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1화 〉 832.흑룡黑龍
"현재 성문 앞에서...병사들과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의 물음에 진사 이완은 차근 차근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대치를 하고 있다?"
"예에.....누가 되었든 성문 안으로 들이지 말라는....좌도독 어르신의 명이 있었기에...일단은....군주께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녀가 가만히 있던가?"
설수범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고귀하신 황녀께서 입장을 제한당하였다.
도저히 잠자코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예에, 딱히 강제적으로 실력을 행사하거나 그러시진 않으셨습니다."
이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의외로군."
설수범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설마하니 아무런 저항도 없었을 줄이야.
"......저...그런데.."
"뭔가?"
"도독 어르신께.....말씀을 전해달라고.."
이완은 우물거리며 간시히 말을 이었다.
무척이나 송구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내게 말인가?"
"네에, 그러합니다."
"뭐라고 전해달라고 하던가?"
설수범은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도망가려면......지금이라도....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이완은 말을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자칫 설수범에게 모욕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완의 말을 들을 설수범은 크게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유쾌하다는듯이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웃었을까
"재밌군."
이내 설수범은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낭방에 있는 모든 군사들을 소집하라."
"군..군사들을 말입니까?!"
그 말을 들은 하도일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군사들을 소집하라니
대체 무슨 짓을 할 심산이란 말인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할 심산이다."
설수범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최악의 경우라면....?"
하도일은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운을 떼었다.
"경화군주가 낭방을 강제적으로 통과할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 경화군주와 대적을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하도일은 눈을 화등잔만하게 치켜뜬 채 그에게 되물었다.
놀란 감정이 도저히 주체가 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이미 수많은 대신들이 협의를 통해 결정한 사안일세.."
설수범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황족입니다!"
하도일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녀는 황족이었다.
천자라고 불리우는 위대한 황제와 같은 피가 흐르고 있는 고귀한 존재란 말이다.
"아무리 황족이라고 하더라도 예외는 없네."
설수범은 단호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허어."
하도일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단호하기 그지없는 설수범의 태도에
당혹스러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대체 목숨이 몇 개길래, 황족을 대적할 생각을 하는거지?'
하도일은 의문이 들었다.
저 정신 나간 좌도독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말이다.
저벅 저벅
그때 갑자기 설수범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어..어디 가시는 것입니까!?"
그 모습을 본 하도일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경화군주에게 갈 심산일세."
설수범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세상에 원대로 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줄 심산일세."
말을 마친 설수범은 그대로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이내 방 안에는 현령인 하도일과 진사 이완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
"정말 성문을 열지 않을 심산인가?"
경화 군주는 굳게 닫혀있는 성문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좌도독 어르신의 명이 있었습니다."
성문을 위쪽에서 무장 하나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몰랐구나, 대장군인 본녀보다 좌도독이 위에 서있는 자였다니 말이야."
경화 군주는 비꼬는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대장군께서...자리를 비운 사이..지휘 체계가 여러모로 바뀌었습니다."
무장은 난색을 표한 채 말을 이었다.
"그래? 금시초문이구나."
경화군주는 모르겠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대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폐하께서 쓰러지고 권력이 세개로 나뉘어졌습니다. 군권과 행정권, 사법권 등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중 군권을 좌도독 어르신께서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녀의 말을 듣지 못한다는 것인가?"
"..........죄송합니다."
무장은 송구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는 무장 또한 잘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대장군이 턱 하니 있는데 그보다 아랫사람인 좌도독이 모든 군권을 다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군권이 좌도독 설수범에게 완전히 넘어가버린 까닭이었다.
"그대가 뭐가 죄송한가? 개의치 말거라, 어차피 그대도 명을 따르는 군인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의 말을 들은 경화군주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병사들은 잘못이 없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해진 지휘 체계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주체적으로 나서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말고를 결정하는 게 아니란 소리였다.
그런 그들을 탓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부디 자책하지 말도록 하라."
경화군주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장은 정중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속에 담긴 배려를 느낀 까닭이었다.
"그리고 본녀도 본녀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러니 너무 원망은 말도록 하라."
경화군주는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네에?"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무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반문을 하였다.
그녀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니?
원망은 하지 말라니?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화르르르륵
그때 무언가 타는듯한 소리가 무장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뭐..뭐지?!'
무장은 그 소리를 따라 시선을 재빨리 돌렸다.
"아..아니!?'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거대한 철문에 묵빛의 불길이 치솟아있는 모습을 말이다.
화르르르륵
그것도 무척이나 거세게 말이다.
"젠장! 성문에 불이 붙었다! 당장 물을 뿌려라!"
이내 무장은 다급한 어조로 언성을 높이며 병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당장 성문에 치솟은 불길을 끄라며 말이다.
""아...알겠습니다!""
그러자 병사들이 일제히 답을 하였다.
그리고 재빨리 몸을 움직이며 물을 퍼다나르기 시작하였다.
솨아아아아
솨아아아아
이내 성문에는 수많은 물벼락들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성문 위에 있던 수 십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물을 뿌려대었기 때문이었다.
화르르르륵
하지만 성문에 피어난 검은 불꽃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성문을 아예 녹여버릴 듯이 말이다.
"소용없도다, 흑염黑炎은 순리를 거스르는 초월적인 불꽃이다, 고작 물 따위로 끌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경화군주는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마치 북풍 한설과 같은 한기가 느껴지는 미소였다.
끼이이이이익
그때 철로 만든 성문에서 기괴한 쇳소리가 울리면서 앞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콰콰콰콰쾅
그리고 이내 성문이 완전히 넘어가버렸고 바닥과 충돌하며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철문을 고정하던 경첩부분이 녹아버려 그대로 쓰러져버린 것이다.
