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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864화 (865/1,419)

〈 864화 〉 865. 전부 풀어.

쾅 쾅 쾅 쾅

한 여인이 도장을 쉴새없이 두들겨지기 시작하였다.

쉬지도 않고

연달아 몇 번이고 말이다.

직인이 찍힌 서류는 이내 옆으로 치워졌고

새로운 서류가 쌓이기 시작하였다.

쾅 쾅 쾅 쾅

직인의 움직임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도장을 찍어대었을까

어느새 눈앞에는 어떠한 서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전부 찍어버린 것이다.

그 많던 분량의 서류를 말이다.

풀썩

이내 도장을 찍던 여인은 그대로 책상에 엎어져버렸다.

모든 게 끝났다는 성취감과 안도감에

힘이 전부 풀린 까닭이었다.

'잘 수 있어..'

그녀는 기뻤다.

사흘 간 뜬 눈으로 지내며

쌓여왔던 피로감을

전부 씻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행복하였다.

단잠에 빠져들더

꿈 속을 영유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이다.

스르르륵

엎드린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깊고 깊은 잠에 빠져들 준비를 하는 것이다.

벌컥

"서윤아!"

하지만 그녀의 계획은 뜻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별안간 불청객의 집무실 안으로 들이닥친 까닭이었다.

"......요랑님...오셨나요?"

그녀는 힘이 빠질대로 빠진 목소리를 간신히 쥐어짠 채 말을 이었다.

"응응! 나 왔어!"

그러자 활기찬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왜 그렇게 엎어져있어? 일어나봐 서윤아! 나 할 말있어!"

곧이어 그녀의 재촉이 추가로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요랑님...제가...너무 피곤해서..그런데..급한 일이 아니면 나중에..오시면..안될까요?......제가 사흘간..잠을..못 잤거든요?.."

당서윤은 여전히 얼굴을 책상에 처박은 채 말을 이었다.

지금 자야했다.

지금 당장 자지 않는다면 일이 다시금 쌓이기 때문이다.

'제발..급한 일이..아니길..제발..나중에..오길.'

그녀는 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요랑의 용건이 급한 일이 아니길

그녀가 이대로 열었던 문을 고이 닫아두고 그대로 되돌아가기를 말이다.

"급한 일이야!"

하지만 하늘은 무심히도 그녀의 간절함을 완전히 외면하였다.

".....많이 급한가요?"

그녀는 혹시나 싶은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완전 많이!"

요랑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을 하였다

".............하아아아아아."

이내 당서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기 시작하였다.

눈치 빠른 요랑이 저리 말한다면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무겁게 감겨져있는 양 안을 천천히 들어올리기 시작하였다.

요랑을 마주하기 위해서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길...음?"

그리고 그녀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집무실에 들어온 게 요랑만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얘 잡아왔어."

요랑은 한 여인의 목덜미를 들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경아!?"

그리고 그 여인을 마주한 당서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여인은 이현경이었다.

이재원과 당진설의 딸이자

자신의 조카이기도한

이현경 말이다.

"........그 아이를...어디서?"

당서윤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요랑에게 물었다.

"저잣거리에서 당과 사먹고 돌아오는데 대문에서 수문위사랑 실랑이 벌이고 있더라고."

"수문 위사랑 말인가요?"

"응, 그러다 수문위사 뺨을 후려치길래, 내가 관자놀이를 찍어버렸어. 잘했지?"

요랑은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같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당가의 식솔을 지켜준 것에 대한 칭찬을 받고 싶은 까닭이었다.

"아...네에...잘하셨어요...요랑님."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일까

당서윤은 곧바로 그녀를 칭찬하였다.

당가의 위신을 세워준 것은 칭찬해 마땅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요랑은 배시시 미소를 지은 채 되물었다

"정말이고 말고요. 전 요랑님은 제게 정말 의지되는 분이에요. 언제나 감사드려요."

".....헤헤헤헤헤...뭘 그렇게까지."

요랑은 쑥스러운듯 몸을 배배꼬며 웃음을 흘렸다.

저 철두철미하고 딱딱한 당서윤이

자신을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고조된 까닭이었다.

흔들 흔들

이내 그녀가 몸을 배배꼬자 목덜미가 잡혀있던 이현경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쾅 쾅 쾅 쾅

그리고 몸이 여기저기 부딪히기 시작하였다.

