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6화 〉 877. 의義와 실리失利
877. 의義와 실리失利
"혹여...그를 범인으로 지목한 근거가 있나요?"
주소양은 심각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거지를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점창파가 멸문했다는 사실을 안 직후 개방은 점창파 제자들의 시체를 수거하여 일일히 부검을 하였습니다.....사용한 무공을 분석하여 흉수를 찾기 위함이었지요."
거지는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희는 시체에서 어떠한 무공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흔적이 없었다구요?"
주소양은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떠한 무공이든 사람에 사용을 한다면 흔적이 남기 마련이었다.
그 무공의 특수한 성질이 온몸에 새겨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공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렇습니다....그저 강대한 힘에 휘둘려 내장이 터지고 뼈가 부숴졌으며 머리가 터져나갔을 뿐, 어떠한 내력도 초식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요............어찌 인간의 힘으로..."
주소양은 경악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점창의 도사들은 명문이라고 불리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무공을 쓰지 않고 신력만으로 압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경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희도 처음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역발산기개세라고 불리우는 항우가 살아 돌아온다면 모를까, 일반적인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테니까요."
거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던 중 상황을 전해들은 방주께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런 괴이한 일을 가능케하는 자가 존재한다고 말입니다."
"그게 야율제라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전신이 금강석보다 단단하고 타고난 신력과 짐승같은 몸놀림을 가진 수왕獸王 야율제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거지는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가 어째서..?"
주소양은 모르겠다는듯 입을 떼었다.
수왕 야율제는 삼십 년전 첫 출도 이후
자취를 아예 감춘 상태였다.
남만에 틀어박힌 채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그런 그가 어찌하여 점창을 습격하고 학살하고 멸문까지 시킨단 말인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르겠습니다......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를 알 수는 없더군요."
거지는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아쉬운듯 말을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명분이 없었다.
야율제가 점창파를 멸문시켜버릴 명분이 말이다.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나쁘다고 할 수도 없는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었던 두 문파였다.
다짜고짜 멸문시켜버릴 정도로 사이가 나쁜 건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알 수 없었다.
어째서 그들이 점창을 멸문시켜버린 것인지 말이다.
"................"
그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고심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꾹 다물었다.
나름의 추론을 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어째서 수왕이 그런 선택을 했을지 말이다.
하지만 마땅한 결론이 나오진 않았다.
".........그가 범인이라고 얼마나 확신하고 계신가요?"
".....팔 할 이상 확신하고 있습니다."
개방의 거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후우.......아무래도 수뇌부를 소집해야겠군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주소양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입을 떼었다.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무슨 생각인 것이냐......야율제..'
주소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꿍꿍이를 알 수 없는 수왕을 생각하며 말이다.
**************
임시로 지어진 거대한 막사.
의천맹을 대표하는 간부들과 원로들이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조용히 시립해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듯이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펄럭
막사의 문이 펄럭이더니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기품과 품격 넘치는 외모.
우월하기 그지없는 몸매.
보는 것만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고고한 분위기까지
절대자라는 말이 절로 어울리는 여인, 주소양이었다.
또각 또각 또각
막사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상석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원로님들과 장로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주소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내 상석에 도달한 그녀는 몸을 돌려 간부들과 원로들에게 인사를 전하였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갑작스럽게 소집령을 내린 것에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
주소양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채 사과를 하였다.
갑작스레 소집령을 내린 것에 대한 미안함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아가씨께서 부르신다면 당연히 와야지요."
"맞습니다. 개의치 마십시오. 이유가 있으니 부르신 게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어찌 사과를 한다는 말씀입니까? 고개를 드시지요."
간부들과 원로들은 그리 개의치 않아하는 표정이었다.
주소양의 소집이라면 분명 불가피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해와 같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소양은 공손한 태도로 감사를 표하였다.
무례를 무마해주려는 원로들의 따스함을 느낀 까닭이었다.
"그럼 이제 본제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이게 한 이유는 긴급히 전달해야할 사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소양은 침중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그러자 간부들의 시선이 그녀의 입에 모여지기 시작하였다.
긴급히 전달해야할 소식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개방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개방에서 말입니까?"
"어찌 개방에서?"
"구대 문파가 있는데 의천맹에게 굳이?"
그녀의 말을 들은 간부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개방은 구무림의 상징이라고 일컬어지는 구파일방의 방에 해당하는 문파였다.
그 어떤 문파보다 구대문파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개방에서 지원요청이 들어왔다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멀쩡한 구대문파를 놔두고 어찌 이제 막 출범한 의천맹에 도움을 청한단 말인가
"구대문파의 힘만으로는 버거운 일이기에 따로 지원요청을 한듯 싶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세진은 모르겠다는듯 물음을 던졌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 콧대 높은 구대문파에서 몸을 숙이고 의천맹에 지원요청을 한다는 말인가
"점창을 멸문시킨 흉수를 찾는데 협력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뭐..뭣이!?"
