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1화 〉 812. 어려운 결정
제국에서 궁녀의 삶이란 무척이나 비참하였다.
궁녀들은 대체적으로 10살 안팎으로 입궁하여 각종 잡일을 하며 수습 궁녀로서 삶을 보낸다.
그리고 어느정도 나이가 차면 정식 궁녀로 인정되는 데 그 후에는 능력에 맞게 각 부처에 배치되어 그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평생토록 일만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한 번 황실에 발을 내딛으면 다시는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으며
황제의 눈에 띄지 않는 이상
남자와 손 한 번 잡아볼 수 없는 비참한 삶을 이어가게 된다.
황실에 입성한 이상
황제의 여인이라는 족쇄가 궁녀들을 옥죄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서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
그것이 바로 궁녀들이었다.
하지만 어찌 사람의 의지로 본능을 끊어낼 수 있겠는가
승은을 받지 못한 궁녀들 중에서는 끓어오르는 정욕을 참지 못하여 부정을 저지르는 이들이 허다하였다.
홀어미 심정은 홀아비가 잘안다고
거세가 당하여 남성성을 상실한 환관과
궁녀로서의 삶에 의해 여자로서 살지 못하는 궁녀 간의 궁합은 상당히 잘맞았고
양자 합의하에 애인 관계가 되는 경우는 무척이나 흔하였다.
서로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태감, 소녀를 찾으셨나요?"
궁녀 명월은 무척이나 살가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오랜만에 보는 애인과의 모습이 무척이나 살가운 탓이었다.
"그래, 잘 지냈더냐?"
위국현은 짐짓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을 내뱉었다.
"소녀는 태감을 그리워하느라 한숨도 이루지 못하였답니다."
명월은 온몸을 배배꼬며 말을 이었다.
한껏 교태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안하구나, 내 미리미리 챙겨주었어야했거늘.."
위국현은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잊지 않고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소녀는 크나큰 행복을 느낀답니다."
명월은 꽃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우리 월아는 미색만큼이나 마음씨도 곱구나."
"부끄럽사옵니다."
"자자, 자리에 앉거라. 오랜만에 우리 월아의 이야기 좀 듣도록 하자."
"예에, 태감."
명월은 해맑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간 궁에서 겪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병필태감은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대화를 나눴을까
"명월아."
짐짓 위국현은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네에, 말씀하시지요. 태감."
"궁 밖에 가족들은 잘지내고 있다고 하더냐?"
"네에, 병필태감께서 보살펴준 덕분에 다들 잘지내고 있답니다.
명월은 꽃같은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위국현의 도움으로 풍족한 삶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이 생각난 까닭이었다.
"이번에 둘째가 학당에 들어갔대요. 그것도 청월학당이라고 하남에서 꽤나 유명한 곳이라고 하더라구요...전 공부와 연이 없었는데......아무래도 둘째는 저랑 달리 머리가 무척 좋은가봐요. 그리고 셋째는 이번에 금룡관이라는 무관에 들어갔대요. 무공을 배워 장차 장군이 되는 게 꿈이라고 하더라구요. "
명월은 환한 미소를 형제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비록 자신은 궁에 갇혀사는 관상용 꽃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지만
자신의 달리 형제들이 꿈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할 나위 없는 뿌듯함이 들었다.
"아무래도 가족들이 잘지내고 있는듯 하구나."
위국현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모두 모두 태감덕분이에요. 정말 감사드려요...제게..애정을 주셔서...제 가족들에게...원조를 주셔서요."
명월은 감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후우.."
그때 갑자기 위국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태감...제가 무슨 말 실수라도?"
그 모습을 본 명월은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혹여 위국현의 심기를 거스른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 까닭이었다.
"내....이런 말을 해야할지..말아야할지...상당한 고민을 하였느니라.....하지만 아무래도 네게 먼저 말해야할듯 싶구나."
위국현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대체...어떤..?"
