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870화 (871/1,419)

〈 870화 〉 871. 잘 부탁하네, 사위

스르륵

연왕은 감겨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익숙한 이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부인과 딸

그리고 망종같은 새끼였다.

"전하, 정신이 드십니까?"

부인인 강씨가 걱정어린 표정으로 물음을 던졌다.

"난...괜찮소.."

연왕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살짝 어질거리긴 했지만

구태여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았다.

"전하...죄송합니다...전부..제 잘못입니다."

능소화는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자신 때문에 아비인 연왕이 의식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네 잘못이 아니다.......내 본디 혈압이 있는 편이니라."

연왕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그것보다....내 군왕君王과 따로 독대를 하고 싶은데...자리를 좀 비켜줄 수 있겠는가?"

연왕은 강씨 부인과 능소화를 바라보며 부드러이 말을 이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슬며시 서로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하기 시작하였다.

선우와 연왕을 단 둘이 냅둬도 될까라는 걱정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내 전처럼 난동을 피울 생각은 없네."

연왕은 허허로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전과 같은 불과 같은 기세는 엿보이지 않았다.

능소화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선우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는 괜찮겠냐는듯한 물음이 담겨져있었다.

끄덕

선우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둘 만의 시간을 갖는 걸 수락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러자 이내 능소화와 강씨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몸을 돌려 천천히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끼이이익

이내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연왕과 선우만이 남게 되었다.

"............"

"............"

둘만 남게되자 방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어색한 침묵이 지속되었을까

"..........저어...아버님.."

선우가 용기를 내어 말문을 트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어색하게 있기보단 친해지기를 택한 것이다.

"누가 자네 아버님인가!"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엄한 호통뿐이었다.

".........."

아무래도 잘못된 선택인듯 하였다.

안그래도 어색해졌던 분위기는 더욱더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그냥 닥치고 있을걸.'

선우는 후회하였다.

괜스레 입을 열어 안그래도 어색한 분위기를 더욱더 고조시킨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선우가 한창 후회를 하고 있을 때였다.

"경화는 칠삭동이였다네."

이내 연왕이 천천히 입을 떼어내었다.

"성미가 뭐가 그리 급한 것인지. 아홉 달을 채 채우기 전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지. 자연히 몸은 일반적인 아이들에 비해 미숙할 수밖에 없었네, 뭐, 당연한 말이지, 두달은 더 있어야할 아이가 일곱 달만에 나왔는데 어찌 건강할 수 있겠는가?........찬 바람이 불면 고열에 시달렸고 햇볕이 뜨거우면 화상을 입었네, 그저 연약하기 그지없는 아이였지."

연왕은 회상에 잠긴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선우는 그런 연왕의 말을 잠자코 듣기 시작하였다.

"우리 부부는 항상 경화의 건강만을 바랬다네, 똑똑치 않아도 좋고 아름답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건강만을 해달라고 말이야. 그런 바램이 통한 것일까, 경화는 날이 갈수록 건강해졌고 똑똑하였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게 자라게 되었지. 우린 기뻤네. 연약하던 딸이 더이상 미숙치 않게 되었으니 말이야. 그리고 우리는 이제 다른 것을 바라게 되었다네, 그 아이가 좋은 배필을 만나 여인으로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말이야."

연왕은 담담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꿈은 좀처럼 이루기 쉽지 않은 꿈이 되어버렸네. 그 아이가 장군으로 임명된 까닭이었다. 자네도 경화에게 들었을 걸세, 반란군을 제압하고 장군의 자리에 올라 황실의 방패로 불리우게 된 일화를 말이야."

"네에, 저 또한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소화가 진왕의 반란을 진압한 영웅이라는 사실은

그또한 모르는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우리 부부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네, 여인의 몸으로 장군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제국의 역사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전무후무한 일이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지. 그 아이의 혼삿길이 완전히 막혀버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네."

연왕은 서글픈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처음엔 수많은 매파들이 날아들어왔네, 황궁을 수호하는 황실의 방패로서의 역할을 하게된 그 아이를 뒷배로 삼는다면 어떤 가문이든 승천하든 날아오를 수 있을터이니 말이야...하지만 그 수많은 매파들을 폐하께서 직접 물리셨지. 왜 그런줄 아는가?"

"그녀가 대신들에게 얽매이는 걸...원치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확하네, 폐하께서는 그녀가 가진 힘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네, 대신들 중 누군가가 그녀를 가문에 품게 된다면 그 힘은 황족을 넘볼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해진다는 것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렇기에 수많은 매파들을 전부 물리쳤네, 콩고물이나 처먹으려는 이들에게 경화를 내어줄 수 없다면서 말이야."

