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4화 〉 815. 북경 폐쇄
"그게 사실입니까?"
선우는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각 성을 물론 현까지 정식 공문이 날아들었다고 합니다."
도지휘첨사 주태는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제남에 들린 김에 현령인 곽산을 만나고 온 주태였다.
기관에서 별다른 공문이 내려온 건 아닐까
염탐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곽산을 만나고 주태는 경악스러운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바로 황제가 의식불명에 빠졌다는 소식이었다.
주태는 경악을 하게 되었고 곧바로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선우에게 달려오게 된 것이다.
'.........황제가 쓰러졌다라..... '
선우는 턱을 매만지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무척이나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일찍이 혈풍을 예견하였다.
도지휘사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과
증거인멸을 위해 황제가 임명한 신하를 습격했다는 사실이
황제의 귀가 들어가게된다 시원스러운 물갈이가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황제가 쓰러져버렸다.
금의위가 도지휘사를 습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말이다.
어찌 공교롭다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쓰러지신 겁니까?"
선우는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궁녀가 폐하께서 즐겨마시는 산매탕에 무언가를 알 수 없는 짓을 하였고 그 산매탕을 마신 직후 곧바로 의식불명에 빠졌다고 합니다."
"독을 탄겁니까?"
"독은 아니라고 합니다......독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배후는 알아내었답니까?"
"궁녀가.....죽기 전 황태자 전하를 배후로 지목하였다고 합니다."
"황태자 전하를 말입니까?"
"그러합니다."
"...그렇다면....황태자 전하께서는 지금 구금되어 있겠군요."
"그렇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주태는 굳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상황이 무척이나 공교롭군요."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황제 폐하는 의식불명에 황태자 전하는 구금되어버렸다니 말입니다. 그것도 하필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말입니다."
탁 탁
선우는 뇌물 장부를 두어번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들을 처벌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 의식불명에 빠지거나 구금이 되었다.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어찌 공교롭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을.....의심하시는 것입니까?"
도지휘첨사 주태는 긴장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선우는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말도...안됩니다......부정을 감추고자.....폐하에게 위해를 가한다니...그건...반역이나...다름없는......"
"잊으신 것입니까? 그들은 이미 반역자들입니다. 살기위해 마지막으로 발악을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지요."
선우의 눈빛이 차갑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그는 확신하였다.
황제가 의식불명에 빠진 것은
장부 속에 있는 인물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이런 작위적인 우연 따위가 존재할 리 만무할테니까 말이다.
".......그..그런.."
주태는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경화군주부터 만나봐야겠습니다."
선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소화에게 상황을 전달해야할듯 싶었다.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를 지금 상황을 말이다.
***********
"말도 안되는 일이다!"
경화군주, 능소화는 대번 고함을 내질렀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황태자 전하는 암살 따위를 저지를 분이 아니다! 애초에 황태자 자리도 달가워하지 않는 분이거늘! 어찌 폐하께 해하려고 든다는 말인가! 이것은 음모가 분명하다!"
능소화는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
"소화야......일단 진정을...:"
"내가 진정하게 생겼는가! 할아버님은 쓰러지셨고 백부님께서는 용의자로 구금이 되어있다! 어찌 진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진정할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누구보다 소중한 가족들이 해를 입었다.
누군가 꾸민 음모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어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는 말인가
"당장 황실로 갈 것이다! 그리고 추악한 음모를 꾸민 범인을 색출하여 삼족을 멸할 것이다!"
능소화는 살의로 가득한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거 위험한데...'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불안감을 느꼈다.
지금껏 그녀는 주화입마를 겪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까지 격렬한 살의를 내비친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끝도없이 미워하기엔 너무나 상냥한 마음씨을 가지고 있는 탓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현경인 자신조차 오싹하게 만들정도의 살의를 내뿜기 시작하였다.
어찌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덥석
선우는 손을 뻗어 가냘픈 그녀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소화, 냉정을 찾아. 너무 흥분했어."
그리고는 한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본녀는 지금 어느 때보다 냉정한 상태이다!"
"거짓말! 냉정한 사람이 다짜고짜 황실로 쳐들어갈 생각을 해?"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한 결론이다!"
능소화는 지지않겠다는듯 언성을 높였다.
"전부 다 죽이면 되는 것이다! 감히 황족을 능멸한 모두를 말이다!"
그녀의 눈에 피어오른 살기는 여전히 끝없이 차오르고 있었다.
부웅
쿵
"아아악!"
능소화는 비명성을 내질렀다.
머리에서 상상이상의 고통이 전해진 까닭이었다.
"이게 무슨....짓이더냐...반쪽이여.."
능소화는 글썽이는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갑작스럽게 머리를 들이받은 선우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살기가 짙어."
그녀의 이마를 들이박은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이성적인 판단이야. 분노로 점칠된 살의가 아니라."
선우는 짐짓 꾸짖듯이 말을 내뱉었다.
"냉정을 유지해, 그리고 적이 누군지는 제대로 파악해. 분노 표출은 그 다음이야."
".............."
능소화는 입을 꾹 다물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하다.....반쪽이여......본녀가 필요이상으로 흥분하였도다."
소화는 축 처진 표정을 지은 채 사과를 하였다
"괜찮아, 지금은 이렇게 이성을 찾았잖아?"
선우는 그녀의 매끈한 볼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고맙도다......그대는 항상 본녀의 실수를 깨닫게 해준다.......그대가 본녀의 반쪽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하다."
능소화는 애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나도 네가 내 반쪽이라는 사실이 너무 좋아."