명월은 긴장 어린 시선으로 위국현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아무래도 네 가족에 대한 지원을 더 해줄 수 없을 것 같구나."
"네에!?"
명월은 놀란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미안하구나."
"어..째서..?...아니..소녀가 잘못한 건가요?...죄송해요....소녀가 주제를 넘게 굴었던 점이 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죄송해요...죄송해요...부디..용서해주세요...태감...소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오.."
명월은 눈시울을 글썽이며 말을 이었다.
이대로 버림받는 게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온몸에 엄습해왔기 때문이었다.
위국현의 도움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가족들이었다.
둘째는 관리가 되기 위해 학당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셋째는 장군이 되기 위해 무관에 들어가 육체를 단련하였다.
가난한 양민집안이 이제는 관리라는 꿈을 꿀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 지원을 해줄 수 없다니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소리였다.
"네 잘못이 아니란다."
위국현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럼...어째서...어째서..그러는 거죠?"
명월은 눈시울을 붉힌 채 그에게 물었다.
"........후우."
그 물음에 위국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지원을 해줄 수 없다는 건 네가 미워서가 아니란다......지원을 해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기 때문이다."
"대체..그게..무슨..?
"내 역모를 저질렀다."
"네에에?!"
"며칠 안으로 목이 달아나게 될 것이다."
위국현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명월은 경악 어린 표정을 짓기 시작하였다.
역모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역..모라뇨..? 태감...농이시죠?...농이 맞지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
하지만 위국현은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사실이라는 소리였다.
"어찌..어찌..그런 짓을.!?"
그리고 그 뜻을 알아차린 명월은 언성을 높였다.
역모를 꾸미다니
어찌 그런 짓을 저지른다는 말인가
"나도....처음부터...그럴 의도는 아니었단다....그저 단 한번의 실수가...나를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아넣은 게지.."
위국현은 담담한 어조로 그녀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도지휘사에게 뇌물을 받았던 일
도지휘사가 경화군주에 의해 실각이 되었던 일
증거인멸을 위해 황제의 신하에게 손대려고 하였던 일까지 전부 말이다.
"................"
명월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에 말을 잇지 못한 까닭이었다.
"네게는 미안하구나....좀더.....잘해주고 싶었는데....이렇게..되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한 가지만 알아두렴....네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위국현은 침중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뭐..뭔가....방법이..방법이..있을거예요...이대로..이대로...돌아가실 순 없어요...아...그...황제 폐하께 사실대로..고하는거예요...그러면..폐하께서도.."
"삼족을 멸하실 것이다. 황권에 반하는 자들을 용서치 않는 분이니까 말이야."
"그럼..다른..다른..방법이...분명.."
"미안하구나......아무리 생각해도 방법따윈 없더구나.."
"흐윽...흐극...흐윽...흑 흑 흑.."
이내 명월은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이자 사랑하는 연인이
죽어야한다고 생각하니 깊고 깊은 슬픔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태감이...죽는 건..싫어요...흐윽..흑...저도..같이..죽을..래요.."
명월은 연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무엇 하나 할 수 없다는 절망이 그녀를 괴롭게 만든 까닭이었다.
"정말 미안하구나...."
위국현은 그녀를 조심스레 달래기 시작하였다.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토닥였을까
"가족들에게 전하거라. 당장 이 나라에서 벗어나라고."
이내 위국현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네에?"
그 말을 들은 명월은 글썽이는 눈빛으로 위국현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역모죄로 처벌당한다면 분명 돈을 주기적으로 보낸 네 가족들 또한 온전치 못하게 될 것이다. 나와 관련된 자들이라면 전부 죽이고 볼테니까 말이다.'
".........그럴 수가.."
"너도 궁에서 벗어나도록 하거라. 네 목숨 또한 보전치 못할 것이다."
위국현은 충고하듯 말을 내뱉었다.
