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3화 〉 814. 삼권 분립.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황태자는 억울하다는듯한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위대한 황제이기전에 누구보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다.
그런데 어찌 그런 아버지를 해하려고 한다는 말인가
"양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일단 진술이 그렇게 나와버렸으니......저희는 태자 전하를 구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명월이란 계집을 데려오너라! 내 직접 대면을 해야겠다!"
"애석하게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뭐라!? 지금 그 앙큼한 계집을 숨기는 것이더냐!"
"그녀는 죽었습니다."
"뭐라!?"
"자백을 끝으로 기력이 전부 쇠하였는지 숨을 쉬지 않더군요."
"........그럴 수가.."
황태자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유일한 범인이 죽어버린 이상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니다. 지휘사! 내가 어찌 아바마마를 해하려고 하겠느냐!"
황태자는 다급한 어조로 결백을 주장하였다.
깜빡하다간 반역죄로 몰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물론 믿습니다. 세상이 다 아는 효자인 황태자께서 그런 짓을 저지를 리 만무하지요."
유중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그렇다면!"
황태자는 화색을 띈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사건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합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라고 해서 가능성이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곧이어 유중기가 차가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진짜..아니다..나는...아니란..말이다."
황태자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자신을 믿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저 또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단 드러난 정황이 이러니 수사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결백이 증명될 때까지만 저희와 함께하시지요."
"........그....그런."
황태자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범인으로 지목된 이상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결백은 금방 증명될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지요."
유중기는 담담한 눈빛으로 황태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눈빛으로 요사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
자금성 동부에 위치한 무영전
수 많은 대신들이 커다란 탁자를 둘러싼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자칫 말이라도 한 번 잘못 꺼냈다간 호통이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끼이이익
갑자기 무영전의 입구가 열리기 시작하더니
한 바위처럼 단단한 인상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금의위의 지휘사 유중기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설수범은 면면을 둘러보며 정중히 사과를 하였다.
"아닐세, 갑자기 소집령을 내린 내 잘못이지."
그러자 상석에 앉아있던 승상 한태선이 입을 떼었다.
"일단 자리에 앉게, 회의를 시작하지."
한태선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털썩
유중기는 비어있는 곳에 그대로 앉아버렸다.
"오늘 그대들을 소집한 이유는 미뤄지고 있는 국정 업무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어서라네."
한태선은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모두 알다시피 폐하께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신 지 벌 써 닷 새가 지났네. 하지만 아직도 폐하가 병명에서 대해선 알아낸 바가 없다네. 게다가 유일한 단서가 돨 범인은 고문 도중 사망을 하였네. 폐하가 언제 깨어날 수 있을 지 아무도 장담 못하는 상황이지."
한태선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본래라면 태자 전하께서 폐하를 대신하여 국정 업무를 맡았겠지만 현재 태자 전하는 배후로 지목된 탓에 금의위에 구류되어있는 상황일세. 국정 업무를 맡을 만한 이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지. 해서 폐하께서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 누군가 국정을 도맡았으면 하는데,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
한태선의 물음에 장내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의 뻔한 의도가 느껴진 까닭이었다.
스스로를 지칭하진 않았지만 그의 속뜻은 국정을 도맡고 싶다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황제와 황태자를 제외한다면 가장 높은 위치에 선 이가 바로 승상직을 맡고 있는 한태선이었다.
국정을 도맡을만한 명분과 설득력이 충분한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대신들은 그의 말에 동조하기 보단 침묵을 하였다.
국정을 맡는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황제가 가진 무소불위 권력이 그대로 이양된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일개 승상이 쥐기엔 너무나도 거대한 권력이었다.
그렇기에 함부로 동의할 수 없었다.
한태선의 세력이 거대해지는 것을 막기위해서라도 말이다.
'역시 견제를 하는군.'
한태선은 눈을 가늘게 떴다.
쉽사리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예상한 바였다.
이 권력에 미친 놈들이 자신에게 권력이 편중되는 꼴을 냅둘리 만무한 것이다.
'어떻게.....꼬여낸다.'
한태선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마음 같아선 억지로라도 국정을 도맡겠다고 선언하고 싶었다.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잠시나마 쥘 수 있다면 그 영향력은 그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독단적인 결정은 불가하였다.
만약 그리 한다면 저들끼리 담합할 명분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한태선은 고심하고 또 고심하였다.
저 승냥이 같은 놈들 꼬여낼 방법을 말이다.
"저 또한 승상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국정을 허투루한다면 백성들의 고난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적임자를 찾아 국정을 운영하게 하는 편이 나을듯 싶습니다."
잠자코 있던 도찰원 우도어사 양경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한태선의 의견에 찬성을 하고 나선 것이다.
"저는 반대입니다!"
그때 병부상서 오방원이 다급히 언성을 높였다.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폐하께서 가지고 계신 절대적인 권력을 잠시나마 쥐게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찌 일개 신하가 된 입장으로서 그런 건방진 짓거리를 한단 말입니까?"
오방원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눈독조차 들이지 말라고 경고를 하는 것이다.
"그럼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폐하를 기다리면서 국정을 미뤄둔다는 말씀입니까? "
앙경은 그런 오방원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저 천자가 아닌 한낱 신하에게 권력이 편중되는 것을 원치 않을 뿐입니다."
"그럼 국정 운영은 어떻게 한다는 말씀입니까?"
"대신들 간의 의견을 조율하며 국정을 운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 조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양경은 곧바로 반발을 하였다.
대신들 간의 의견 조율이라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위정자들 사이에서는 이해 관계가 무척이나 복잡하게 얽혀져있었다.