"점창이!?"
"아니...그게 무슨?!"
".........허엇!?"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간부들의 눈빛에서는 경악이 어리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파의 대두라고 불리우는 점창이 멸문당했다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간부들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혹여 잘못들은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든 까닭이었다.
".......아가씨...그게.....무슨 말입니까?....점창이..멸문했다뇨?"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가장 젊은 원로, 이세진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주소양의 쉽사리 믿기지 않는듯한 모습이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개방에서 직접 확인한 사실이라고 하더군요."
"개..개방에서!?"
"아니..그럴 수가.."
"허허허허"
이내 여기저기서 탄식과 헛웃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무림에서 정보의 공신력이 가장 높은 곳이 바로 개방이었다.
그런 개방에서 전해진 정보라면 점창이 멸문했다는 말이 거짓일 리 없는 것이다.
"아니, 대체 누가 점창을 멸문시켰다는 말씀입니까!"
그때 백발 성성한 대원로, 계상득이 흥분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개방에서는....정황상 범인으로 야율제를 지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야율제? 혹여 남만야수궁의 궁주인 야율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러합니다."
주소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무공조차 제대로 익히지 않은 야만인이 장문인인 태선 진인을 죽일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계상득은 여전히 불신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점창의 장문인인 태선 진인은 그의 친우였다.
이십여 년 전 정마대전 때 만나 친분을 유지하며 우정을 쌓았던 사이인 것이다.
그렇기에 믿을 수 없었다.
쾌속의 정점이라고 불리우는 사일검법을 대성한 친우가
한낱 야만인에게 패하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쉽게도..개방에서는.....야율제 이외에는 그 어떠한 범인도 특정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모든 상황이 그의 특성과 맞아떨어진다면서 말이에요."
주소양은 거지에게 전달받은 이야기를 그대로 말해주었다.
".....야율제.."
으드득
그녀의 말을 들은 계상득은 이를 으드득 갈기 시작하였다.
야율제에 대한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개방에서는 정확한 진상규명을 위해 남만야수궁과 접촉할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의천맹에게 지원을 요청하였습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고수들을 급파해달라고 말입니다."
주소양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 사안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 지 여러분들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주소양은 장로들과 원로들을 둘러보며 입을 떼었다.
그들에게 질문을 한 것이다.
흉수를 찾기 위해 개방에게 도움을 주어야하는 지
아니면 이대로 모르쇠 일관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당장에라도 지원을 가야합니다! 점창은 정파를 대표하는 문파이자! 의천맹의 동도입니다! 그런 점창이 멸문당했는데 어찌 가만히 있는다는 말씀입니까!"
계상득은 잔뜩 흥분한 채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생각하였다.
흉수를 처죽여 점창의 넋을 달래주는 것이야말로 의천맹이 추구하는 의義를 행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저는 반대합니다."
그때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세진이 살짝 손을 들어올린 채 말을 이었다.
"뭐라!"
그리고 계상득은 그런 이세진을 죽일듯이 노려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다짜고짜 초를 치는 저 어린놈이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의천맹은 이제 막 출범한 단체입니다. 조직의 규율도, 명령 체계도, 수익 구조도, 무엇하나 제대로 정립된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주제에 누가 누구를 돕는단 말씀입니까? 저희는 내실을 다질 때입니다. 흉수를 찾는 건 구대문파에게 맡기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세진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현재 의천맹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였다.
천무맹의 인원을 그대로 흡수하여 있어보일만큼 덩치를 불릴 수 있었지만 그 내실은 부실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상황에서 돕긴 누굴 돕는단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이노오옴!!!! 이세지이인! 네놈이 그러고도 정파의 동량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 말을 들은 계상득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조직을 위해 협을 거스르자니
이 어찌 사이하기 그지없는 생각이란 말인가
"아니,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조직을 위해 협을 거스르자고 하지 않았더냐!""
"협을 거스른 게 아닙니다. 그저 쓸데없는 행동은 자제하라는 말이지."
"점창의 멸문시킨 흉수를 찾는 일이 쓸데없다는 것이더냐!"
"구태여 의천맹이 끼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까?"
이세진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게 힘드니 의천맹에 도움을 요청한 게 아니더냐?"
"저랑 생각이 다르군요. 구대문파는 그저 대신 희생할 희생양이 필요한 것 뿐입니다."
"뭐라?"
"제놈들 주 전력을 빼기 싫으니까 저희한테 대신 가달라고 부탁을 한 게 아닙니까?"
이세진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정파의 무인이라는 놈이 어찌 그리도 사람을 못믿는 것이더냐!"
