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7화 〉 878. 대계는 시작되었다.
878. 대계는 시작되었다.
[점창파가 하룻밤만에 멸문당하였다.]
진위여부를 알 수 없는 충격적인 소문이 중원 전역에 삽시간 퍼져나갔다.
소문을 처음 접한 세인들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격렬히 부정하였다.
말도 안되는 개소리라면서 말이다.
점창이 대체 어떤 곳이란 말인가
수백 년간 구대문파로서의 명성을 지켜온 위대한 명문대파가 아니던가
장문인인 태선 진인은 화경에 다다른 고수였고
장로들은 하나같이 초절정 고수에 다다른 이들이었다.
무력적으로 나름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점창파가
하룻밤에 멸문을 당하다니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세인들은 확신하였다.
으레 항간에 떠도는 헛소문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인들의 확신은 산산히 부숴지고 말았다.
개방에서 점창의 멸문 사실을 정식으로 공표한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한 세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악마혈궁이라고 불리우는 소뢰음사의 침공에도
이십여 년전 중원을 피로 물들었던 마교의 침공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명문대파의 위엄을 선보였던 곳이 바로 점창이었다.
그런 점창파가 멸문당하였다는데 어찌 경악스럽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세인들을 입을 모아 물었다.
저 위대한 무림의 축을 무너뜨려버린 흉수가 누구인지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물음에 개방은 답하였다.
흉수는 남만야수궁의 궁주이자
짐승들의 왕이라고 불리우는 남자.
수왕獸王 야율제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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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서성 서문
그 입구엔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든 채 줄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광서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갑작스레 많은 인파들이 몰린 탓일까
성 안으로 입성하기 위해선 상당한 대기를 거쳐야만하였다.
"어딜 만져요!"
"만지긴 뭘 만져?"
"방금 엉덩이 만지셨잖아!"
"만지긴 자리가 좁아서 몸이 살짝 부딪힌 거지."
"제가 부딪힌 거랑 주무른 것도 구분 못하는 천치인줄 아시나요!?"
"그러게 누가 그렇게 착 달라붙는 걸 입으래? 창녀인줄 알고 나도 모르게 주물렀잖아!"
"이런 뻔뻔한 새끼!"
"삶은 달걀 팔아요~ 지금 사시면 동전 닷푼에 드려요!"
"솜옷이 있습니다! 북해의 설풍도 견딜 수 있는 고급 솜옷! 지금 사시면 오리가죽으로 만든 솜장갑까지 끼워드립니다!"
"어허 밀지마요!"
"뭘 밀어! 앞이나 봐 새끼야."
"뭐? 새끼? 당신 몇살이야!"
"네 허벅지살이다 임마!"
대기 시간이 길어진 탓일까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가며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였고
호객행위를 하며 물건을 파는 이들도 수두룩 하였다.
"통과."
광서성 서문의 수문위사인 장량은 축 처진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중년의 남자가 연신 감사를 표하여 성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다음."
그가 다 들어가고 장량은 다시금 앞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그러자 마차 수 십대가 그의 앞에 굴러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망할.'
장량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저걸 전부 검수할 생각을 귀찮음이 절로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끼이익
탁
그때 선두 마차에서 고급진 옷을 입은 중년인이 내리더니
그대로 장량을 향해 걸어들어왔다.
"반갑소, 수문위사."
그리고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었다.
"...반갑습니다...먼저 호패를 주시겠습니까?"
장량은 손을 뻗은 채 입을 떼었다.
"여기있네."
중년인은 망설임없이 호패를 건네었다.
"흐으음."
그리고 호패를 받아든 장량은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운남성에서 오셨군요."
이내 호패를 읽은 장량이 입을 떼었다.
"그렇네."
"방문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주일세."
"혹여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차림새를 보아하니 삶이 고달퍼서 이주하려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장량은 의아한듯 그에게 물었다.
척봐도 있는 집이라는 걸 알 수 있는 행색이었다.
그런데 구태여 고향을 버리고 선뜻 이주하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점창이 멸문했기 때문일세."
중년인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점창의 멸문말씀입니까?"
