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3화 〉 824.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내가...그대의 말을 어떻게 믿지?"
태자비는 불신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양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양경은 사법권을 쥐자마자 자신을 비롯한 관리들을 모조리 구금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와서 지켜준다고 해봤자 믿을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믿으셔야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역적들을 몰아내고 태자 전하를 구해낼 수 있습니다. 마마."
양경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태자 전하를?!"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태자비는 반색을 하며 되물었다.
"그렇습니다........마마께서 저를 믿지 않는다면....전하를 구할 기회를 놓쳐 버릴 수도 있습니다.."
양경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부디 현명한 판단 부탁드립니다. 전 황실의 우군입니다."
"............"
양경의 말을 들은 태자비는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하였다.
고민에 빠져든 것이다.
그의 말을 전적으로 따라도 될지에 대한 고민을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고민 하였을까
"..........솔직히 말한다면 본녀는 네놈을 신뢰할 수 없다. "
이내 태자비는 천천히 입을 떼어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네놈을 따를 수밖에 없을듯 하구나. 어떤 상황이든 금의위에 구금되어있는 것보단 나을테니 말이다."
태자비는 올곧은 시선은 양경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양경을 믿진 않았다.
사법권을 이용해 황족을 압박하고 구금하였던 그를
어짜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금의위에서 대신들과 궁녀들의 비명성으 듣는 것보단 훨씬 나을테니까 말이다.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태자비마마."
양경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답을 하였다.
그녀의 대답이 썩 만족스러운 까닭이었다.
"그럼 따라오시지요."
양경은 그대로 몸을 돌려 바깥쪽으로 걸어가기 시직하였다.
태자비는 그런 양경의 뒷모습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태손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양경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
도찰원
끼이익
"이쪽으로 들어오시지요."
양경은 개인 집무실의 문을 열어젖힌 후 태자비를 안내하였다.
태자비는 그의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느새 잠들어있는 태손을 한쪽 구석에 있는 침상에 그대로 눕혔다.
그다음 중앙에 있는 탁자에 착석한 후 양경을 바라보았다
"하실 말씀이라도?"
양경은 의아한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우도어사."
그녀는 차분히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대체 그대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째서 나와 태손을 이곳에 데려온 것이지?"
"누차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두 사람을 보호하고 태자 전하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황실에 대한 충정이 깊은 사람인지는 몰랐군."
태자비는 코웃음을 쳤다.
사법권을 획득하자마자 황실의 우호적인 세력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며 압력을 가한 주제에
이제와서 충신행세를 하려고 드니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여전히 저에 대한 신뢰가 없으시군요."
"어찌 신뢰가 있을 수 있겠는가? 폐하가 쓰러지고 전하가 추포된 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권력을 탐하지 않았던가"
"그전과는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말입니다."
양경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째서지?"
태자비는 의혹 어린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대는 다른 대신들과 권력을 나눠먹고 있는 처지가 아니던가? 그런데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겨 황실을 돕겠다고 나서는거지?"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도어사가 자신을 돕는 이유를 말이다.
태자를 범인으로 만들고 황족들을 숙청한다면
언제든 만인지상에 오를 수 있는 위치에 서있는 자였다.
그런데 어찌 구태여 자신을 돕는단 말인가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양경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본녀와 장난을 하자는 것인가?"
태자비는 이글 거리는 눈빛으로 양경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어찌 자신의 말을 저딴 말같지도 않은 장난으로 응수한다는 말인가
분노가 차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심입니다. 마마."
양경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끝까지! 본녀를 조롱하는 것인가!"
이내 태자비는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애써 억누르고 있던 분노가 그대로 터진 까닭이었다.
어찌 끝까지 장난질을 한다는 말인가
자신을 희롱할 셈이 아니고서야 저럴 수는 없는 것이다.
"내 비록 네놈들 손에 놀아나고 있다지만 엄연히 태손을 생산해낸 황실의 태자비이니라! 그런데 어찌 이리도 무례하게 군다는 말이더냐! 네놈에게는 황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가?"
태자비는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하였다.
우두두둑
우두두둑
눈앞에 갑작스러운 이변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뱀과 같이 차가운 인상의 남자.
양경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면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갸름했던 턱선은 진하게 바뀌었고
비열했던 눈매는 시원스레 트이기 시작하였다.
코는 좀더 오똑해졌으며 입술은 좀더 두터워졌다.
우두두둑
더불어 신체 또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납작했던 가슴에 근육이 부풀어올랐다.
빈약하였던 옆통이 점점 채워졌다.
가냘펐던 팔과 다리가 마치 통나무와 같은 굵기로 두터워졌다.
그렇게 얼마나 변화가 일어났을까
이내 방 안에는 양경이 아닌 전혀 다른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시원스러운 인상을 가진 사내가 말이다.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마마."
시원스러운 인상의 사내, 선우는 태자비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
선우의 물음에도 태자비는 그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기적과도 같은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뼈와 근육을 뒤틀어서 말이다.
'설..설마...여우?'
이내 태자비는 불안으로 가득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였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여우가 둔갑한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불안을 떨었을까
"그...그대는...그대는....인간이..맞는 것인가?.......혹여...둔갑한 여우인 것인가?"
태자비는 떨리는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물었다.
본디 인간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면
크나큰 공포를 느끼는 법.
지금 태자비에게 선우의 존재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녀의 상식으로 자의적으로 뼈와 근육을 조정하여 얼굴과 체형을 바꾸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겁 먹으실 필요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전 인간이니까요. 모습을 바꾼 것은 축융공이라는 무공을 이용한 것 뿐입니다. 태자비마마"
선우는 떨고 있는 그녀를 달래주기 시작하였다.
"......축융공?"
