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1화 〉 872. 엇갈리다.
휘이이이이잉
북해에서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기 시작하였다.
오들 오들
그리고 그 설풍은 평무사, 권평의 몸에 그대로 스며들어 그의 몸을 쉴새없이 떨게 만들었다.
옷 사이사이에 그대로 파고들어버린 까닭이었다.
"자네 괜찮은가?"
옆에 있던 평무사 동기인 원광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과하게 추위를 타는 권평의 상태가 걱정이 된 까닭이었다.
"....안괜찮네...이러다 얼어죽을 것 같네.."
두곽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쯔쯧, 그러게 무슨 옷을 그리 얇게 입었는가? 그러니 춥지."
원광은 혀를 차며 그를 타박하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이리 춥지는 않았네.."
권평은 변명한듯 말을 내뱉었다.
"안추워도 단단히 입고 왔어야지. 벌써 십일월인데, 어찌 그리 안일하게 생각한다는 말인가?"
"......잔소리는 그만하고 겉옷이라도 좀 벗어주게나...내 이러다 동상이 걸리겠네."
"아니 어찌 내 옷을 벗어달라는 말인가? 싫네."
원광은 단호한 어조로 거절을 하였다.
그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옷을 벗어줄 정도로 걱정이 되진 않은 탓이었다.
"내가 고뿔에 걸려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걸릴 거면 한 사람만 걸리는 게 낫지 않겠는가?"
"하아, 통재로다. 칠 년전 천무맹에 입맹하여 사선을 넘나들며 쌓아왔던 동료애가 고작 이정도였는가?"
"몰랐나보군, 자네와의 동료애는 천무맹이 망하면서 초기화되었네. 의천맹에서 다시 쌓도록 하게나."
원광은 히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쫌생이 자식."
"모지란 놈."
두 평무사들은 이런저런 덕담을 주고받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공이라도 한 바퀴 돌리도록 하게나, 그럼 좀 낫지 않겠는가?"
"아니, 어찌 수문위사라는 자가 내공을 허투루 쓴다는 말인가? 내 그럴 수는 없네."
권평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본디 수문위사란 외부인의 침입을 막는 1차 지지선 역할을 하는 자들이었다.
언제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 채 굳건히 문을 지켜야하는 것이다.
"아니, 다 망한 천무맹에 누가 온다고 그러는가? "
그 말을 들은 원광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현재 천무맹은 폐허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의천맹의 설립이 공표된 이후
맹원들 대다수는 의천맹으로 이적을 하였고
제남에 남아있던 천무맹의 기반들이 전부 남창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이었다.
말그대로 망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오긴 누가온다는 말인가
"혹시 모르지 않는가? 천무맹에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신투라도 들어올지."
"이미 의천맹 측에서 쥐새끼 하나 남김없이 전부 털어가지 않았는가? 보물 같은 게 남아있을 턱이 있나."
원광은 어이없다는듯 말을 이었다.
그런 게 있었으면 분명 제일 먼저 털어갔을 것이다.
이제와서 보물은 무슨 보물이란 말인가
"그래도 귀한 게 남아있으니 이렇게 수문을 지시하지 않았겠는가?"
권평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흥, 귀한 건 무슨, 그냥 건물이 허물어질 때까지 얌전히 경비나 서라는 거겠지."
원광은 코웃음을 치며 답을 하였다.
"하아......협을 품고 의천에 입맹했건만....어째 업무는 천무맹과 달라질 게 없구만."
그 말을 들은 권평은 한탄을 하며 말을 이었다
"자리 보전을 한 것만해도 다행으로 여기게 인원이 너무 많이 몰려서 자리 보전조차 못한 이들이 수두룩 하니 말이야."
"입맹서를 제출하면 다받아주는 게 아니었나?"
권평은 놀란듯 되물었다
"그거야, 초기 입맹자에 한에서만 그러하였지. 간만 보던 놈들은 시험을 치르고 들어오게 바뀌었다고 하더군."
"허어...내 모르던 입맹 규정이 까다로워졌구만"
"참 다행인 일이지. 우리가 들어오고 나서 바뀌었으니 말이야.. 만약 이 나이에 다시 입맹 시험을 치르라했다면 절대 통과하지 못했을 걸세."
"......그도 그렇군."
"그러니 감사히 여기고 꿀이나 빨게나, 요즘 같은 불황에 이런 한직이 또 어디있겠는가?"