"그렇네, 운남성 대다수 양민들은 점창의 비호를 받고 있었네, 그 덕분에 밀렵꾼이나 타지역의 무림인들이 함부로 설치지 못하였지, 그런데 별안간 점창이 멸문하지 않았는가? 밀렵꾼이나 타지역의 무림인들의 이권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그리고 난 그 이권다툼에 휘말려 죽고 싶지 않다네."
중년인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점창을 멸문시켰다는 남만야수궁이 지척에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혈겁의 주범이 지척에 있는데 어찌 두다리를 뻗고 잘 수 있겠는가? 차라리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무림세력에게 비호받으며 안전히 살아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네.."
"그렇다면 여기 있는 이들도 모두 그런 이유로?"
그 말을 들은 장량은 깨달았다는듯 말을 내뱉었다.
갑자기 운남성의 사람들이 왜 이리 몰리나했더니 전부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듯하였다.
"운남에서 온 이들이라면 대다수 같은 이유로 이주를 결정하였을걸세. 무서운 건 매한가지일테니까 말이야."
중년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모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다수 운남인들은 자신과 같은 이유로 이주를 결정하였을 것이다.
고향이 아무리 좋다지만 목숨만큼 좋을 수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마차에 실어있는 짐들은 전부 이주를 위해 챙겨온 집기구와 살림살이인 겁니까?"
"맞네, 돈이 될만한 것과 살림살이를 몇 가지 챙겨온 참일세."
"그렇군요. 그럼 빠르게 검품 좀 하겠습니다."
장량은 손을 슬며시 들었다.
그러자 뒤편에 있는 부하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덥석
그때 중년인이 장량의 손을 양손으로 꽉 붙잡았다.
"어허, 안그래도 바쁜와중에 무슨 일을 더 만들려고 그러는가?"
"금지품목이 있는지 없는 지 검품하는 게 저희 일이라서 말입니다."
"허허허허, 정말 살림살이밖에 없다네, 만약 검품을 하게된다면 힘만 빠지게 될거야."
중년인은 능글맞은 표정을 지은 채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슬며시 장량의 소매에 작은 주머니 하나를 넣어주었다.
"그런 수고를 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안그래도 할 일이 태산 같은 분이신데 말이야."
"....크흠.....이런 걸...주면..곤란합니다.."
"별거 아닐세, 그저 추운 날 고생하는 수문위사들의 노고에 보답을 하고 싶은 것 뿐일세....."
"...........크음...말씀을 그리 하시니...안받기도 그렇군요...성의를 거절하는 것은 또 예의가 아니니 말입니다."
"남자답게 호탕하구만.하하하하하"
중년인은 기쁜듯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해보니 살림살이만 있는 짐을 구태여 뒤질 필요는 없는듯 싶습니다. 뭐 대단한 게 있겠습니까? 그대로 지나가십시오."
"하하하하하하, 이거 말이 통하는구만."
중년인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마차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통과!"
그 모습을 본 장량은 크게 외쳤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
"개미 떼 같군."
타오르는듯한 붉은 적발과 적색 눈썹
그리고 붉은 수염
맹렬하기 그지없는 붉은 눈동자.
마치 불의 신이 강림한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남자, 염재炎災 구양진이 입을 떼었다.
서문에 몰려있는 인파들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들은 개미 떼 같았다.
몇 놈이 뭉쳐있든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짓밟을 수 있는
약하디 약한 존재말이다.
저벅 저벅 저벅
구양진은 그들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본래라면 관심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하찮은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관심을 줘야할듯 싶었다.
'일'을 해야했으니 말이다.
화르르륵
화르르륵
구양진의 몸에서 서서히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핏물보다 붉은 지독한 적염이 말이다.
*********
광서성 서문
그곳에서는 끔찍하기 그지없는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화르르르륵
"아아아아악!!!!!!!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살려줘어어어!!"
"피부가....피부가..녹는다."
사람들의 몸이 불태워졌으며
살가죽은 물론 속에 있는 내장까지 녹아내리기 시작하였다.
"엄..마아아...엄마아아.......뜨거워요...저..뜨거워요.."
"살려주세요! 돈이라면 전부 드릴게요...제발..아아아아악!"
"제발 아이만큼은....아이들...만큼은!!..아아아악!!"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이 악마같은노오오옴!"
"아아아악!!!! 저주한다! 지옥에 가서도 네놈을 저주할 것이다!!"
"아아아아아악!!!!!"