"잠깐..잠깐만요! 요랑님..잠시만...진정해주세요!"

그 모습에 당서윤은 다급히 요랑을 만류하기 시작하였다.

이러다간 조카의 몸이 만신창이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응.?"

당서윤의 만류에 요랑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움직임을 멈추었다.

"일단 경아를 내려주시겠어요?"

"얘?"

요랑은 이현경의 목덜미를 들어올리며 물음을 던졌다.

"네에. 그 아이요."

"알았어."

그녀의 대답에 요랑은 그대로 팔을 펴버렸다.

콰당

그러자 이현경의 신형이 바닥에 그대로 처박혀버렸다.

무척이나 꼴사나운 모습으로 말이다.

"...........살살 놓아주셨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 그래? 다음부턴 조심할게."

요랑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녀를 너무 험악하게 다룬 게 아닐까 싶어

쑥스러움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에요, 전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당서윤은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요랑의 성격상

이현경이 무사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해야되리라

"안죽일거야?"

요랑은 놀랐다는듯한 표정을 지은채 되물었다.

"죽일 줄 알았던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당서윤은 황당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아무 죄없는 조카를 별안간 왜 죽인단 말인가

"쟤 당진설이랑 이재원 딸이잖아? 근데 안죽여?"

"..........네에, 안죽여요.....죄를 지은 거 그들이지, 이 아이가 아니잖아요?"

"후환은 원래 남겨두는 게 아니랬어."

요랑은 짐짓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저는 이 아이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요.....부모와는 다르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말이에요."

"흐음...싸가지를 봤을 땐.......이미 그른 것 같은데?"

요랑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갑질을 하는 모습만 놓고봐도

당진설을 빼다박은듯 이현경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걱정마세요. 어느정도 훈육을 할 예정이니까요."

"훈육?"

"네에, 경아는 아직 젊으니 적절한 훈육을 한다면 분명 비틀어진 인성을 바로잡을 수 있을 거예요."

"흐음.....내가 볼 땐 그냥 천성이라....못고치는데..."

"일단 시도라도 해보고 싶어요, 태어났다는 이유로 벌을 받는다면 이 아이가 너무 불쌍하지 않나요?"

당서윤은 간곡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원수같은 이재원과 당진설의 딸이지만

자신의 조카이기도 한 이현경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무조건적인 처벌을 하고싶진 않았다.

태어났다는 이유로 죄를 받는다면 얼마나 비참하고 서글프겠는가

"흐음.....이유없이 벌받으면 억울하긴 하겠네.."

요랑은 공감한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거 심심하다는 이유로 음양마에게 쉴새없이 쥐어박혔던 그녀였다.

그렇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죄없는 자의 억울함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니 요랑님께서도 많은 지도와 편달 부탁드려요."

"내가?"

"네에, 제가 온종일 데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믿을 수 있는 분께 훈육을 부탁드리고 싶어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거지?"

요랑은 확인받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물론이죠."

당서윤은 일말의 망설임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히히히히 알았어. 나만 믿어, 내가 사람 한 번 만들어볼게!"

요랑은 기분 좋은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신뢰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래, 거미도 사람이 됐는데 사람이 사람이 못되겠어?'

그녀는 의지를 다졌다.

이 싸가지 없는 계집을 인간으로 만들어보자고 말이다.

***********

"우우웅"

이현경은 신음성을 내기 시작하였다.

관자놀이에서 상당한 고통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어째서..관자놀이가..'

그녀는 손을 뻗어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그러자 상당히 부어오른 살집이 만져지기 시작하였다.

"으윽.."

살집을 만지자 신음성이 절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깼어?"

그때 그녀의 귓가에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움찔

그녀는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스르륵

그리고 조심스레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눈까지 떴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격하였던 무지막지한 여자의 모습을 말이다.

"당..당신이..어떻게..여기에!?"

이현경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왜긴 내가 널 끌고 왔으니까 그렇지."

요랑은 대수롭지 않으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저..절..어쩔 속셈이죠?"

이현경은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짜고짜 관자놀이를 가격하여 기절시킨 무지막지한 여자였다.

무슨 짓을 할지 미지수였기 때문이었다.

"사람 만들려고."

요랑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네에?"