때에 따라서 적이되기도 하고 아군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의견을 조율하여 국정을 운영하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지금껏 의견이 조율되었던 것은 결정권자였던 폐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폐하가 부재한 지금 대신들 간의 의견을 조율하겠다니요? 어불성설입니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 아니오!?"
"해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의견 조율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정 운영은 차일피일 미뤄지게 될 것입니다."
"권력이 누군가에게 편중되는 것보단 그 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국정 운영이 원활하지 않다면 고통 받는 것은 백성들입니다!"
"우도어사께서 언제부터 그리 백성들을 아꼈는지 궁금하군."
"말이 심합니다! 병부상서!"
"내 틀린 말 하였소? 평소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제 유리할 때만 백성을 걸고 넘어지는 게 눈에 너무 잘보이는 구려."
오방원은 비아냥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양경은 이를 갈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 모두 감정이 고조된 모습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난 찬성할 수 없소. 한낱 신하에게 천자天子를 대신할 수 있는 권력이 이양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하고 불경한 일이오. 어찌 신하된 입장에서 그런 불경을 저지르겠소?"
오방원은 확고한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타협따위는 하지 않겠다는듯한 표정이었다.
"....상서 어른께선 국정이 차일피일 미뤄진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말입니까?"
"내겐 국정보단 천자에게 불경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우선이오."
"폐하께서는 백성들이 고통 받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권력이 이양되는 것 또한 원치 않을 걸세!"
이내 두 사람은 다시금 격렬한 논쟁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논쟁이 이어졌을까
"방법이 있습니다."
그때 잠자코 있던 좌도독 설수범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러자 좌중의 시선이 그에게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시선에는 의문이 가득 들어있었다.
"두 사람의 의견을 모두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설수범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양립할 수 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좀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오."
병부상서는 이해가 가지않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사안을 양립할 수 있다고 말하니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국정을 맡기되 권한을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권한을 축소시킨다?"
"그렇습니다. 애초에 상서께서 걱정하는 사안은 과도한 권력의 편중이 아니겠습니까? 그게 문제가 된다면 권력을 쪼개버리면 될 일이 아닙니까? 군사와 사법 그리고 행정 이렇게 세 가지로 권력을 완전히 분리시킨 후 각 각 책임자를 앉히면 되지 않겠습니까?"
설수범은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책임자가 생기기에 국정이 미뤄질 일은 없을 것이고 폐하가 아닌 한낱 신하에게 권력이 편중될 일 또한 없을 것입니다. 가히 모두가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오호.....세가지 권력을 분립한다라....나쁘지 않은 의견이오."
그 말을 들은 병부상서는 꽤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대로 한다면 권력의 편중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국정 또한 효율적으로 돌 볼 수 있었다.
말그대로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합의점이 되는 것이다.
"....저 또한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편이 오히려 좋은 것 같군요."
우도어사 양경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찬성을 하였다.
그 또한 설수범의 의견이 마음에 든듯하였다.
"다른 분들 의견은 어떻소?"
설수범은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내뱉었다.
"권력을 분립시킨다니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혹여 패악질을 부린다하더라도 다른 쪽에서 충분히 견제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편이 나을 듯 싶습니다. 천자를 대신하다니 어불성설이지요."
대신들은 설수범의 의견에 찬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꽤나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승상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설수범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한태선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나 또한 나쁘지 않은 의견이라고 생각한다네...."
한태선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물론 속내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걸 그대로 표출할 수는 없었다.
권력을 대놓고 탐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테니까 말이다.
"승상께서도 마음에 드신다니 무척 다행입니다."
설수범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이 수긍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그가 수긍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였으니 말이다.
"그럼 이제 다같이 의논하도록 하지요. 각 권한에 걸맞는 적임자를 말입니다."
설수범은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대신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차피 결정된 사안이라면 곧바로 처리하는게 나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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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황제의 무소불위의 권력은 세 사람이 나눠갖게 되었다.
행정은 승상인 한태선에게
사법은 우도어사인 양경에게
그리고 군사는 좌도독 설수범에게
완전히 이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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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 객잔
촤르르르
선우는 침대에 누운 채 뇌물 장부를 빠르게 훑어보기 시작하였다.
대충 보는 듯 하였지만 인간의 한계에 다다른 동체시력은 장부 속에 있는 내용을 단 한 글자도 놓치지 않았다.
"이야......이 새끼들 많이도 해처먹었다."
선우는 감탄했다는듯이 말을 내뱉었다.
상상이상으로 해처먹은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현대나 중원이나 정치인들 해처먹는 건 똑같구나.'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시대만 따지면 수백 년은 더 날텐데.
뇌물 받아처먹고 모른 척 입닦는 건 너무나 똑같았기 떄문이었다.
'황제한테 건네주면 피바람 좀 불겠네.'
선우는 확신하였다.
자신이 황실에 입성하는 날
숙청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만큼 파급력이 강한 장부였으니 말이다.
똑 똑 똑
그때 갑자기 누군가 다급히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누구십니까?"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소인 주태입니다! 부마도위!"
그러자 도지휘첨사 주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십시오."
벌컥
선우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거칠게 열어젖혀졌다.
그리고 주태가 방 안으로 다급히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선우는 그런 주태를 바라보며 물었다.
"부마도위, 큰...큰일 났습니다!"
"큰일이요?"
선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폐하께서 의식을 잃고 쓰려졌다고 합니다!"
"폐하께서요!?"
선우는 놀란듯 되물었다.
황제가 쓰러지다니?
별안간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