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0화 〉 821. 광인狂人
"지휘사! 좌시랑 어르신께서 다시금 대담을 요청하셨습니다."
교위 관월은 정중한 태도로 말을 내뱉었다.
"이번에도 정중히 거절토록 하라."
유중기는 담담한 어조로 답을 하였다.
"오늘은 대담이 이뤄질 때까지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냅두거라, 지치면 알아서 가겠지."
유중기는 귀찮음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월은 공손한 태도로 읍한 뒤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명을 수행할 요량이었다.
끼이이익
쿵
이내 문이 완전히 닫히게 되었다.
'........귀찮군. 좌시랑은 도찰원에 구금했다고 하지 않았나?'
문이 답히자 유중기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벌써 사흘 째였다.
저자가 대담을 요청하며 금의위에 드나든지 말이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슬슬 짜증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보나마나 태자의 복권을 요구하는 거겠지.'
좌시랑의 목적은 뻔하였다.
태자를 복권시켜 자신들을 견제하려는 수작일 것이다.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더냐...양경.'
유중기는 우도어사를 탓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황실의 고위 관리들을 구금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 황실의 종친인 좌시랑을 저리 냅둔단 말인가
유중기는 짜증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속을 분을 삭히고 있을 때였다.
똑 똑 똑
그때 누군가 집무실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누구인가?"
유중기는 짜증 어린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교위 한경입니다. 지휘사."
"들어오게."
끼이이이익
유중기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내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교위 한경이었다.
"무슨 일이지?"
"황태자비께서 대담을 요청하셨습니다."
"황태자비께서!?"
유중기는 놀랐다는듯 그에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말도 안된다...태자비는...분명 도찰원에.."
유중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현재 정권을 잡은 이들 입장에서 황태자비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이천자라고 불리우는 황태자의 최측근이기도 하였고
언제고 세력을 모아 반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양경이 사법권을 쟁취하자마자 도찰원에 강제로 구금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녀가 어찌 금의위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인가
"아무래도......도찰원에서 풀려난듯 싶습니다."
교위 한경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답을 하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유중기의 표정을 더할 나위없이 찌푸려지기 시작하였다.
이해할 수 없는 양경의 행태에 짜증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이런 개같은!'
유중기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개같이 일처리를 하는 양경에 대한 반발을 치솟은 까닭이었다.
"지휘사....어떻게..해야합니까? 정중히 거절토록 할까요?"
한경은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아니, 되었다..내.....일단 직접 만나보도록 하겠다."
유중기는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태자비를 황실의 종친인 좌시랑과는 그 결이 달랐다.
함부로 축객령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젠장할.'
유중기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태자비를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한경은 그런 유중기의 뒤를 조심히 따르기 시작하였다.
***********
"더 말을 할 것 없습니다. 당장 태자 전하를 원상복귀 시키세요."
품격이 절로 흘러넘치는 우아한 여인, 태자비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중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태자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건 폐하의 암살 사건 범인을 찾기 위해선 불가피한 일입니다."
"정말 이러깁니까?"
태자비는 눈빛이 한층 더 매서워지기 시작하였다.
"태자 전하에 대한 수사를 진행 후 혐의가 없다면 그때 풀어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유중기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 수사가 대체 언제 끝난다는 거죠? 태자 전하께서 금의위에 구속된지 벌써 열흘이나 지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찌 더 기다리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수사에 난항이 있을 뿐입니다."
"듣기로는 증거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금의위의 강제적인 구속이 설득력이 있다고 여기시는 것입니까?"
"........증거는 없지만......증인은 있습니다."
"명월이라는 천한 계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 또한 의문이군요. 누구보다 황실에 충성해야할 당신들이 황실의 적통을 이어받은 태자의 말이 아닌 폐하를 암살하려고 들었던 천한 궁녀의 말에 그리 치중하다니 말입니다."
태자비의 몸에서 위압 어린 기세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차기 태후로서의 위엄을 내보인 것이다.
"본디 수사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하는 법입니다. 태자 전하 또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유중기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전하를 예외로 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충분히 의심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명확한 증거도 찾지 못한 채 열흘이나 붙잡아두는 건 합리적이라고 보긴 어렵군요."
태자비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유중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지휘사, 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계신 것입니까?"
"꿍꿍이라뇨?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유중기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천자天子가 쓰러지고 이천자二天子라고 불리우는 전하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다음 국정 운영을 핑계로 대신들이 권력을 이양받았지요."
태자비는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게.....뭐가 문제란 것입니까?"
"꽤나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폐하가 쓰러지고 전하께서 구금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정권을 찬탈하는 모습이 말입니다."
"이는.......대신들 모두가 동의한 내용입니다.."
"뭐, 저도 충분히 그러할 수 있다도 생각은 합니다. 국정 운영이 미뤄진다면 그만큼 백성들의 고통도 커질 테니까요. 하지만 추후에 일어난 행태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태자비는 올곧은 시선으로 유중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도찰원은 사법권을 가지자마자 고위 관리들을 모조리 구금하였습니다. 황실에 우호적이거나 황실의 피를 이은 이들 위주로 말입니다. 그리고 군사권을 가진 오군도독부에선 곧바로 군사를 파견하여 북경을 완전히 폐쇄하였습니다. 단순한 통제라고 하기엔 너무나 과한 병력을 말입니다. 어찌 이해가 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태자비는 의심스러운 바를 낱낱히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따지고보면 하나하나가 수상하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사법권을 가지게 된 도찰원의 경우
그 수상함이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황실에 우호적인 이들 위주로 구금을 하겠다는 건
다시 말하면 황실을 적대하겠다는 말이 아니던가
어찌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군사권을 가진 오군도독부의 경우
폐쇄 행동 자체가 너무나 의심스러웠다.
