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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816화 (817/1,419)

〈 816화 〉 817. 귀신이 곡할 노릇

금의위

황제의 직속 친위대이자 비밀 경찰.

국가와 황제의 적이라는 미명하에 그 어떤 누구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는 황실의 수호자.

그들은 명분이 선다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체포나 감금, 고문은 물론 재판이 없는 즉결처분까지 말이다.

법 위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하해도 과언이 아닌셈이다.

"그날 어째서 오찬을 가지신 것입니까?"

금의위 지휘사 유중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내.....말하지 않았더냐.......폐하께 초대를 받은 것이라고 말이다."

황태자는 기운이 잔뜩 빠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벌써 같은 질문만 마흔 아홉번 째였다.

정신적인 피로가 극에 달하였고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혹여 평소 폐하께 불만이나 마음에 들지 않은 점이 있으셨습니까?

"그런 것 따윈 없다.....천자이자 제국의 위대한 지도자인 폐하께 어찌 불만을 가지겠느냐!"

"폐하께서 산매탕을 권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어째서 거절을 하신 것입니까?"

"내 본래.....산매탕을....즐겨마시지 않는다......씁쓸함이 입에 감도는 게....싫기 때문이다.."

"공교롭군요. 모든 일의 원흉이 된 산매탕을 태자 전하께서 선호하지 않았다니 말입니다."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겐가!?"

황태자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중기를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그럴 리가요. 그저 공교로운 상황을 말한 것 뿐입니다."

유중기는 가벼이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거짓말 말게! 아까부터 나를 범인으로 염두해두고 질문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말일세!"

황태자는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언성을 높였다.

유중기는 처음부터 자신을 범인 취급을 하며 취조를 이어갔다.

유도심문은 물론 질문을 교묘하게 바꾸어 혼란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범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면 이런 수작을 부릴 리 없지 않은가

"오해이십니다. 폐하, 저는 그저 본분에 맞게 일 처리를 한 것 뿐입니다."

유중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본분에 맞는 일이 유도심문을 하며 나를 떠보는 일인가?"

황태자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금의위란 끝없이 의심하고 수사하는 일입니다. 부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대체 얼마나 더 양해를 해줘야하는 가! 구금된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네!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기엔 충분한 시간이 아닌가? 이만하면 되지 않았는가? 나를 풀어주게!"

황태자는 격렬하게 성토를 하기 시작하였다.

금의위에 의해 구금된지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정신적으로 내몰리기엔 충분한 시간인 것이다.

"죄송합니다. 배후가 밝혀질 때까지 구금을 풀어드릴 수 없습니다. 전하."

유중기는 무척이나 사무적인 표정을 지은 채 그의 요청을 거절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태도는 황태자를 더욱더 화나게 만들었다.

" 나는 범인이 아니다! 범인이 아니란 말이다!"

황태자는 억울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네에, 저도 믿습니다. 태자께서 그럴 리 없지요."

"믿고 있다면 나를 풀어주란 말이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배후가 밝혀질 때까지 구금을 풀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지휘사 유중기는 그저 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풀어줄 수 없다는 말과 양해를 부탁한다는 말을 말이다.

"당장 나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황실 모독죄로 자네에게 극형을 내릴걸세!"

그 말을 분노가 차오른 황태자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협조적인 태도를 벗어던진 것이다.

"태자 전하께서 지치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만하지요."

그 말을 들은 유중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돌려 바깥쪽을 향해 걸어나가기 시작하였다.

"나를 무시하지 말게! 내 못할 것 같은가!"

그 태도에 분개한 황태자는 더욱더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하지만 유중기는 그런 태자의 말을 가뿐히 무시한 채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다음에 다시오지요."

끼이이이익

그리고는 육중하기 그지없는 철문을 그대로 닫아버리기 시작하였다.

"멈춰! 멈추란 말이야!"

그 모습을 본 황태자는 득달같이 달려들었지만

소용없었다.

육중한 철문은 이미 닫혀버렸기 때문이었다.

쾅 쾅 쾅

"열어! 열란 말이다! 이건 나에 대한 모독이다! 삼족을 멸할 것이다!"

황태자는 연신 문을 두드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어서 문을 열라고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지만 육중한 철문은 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자리를 떠버린 것이다.

"이 문 열란 말이다아아아아!!!!!!"

방 안에는 황태자의 처절한 외침만이 울려퍼질 뿐이었다.

***************

태의원.

꾸우욱

꾸우욱

늙그수레한 의원은 정문제의 몸에 조심스레 금침을 놓기 시작하였다.

한땀 한땀 정성을 담아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침을 놓았을까

이내 황제의 온몸에는 수많은 금침들이 박혀들게 되었다.

"후우."

의원은 손을 들어 이마에 흘러나온 땀을 훔쳤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정문제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정문제는 여전히 괴로운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금침을 놓기 전과 다를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어렵구나.......어려워."

늙그수레한 의원, 태의원의 원사 고량은 침중한 표정을지은 채 말을 이었다.

천자가 쓰러진지 벌써 열흘이나 지났다.

하지만 그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천자는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천하에 다시 없을 영약으로 만든 탕약을 먹여도

태의원 대대로 내려오는 이십팔수금침법을 시전하여도

여전히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하아."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황제를 전담하는 의원으로서

무엇하나 할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나 뼈아프게 다가온 까닭이었다.

'대체 원인이 무엇이란 말인가..'

분명 정문제는 산매탕에 녹아있던 독극물로 인해 정신을 잃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정문제의 몸에선 독기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독극물을 섭취한 게 아니란 소리였다.

'독극물이 아니라면.....대체 무엇이 폐하의 의식을 잃게 만든 것이란 말인가..'

고량의 표정이 더욱더 심각해지기 시작하였다.