"내 당장 내공을 둘러야겠구만."
"하하하하, 좋은 자세일세."
두 수문위사는 낄낄대며 농지거리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들의 귓가에 여러개의 발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그 소리에 놀란 그들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자신들을 향해 걸어들어오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을 말이다.
용이 그려져있는 백색의 새하얀 도복
정명하기 그지없는 눈빛
흐트러짐없이 딱딱 맞춰지는 보폭까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자들이었다.
꿀걱
원광과 권평은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그들의 온몸을 휘감아버린 까닭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선두에 서있던 노소가 그들의 코앞에 도달하게 되었다.
얼굴 중앙에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가 나있는 험상궂은 노인과 선녀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는 요요로운 여인이었다.
"누...누구십니까?"
원광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그들에게 물었다.
정체가 무엇인 지 말이다.
"본도는 곤륜의 장문인인 무양이라고 하네."
그때 선두에 서있던 노인이 천천히 입을 떼어내기 시작하였다.
"곤...곤륜파!?"
"장..장문인?!"
그 말을 들은 두 수문위사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기 시작하였다.
너무나 경악스러운 까닭이었다.
곤륜이 어디란 말인가
저 멀리 곤륜산맥에 위치하고 있는 신선들의 문파가 아니던가
어찌 그곳의 장문인이 중원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제남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인가
"내 의천맹주를 뵈러왔네. 만날 수 있겠는가?"
그는 두 수문위사를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그게..무리입니다."
원광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을 하였다.
"어쩌면 무림사를 뒤흔들 지도 모를 중대사라네. 부디 거절치 말아주시게."
무양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공손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태도를 마주한 수문위사는 난감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일개 평무사 주제에 구파 중 하나인 곤륜의 장문인을 머리 숙이게 만들어버렸다.
어찌 곤란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말씀하셔도...무리입니다."
이내 원광은 송구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거절을 하였다.
"허어...어찌..거절을 하는 것인가? 무림의 중대사가 걸린 문제라고 하지 않았는가? 혹여 본도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겐가?"
무양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곤륜파의 장문인이라는 신분은 무림에서 결코 낮지 않은 신분이었다.
무림에서도 이름이 드높은 구파, 그 중에서도 가장 신비롭다 전해지는 곤륜파의 장문인이라는 직함이 어찌 낮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자신의 청이 무참히 거절당하였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곤륜이 이렇게까지 무시당했다는 말인가
".........장문인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무림의 중대사라니.....저희도 당장에라도 맹주와의 자리를 대면시켜 드리고 싶습니다....하지만.."
원광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말끝을 흐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현재 맹주께서는 제남에 있지 않으십니다."
"뭐라?!"
무양은 놀란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맹주가 제남에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맹주께서는 현재 북경에 가 계십니다."
"북..북경 말인가?"
"그렇습니다."
"허어........"
무양은 탄식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제남에 오면 맹주를 곧바로 만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아무래도 생각처럼 일이 쉽게 풀리진 않는듯하였다.
"언제쯤 오는 지 알 수 있겠는가?"
무양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언제쯤 오실 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저희쪽도 맹주의 근황에 대해선 깜깜한 상태인지라."
원광은 면목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언제 출발하고
언제 도착하는 지
무엇 하나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큰일이로구나..'
그의 말을 들은 무양은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거늘
어찌 이리도 길이 엇갈린다는 말인가
"후우......어쩔 수 없구만."
이내 무양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된 이상
직접 북경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럼 다른 이라도 불러줄 수 있겠는가? 이왕이면 맹주를 대신할 정도로 권위를 가진 이였으면 좋겠네."
"..........무리입니다."
"어째서 인가?"
무양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
안되는 게 뭐가 이리도 많다는 말인가
"현재 제남에는 의천맹의 간부들이 한 분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뭣이!?"
무양은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별안간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전부 남창에 설립된 의천맹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원광은 공손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창립을 발표한지 얼마나 되었다고..벌써 그리 다들 이동하였는가?.....아직 말뚝도 제대로 안박았을 텐데.."
"이 주정도 되었습니다. 현재 임시 천막을 세우고 현장 감독을 하고 계십니다."
"......허어.."
원광의 말을 들은 무양의 눈이 쉴새없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목적지를 잘못잡았다는 사실은 깨달은 까닭이었다.
무양은 슬며시 옆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운설의 모습을 말이다.
"장문인."