연왕은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렇게 경화는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갔고 어느새 이립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네, 우리 부부는 걱정을 하였네, 이러다 딸이 여인으로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평생 혼자살며 늙어죽는 건 아닐까 싶어서 말이야. 그러던 중 자네가 나타난 걸세."

연왕은 올곧은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평생 혼자살 것 같았던 그 아이에게...이렇게 멋들어진 배필이 생겼으니 말이야...분명 난 자네를 좋아했을 걸세, 좀더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았다면 말이야."

"...........:"

"내가 왜 길길히 날뛰며 평생토록 내지르지 않았던 고성을 내지르며 화를 내었는지 아는가?"

연왕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내 딸이 소중히 여겨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여서 일세."

그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중원에서 여인의 정절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만약 혼례도 치르지 않은 경화가 아이를 배었다면 어떤 구설수에 오를 지도 자네도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자네는 그런 배려조차 하지 않았다네, 내 소중한 딸의 명예따윈 신경쓰지 않은 것이지."

".......죄송합니다."

선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사과를 하였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임신을 좀더 뒤로 미루는 일이 좀더 알맞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리 하지않았다.

그저 자신의 아이를 배게 만들고 싶다는 종족 번식 욕구를 분출한 것이다.

"그게 화가났네, 누구보다 소중한 내 딸이.....누구보다 사랑스러운 내 딸이....누구보다 행복해야할 내 딸이.....배필에게 배려조차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네.그래서.....그 난리를 핀 걸세.....자네를 도저히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었거든"

"..............."

선우는 고개를 더욱더 푹 숙이기 시작하였다.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말 죽일듯한 기세로 뺨을 후려쳤다네, 자네가 무림고수라는 것도 잘알고 있고 내 손따위는 간지럽다는 것을 잘알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네, 분노를 토해내지 않으면 내가 미칠 것 같았거든..."

"................."

"그런데 그 아이가 말리더군, 부모 말이라면 하늘처럼 따르던 그 아이가 내게 대들고, 일찌기 어른이 되어 감정 변화가 크지 않던 그 아이가 잔뜩 흥분하여 고성을 내지르더군."

".....죄송합니다."

"사과를 받으려고한 말이 아닐세....그저 깨달았을 뿐이네.....언제나 돌봐줘야할 어린 아이처럼 여겼던 경화가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말이야. 그리고 자네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 지도 잘알 수 있었네......지아비를 스스로 선택할 정도로 성숙해진 거지"

연왕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난 아직도 경화를 미숙하던 칠삭동이로 생각하고 있던 듯 싶네, 참으로 틀에 박힌 사고가 아닐 수가 없지. 하지만 오늘 일을 겪고 나니 그 틀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더군.......고맙네.....어찌보면 자네 덕분에 이런 깨달음을 얻을 기회가 생긴 것 같으니 말이야."

"...........아버님.."

"하지만 자네에 대한 화가 전부 풀린 건 아닐세. 합의하에 벌여진 일이라고 하지만 자네의 배려가 부족했던 것또한 사실이니 말이야. 그러니 앞으로 경화와 평생 행복하게 살게나, 그렇게 된다면 이 화가 어느정도 누그러질 수 있을 것 같네."

"..인정해주시는 것입니까?"

"경화가 자네의 아이를 임신하지 않았는가? 어찌 내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화가 나긴 하지만 내 소중한 딸을 미혼모로......내 소중한 손주를 아비없는 아이로 만들만큼 모질지 못하다네."

연왕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정말...감사합니다."

선우는 고개를 숙이며 연왕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경화를 울리지 말도록 하게나, 그 아이를 울린다면 내 자네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

"평생 그녀가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니 행복하게 만들겠습니다."

선우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연왕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거면 되었네."

그 모습을 본 연왕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잘 부탁하네, 사위 "

연왕은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왕으로 말도 안되는 행위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왕이 아닌 딸을 가진 아비로서 머리를 숙이는 것이니 말이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장인어른."

그런 연왕을 마주보며 선우는 곧바로 머리를 숙였다.

차마 목을 꼿꼿히 지켜든 채 그를 마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두 남자는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숙였다.

장인과 사위라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예우를 담아서 말이다.

.

.

.

.

.

며칠 뒤 선우와 능소화는 많은 이들의 축복을 받은 채 약혼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몇 몇 대신들의 얼굴에는 불만이 서려있긴 하였지만 정문제의 명을 대놓고 거절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좀만 더 머물면 안되는 것인가?"

능소화는 슬픔이 가득 찬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이대로 그를 보내는 게 너무나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더이상 지체했다간....많이 늦을 것 같아서.."

선우는 난감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마음 같아선 그 또한 여기 머물며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그녀의 곁을 지켜주고 싶었다.

