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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819화 (820/1,419)

〈 819화 〉 820. 마음이 바뀌었거든

"자네, 실수한 거야.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인가?"

고급진 의복을 입고 있는 강팍한 인상의 남자가 으름장을 놓기 시작하였다.

"잘 알고 있습니다. 육부의 좌시랑 어르신이 아니십니까?"

"그걸 아는 자가 나를 구금하였다는 말인가!"

좌시랑 주성태는 잔뜩 화가난 어조로 언성을 높였다.

주제도 모르고 자신을 잡아들인 감찰어사에 대한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그저 전 절차에 따라 어르신을 구금한 것 뿐입니다. 죄가 없다면 풀려나실 것입니다."

"아니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도찰원에 끌고온다는 말인가!"

주성태는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언성을 높였다.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평생을 하늘에 부끄럼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했건만

어찌 이런 자신을 죄가 있다며 잡아넣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 분기에 폐하께 진상된 물품 중 일부를 횡령하였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감찰어사 고굉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말도 안되네! 내 어찌 목이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서야 . 폐하께 진상될 물품을 손댄다는 말인가!"

"저 또한 시랑 어르신께서 그런 짓을 하였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보가 있다면 저희는 감찰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고굉은 무척이나 저자세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정7품에 불과한 고굉의 입장에서

정3 품의 육부 시랑을 감찰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시랑의 입김을 한 번 불면 날아갈 목숨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렇기에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음에도 어르고 달래며 감찰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보자는 누구인가! 당장 그놈과 대면하게 해주게! 어찌 무고한 이를 모함한다는 말인가!"

주성태는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누군가 말도 안되는 죄목으로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제보자와는 대면하실 수는 없습니다."

고굉은 고개를 좌우로 살짝 내저으며 조심스레 거절을 하였다.

"뭐라!?"

"원칙적으로 범인과 제보자는 완벽히 분리되어야합니다."

도찰원에서 제보자는 완벽하게 보호받는다.

신상을 감추는 것은 물론이고 원한다면 새 신분까지 만들어준다.

혹시 모를 해코지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내가 제보자에게 해코지라도 하겠다는 말이가!"

"그런...말이..아니지 않습니까?...그저...도찰원의 원칙이.."

"원칙! 원칙! 그놈의 원칙! 원칙을 그렇게 따지는 놈들이! 어찌 제보자의 말만 믿고 나를 구금한다는 말인가! 실질적인 증거 따윈 없지 않는가!"

잔뜩 화가난 주성태는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제보자의 일관된 진술은 상당한 효력을 발휘합니다. 만약 결백이 증명된다면 제보자 측이 오히려 처벌을 받을터이니 부디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아니! 여기서 내가 뭘 더 협조하라는 말인가! 진상품 목록을 전부 내어준 것은 물론이고 일일히 대조하기까지 하지 않았나!"

이미 진상품 목록을 확인한 도찰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뭘 더 협조하라는 말인가

"진상품 목록은 실질적인 증거는 되지 않습니다. 중간에 일부러 누락 시킬 수도 있을테니까요."

"뭐라!? 내가 장부를 조작했다는 말이더냐! 네놈 그 말 책임 질 수 있는 것이냐!"

주성태는 울그락불그락해진 얼굴로 고굉을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입니다. 시랑 어르신......제가 그리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모습에 살짝 겁을 집어먹은 고굉은 변명하듯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를 붙잡아둬선 안되지 않는가!"

"이게.....원칙적으로는 전부 확인해야할 사안인지라.."

"제기랄 그놈의 원칙!"

좌시랑 주성태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또 저놈의 원칙이 문제였다.

저놈의 원칙은 마치 자신을 옭아매려고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곧바로 확인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어찌 일주일이 넘도록 구금만 한다는 말인가! "

"아시다시피 현재 북경은 폐쇄되어있는 상황입니다. 공문을 내려 진상품을 확인하기엔 상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고굉은 면목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본래 진상품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각 성에 공문을 돌려 진상품의 종류와 수량을 확인하면 될테니 말이다.

하지만 북경이 폐쇄된 현재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폐쇄를 뚫고 공문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지금 나보고 범인이 잡혀 폐쇄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인가?"

주성태는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자네는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주성태는 차가운 눈빛으로 고굉을 노려보며 물음을 던졌다.

".............."

그의 물음에 고굉을 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억지나 다름없는 소리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말이 없는 걸 보니 양심은 있구만."

그 모습을 본 주성태는 코웃음을 쳤다.

고굉의 내심을 어림짐작한 까닭이었다.

그도 어이가 없을 것이다.

언제 잡힐 지 모를 범인을 기다리면서 허송세월하라는 말을 하니 말이다.

벌떡

주성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가겠네."

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고굉을 바라보며 말을 내뱉었다.

더이상 있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안됩니다."

고굉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그를 가로막았다.

억지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해서 그를 보내줄 수는 없었다.

증거가 발견될 때까지 용의자를 구금하는 것은 엄연히 도찰원의 원칙에 해당하는 사안이었기 때문이었다.

"비키게."

"안됩니다."

고굉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제보자를 불러주게. 내 그자와 대화를 나눠야겠네."

"그 또한 안됩니다."

".....그것도 안되면 우도어사를 부르게 내 그와 직접 대면을 해야겠네."

"....그 또한 안됩니다"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 증거도 없이 진술 하나 믿고 멋대로 구금해온 주제에 안되는 게 뭐 이리 많다는 말인가!"

좌시랑 주성태는 분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차오른 분노가 그대로 터져버린 까닭이었다.

"도찰원은 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대체 우도어사는 무슨 꿍꿍이길래 나를 구금시키려고 드는가!?"