여기저기 매캐한 연기가 가득하였으며
비참하게 울부짖는 비명성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그야말로 인세에 재현된 지옥
그 자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저벅 저벅
지옥을 재현한 남자, 염재炎災 구양진은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울부짖는 비명성따윈 아무렇지 않다는듯 가벼이 산보하는 느낌으로 걷고 또 걸었다.
저벅 저벅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이내 그는 광서성 서문 코앞에 도달하게 되었다.
성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재앙과 같은 구양진의 등장에 그대로 닫아버린 것이다.
구양진은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그러자 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철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씨익
구양진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화르르르륵
구양진은 태양열화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거대하기 그지없는 불길을 타오르며 그대로 분출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분출된 불길은 하나의 형상을 띄기 시작하였다.
커다란 두 개의 뿔
날카로운 눈매.
두텁기 그지없는 거대한 이빨들
하늘에 닿을 듯 커다란 곡선의 몸매.
그것은 용이었다.
고대 신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최흉이자 최강의 신수 말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불길로 만들어진 거대한 화룡은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며 하늘이 떠나가라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성문을 향해 날아들더니 그대로 집어삼켜버렸다.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겠다는듯이 말이다.
콰콰콰콰쾅
"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이내 성문을 비롯한 성벽들은 완전히 무너져내렸고
병사들의 비참한 비명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대계는 시작되었다. 어리석은 중원인들이여."
그 모습을 보며 구양진은 읊조리기 시작하였다.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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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성 향항香港
향항은 광동성 최남부에 위치에 있는 지역으로 바다와 인접해있는 터라 어업이 활성화되어있는 곳이었다.
오죽하면 중원에서 소비되는 어획량의 삼분지 일이 이곳에서 생산된다는 말이 있겠는가
"막 잡아 올린 놈이라 신선합니다!"
"오늘 못사면 다시는 기회없습니다. 이 윤기 보십시오! 속이 얼마나 야들야들하면 이렇게 윤기가 넘치겠습니까?"
"크기만 한 자가 넘어갑니다.....이정도 크기에 한 냥이면 거저입니다. 거저!"
"부인, 직접 들어보십시오. 살이 오동통 올라서 두손으로 들기도 버겁습니다. 그려."
어부들은 어시장에서 호객행위를 하며 생선을 내리팔기 시작하였다.
신선도가 생명인만큼 최대한 빠르게 제값을 주고 파는 게 관건이기 때문이었다.
"임마! 내 손님을 왜 뺏어가!"
"네놈 고기가 시원치 않으니까 이쪽에 온거 아니야!"
"뭐야!"
우당탕
억센 어부들답게 여기저기 고성이 오가며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였고
그 틈을 타 고양이가 생선을 물고 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언제나와 같은 향항香港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큰...큰일 났습니다!"
그때 그 평화를 깨는 목소리가 어시장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호객을 하던 이들도
흥정을 하던 이들도
싸움을 벌이던 이들도
생선을 물고 도망가던 고양이까지도
모두 그 목소리에 근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온몸에 땀을 줄줄 흘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말이다.
"해적이 나타났습니다!"
시선이 집중되자 남자는 고함을 내지르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다급한 어조로 말이다.
"뭐야, 해적이였어?"
"난 또 뭐라고."
"부인, 더 깎는 건 무리라니까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관심없다는듯 고개를 돌린 채 다시금 일상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이들에게 해적따위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물에서 영업하는 파락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두렵지 않았다.
결국 관군에게 제압당할 것이 뻔할테니까 말이다.
"해왕海王의 선단이란 말입니다!"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듯하자 남자는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뭐라고!?"
"해..해왕이라고!?"
"그게 사실이야!?"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어시장의 사람들은 다급히 그에게 되물었다.
관심없다는듯 고개를 돌린 태도와는 무척이나 상반된 모습이었다.
"확실해요! 칼을 물고있는 해골 모양의 깃발을 내걸려져있었단 말입니다!"
남자는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더할나위없이 심각해지기 시작하였다.
칼을 물고 있는 해골모양의 깃발을 쓰는 자라면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관군조차 포기해버린 최악의 해적이자
자비따위는 일절 없는 인간 말종.
수많은 배들을 침몰시킨 바다의 왕.
바로 해왕海王 혁염광이었다.
그 탐욕스러운 바다의 왕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