"원로께서 순진하신 거지요.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이지않습니까? 하다못해 개방의 거지들끼리만 찾아가도 흉수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구태여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게 왜 겠습니까? 대신 가서 만일의 경우 죽어달라는 말이 아닙니까?"
"이놈이 그래도!"
벌떡
계상득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뜨거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기 시작하였다.
그에 대한 적의가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어찌 정파의 동량이라는 자가 저런 흉악스러운 모함을 한다는 말인가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이세진은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은 채 그대로 마주보기 시작하였다.
이내 두사람간의 눈싸움이 시작되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웅
"크윽!"
"으윽"
그때 두사람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알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그들을 온몸을 짓눌러버렸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모두 흥분하셨습니다........잠시 가라앉히지요."
그리고 곧이어 주소양의 냉정한 목소리가 막사 안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아가씨."
"....아가씨."
계상득과 이세진은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을 짓누르는 거대한 기운의 근원이 그녀라는 사실을 말이다.
"저는 두 분의 의견에 모두 공감합니다. 의를 행하는 단체로서 같은 정파의 동도인 점창을 멸문시킨 흉수를 잡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럴 만한 여력이 되지 않기에 함부로 지원을 해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무척이나 공감합니다. "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의 의견은 다를 뿐이지, 틀린 의견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제 독단으로 결정을 내릴 수는 없을 듯 합니다. 다른 의견을 멋대로 결정지을 정도로 권한은 제게 없으니까요.........그러니 여러분들께 한 가지 제안 드리고자 합니다. 원로님들과 장로님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결정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취합하여 결정하자는건?"
계상득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주소양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다수결 말씀이십니까?"
"네에, 서로 다른 의견때문에 대립을 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다수결로 결정하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소양은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현재 두 사람의 쟁점은
의義와 실리失利 간의 대립이었다.
그저 다를 뿐 누가 틀렸다고 말할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기에 주소양은 생각하였다.
합리적인 결정을 위해서라면 다수결로 정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좋습니다, 어차피 여기 있는 협사들이라면 모두 제 의견에 찬성을 할테니 말입니다."
계상득은 자신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는 확신하였다.
모두가 자신의 의견에 따를 것이라고 말이다.
"저도 좋습니다......의도 중요하지만 희생양이 되면서까지 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머리가 있으신 분들이라면 제 의견에 따를 것입니다."
이세진 또한 찬성을 하였다.
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찬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곧바로 찬반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계상득 숙부님 의견에 찬성하시는 분께서는 손을 들어주세요."
주소양은 원로들과 장로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찬성자는 손을 들라고 말이다.
"............"
하지만 아무도 손을 드는 이는 없었다.
그저 눈알을 굴리며 시선을 피할 뿐인 것이다.
"아무도 없군요, 그럼 이번엔 이세진 숙부님 의견에 찬성하시는 분께서는 손을 들어주세요."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그러자 여기저기 손을 들어올리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이세진의 의견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아..아니...어찌!?"
그 모습에 계상득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자신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계상득 숙부님의 의견은...기각되었습니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의천맹은 운남으로 지원을 가지 않습니다."
주소양은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계상득은 표정은 심각하기 그지없게 굳기 시작하였다.
********
회의가 마무리 된 거대한 막사
그곳에는 두 노소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주소양과 계상득이었다.
".........아가씨, 허락해주십시오."
계상득은 주소양을 허리를 숙인 채 간곡히 부탁을 하였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하나요?"
"......태선 진인은 제 오랜 벗입니다......꼭 흉수를 밝혀주고 싶습니다."
".........위험할 수 있어요."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후우.."
주소양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대로 갔다 잘못된다해도 의천맹은 별다른 행동을 취할 수 없어요....."
"잘알고 있습니다....하지만 그렇다해도 꼭 가야합니다."
".......계상득 숙부는 정말 고집불통이군요.."
주소양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오늘부터 계상득 원로님은 무기한 근신입니다.....죄목은...명령불복종.......이구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계상득은 고개를 깊게 숙여 감사 인사를 건네었다.
그녀가 자신의 고집을 들어줬다는 걸 인지한 까닭이었다.
".......다치지 마세요.....숙부님."
주소양은 그런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걱정마십시오, 한낱 야만인따위에게 다칠 정도로 허투루 단련하지 않았습니다."
쿵 쿵
계상득은 두터운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다칠 생각도
죽을 생각도 없었다.
손녀딸과 같은 주소양이 좋은 배필을 만나 시집가는 걸 보기 전까지
두 눈 시퍼렇게 뜬 채 건강히 살아있을 생각인 것이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부디 다음에 만날 때까지 건강 보전하십시오."
계상득은 몸을 돌려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
주소양은 그런 계상득의 뒷모습을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라만 보았다.
무척이나 걱정 어린 시선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