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7화 〉 818. 만나서 반갑다. 역적놈의 새끼야.
우도어사의 집무실
털썩
집무실로 돌아온 양경은 의자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 시선을 슬쩍 올려 책상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시야에 산더미와 같은 서류더미들이 가득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태의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쌓인 업무인듯 싶었다.
'짜증나는 군.'
스르륵
양경은 등을 의자에 기댄 후 그대로 눈을 감았다.
본격적인 업무에 앞서 어느정도 피로를 풀어줄 요량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눈을 감고 있었을까
똑 똑 똑
갑자기 누군가 집무실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와락
그 소리를 들은 양경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짜증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누구냐?"
양경은 대뜸 화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날세."
그러자 중후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스르륵
그 목소리를 들은 양경은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상대를 해줘야할 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들어오게나."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중후한 인상의 남자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도찰원을 이끄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인
좌도어사 도숭이었다.
"얼굴을 보기가 참으로 힘들군, 양경. 오전에도 왔다 자리에 없어 그대로 돌아갔다네."
도숭은 잔뜩 불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미안하네. 내 잠시 폐하를 뵙고오느라 자리를 비웠네."
"또 태의원을 들린 건가?"
"그렇네."
"허어, 누가보면 자네가 황족인 줄 알겠구만, 발이 닳도록 폐하를 보러가니 말일세."
"나 또한 위대한 제국의 백성이 아닌가? 폐하께선 내 어버이나 다름없는 분이지."
양경은 당당한 태도로 말을 내뱉었다.
"충신이 납셨구만."
도숭은 비아냥 거리듯이 말을 이었다.
꿈틀
그리고 그말을 들은 양경은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다.
노골적인 비아냥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날 찾았는가?"
양경은 곧바로 용건부터 캐물었다.
구태여 길게 말을 섞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오겠는가? 그저 얼굴이나 보려고 왔네."
도숭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얼굴은 볼 만큼 보지 않았나? 별 다른 용건이 없으면 나가주었으면 하네. 보다시피 할 일이 많아서 말이야."
양경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서류더미를 눈짓하며 말을 이었다.
"참으로 매정하구만."
"매정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걸세. 자네와 내가 웃으며 볼 정도로 깊은 친분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양경은 차가운 눈동자로 그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우도어사와 좌도어사.
도찰원을 지탱하는 두개의 거대한 기둥.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나의 거대한 권력을 두 사람이 나눠가지고 있는 형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비방하고 깎아내리며 서로를 견제하였다.
섣불리 영향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말이다.
"하하하하하 그도 틀린 말은 아니구만."
그의 말을 들은 도숭은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얼마나 웃었을까
"이보게 양경."
이내 웃음기를 지워버린 도숭이 정색을 한 채 양결을 불렀다.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걸세."
그리고 사나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양경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자네는 나를 너무 바보로 아는군."
그 말을 들은 도숭은 가소롭다는듯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사법권을 이용해 황족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 모를 줄 아는가?"
"압박이라니? 난 그저 적법한 절차를 행하고 있을 뿐일세.."
"적법한 절차라.........내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더군."
도숭은 차갑게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무슨 꿍꿍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황실의 핏줄들만 압박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저 죄가 많은 자들을 선별적으로 수사하였을 뿐이라네."
"선별적인 수사 결과 황족들의 부정이 가장 많았다는 것인가?"
"그렇네."
"이거 참 대단한 우연이군. 평소에는 드러나지도 않던 황족들의 죄가 폐하가 쓰러지고 나서야 드러나니 말일세."
도숭은 비아냥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비아냥 거리는 건가?"
"그럼 칭찬하는 것처럼 들리나?"
도숭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 인가? 역모라도 꾸미는 겐가?"
"이보게! 도숭! 말이 심하네!"
도숭의 말을 들은 양경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감히 입에 담아서는 안될 말을 입에 담았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실의 세력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약화시킬 리 없지 않은가?"
도숭은 의심스럽다는듯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행보는 너무나 노골적이었다.
황제가 쓰러지자마자 곧바로 황족들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색영장을 청구하고 재판에 회부하였다.
일주일간 무려 수 십건을 다다르는 사건들을 말이다.
그 상황이 너무나 공교로웠다.
마치 처음부터 황족들을 압박하기 위해 기다려왔던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은가
"이보게, 도숭, 난 하늘을 우러러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적법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네. 이상한 억측은 자제해줬으면 좋겠군."
양경은 올곧은 시선으로 도숭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청렴결백이라는 말이 절로 어울리는 눈빛이었다.
"억측이 아닐세. 합당한 의심이지."
하지만 도숭은 그런 양경의 눈빛을 믿지 않았다.
뱀과 같은 비열함과 야비함을 갖추고 있는 양경이라면
겉모습을 꾸며내는 것 따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자네가 무슨 일을 꾸미는 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선을 넘는다면 가만히 두지 않을걸세."
도숭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날선 경고를 하였다.
"우리는 폐하의 신하이자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백성임을 언제나 잊지 말도록 하게."
".......명심하지."
양경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받았다.
"그럼 수고하세. 난 이만 가보겠네."
할 말을 모두 마친 도숭은 그대로 몸을 돌려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바깥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듯이 말이다.
그리고 양경은 그런 도숭의 뒷모습을 서슬 퍼런 시선으로 그저 가만히 노려보았다.
끼이이익
쾅
이내 문이 닫히고 도숭의 신형이 양경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경고인가.."
도숭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양경은 차가운 어조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재밌는 짓을 하는구나. 도숭."
그리고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견제가 들어올 것은 어느정도 예상한 바였다.