의문이 깊어질 수록 생각 또한 깊어졌고

생각이 깊어질 수록 머리가 아파왔다.

그렇게 깊은 생각에 빠져있을 때였다.

똑 똑 똑

누군가 태의원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들어오시지요."

고량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끼이이익

그러자 문이 열리더니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도찰원의 우도어사 양경이었다.

"어서 오시는구려. 우도어사."

그 모습을 본 고량은 그를 반겼다.

"반갑습니다. 원사."

양경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자네는 참으로 충신이구만. 하루가 멀다하고 태의원을 찾으니 말이야."

고량은 양경을 바라보며 감탄하듯 말하였다.

그는 정문제가 쓰러진 후 하루가 멀다하고 태의원을 방문하였다.

정문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문제의 자식들 조차 한 두번 방문한 게 전부이거늘

어찌 이리도 매일매일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일개 신하가 말이다.

"충신이라니요, 그런 말 마십시오. 그저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입니다. "

우도어사 양경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당연하다니......우도어사께선 겸손이 과하신 것 같구려, 개인적인 업무로도 한창 바쁘실 분이 매일 태의원을 방문하는 게 어찌 당연하다는 말이오? 충신이 아니라면 그조차 힘들 일일 것이오."

고량은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삼권이 분립된 이후 우도어사 양경은 사법 전담하게 되었다.

매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쏟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바쁜 와중에도 정문제의 문병을 매일 빼먹지 않는 일이 어찌 당연한 일이 겠는가

정문제에 대한 충심이 없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리라

"원사께선 제 얼굴에 너무 금칠을 해주는 구려."

"금칠이 아니라 사실일세."

"하하하하하, 부끄럽습니다. 원사."

우도어사 양경은 호탕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부끄럽긴 했지만 띄워주는 말이 그리 싫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나저나 폐하께서는 무언가 차도가 있으십니까?"

"아쉽게도.....그 전과 다르지가 않네......탕약을 먹이고 금침을 놓아도 도무지 차도를 보이지 않는구만.."

양경의 물음에 고량은 축 처진 표정을 지은 채 답을 하였다.

정문제를 회복시키지 못하였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그렇군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양경 또한 덩달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 또한 차도가 없다는 말에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모두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일세.."

고량은 죄책감이 가득 서려있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아닙니다. 원사께서는 최선을 다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 말을 마십시오."

"아닐세........의원이란 병을 고칠 수 있을 때 그 존재를 인정 받을 수 있는 법. 난 의원 자격조차 없는 자일세."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원사께서는 황실의 마지막 남은 희망입니다. 원사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폐하를 낫게 한다는 말씀입니까? 부디 그런 말씀은 말아주십시오."

양경은 자괴감에 빠져있는 고량을 위로하기 시작하였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고맙구려."

"말 뿐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사께서는 중원 최고의 의원이십니다. 그런 원사가 고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폐하를 고칠 수 없을 것입니다."

양경은 확신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고량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 말이 맞네. 내가 아니면 누가 폐하를 낫게 하겠는가."

양경의 위로를 등은 고량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을 하였다.

그의 말을 들으니 어느정도 자신이 회복된 까닭이었다.

자신은 중원 최고의 의원이었다.

자신이 아니면 대체 누가 정문제를 고칠 수 있겠는가

"이럴 시간이 없네, 내 당장 탕약을 타러 가야겠군."

벌떡

이내 고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채 말을 이었다.

신세한탄이나 하며 허송세월을 하고 싶진 않은 까닭이었다.

"갔다오시지요. 폐하의 곁은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매번 고맙네. 우도어사."

말을 마친 고량은 곧바로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끼이이익

그리고 태의원 내부에는 양경과 정문제만이 남게 되었다.

"말 많은 늙은이야."

고량의 인기척이 사라지자 우도어사 양경은 싸늘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탕약이나 타러 갈것이지

나이도 처먹을 대로 처먹은 노인네가 위로를 바라며 징징대는 꼴이 썩 달갑지 않은 까닭이었다.

"폐하, 드디어 단 둘이 남게 되었습니다."

양경은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는 정문제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그리고 품 속에서 작은 옥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아직은 사태가 진정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좀더 누워계셔야겠습니다."

그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꽈악

그리고는 손을 뻗어 정문제의 입을 벌렸다.

주르르륵

그다음 옥병의 마개를 따버린 후 그대로 입에 흘려보내기 시작하였다.

단 한방울의 남김도 없이 전부 말이다.

"부디 좋은 꿈 꾸십시오. 폐하."

양경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

.

.

.

.

끼이익

태의원이 문이 열리고 탕약을 들고 있는 원사 고량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미안하구만, 내 자네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군."

고량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양경에게 사과를 하였다.

"아닙니다. 딱 적당한 때에 왔습니다."

그의 사과에 양경은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마침 갈 때가 되었거든요."

그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는 가보군."

"네에, 또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원사."

양경은 가벼이 목례를 한 뒤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알았네, 조심히 가보도록 하게나."

고량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었다.

끼이이익

이내 양경의 신형은 바깥으로 사라졌고 문이 완전히 닫히게 되었다.

"참으로 충신이야....충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량은 연신 감탄을 하며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탕약을 식힐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뜨거운 탕약을 곧바로 먹였다간 정문제의 입 천장이 그대로 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끼이이익

그때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뭐 놓고 간 것이라도 있는겐가?"

그 소리를 들은 고량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말을 내뱉었다.

양경이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응?"

하지만 이내 그의 표정을 의구심으로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개방된 문에는 서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람에 열린 건가?'

하지만 이내 고량은 고개를 좌우로 살짝 내저었다.

잔바람에 열릴 정도로 가벼운 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실내에 바람 따위가 불리 만무하지 않은가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이내 문은 다시금 닫히게 되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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