝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러니 제 앞에 나타나신 게 아니겠습니까? 굳이 현신이라는 포상까지 받으면서까지 말입니다."
"크크큭...영 머리가 없지는 않구나."
그 말을 들은 음양마는 재밌다는듯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애새끼만도 못하던 새끼가 무림에서 몇 년 구르더니 없던 눈치가 생겨났다.
꽤나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 우둔한 제자는 무공만 성장한 게 아닌듯 싶었다.
"천마天魔를 이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초월적인 강자긴 하지만 결국 신선이 되다만 한계를 가진 놈이니까 말이야."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자연검自然劍과 태허일기공太虛一氣功 그리고 음양조화신공陰陽調和氣功."
음양마는 심유하기 그지없는 눈동자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이 세 가지를 것들을 이용한다면 너는 능히 천마를 당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확신에 찬 눈빛을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모르겠습니다....그 세 가지를 어떤 식으로 이용해야하는지...그리고...애초에...자연검이라뇨?....그건 생사경에 든 신선만이 사용할 수 있는 위대한 검이지 않습니까?...그런데..대체 제가 어찌.."
선우는 모르겠다는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떤 식으로 사용하라는 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넌 이미 자연검自然劍의 묘리를 습득했느니라."
"네에?"
선우는 놀란듯 토끼눈을 뜬 채 되물었다.
자연검의 묘리를 습득하였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자연을 따르게 하는 방법을."
음양마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흘린 채 말을 이었다.
"......자연을 .....따르게 하는 방법.."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되뇌이듯 읊조렸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자연을 따르게 하는 방법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져든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고심을 하였을까
"..........건곤대나이乾坤大挪移..."
이내 선우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거보거라, 정확히 알고 있지 않느냐?"
음양마는 입가에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결국은 스스로 깨우치는 제자의 모습이
만족스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