"서윤이가 그러다구, 너를 사람으로 만들어달라고, 나를 믿는다고 말이야. 나는 그 믿음에 보답할 심산이야."

"서..서윤이면...이모?...이모가 절 당신에게 맡겼다구요!?"

"맞아."

"그럴 리가..없어요..그럴리가..이모를 만나게 해주세요...아니..어머니를..아니 삼촌을!"

"거절하지."

요랑은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넌 사람이 될 때까지 이곳에서 나갈 수 없어."

"......그..그게..무슨..저는 이미 사람이에요!"

"내 눈엔 아니야."

요랑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뭘..뭘할...심산인가요."

"오늘부터 넌 재경각원이야."

"....재경각...원이요?"

"그래, 오늘부터 온몸을 바쳐 당가의 재정을 책임지게 될거야."

요랑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게 절 사람으로 만드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거죠?'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다짜고짜 재경각원으로 임명을 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키득, 보면 알게될거야."

요랑은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순진무구한 저 모습이 퍽이나 귀여워보였기 때문이었다.

"당감, 들어와."

이내 요랑은 문을 바라보며 외쳤다.

끼이이이익

그러자 낡은 경첩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허어억!?"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이현경은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무나 끔찍한 몰골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머리를 정리하지 않는 것인지 여기저기 아무렇게 자라있는 산발의 머리

눈 밑지방에 생긴 짙디짙은 눈그늘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건지 해골을 연상시킬 정도로 튀어나온 광대와 홀쭉한 볼

햇볕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인지 희다 못해 창백하기까지 한 피부까지

가히 끔찍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몰골이였다.

".......인..력..충원..입니까?"

안으로 들어온 당감은 더듬거리는 어조로 요랑에게 물었다.

"내가 힘을 좀 썼어."

요랑은 가슴을 잔뜩 부풀리며 자랑스러운듯 말을 이었다.

"오오오오...오오오..신입..오오오..오"

그러자 당감이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하였다.

지옥 속에 광명이 찾아온듯한 느낌이 든 까닭이었다.

"자아, 기밀 서류들말고, 단순 계산식 갖고와서 쟤한테 줘. 쟤가 다할거야."

"알겠습니다!"

당감은 힘찬 대답과 함께 곧바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현경은 멍청한 표정으로 그런 당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상반된 그의 모습에 황당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들어올 때 무슨 시체처럼 들어오더니 나갈 때는 서우犀牛가 따로없었다.

"저 녀석 야근만 58일째거든, 거기다 특근까지 반납하고 미친듯이 일하고 있지."

요랑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그래서..몰골이.."

그녀는 시체같던 남자의 몰골이 이해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미친듯이 일했다면 저리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저게 네 미래야."

그때 옆에서 요랑이 속삭이기 시작하였다.

"....뭐..뭐라구요!?"

"내가 그렇게 만들거거든.."

요랑은 사악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저...저는..계산같은 건 못해요...아는 것도 얼마 없고...모르는 것 투성이에요...그런데..제가..어찌...재경각에서 일을 할 수있겠어요?!"

쇄애애액

덥석

이내 요랑이 재빨리 손을 뻗어 그녀의 주둥이를 잡아버렸다.

"어디서 공갈을 쳐? 너 재녀로 소문났던 거 다 아는데?"

요랑은 재밌다는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거짓말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 안배웠어? "

덜 덜 덜 덜

요랑의 눈빛을 마주한 이현경은 몸을 덜덜 떨기 시작하였다.

손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계산식 전부 검산할거야....그리고 만약...하나라도 틀리면....."

우우우우우웅

요랑은 살벌하기 짝이 없는 기세를 풍기기 시작하였다.

"각오하는게 좋을거야."

끄덕 끄덕 끄덕

이현경은 맹렬하게 고개를 주억거리기 시작하였다.

거역한다면 죽게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기인한 행동이었다.

"착하네."

그 모습에 요랑은 만족스러운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그녀를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첫 출발이 꽤나 나쁘지 않은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계산식 가져왔습니다!"

그때 방 안으로 길다란 서류뭉치를 들고 있는 당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이내 서류뭉치를 그대로 이현경의 코앞에 던져버렸다.

이현경은 코앞에 쌓인 서류더미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많아도 너무 많은 분량에 넋이 나가버린 것이다.

"전부 풀어."

요랑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현경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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