이내 굳게 가로 막혀있던 성문은 완전히 개방되어버렸다.
경화 군주는 개방된 성 내부를 살며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무장을 하고 있는 수많은 병력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대기를 하고 있던듯 싶었다.
"참으로 철저하구나."
그 모습을 본 경화군주는 진한 미소를 흘렸다.
군사들의 철저함이 꽤나 만족스러운 까닭이었다.
"대장군을 상대하는데 어찌 철저하지 않을 수가 있겠소?"
그때 뒤편에에서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오호라."
경화군주는 살며시 뒤편으로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두터운 중갑과 수 많은 무기들로 중무장을 하고 있는 거친 인상의 남자를 말이다.
"반갑습니다. 대장군. 그가 별래무양하셨는지요?"
거친 인상의 남자, 좌도독 설수범은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었다.
"그리 무탈하지는 못하였다."
'이런...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건 그대가 더 잘알지 않는가?"
"글쎄요.....짐작가는 바가 없군요."
"그대는 참으로 뻔뻔하구나, 좌도독."
경화군주는 싸늘한 시선으로 설수범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뻔뻔하게 응대하는 꼴이 상당히 꼴같지 않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뻔뻔하다니요?.....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설수범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황실을 어지럽히고 역모를 꾸며놓고 모른다라....그대는 내 생각보다 더욱더 추악하구나."
"대장군께서 무언가 착각을 하신듯 합니다. 역모라니요?"
"내 볼 때 그대는 좌도독이 아니라 경극을 해야할듯 싶구나, 이리 연기를 잘하니 말이야."
경화군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오해입니다. 대장군, 황실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앞선다고 자부하는 저입니다. 그런 제가 역모를 꾸밀 리 만무하지 않습니까?"
"되었다, 어차피 네놈이 순순히 인정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도다."
경화군주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저 음흉한 놈이 병사들 앞에서 역모를 인정할 리 없다는 것은 이미 예상한 바였다.
구태여 말을 길게할 필요없는 것이다.
"그냥 본녀와 같이 가자꾸나, 황실로 말이야."
"거절하지요. 전 어디에도 안갑니다. 그리고 대장군께서도 이곳을 통과하여 북경으로 갈 수 없습니다. 폐쇄된 곳을 어찌 들어간다는 말입니까?"
"그대에게 선택권을 준 기억은 없도다. 그리고 허락을 맡을 생각은 더더욱 없도다."
경화군주는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저 본녀가 원하는 바를 행할 뿐이다."
"실력을 행사를 할 심산입니까?"
"그대가 본녀를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면 그리 될 것이다."
"대장군, 북경을 폐쇄한 건 황실의 대신들이 협의를 통해 결정한 사안입니다. 아무리 대장군이라고 하더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대들이 본녀를 좌지우지할 권한 따위는 없도다. 본녀에게 명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폐하뿐이다."
"대신들이 병상에 누워있는 폐하를 대신하여 결정한 일입니다."
"아니, 그대들은 폐하를 대신할 수 없다. 천자天子를 어찌 한낱 인간따위가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경화군주는 올곧은 시선으로 설수범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정말 말이 안통하는군요."
설수범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의견차를 좁힐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말로 해결하려고 하였던가? 참으로 순진하구나.."
경화 군주는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미 그대와 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로다. 그런 우리가 말이 통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경화군주는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제 쓸데없고 영양가없는 담소를 줄이도록 하지."
저벅 저벅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네놈은 병사들을 동원하여 본녀를 막을 심산 아닌가? 그렇다면 마음 먹은 바를 행하도록 하라."
완전히 개방되어있는 성문 안쪽을 향해서 말이다.
"대신 전력을 다해야할 것이다. 본녀는 그대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강한 초월자이니."
저벅 저벅
그녀의 걸음걸이가 더욱더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다가오자 병사들의 표정에는 당혹스러움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였다.
".........막아라."
그들의 귓가로 설수범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황실의 명을 어기는 자는! 누가 되었든 용서할 수 없다! 만약 대장군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막도록 하라! 이는 명령이다!"
설수범은 열변을 토해내며 소리를 내질렀다.
갈팡질팡하는 병사들에게 명분을 준 것이다.
황실의 명이라는 명분을 말이다.
그러자 병사들이 창을 강하게 꼬나쥐기 시작하였다.
결심을 마친 것이다.
'자랑스러운 제국의 군사라면 저정도 기개는 있어야지.....아암.'
그 모습을 본 경화군주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황궁제일인이라고 불리우는 자신에게 겁을 집어먹긴 커녕
대항하려고 드는 병사들의 모습이 꽤나 흡족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황실을
더 나아가 나라를 수호한다는 위치에 맞게 말이다.
'그러니 본녀 또한 최선을 다해 상대해주마.'
화르르륵
그때 갑자기 경화 군주의 몸에서 검은 불길이 치솟기 시작하였다.
어마어마한 기세로 말이다.
그리고 이내 치솟은 검은 불길들이 서서히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하였다.
두텁고 길쭉한 무언가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검은 불길은 하나의 행태를 이루게 되었다.
신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초월적인 존재의 모습으로 말이다.
"흑룡黑龍"
그렇다.
그것은 용이었다.
불길하기 그지없는 묵빛을 띄고 있는 거대한 화룡말이다.
까딱
경화군주는 손을 뻗은 뒤 손가락을 까딱하였다.
그러자 거대한 흑룡이 커다란 입을 벌린 채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마치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