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3화 〉 874.성동격서聲東擊西
"............여기..맞아?"
선우는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맞아요, 여기에요."
하수련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잘못 온거 아니야?"
"그럴 리가요, 몇 번이고 와본 곳이에요. 제가 잘못 찾아올 리 없어요."
하수련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선우에게 위치를 전달 받은 뒤 몇 번이고 답사를 했던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이 위치를 착각할 리 만무한 것이다.
"하지만...이건..좀.."
선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여전히 믿기지 않은 까닭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평지였다.
그것도 평탄하기 그지없는 완전한 평지말이다.
어디에도 산의 흔적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나무 잔해들도
잘개 부숴졌던 바위들도
무엇 하나 존재치 않은 것이다.
하수련의 말처럼 산이 소멸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잘어울리는 말이리라
"제가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산 자체가 소멸한 것 같다고 말이에요."
"비유적으로 그리 말한 줄 알았지.."
"아쉽게도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네요."
"........허어"
선우는 헛웃음을 내뱉은 채 그저 평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은 현실에 눈을 떼지 못한 것이리라
"이래서 같이 온다고 했던거군."
선우는 깨달았다는듯 입을 떼었다.
혼자와도 된다는 걸 바득바득 우기며 기어이 따라온 하수련이었다.
처음엔 무슨 속내인가 싶어 의아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길을 찾지 못할까봐 몸소 안내를 해준 것이었다.
지형이 이정도까지 변하였다면 헷깔리며 해맬게 뻔하였으니 말이다.
"네에, 맞아요. 아예 길자체가 바뀌어버려서 찾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고마워.....네가 아니였으면 정말 해맸을 것 같아."
선우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하였다.
확실히 이정도로 지형이 바뀌었다면
못알아보고 지나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주인님의 종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랍니다."
하수련은 화사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내가 노예를 잘뒀네."
선우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은 채 말을 받았다.
"그러게요, 분명 조상신이 도운 게 분명해요. 매년 상다리 부러지게 제사를 지내도록 하세요."
"네가 차려."
"..........생각해보면 조상신 보단 주인님이 잘나서 그런 게 아닐까요? 잘된 일을 전부 조상신 덕이라고 생각하는 거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바꿔버렸다.
피식
그 모습에 선우는 피식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빠른 태세전환이 꽤나 재밌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얘가 생각보다 또라이네.'
그리고 느꼈다.
그녀가 자신 생각이상으로 유쾌한 여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뭐, 제사는 됐으니까, 왜 산이 소멸됐는지나 말해줘."
선우는 말장난을 끊어버리고 궁금하다는듯 그녀에게 물었다.
어째서 산이 소멸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산이 소멸된 이유요?"
"응, 조사했을 거 아니야,"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신뢰감이 가득히 차 있었다.
하늘에 귀가 달리고 땅에 눈이 달린 하오문이라면
철두철미하고 혜안이 깊은 하수련이라면
분명 소멸의 이유를 조사해놨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엇기 때문이었다.
"모르는데요?"
"........응?"
"모른다구요."
"조사안했어?"
선우는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했죠."
"근데 왜 몰라?"
"모르니까요."
"............"
"............"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산이 소멸됐다는 걸 알고 인근에 있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탐문을 했어요. 산이 소멸된 걸 알고 있느냐고? 어째서 그런 것이냐고 말이에요."
이내 하수련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아무도 모른데? 산 하나가 소멸됐는데?"
"네에, 아무도 모른데요. 어느순간부터 가보니까 평지가 되있었다고 하더라구요."
하수련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의문이 더욱더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동산 수준이긴 하지만 엄연히 산이었다.
그런 산이 일시에 소멸했는데 어찌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를 수 있다는 말인가
폭탄을 터트렸든
태풍이 휘몰아쳤든
지진이 일어났든
그 여파를 충분히 느끼고도 남았을텐데 말이다.
"........태풍이나 지진이 일어났을 확률은?"
"거의 없어요."
하수련은 단호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산 하나가 통째로 증발해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진 지진이나 태풍이면 그 여파가 산동성 전체에 전해졌을 거예요.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를 리 만무하죠."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선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입을 떼었다.
도무지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현대라고해도 소리소문없이 동산을 지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불가능한 일이 어찌 중원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이해가 될 리 만무하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선우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고여지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잘된 게 아닐까요? 주인님 목적은 산 속에 파묻혀있는 이재원을 찾는 거잖아요. 산이랑 같이 소멸된거면 오히려 호재가 아닌가요?"
하수련은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애초에 선우의 목적은 이재원의 시체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었다.
비록 직접 소멸시키진 못하였지만 산과 함께 사라졌다면
오히려 호재가 아니겠는가
"글쎄.....잘된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어째서죠?"
"...........호재일 수도 있지만.....악재일 수도 있으니까."
선우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악재요?"
"........이재원이 부활을 한 걸 수도 있으니까."
"말도 안돼요. 검에 심장이 찔렸는데 어떻게 부활을 해요?"
그녀는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쓰레기긴 하지만 엄연히 인간을 초월한 괴물이니까......그런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해."
이재원은 본디 이 세상의 주인공이었다.
온갖 주인공 보정이란 명목으로 세계의 가호를 받고 있는
무협지 속 주인공인 것이다.
만약 위기 극복이란 명목으로 그가 부활한다면
세계의 가호가 그에게 다시금 기회를 준다면
충분히 부활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불안하였다.
혹여 그가 죽음을 초월하여 부활하게 될까봐
더욱더 강한 적으로 나타나게 될까봐 말이다.
"괜찮을거예요. 양쪽 눈이 뽑히고 팔다리가 잘려지고 하물이 뭉개졌으며 심장까지 꿰뚫려져있지 않나요? 설령 운좋게 살아남았다해도 주인님에게 위협이 되진 않을거예요. 온전한 상태에서도 상대가 안되었는데 그런 상태로 뭘 할 수 있겠어요?"