"그러합니다.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무공이지요."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인가....언제부터....우도어사를 가장한 것인가?"
태자비는 떨리는 눈동자로 선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흘 정도 되었습니다."
".....허어"
그 말을 들은 태자비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사흘 전이라면 고위 관리들이 도찰원에서 풀려났던 날짜가 아니던가.
태자비는 깨달을 수 있었다.
눈앞에 남자가 자신들을 구해주었다는 사실을
"그대가...그대가...우리를 구해주었구나."
태자비는 감격 어린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황실의 우호세력들이 꼼짝없이 힘을 쓰지 못하였을 때
그 숨통을 트여준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황실의 우군이라고 말입니다."
"미안하구나, 내...내...그대를..믿지 않았다...꼼짝없이...본녀를 희롱하는 것이라..여겨...그대를..의심하였다...내 진심으로 사과하겠다.."
태자비는 선우를 바라보며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스스로의 무례를 깨달은 까닭이었다.
어찌 자신들을 도와주려는 황실의 우군에게 이리도 박정히 대했다는 말인가
실례가 아닐 수 없었다.
"아닙니다. 충분히 경계할 만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정말 바뀌었을 줄 어찌 알겠습니까?"
선우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착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대는 친절하구나."
그리고 그 위로를 들은 태자비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과찬이십니다. 태자비마마."
선우는 정중한 태도로 말을 받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태자비는 궁금증이 들었다.
겉모습만 놓고면 영락없이 야인에 가까운 자였거만 하는 행동거지를 보면 근본이 없는 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위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궁금하였다.
눈앞에 있는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말이다.
".......그대의 정체는 무엇인가? 정체가 무엇이기에 황실을 위해 이리 몸소 나서주었는가?"
태자비는 의문 어린 시선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물었다.
정체가 무엇인지 말이다.
"제 이름은 장선우라고 합니다."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경화군주와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연인이지요."
"경화군주와!?"
"그렇습니다."
선우는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태자비는 경악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경화군주와 평생을 함께하기로 하였다니
그 말인즉슨 경화군주의 배필인 부마도위라는 말이 아니던가
'대체..언제?'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경화군주는 대외적으로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대체 언제 사랑을 하고
언제 연인을 만들고
언제 미래를 약속한다는 말인가
그녀의 표정에는 의문이 어리기 시작하였다.
"말..말도 안된다......경화군주는.....현재 폐관 수련에 들어간 상태이다...그런데..어찌...그대와 같은 연인을 사귈 수 있다는 말인가?
이내 태자비는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경화군주는 폐관 수련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선우는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경화군주의 일화를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그녀가 주화입마를 극복하기 위해 북해로 향했던 일
북해에서 자신과 만나 연인이 되었던 일
폐관을 핑계로 황실에 돌아가지 않고 자신의 곁에서 머물렀던 일까지 전부 말이다.
"허어."
그리고 그 설명을 들은 태자비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가장 먼저 올라간다더니
평소 남자에게는 죽어도 관심없다던 경화군주가
단 한 번의 외유로 사윗감을 구해왔다는 말을 들으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경화군주는 지금 어디있습니까?"
태자비는 한층 공손해진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눈앞에 남자가 부마도위라는 생각이 드니 마냥 하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현재 낭방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째서 같이 오시지 않은 거죠?"
그녀는 궁금하다는듯 선우에게 물었다.
황궁 최고 전력인 그녀가 있었다면
유중기나 양경이 헛된 마음을 품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그녀를 똑 떼어놓고 홀로 황실을 방문한다는 말인가
"북경 주위로 수십 만에 이르는 대군들이 둘러싸고 있더군요. "
"저는 경화가 얼마나 강한지 잘알고 있어요. 그 아이라면 수십 만에 이르는 대군이라고 하더라도 위협이 되지 않았을 것 입니다."
경화군주는 강하였다.
수적 열세따위는 무의미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은 잘알고 있습니다. 몇 만이든 그녀 앞에선 바람 앞에 등불일테니까요.......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함부로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녀와 대치를 명한 건 역모를 꾸민 역적들이 아닙니까? 그어찌 무고한 황군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그저 상명하복을 철저히 따른 죄밖에 없을텐데 말입니다."
자신들의 적은
지휘사와 우도어사, 병필태감 그리고 좌도독이었다.
그저 윗선에서 내려진 명령을 따르는 황군은 적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충돌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무고한 이들을 죽일 수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만약 저희가 정면 돌파로 황실을 향하였다면 병석에 누워있는 폐하와 구금되어있는 전하 그리고 태자비와 태손까지 전부 인질이 되었을 것입니다...그걸 방지하기 위해 잠영술을 익힌 제가 먼저 황실에 잠입을 한 것입니다. 인질들을 미리 보호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선우는 자신이 잠영술로 숨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바로 인질 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을 미리 보호하고 있으면 훗날 제대로 깽판을 쳐도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저희 모자를 금의위에서 빼내주었던 거군요."
선우의 말을 들은 태자비는 수긍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구태여 그가 왜 자신들을 도찰원으로 끌고 왔는 지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인질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맞습니다. 금의위 보단 도찰원에 있는 편이 좀더 안전할테니까요."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금의위는 기본적으로 상명하복을 무척이나 중요시한다.
잘못된 명이라도 상사인 유중기가 명을 한다면 그대로 이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위험하였다.
태손과 태자비를 인질로 잡을 만한 새끼들이 수두룩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찰원은 다르지.'
하지만 도찰원은 달랐다.
그들을 보호해줄 거대한 방패막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좌도어사 도숭.'
도찰원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이자
황실에 진실로 충성하는 좌도어사 도숭이라면
저 두 모자를 지켜줄 훌륭한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그 어떤 풍파가 쏟아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