이번에야말로 아비로서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황실에 머무르는 동안 처리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로..갈 셈이더냐?"

능소화는 슬픈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일단 의천맹으로 갈 생각이야."

"의천맹?"

"맹주직을 사퇴해야하거든."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관과 무림은 불가침의 관계였다.

서로 일절 간섭할 수 없는 사이인 것이다.

그렇기에 의천맹주의 자리를 사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군왕이라는 직위와 의천맹주라는 자리는 양립할 수 없을터이니

".........그대는 남창으로 가는군."

"맞아.."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목적지는 남창이었다.

새롭게 의천맹이 설립된 기회의 땅 말이다.

".......지금 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겠는가?"

능소화는 슬픈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모르겠어....얼마나 시간이 걸릴지..알 수 없으니까..."

선우는 선뜻 정확한 날짜를 제시할 수 없었다.

세력을 일구고 안정화하는데 얼마나 오랜 시일이 걸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군.."

그렁 그렁

이내 능소화의 눈가에 물기가 고이기 시작하였다.

기약도 없이 생이별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깊고 깊은 슬픔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스윽 스윽

그리고 그녀의 물기 어린 눈가를 가벼이 닦아주었다.

"미안해........기약조차 제대로 못해줘서.."

"아니..다....알 수 없기에 함부로..약속하지 않는 게 아닌가?........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보단 훨씬 더...책임..있는 일이라고..생각한다..."

능소화는 흐르는 눈물을 꾹 참으며 애써 괜찮은 척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선우에게 걱정을 끼칠 수 없다는 생각에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었다.

꼬오옥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양팔을 뻗어 가녀린 그녀의 몸을 품 안에 꼬옥 안아주었다.

"선..선우?"

"소화, 내 비록 만날 날짜를 기약할 수는 없지만...다른 약조는 해줄 수 있어..........하나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너를 만나러오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음에 만날 땐 너와 혼례를 치르겠다는 약속이야."

선우는 그녀를 품 안에 꼬옥 안은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믿고 기다려줄 수 있겠어?"

"........기다리겠다....그대가..오기만을....곧 태어날 우리 아이와 함께 말이다."

능소화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입을 떼었다.

그의 진심 어린 약속에 벅찬 감격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고마워...그리고...사랑해.."

선우는 품 안에 있는 그녀를 더욱더 꼬옥 안아들며 말을 이었다.

"...나도 사랑한다....내 하나뿐인...님이여."

그리고 능소화는 선우의 넓다란 가슴에 파고들며 사랑을 노래하였다.

두 사람의 포옹은 해가 저물 때까지 쭉 지속되었다.

*********

"다들 뒤쳐진 이들이 있는가!"

무양은 뒤편을 바라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없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의 힘있는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조금만 더 가면 제남이다! 좀더 힘을 내거라!"

"알겠습니다!"

장문인인 무양의 말을 들은 제자들은 눈을 빛내며 더욱더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목적지가 얼마 안남았다는 말에 기운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기특한 녀석들'

그 모습을 본 무양은 흡족한 표정을 지은 채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강행군에 지칠 법도 하건만 여전히 힘을 내고 있는 모습이

여간 예뻐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들이말로 바로 곤륜의 희망이로다.'

그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점점 더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뭘, 그리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것이냐?"

그때 그의 귓가로 청아한 음성이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옆을 보니 사조 운설이 한심하다는듯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보였다.

"크흠 크흠,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양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아니긴 입가가 기분 나쁘게 쭉 찢어지는 걸 내눈으로 봤는데."

"......그냥 우스운 일이 생각났습니다."

"태평하구나, 본 파는 불태워지고 쫒겨나듯 제남으로 도망치는데 우스운 일이 생각난다며 실실 웃는 걸 보니 말이야."

운설은 신랄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아니 무슨 말을..'

그리고 그 신랄한 말을 들은 무양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무슨 말을 저리 날카롭게한다는 말인가

"어, 인상 찌푸리네?"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긴, 이번엔 뭐 화나는 일이 생각났느냐?"

".......사조...제가 요근래 잘못한 게 있습니까?"

"없다."

"그런데 어찌 그렇게 혀에 날을 세우시는 것입니까? 미욱하여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게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진짜 없다."

"아니, 그럼 어찌 그렇게 날카로이 말하는 것입니까!"

"심심하기 때문이다."

운설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가는 길이 구 만리인데 너라도 놀려먹고 놀아야하지 않겠느냐?."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무양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이가 너무 없어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상심치 말도록 하거라, 네 잘못은 없다. 잘못이 있다면 속이 배배꼬인 내 잘못이겠지."

운설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망할.'

그 미소를 마주한 무양은 생각하였다.

한시라도 빨리 제남에 도착해야겠다고 말이다.

이 철없는 사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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