하수련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선우로부터 이재원의 상태를 소상히 전해들은 그녀였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운좋게 살아남았다해도 선우의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양안이 뽑히고 팔다리가 잘리고 하물이 뭉개져으며 심장에 검까지 꽂혀있는 상태에서 뭘 할 수 있겠는가
이정도면 환골탈태를 한다해도 되돌릴 수 없는 중상이리라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선우는 좀처럼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였다.
하필 그가 묻혀있던 곳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자체가
너무나 작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일부러 그를 파내기 위해 산을 소멸시킨 것처럼 말이다.
"아무 걱정 마세요. 잘될거예요."
하수련은 옆에서 앙증 맞은 주먹을 꽉 쥔 채 말을 이었다.
피식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이내 피식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어떻게든 북돋아주려는듯한 모습이 꽤나 기특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고맙다."
선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흑단처럼 고운 머릿결을 부드러이 쓰다듬었다.
".......무...무슨?!"
그리고 그 손길에 닿은 하수련은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작스러운 그의 손길에 당혹스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착해서 상주는 거야. 그러니까 달게 받아."
선우는 무심한듯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더욱더 다정히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
하수련은 그런 선우의 손길을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얼굴을 홍시처럼 붉힌 채 말이다.
'.........제발 기우이길.'
선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하였다.
부디 자신의 불안함이 기우이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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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악
"아아아아악!"
커다란 손바닥이 여인의 뺨을 그대로 후려쳐버렸다.
휘익
그러자 핏물이 튀며 여인의 고개가 그대로 돌아가버렸다.
"나쁘지 않은 손맛이구나."
그녀의 뺨을 후려친 남자, 구양진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그저..영광입니다."
여인은 물기 어린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필시 고통을 참고 있는 것이리라
"크흐흐흐, 그렇다면 좀더 영광스럽게 만들어주마."
짜아아악
"아아아악!"
짜아아악
"아아아악!"
구양진은 곧바로 손을 들어 온몸 여기저기를 후려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방 안에는 여인의 비명소리가 가득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추우욱
이내 여인의 몸이 축 늘어져버렸다.
"이런....죽어버렸구만."
한창 여인을 후두려패던 구양진은 멋쩍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힘조절에 실패한듯 싶었다.
"아직 박지도 않았거늘...어찌."
구양진은 안타까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막 예열만 마친 상황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죽어버리니 해결할 방도가 없던 것이다.
'죽은 년에게 박을 수도 없고.'
시체에 박아봤자 통나무와 교접을 이루는 느낌만 들 뿐이었다.
"여봐라! 당장 새 계집을 데려오너라!"
이내 구양진은 바깥을 바라보며 다급히 언성을 내질렀다.
예열로 발기된 하물이 가라앉기 전 계집을 공수해야하기에
급박한 마음이 들었다.
끼이이익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더니 이내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쪽 팔이 잘려져있는 늙그수레한 노인이었다.
"무슨 일이지? 마뇌魔腦"
그 모습을 확인한 구양진은 짜증 어린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시중을 들던 어여쁜 시녀 대신 마뇌가 모습을 드러내니 짜증이 절로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오늘은 이만하시지요. 염재炎災여"
"본좌는 만족하지 못하였다. 쉰소리 말고 박음직한 계집이나 데리고 오도록 하라."
구양진은 차가운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천마天魔의 부름이 있었습니다."
"..............천마天魔가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짜증나는군."
구양진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리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기 시작하였다.
차마 그 괴물의 부름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디로 가면 되지?"
옷을 대충 주워입은 구양진은 마뇌를 바라보며 물었다.
"교주전에 가시면 됩니다."
마뇌는 공손한 태도로 말을 내뱉었다.
"이 계집은 알아서 치우도록 하라."
철푸덕
구양진은 축 늘어진 여인들 바닥에 내팽겨치며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곧바로 바깥을 향하였다.
마뇌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비웃음 섞인 미소를 띄운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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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 저벅
구양진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벌컥
그리고 이내 교주전으로 향하는 문을 망설임없이 열어젖혔다.
그러자 거대한 대전이 그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마교의 교주만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
교주전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염재炎災여"
그때 웅혼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구양진은 그 목소리의 근원지를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커다란 옥좌에 오만히 앉아있는 천마의 모습을 말이다.
"무슨 일로 부른 거지? 당분간은 쉬라고 하지 않았나?"
구양진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다짜고짜 소집을 명한 천마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해줄 일이 있다."
천마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난 협력자지 네놈의 부하가 아니다. 아랫사람 대하듯 명령하지 말라는 말이다."
구양진은 짜증 섞인 눈빛으로 천마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다짜고짜 호출하여 명령을 내리는 천마의 태도에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자신이 아랫사람도 아니거늘
어찌 이리 무례하게 군다는 말인가
"태허일기공의 후반 구결을 주겠다."
천마는 태연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구양진을 입을 꾹 다물었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조건에 분노가 삽시산에 가라앉은 까닭이었다.
".......내가 뭘하면 되지?"
이내 구양진은 궁금하다는듯한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광서성으로 가거라."
"광서?"
그는 의아한듯 천마에게 물음을 던졌다.
뜬금없이 광서로 가라고 하니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그곳을 불바다로 만들도록 하라."
천마는 심유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왜 하필 광서지?"
구양진은 모르겠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광서는 마땅한 무림문파가 존재치 않은 불모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그런 곳에 가라니
이해가 가지 않은 까닭이었다.
"동쪽이 울리면 서쪽이 비기 마련이지."
천마는 무심한듯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을 본 구양진은 생각하였다.
뭔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