쪽
선우는 부어오른 능소화의 이마에 입을 가볍게 맞추었다
".......아프도다."
능소화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입을 맞추면서 이마에서 상당한 고통이 전해진 까닭이었다.
"아, 미안. 입맞추기 좋게 부어있길래."
선우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대는 나쁘도다!"
그 말을 들은 능소화는 토라진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난이야. 장난."
능소화의 토라진 반응에 선우는 그녀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쓰다듬었을까
"특별히......용서해주기로 하겠다.....그대가 본녀의 실수를 바로 잡아주었으니 말이다."
"이거 영광이네."
"대신 한 가지 약속해다오."
"무슨 약속?"
"폐하와 전하를 저리 만든 범인들에게 같이 천벌을 내려주겠다고 말이다."
능소화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이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너의 적이 곧 나의 적인데.......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선우는 확신에 가득한 눈빛으로 능소화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약속할게. 그들에게 천벌을 내려주겠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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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을 가는 길목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낭방.
그곳에 수많은 군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잘 제련된 창과 갑옷을 장착하고 있는 병사들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준마를 탄 지휘관들
그렇게 얼마나 모여들었을까
이내 낭방은 가히 대군이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군사들로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무슨...일이지?!"
"대체..전쟁이라도 난 건가?!"
낭방 지역민들은 두려움이 가득한 모습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수백 수천도 아니고 수만에 이르는 대군이었다.
그런 대군이 낭방을 가득 채우니 불안감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그렇게 낭방 지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였다.
"낭방현이 어디지?'
선두에 서있던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이쪽 길을..따라.. 쭉 가시면 되옵니다."
그의 물음에 낭방 지역민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을 하였다.
"그런가."
대답을 들은 남자는 그대로 말을 몰아 앞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타타탁 타타탁
그때 어디선가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지역민들은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땀을 줄줄 흘리며 뛰어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말이다.
바로 낭방의 현령인 하도일이었다.
"허억..허억..허억....반갑습니다...낭방의 현령인 하도일이라고 합니다......."
어느새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의 코앞까지 도달한 그는 거칠게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반갑네. 오군도독부의 좌도독 설수범이라고 하네."
좌도독 설수범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도독을 뵙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하도일은 재빨리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서있는 자라는 것 정도는 어느정도 짐작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좌도독이었다니?
허리가 절로 숙여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리를 들게. 과례는 사양하지."
"알..알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하도일은 재빨리 허리를 일으켜세웠다.
"일단 현으로 안내해주겠나? 내 긴히 할 말이 있어서 말일세."
"저..저만 따라오십시오! 좌도독! 곧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하도일은 몸을 돌려 곧바로 안내를 하기 시작하였다.
현령으로서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굴욕스럽긴 하였지만 그는 설수범의 제안을 결코 거절치 못하였다.
정1품에 해당하는 권력자의 말을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설수범은 현령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현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
"자..자리에 앉으시지요.."
어느새 현으로 도착한 하도일은 설수범을 집무실로 안내하였다.
현에서 그나마 가장 정갈한 곳인 까닭이었다.
"고맙네."
설수범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털썩
그리고는 곧바로 자리에 앉아버렸다.
"차...차라도 드시겠습니까?"
"되었네. 내 차보다는 자네와 대화를 먼저 나누고 싶군."
설수범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을 하였다.
"알..알겠습니다...그럼..차는 준비시키지 않겠습니다."
하도일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을 하였다.
그리고 설수범에 맞은 편에 조심스레 착석을 하였다.
"................"
그리고 집무실 안은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화를 하자면서......왜 입을 다물고 있는거야..'
하도일은 답답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대화를 나누고자 찾아왔다면서 아교를 바른 것마냥 입을 다물고 있는 설수범의 태도가 답답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내가...말해야하는 건가? 뭐라도 말해야 하나?'
하도일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질문을 해야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렇게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당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설수범이 천천히 입을 떼어내었다.
"네에..?...그게 무슨..?"
"갑자기 수만에 이르는 병력들이 낭방에 모여들었으니 말일세."
"아...예에...살짝..당황하긴..하였습니다.."
하도일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부디 이해해주길 바라네.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서 이리 된 것이니 말일세."
"......피치 못할...사정이란게.....무엇인지...알 수 있겠습니까?"
하도일은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대체 무슨 사정이 있길래
대군을 주둔시키는 지 의아함이 든 까닭이었다.
"자네도 공문을 받았을 걸세. 폐하께서 쓰러졌다는 공문을 말일세."
"예에....분명 받긴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정확한 배후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일세. 범인이 배후로 태자를 지목하긴 하였지만 그리 신빙성이 깊진 않아서 말일세."
"그..그렇군요.."
"해서 조정 회의를 통해 제대로 된 배후가 잡힐 때까지 북경을 완전히 폐쇄하도록 결정하였다네."
"폐쇄..말씀입니까?"
하도일은 놀란듯 되물었다.
설마하니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쓸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네. 시기를 놓친다면 자칫 배후가 도망갈 염려가 있으니까 말일세."
"그렇다면.....낭방에 대군을 주둔시킨 이유는..?"
"맞네, 북경의 완전한 폐쇄를 위해서일세."
설수범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배후가 밝혀지지 않는 한 북경에는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고 그 누구도 나가지 못하게 될걸세."
설수범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오싹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하도일은 등골이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와도 같은 기세를 느낀 까닭이었다.
하도일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설수범의 눈빛은 충성스러운 군인이 가지고 있는 눈빛이라기엔 너무나 흉악한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