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2화 〉 873. 부활했다면 또 다시 죽여주마.
난잡하기 그지없는 골목길.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울리며
한 남자가 그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이내 남자의 걸음을 멈춰세웠다.
험악한 인상을 가진 덩치들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까닭이었다.
"이 앞부턴 저희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선두에 서있던 덩치가 정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호오...나를 아는가?"
남자는 신기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앞을 막아서기에 진입을 방해할 줄 알았건만
되려 안내를 한다고 하니 신선함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어찌 무림의 대영웅을 몰라뵐 수 있겠습니까? "
"교육이 잘되었군. 용모파기를 뿌려둔 것인가?"
남자는 만족스러운듯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아마 천하에 즐비하고 있는 문도들 중 대협을 몰라뵙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덩치는 정중한 태도로 입을 떼었다.
"이거 유명세가 도움이 될 때도 있구만, 이렇게 쓸데없는 마찰도 피할 수 있으니 말이야."
남자는 재밌다는듯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명성이 있고 없고의 확연한 차이가 꽤나 재밌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무력은 강해도 명성이 없었을 땐 쓸데없는 분쟁이 곧잘 발생하곤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무력에 걸맞는 명성이 생기니 알아서 설설 기어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명성의 참된 힘이리라
"당연한 일입니다. 대협."
덩치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받았네.
"그럼 문주에게 안내를 부탁하겠네.."
남자는 덩치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검신劍神이시여."
덩치는 뒤를 돈 뒤 그대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검신劍神 선우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하오문주를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
"여기입니다."
덩치는 한쪽 구석퉁이에 있는 건물 하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새 위치가 바뀌었나?"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저번에 왔을 때와는 사뭇 달라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문주의 거처는 주기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혹시 모를 암살을 대비하기 위해서지요."
"준비가 철저하군."
"모두 문주님의 혜안이지요."
덩치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수련이 똑똑하긴 하지."
선우는 입가에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제부턴 나 혼자가겠다. 안내해줘서 고맙다."
"천하제일인과 함께한 걸음입니다. 오히려 영광일 따름입니다."
꾸벅
덩치는 되려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었다.
긁적 긁적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볼을 살짝 긁적였다.
그의 과례에 괜스레 민망함이 든 까닭이었다.
"그래, 또 보자고."
이내 선우는 덩치를 뒤로 한 채 건물 앞으로 걸어갔다.
끼이이익
그리고 곧바로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촛불 몇 개만 켜져있는 어두운 실내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하수련의 모습을 찾기 위함이었다.
[좀더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그때 방 안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선우는 그 음성에 따라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우로 사보 좌로 오보 앞으로 이보 뒤로 삼 보 이동해주세요.]
곧이어 다시금 방 안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먼젓번 보다 꽤나 복잡해진 주문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하지만 선우는 개의치 않고 시키는대로 발을 놀리기 시작하였다.
이 발걸음이 진법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열쇠라는 사실은 인지한 까닭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발을 놀렸을까
화아악
갑자기 주위가 환하게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한낮이 된 것처럼 말이다.
"허어, 별 진법이 다있군."
선우는 감탄을 내뱉었다.
생각보다 실용적인 진법에 효용에 감탄을 한 까닭이었다.
"그리 신기한가요?"
그때 나른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선우의 귓가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칠흑처럼 검디 검은 머릿결
그에 대비되는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결
묘하게 나른해보이는 퀭한 눈동자
살짝 쳐져 있는 묘한 눈매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특이한 분위기
마치 베일 것처럼 날이 서있는 오똑한 콧대
어두운 인상과 대비되는 붉디 붉은 입술까지
퇴폐적인 인상의 절세미인을 말이다.
"어..어...어.."
그 모습을 마주한 선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시선마저 강탈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에 넋이 나가버린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그녀를 응시하였을까
'크으으..'
선우는 속에서 피가 끓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폭발적인 염기가
피를 끓게 만든 것이다.
'흩어져라.'
선우는 재빨리 의지를 세웠다..
그리고 몸 안에 스며들어오던 염기들을 일시에
베어버렸다.
파앗
그러자 끓던 피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이다.
"아니, 면사는 왜 벗고 있어!?"
선우는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녀는 타고난 우물尤物로
선천적으로 염기를 흩뿌리는
마주치는 것만으로 정욕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특이한 체질을 가지고 있었고 항상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불미스러운 일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면사를 마음껏 풀어헤치고 있다는 말인가
"주인님은 염기에 노출되도 괜찮으시잖아요."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선우는 다른 남자들이랑 달랐다.
염기를 내뿜어도 언제고 흩어버릴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꺼리낌없이 면사를 벗을 수 있었다.
그의 앞이라면 자신은 평범한 여인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안괜찮거든?"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염기를 노출되면 자신 또한 정욕이 끓어오르고
그녀를 덮치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다.
강제 흥분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괜찮긴 뭐가 괜찮다는 말인가
"저를 안 덮치셨잖아요."
하수련은 배시시 웃으며 눈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녀의 몸 주위에서 염기가 폭발적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그녀의 염기는 행동 하나하나에 영향을 받는듯하였다.
'더럽게 예쁘네, 제기랄.'
선우는 의지를 다잡으며 염기들을 전부 흩어버렸다.
혹여나 그녀를 덮칠 마음이 들지 않도록 말이다.
"......내 앞에서 웃지마."
그리고 한껏 지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왜요?"
그녀는 모르겠다는듯 입을 떼었다.
"웃으면 덮칠지도 몰라. 진심으로"
선우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알겠어요."
그 말을 들은 하수련은 민망한듯 얼굴을 붉히며 입을 떼었다.