"...........태감......정말...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소녀가...할 수 있는 것이라면....무엇이든....하겠습니다...부디...가족들만큼은.......이 땅에 발붙이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오.....관리를..꿈을 꾸고 있는 동생들을 이대로....이역만리의 타국으로 보낼 수는 없어요....."
명월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흐음.."
그 말을 들은 위국현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리고는 심각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였다.
무언가 고민을 하는듯이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침묵을 하였을까
".........정말...무엇이든지 할 수 있더냐?"
"예에! 뭐든 뭐든 할 수 있어요!"
"......죽을 수도 있다......감당할 수 있겠느냐?"
"이미 궁인으로서 살며 인간다운 삶을 포기한지 오래입니다. 가족들만 행복할 수 있다면 죽음 따윈 두렵지 않습니다."
명월은 의지가 담긴 눈빛으로 위국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후우.......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 또한 어쩔 수 없구나."
위국현은 품속에서 작은 옥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톡
그리고 조심스레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혼원초를 갈아만든 약이니라."
"혼원초요?
"섭취자를 일시적으로 가사 상태로 빠지게 만드는 약이다."
"그런데...이걸 왜?
"이걸 황제에게 먹일 수 있겠느냐?"
"폐하께 말인가요!?"
그녀는 놀란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황제에게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약을 먹이니라니
이거야말로 역모가 아니던가
"무..무리예요...폐하께서는 무언가 섭취 하기 전 미리 맛보는 시선태감을 대동하십니다....그런데..어찌 이런 걸 먹일 수 있겠어요?"
명월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을 내뱉었다.
예로부터 황제의 곁에는 시선태감이라고 불리우는 관리가 있었다.
황제가 음식을 맛보기 전 직접 음식의 맛을 보거나 은으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하여 독의 유무를 파악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하는 관리인 것이다.
그런 자를 대동하는 황제에게 어찌 이런 약을 몰래 먹일 수 있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걱정 말거라. 혼원초는 즉효성을 가진 약이 아니기에 시선태감을 대동한다고 해도 들킬 염려는 없을 것이다."
위국현은 걱정말라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명월은 여전히 불안감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이걸 먹이게 된다면 모든 것들이 네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네 가족들은 목숨을 구함받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풍족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둘째는 관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셋째는 장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리 만들테니까 말이다."
병필태감 위국현은 뜨거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장인(奬人)에 소속된 너만이 거사를 치를 수 있는 것이다."
".............."
위국현의 말을 들은 명월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고심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제안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정말......제...가족들은...안전할 수 있는 건가요?"
"약속하마."
"명진이는....관리에......명강이는..장군이 될 수 있는 건가요?"
"나이가 찬다면 내 없는 자리라도 마련해주도록 하겠다."
위국현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좋아요......할게요."
그리고 이내 명월은 결심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죽는 건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의미가 있는 죽음이라고 생각하니
그 두려움이 조금은 가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선택한 것이다.
희생으로 하여금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결말을 말이다.
"어려운 결정을 하였다."
위국현은 그런 명월을 양손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그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 차 있었다.
".......언제 먹이면 되는 건가요?"
명월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정확히 사흘 뒤 오시. 황제는 황태자 내외와 오찬이 있을 예정이다."
그녀의 물음에 위국현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그 날 황제가 음용하는 찻잔에 혼원초를 타도록하라. 아무도 모르도록 은밀하게 말이야."
위국현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그 후 저는...곧바로..자결을 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 그래선 안된다. 넌 기다려야한다. 금의위에서 널 잡아갈 때까지 말이야."
"금의위...말인가요?"
"그렇다, 널 잡아간 금의위들은 곧바로 고문을 시작할 것이다. 주구가 누구인지.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말이야."
"그렇다면 전 어떻게 해야하나요."
"견디고 견디거라......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엄습해도 견디고 견디거라......그리고 도저히 못 버틸 것 같을 때, 한 사람을 언급하거라."
위국현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렸다.
"네게 사주한 인물은 황태자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