우도어사인 자신의 권한이 커질 수록 좌도어사인 도숭의 권한이 축소가 될테니까 말이다.
설마하니 이렇게 노골적으로 경고를 해올 줄은 예상치 못하였다.
'조만간 처리해야겠군.'
양경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렸다.
아무래도 처리해야할 인간이 하나 더 늘어난듯 싶었다.
냅뒀다간 상당히 골치가 아파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입이 좀더 무거웠다면 목숨이라도 부지하였을 것을.."
양경은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탄식하듯 말을 이었다.
권력을 양분하고 있다는 사실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도숭의 능력 자체에 대해선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는 그였다.
그가 사라진다면 도찰원은 분명 상당한 혼란을 겪으리라
'모두 네놈이 자초한 일이다. 도숭.'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속내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그의 생각은 무척이나 위험하였으니까 말이다.
이대로 냅둔다면 분명 자신을 위협하는 날카로운 칼이 되리라
양경은 품 안에 천천히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작은 옥병 하나를 꺼내든 뒤 만지작거리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혼원초의 쓰임새는 아직도 남아있는듯 하였다.
'네놈이 존경하는 황제와 같은 꼴로 만들어주지.'
양경은 히죽거리며 비열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눈에 가시처럼 여겨지던 도숭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꽤나 유쾌한 기분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크흐흐흐흐...크하하하하하하!"
이내 양경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마음 속 깊이 차오른 유쾌함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었던 탓이었다.
그렇게 양경이 한참이나 웃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즐거워?"
갑자기 그의 귓가로 선명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오싹
순간 양경은 온몸에 오싹함이 훑고 지나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아버린 까닭이었다.
"누구냐!?"
양경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하였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내 양경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집무실 어디에도 사람의 형상 따위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뭐지!?....헛 것을..들은 건가?'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양경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묻잖아, 뭐가 그렇게 즐겁냐고."
그때 그의 귓가로 다시금 선명한 남자의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헛것을 들은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양경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헛것을 들은 게 아니라고 말이다.
"누구냐! 썩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까!"
양경은 잔뜩 화가난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며 호통을 쳤다.
암중에서 누군가 자신을 농락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스르르륵
"그게 소원이면 들어줘야지."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양경의 코 앞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진한 검미
선이 굵은 턱선
전체적으로 사내답게 생긴 시원스러운 외모
육척에 다다르는 상당한 키
그리고 잘 단련되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옷위로 드러난 근육까지
'......무인이다.'
남자의 모습을 본 순간 양경은 확신할 수 있었다.
남자의 정체가 무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반갑다, 양경."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양경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이곳에 들어온 거지?"
양경은 그런 남자를 긴장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너 따라 들어왔는데?"
남자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잠영술을 쓴 것인가?"
"뭐, 그렇지."
양경의 물음에 남자는 딱히 부정을 하지 않았다.
"대단하군......기척조차 지우는 잠영술이라니 말이야."
양경은 놀랐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초절정의 고수인 자신이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였다.
그말인즉슨 잠영술자체가 기척마저 감춘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소리였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남자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목적이 뭐지? 돈인가? 아니면 복수?"
양경은 차분한 어조로 그에게 되물었다.
잠영술마저 써가며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원하는 바가 있다는 말이었다.
"복수."
"내게 원한이 있는 자인가?"
"어느정도는."
남자는 부정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원한이 꽤나 깊은가 보군. 이렇게 목숨 귀한 줄 모르고 도찰원에 침입하다니 말이야."
우우우우웅
양경은 내력을 끌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겁대가리 없이 자신의 거처에 침입을 한 침입자에게 본때를 보여줄 심산이었다.
"오호."
양경이 내력을 끌어올리자 남자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였다.
마치 재밌는 것을 구경하는 것 마냥 말이다.
타타탁
그때 양경이 빠르게 발을 굴려 진각을 밟았다.
쿵
그러자 땅이 울렸고 양경의 신형은 그대로 앞으로 쏘아져나갔다.
쇄애애애액
그리고 이내 남자의 코앞까지 도달한 양경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주먹을 뻗었다.
형의권의 기본이자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붕권이었다.
남자는 그런 양경은 가만히 응시하더니
그대로 손바닥을 뻗었다.
그리고는 날아드는 붕권을 부드러이 감싸기 시작하였다.
덥석
이내 양경이 쏘아낸 주먹은 남자의 손에 의해 그대로 감싸지게 되었다.
'아니!?'
그 모습을 본 양경의 눈은 휘둥그레지기 시작하였다.
분명한 일격필살을 염두해두고 날린 붕권이었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쉽사리 붙잡힌단 말인가
"젠장!"
양경은 재빨리 반대쪽 손을 뻗으려고 하였다.
반격을 당하기 전 먼저 선수를 칠 요량이었다.
우두둑
"끄아아아아악!"
하지만 그런 양경의 생각은 쉽사리 이루어질 수 없었다.
남자가 붙잡은 양경의 주먹을 그대로 돌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쿠쿵
이내 양경은 양 무릎을 그대로 꿇어버렸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굴복을 하고 만 것이다.
"손버릇이 나쁘네."
남자는 무릎을 꿇고 있는 양경을 내려다보며 말을 내뱉었다.
"........네놈은 누구지?"
그리고 양경은 그런 남자를 올려다보며 물음을 던졌다.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고 말이다.
정체가 무엇이길래 초절정의 고수인 자신을
이리도 쉽게 제압하냐고 말이다.
"장선우."
남자,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누군지는 너도 알지?"
선우는 입가에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장...장선우!?!"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양경의 표정은 보기좋게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만나서 반갑다. 역적놈의 새끼야."
선우의 눈빛이 차갑게 빛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