"................"
".............."
이내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 모두 민망함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러고보니 기억하고 있었네?"
이내 선우가 천천히 입을 떼어내었다.
"뭐가요?"
"주인님이라고 부르라했던가 말이야."
선우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떻게 잊겠어요.....제 인생 최대의 불찰을 .."
그 말을 들은 하수련은 짐짓 서글픈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지분을 걸고 내기를 했던 건 그녀 인생 최대의 불찰이었다.
외간 남자에게 순식간에 인생이 저당잡혀버렸기 때문이었다.
"기억나? 그때 노예로서 본분을 다하라니까... 옷을.."
선우는 능글맞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아아악! 아아아악! 말하지마요!"
하수련은 필사적으로 소리를 내지르며 그녀의 뒷말을 끊어버렸다.
부끄럽기 그지없는 과거를 구태여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분명 상의를 완전 벗고 치마도..."
"아아아아아악!!!!! 더 말하면 진짜진짜 다신 안볼거예요!"
그녀는 소리를 내지르며 으름장을 놓기 시작하였다.
"하하하하하, 알았어, 알았어."
선우는 유쾌한듯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당황하는 그녀의 모습이 꽤나 재밌기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웃었을까
이내 둘 사이 어색한 분위가 어느정도 해소가 되었다.
"정말.....짖궂어요."
하수련은 뿔이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래도 재밌지 않았어?"
"하나도 재미없거든요!"
하수련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창피한 과거를 들추는데 재밌는 사람이 어디있다는 말인가
"난 재밌더라."
선우는 히죽거리며 입을 떼었다.
"주인님은 인성에 문제가 있으신 분인가요?"
"응, 살짝 있는 것도 같아. 그러니까 조심해."
"..........명심할게요."
하수련은 고개를 살짝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그리고 다짐하였다.
이 인성에 문제있는 주인님 앞에서 말조심을 하자고 말이다.
"그나저나 천무맹에는 들리셨나요?"
"아니, 곧바로 왔는데?"
"네에? 어째서요?"
그녀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어차피 남창으로 전부 이사갔다고 하지 않았어? 들릴 이유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왔는데?"
이미 하오문을 통해 수뇌부의 이사 소식을 전부 꿰뚫고 있던 선우였다.
그렇기에 구태여 천무맹에 들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볼 사람도 가져갈 물건도 없는데 뭣하러 들린단 말인가
"저런......엇갈려버렸네요."
그녀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엇갈렸다고?"
선우는 의아한듯 그녀에게 물음을 던졌다.
"한 시진 전 천무맹에 곤륜파의 도사들이 왔다갔거든요."
"곤륜파의 도사들이?"
"네에, 주인님을 만나고 싶다며 그 먼길을 직접 오셨다고 하더군요."
"나를? 왜?"
선우는 모르겠다는듯 그녀에게 물었다.
일면식도 없는 곤륜파의 도사들이 자신을 찾아왔다고 하니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글쎄요......무림의 명운이 걸린 중대사라고..말했다던데...자세한 이야기는 흘리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무림의 명운이 걸린 중대사?"
"네에, 수문위사에게 그리 말했다고 하더군요."
"...별걸 다듣고 다니네."
선우는 놀란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수문위사에게 따로했던 말까지 전부 알아낼 줄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고작 한 시진 전에 일을 말이다.
"하오문이잖아요. 하늘에 눈이 달렸고 땅에 귀가 달렸답니다."
하수련은 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곤륜파의 도사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아?"
"아마 북경과 남창으로 갔을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아마?"
"네에, 한 사람은 북쪽으로 이동하였고 나머지 인원들은 남쪽으로 이동했거든요. 아마 주인님과 단체로 엇갈리는게 싫어 한 사람은 북경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남창에서 기다리는 걸 택했을 거에요."
하수련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똑똑하네."
"별말씀을요."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 감흥조차 없는듯하였다.
"고민 되네.....이걸 따라가야되나."
"냅두세요, 어차피 남창 가서 만날텐데"
"무림의 명운이 걸린 중대사라잖아?"
"그것보다 더욱더 중요한 일이 남아있어요."
그녀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더욱더 중요한 일?"
"저번에 의뢰하신거 기억하세요?....인부들을 동원해서 천무맹주를 파내달라는 말이요."
"기억하지, 안그래도 그거 때문에 제남에 들린거거든"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안그래도 의뢰를 수행할 필요없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제남에 들린 참이었다.
새롭게 깨달은 건곤대나이로 산을 뒤집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계셨나요!?"
선우의 말을 들은 하수련은 놀랐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알고 있었냐니?"
선우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알고 있었냐니?
그게 별안간 무슨 소리란 말인가
"산이 통째로 사라진 사실이요."
"산이 사라져버렸다고?"
"네에, 주인님이 떠나고 며칠 뒤 인부들을 모아서 그 근처로 탐방을 갔었거든요. 공사 규모 얼마나 되는 지 견적을 짜려고요......그런데.....막상 그곳에 가보니....산이 통째로 증발한듯 사라져있었어요."
하수련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산이 사라진 것 뿐 아니라 지형자체가 완전히 바뀌어버렸어요......마치 누군가 짓밟아버린 것처럼 말이에요."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하였다.
고심에 잠긴 것이다.
"아무래도.....직접 가봐야겠어."
이내 선우는 그대로 몸을 돌려버렸다.
직접 확인할 심산이었다.
이재원이 묻혀있던 산봉우리를 말이다.
'만약 부활했다면 또다시 죽여주마, 이재원.'
선우의 눈빛이 차갑게 빛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