그녀는 영롱한 목소리로 무양을 불렀다.
".....말씀하시지요."
"잠시 따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여기서 나눠도 되는데..."
"아니요, 꼭 따로 말씀드려야할 것 같아서요."
말을 마친 그녀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따라오라는 신호였다.
'난 죽었다.'
그 모습을 본 무양은 생각하였다.
잘하면 오늘이 자신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
"제남만 오면 된다고 하지 않았더냐!!"
운설은 잔뜩 화가난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게 미리 개방을 통해 알아봤어야지!"
".....아시지 않습니까? 마교가 쫓아올까 두려워 마을도 제대로 들리지 않고 달려온 것을.."
"그러니 내 마을 좀 경유하며 가자고 하지 않았더냐!"
그녀는 화가난듯 언성을 높였다.
몇 번이고 제안을 하였다.
마을 좀 들리자고
정보 수집도 좀 하고
심산유곡에 처박혀서 풀떼기로 채운 배에
기름칠 좀 제대로 하자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무양은 일언지하 거절하였다.
천마가 쫓아오고 있는 판국에 무슨 호사냐고
한시라도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야하지 않겠냐고
잘못하다간 자신들 때문에 애꿎은 마을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의 태도가 워낙 강경하였기에 운설은 잠자코 그의 말에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이거였다.
길이 완전히 엇갈려버린 것이다.
"이런 고지식하기는 하늘을 찌르는 사손놈아! 덩치는 산만한 주제에 겁을 오질라게 많은 사손놈아!"
운설은 쉴새없이 무양을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화딱지가 치솟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그녀의 맹비난에 무양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오, 이 답답아! 이 답답아! 너만 철썩같이 믿고 이곳에 왔거늘! 어찌 이럴 수 있느냐"
그녀는 쉴새없이 그를 쪼아대기 시작하였다.
그간 뱃가죽에 기름칠을 못했던 억울함을 더하여 그를 혼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혼을 내었을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이미 의천맹과 장선우 두 사람 모두와 엇갈렸는데!"
"일단...북경으로 가볼 심산입니다."
"그러다 또 엇갈리면 어떻게 하려고?"
"..........."
그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다시 엇갈린다고 해도 마땅한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바보같은 녀석! 어찌 이리 대책이 부족한 것이더냐! 이래서 무공만 보고 장문인을 뽑으면 안되는 것이거늘.."
운설은 대책없이 그를 바라보며 한껏 비아냥거리기 시작하였다.
".............."
무양은 입을 꾹 다물었다.
수치심이 들었지만 하늘같은 사조의 말에 감히 반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북경은 나 혼자 가도록 하겠다."
그때 운설이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네에?!"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무양은 놀랍다는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너희들은 남창에 가있도록 하거라."
"아니, 어찌 홀로 북경으로 갈 생각을 하십니까?"
무양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또다시 제자들을 헛걸음하게 할 수는 없지 않더냐? 한 번이면 족하다."
그녀는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어찌..홀로.."
"그럼 또 단체로 엇갈리고 싶은 것이더냐?"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그런 건...아니지만..."
"그럼 잔말말고 남창으로 가거라,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결국은 맹주와 만날 수 있을터이니."
운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정말..괜찮겠습니까?..사조."
무양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녀 홀로 떠나보내는 게 마음에 쓰였기 때문이었다.
"누굴 어린 아이로 아는 것이더냐? 나 또한 무림출두 경험이 없지는 않느니라, 전혀 걱정치 않아도 된다."
".......그거야 백년 전 출두하신 게 아니십니까?"
"정확히는.........팔십 구년 전이다......날조가 심하구나....장문인."
운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나이를 부풀리는 무례한 장문인에 대한 짜증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어찌되었든 내 앞가림은 내 알아서 할터이니, 너희들은 너희들의 앞가림이나 잘하도록 하라."
그녀는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
그리고 그 표정을 마주한 무양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알겠습니다......사조의 말씀대로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무양은 공손한 자세로 말을 받았다.
"그래, 내 장선우라는 작자를 꼭 잡아갈터이니, 얌전히 기다리도록 하라."
"........부디 마주쳐도 적대는 하지 마십시오."
무양은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쁜 놈이 아니라면 적대할 일이 없을 것이다."
운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뼛속까지 마성에 찌든 마인이라면 그 근성이 뒤바뀔 정도로 타작 당할 것이다."
운설의 눈빛이 별빛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