"그런 게....아닙니다...그저...원칙에 따라.."

"말도 안되는 소리말게! 이 따위 작위적인 상황을 원리 원칙이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다고 보는가?"

주성태는 생각하였다.

도찰원에서 무언가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을 이렇게 강제할 리 없다면서 말이다.

"제보자도 우도어사도 부를 수 없다면 나는 가겠네!"

주성태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고굉은 그런 주성태 앞을 필사적으로 막아서기 시작하였다.

"시랑 어르신...잠깐..진정하시고.."

"비키거라! 비키지 않으면 호되게 경을 칠 것이다!"

이내 취조실 내부에는 두 사람의 옥신각신하는 목소리가 가득히 울리기 시작하였다.

나가려는 주성태와 막아서려는 고굉 간의 기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한창 기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끼이이이익

갑자기 취조실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차가운 인상을 가진 뱀같은 남자.

그 모습을 본 주성태는 반색을 하였다.

때 마침 찾던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고위 관리들을 구금한 원흉이자

실질적인 도찰원의 지배자

바로 우도어사 양경이었다.

"소란스럽군."

취조실 안으로 들어온 양경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도어사!"

그 모습을 본 좌시랑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반갑습니다. 좌시랑."

양경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받았다.

"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냐!"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네놈이 사법권을 가져간 뒤 황족들을 비롯한 수많은 고위 관리를 강제로 구금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어찌 꿍꿍이가 없다고 말하는가!"

주상태는 독기 어린 눈빛으로 양경을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단단히 작심하고 따지려는듯한 모습이었다.

양경은 그런 주상태는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꿍꿍이 따위는 없습니다."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꿍꿍이가 없다는 이가 어찌 고위 관리들을 강제로 구금하고 있다는 말인가!"

주상태는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뻔히 속내가 보이는 상황에서 발뺌을 하는 것을 보니 부아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강제적인 구금이라뇨?"

양경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그 잘난 도찰원의 원칙을 들이밀며 증거가 나올 때까지 구금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북경이 폐쇄되어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상황에서 그딴 원칙을 들이민다는 건 강제로 구금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 아닌가!"

주상태는 차오른 분노를 그대로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확실히 그렇게 느낄 수 있겠군요."

그 말을 들은 양경은 수긍하듯 말을 이었다.

"......응!?"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주성태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수긍이 당혹스러운 감정이 든 까닭이었다.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특수한 상황에서 도찰원의 규율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양경은 납득했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말이 사실인가?"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주성태는 믿기 어렵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순순히 풀어주겠다는 양경의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은 까닭이었다.

"사실입니다....증거를 구할 수 없는데 어찌 죄인이라고 단정짓고 구금할 수 있겠습니까? 풀어드리겠습니다. 곧바로 나가시지요."

양경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문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주성태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빠른 태세전환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성태는 분명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법권을 양도받은 직후 고위관리들을 집중적으로 압박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강제 구금이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쉽사리 구금을 풀어준다는 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멍을 때렸을까

".....큼..큼.....이제라도 깨달았으니...다행일세."

이내 정신을 차린 주성태는 코앞을 막고 있는 고굉을 지나쳐 바깥을 향해 걸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우도어사가 허락한 마당에 그에게 거칠 것 따윈 없었다.

이내 주성태는 완전히 바깥으로 나가버렸고

취조실 안에는 양경과 고굉만이 남게되었다.

"저...우도어사.."

둘 만 남게 되자 고굉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운을 뗴었다.

"말하게."

"어째서...풀어주신 것입니까?...분명....우도어사께서....잡아두라고..."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양경은 고루하기 짝이없는 규율을 들이밀며 관리들을 억지로 붙잡아놓으라고 명령한 장본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찌 이리도 쉽게 육부시랑을 풀어준다는 말인가

"마음이 바뀌었다."

"네에?"

"북경이 폐쇄되어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찌 도찰원만의 규율을 강요하겠는가?"

양경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고굉은 여전히 알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론이긴 하였지만 그 정론을 구금을 명령한 양경이 입에 담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모순적이었다.

배려를 할거면 처음부터 그리 할 것이지

일주일이나 구금해놓고 이제와서 무슨 배려를 한다는 말인가

이미 관리들의 적대심을 차오를 대로 차올라있을 것이다.

'사법권을 갖더니 미쳤나?'

고굉은 나름 합리적인 의심을 하였다.

본디 달콤한 권력이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법.

그는 생각하였다.

우도어사가 분에 넘치는 권력을 쥐고 정신이 나가버린 게 아닐까하고 말이다.

"이보게."

그때 양경이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넵! 말씀하십시오! 우도어사!"

"현재 도찰원에 잡혀있는 관리가 몇이나 되는가?"

"........방금 나가 좌시랑을 제외한다면.....대략....스물 세명 정도 됩니다."

"스물 셋이라........일주일새 많이도 잡아 넣었구만."

"............과찬입니다."

"전부 풀어주라고 전해주게."

"네에?"

"도찰원의 규율을 들이밀며 강제로 구금하고 있는 이들을 전부 풀어주라는 말일세."

양경은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째서!?'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고굉은 의문어린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러운 양경의 태세 전환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지 않은가?

고굉의 눈빛에는 의혹이 더욱 짙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유를..알 수 있겠습니까? 우도어사.."

고굉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되물었다.

좌시랑을 풀어준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정3품이라는 지고한 품계와

황실의 종친이라는 신분이 부담이 될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도찰원에 있는 관리들을 전부 풀어주라는 말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도어사가 눈치를 볼만한 이들이 전혀 아닌 것이다.

"마음이 바뀌었거든."

양경은 대수롭지 않다는듯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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