고작 도시 하나 폐쇄하는데 30만에 이르는 과한 병력을 파견한 것이다.
어찌 미심쩍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저 적법한 절차들일 뿐입니다."
유중기는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적법한 절차라..........그대가 생각하는 적법과 내가 생각하는 적법은 참으로 다른가보군요."
태자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유중기를 노려보았다.
납득할 수 없다는 뜻을 그대로 표명한 것이다.
"태자를 원상 복귀시키세요. 그렇지 않는다면 저 또한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뭘 어찌 할 생각이십니까?"
"이번 일들을 전부 공론화한 후 내각 회의를 구성하겠습니다."
"대체 뭘 공론화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대들이 역모를 꾸미는 게 아닐까라는 의혹을 말입니다."
"태자비!"
유중기는 잔뜩 흥분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말이 심하십니다!"
"저는 보고 듣고 느끼는 바를 그대로 말할 뿐입니다. 그대들은 진실로 황실을 위하는 자들이라고 칭하기엔 무척이나 어폐가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태자비는 마치 북풍한설처럼 싸늘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제 말은 끝났습니다. 어느정도 알아들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자비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심하세요. 제가 기다릴 수 있는 기한은 내일까지입니다 ."
그리고 몸을 돌려 바깥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유중기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으드득
이빨을 강하게 갈면서 말이다.
*****
도찰원. 양경의 집무실
쾅
거칠게 문이 열리고 바위같이 단단한 인상을 가진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로 금의위 지휘사 유중기였다.
"우도어사!"
그는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집무실 안쪽애 있는 양경을 노려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귀청이 떨어지겠습니다. 지휘사 어르신."
양경은 깜짝 놀랐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무슨 말씀이신지?"
양경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시치미 떼지말게! 내 알아본 바가 있으니! 자네가 황족과 관리들을 전부 풀어주지 않았는가!"
".....예에, 그리하였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것인가! 어찌 그들을 그냥 풀어줘! 내 사태가 정리될 때까지 얌전히 구금해놓으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게 단순히 구금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뭐라?"
"생각을 해보십시오, 사태가 정리가 되어 저들이 풀려난다면 그들을 강제했던 저희들을 가만히 냅두겠습니까? 헐뜯고 비난하고 더 나아가 파면을 시키려고 들 것입니다.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을테니까요."
양경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게 가능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저들에게는 우리를 강제할 힘따윈 없네!"
"일반적인 경우라면 없겠지요. 하지만 황제가 깨어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황제가 황권을 갈라먹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저희를 가만히 냅둘 것 같습니까? 목을 치거나 어떻게든 파면을 시키려고 들 것입니다."
양경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황제가 깨어나긴 최대한 세력을 키우자고 합의를 보지 않았는가! 황제라고 하더라도 감히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어찌 황실의 우호적인 자들을 풀어줄 수 있는가!"
"세력을 키우는 것 보다 더 좋은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더 좋은 방법?"
"예에, 황실을 물갈이 하는 것입니다."
양경은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뭐라!?"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유중기는 놀란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기
"저희를 견제하고 규탄할 만한 이가 사라진다면 구태여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양경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떼었다.
"......새로운....황제를 추대한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양경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저희가 마음대로 주무르기 편하려면 어리숙하여야할테니.......... 나이가 어린 황족이 가장 적당할 듯 싶습니다. 정통성도 있고 나이까지 어리니 섭정을 핑계삼기도 편할테니 말입니다."
"....자네...미쳤는가?........이건 역모일세!"
그의 말을 잠자코 듣던 유중기는 놀랐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황실을 물갈이 하겠다니
그말인즉슨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모든 황족들을 전부 치워버리겠다는 말이 아니던가
구금되어있는 황태자는 물론
병상에 누워있는 황제까지 전부 말이다.
어찌 미쳤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잊으셨습니까? 저희는 이미 역모를 저질렀습니다. 여기서 어떤 죄를 더 짓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양경은 광기 어린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오싹
그리고 그 미소를 마주한 유중기는 섬뜩하기 그지없는 오싹함을 느꼈다.
"그러니 갈거면 끝까지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황실의 세력들이 가만히...있지 않을 걸세."
황실의 세력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권력을 위해 노골적인 숙청을 가한다면
분명 어떻게든 반발이 일어날게 뻔하였다.
"걱정마십시오.....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숙청을 행할테니까요."
"대체.....뭘...어떻게..할..심산인가..?"
"금의위께서는 단 한가지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정리하도록 하지요."
"단 한가지?"
유중기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황제를 암살한 범인으로 황태자를 지목해주십시오."
"황...황태자를 말인가!?"
"네에, 그리 해주신다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휘사."
양경은 광기 어린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유중기는 깨달을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광인이 진심으로 황실을 물갈이할 생각이라는 것을 말이다.
'.......숙청.'
그렇다.
그 숙청을 할 생각인 것이다.
황태자를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말이다.
'두려운 놈이로다.'
유중기는 몸을 잘게 떨었다.
양경의 권력에 대한 광기 어린 갈망에 두려움을 느낀 까닭이었다.
'권력이 무섭구나.......양경에게.......이런 광기를 선사하다니.....'
그는 생각하였다.
권력이 주는 달콤함이 양경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그저 살아남기위해 발악하던 소인에서 권력에 미친 광인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