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8화 〉 809.반갑다. 역적놈의 새끼들아.
"제기랄!"
스르릉
도지휘첨사 주태는 그대로 검을 빼어들었다.
순순히 당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차를 기점으로 방진을 짜라!"
도지휘첨사 주태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소리를 내질렀다.
척 척 척 척
그러자 수십 명의 병사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더니
그대로 마차를 둘러싸버렸다.
"용감한 건가? 아니면 어리석은 것인가? 상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모습을 본 금의위 교위 서량은 비웃는듯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순순히 목을 내놓을 생각 따윈 없소이다!"
주태는 핏발 선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어리석은 짓이다. 그저 이검한과 장부만 넘기기만 한다면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고 끝낼 수 있거늘 어찌 목숨을 거는가?"
서량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마치 회유를 하듯이 말이다.
"맞네, 동지휘첨사....우리 그냥 이검한과 장부만 넘기세......보아하니 우리에게까지 손댈 생각은 없어보이지 않나?"
그의 제안에 혹한 도지휘동지 장걸은 주태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보아하니 자신들에게까지는 손댈 생각이 없어보였기 때문이었다.
"저 말을 믿으시면 안됩니다! 저들은 애초에 저희를 살려둘 생각따위는 없습니다!"
주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니, 어찌 사람이 그리 믿음이 없는가? 설마 금의위가 약속을 어기겠는가?"
장걸은 답답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기껏 살 궁리가 생겼거늘
어찌 저런 막말로 금의위를 자극한다는 말인가
"잊으셔선 안됩니다. 도지휘동지. 저들은 이미 황제 폐하와의 신의를 저버린 이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주태는 확고한 눈빛으로 장걸을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황제와의 신의마저 저버린 이들이었다.
자신들과 약조따위를 지켜줄 리 만무한 것이다.
"저들은 그저 장부와 이검한을 안전히 확보하고 싶을 뿐입니다! 얄팍한 수작에 넘어가선 안됩니다!"
"....그..그런.."
장걸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듣고보니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검을 빼어드십시오! 도지휘동지! 적어도 팔 한짝은 가져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주태는 장걸을 종용하기 시작하였다.
"제..제길!"
스르릉
장걸은 옆구리에 매어져있는 검대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앞쪽에 있는 금의위를 향해 그대로 겨누어버렸다.
"용기와 만용조차 구분 못할 정도로 머저리일 줄은 예상치 못하였군."
금의위교위 서량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쉬운 일처리는 물건너간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머저리는 네놈이다! 어찌 폐하의 친위대라는 작자들이! 폐하의 명조차 받지 않는 채 멋대로 움직인단 말인가! 이건 반역이다!"
주태는 북받쳐오른 감정을 그대로 터트렸다.
"알 수 없다면 그건 죄가 되지 않지요."
서량은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부들 부들 부들
그 말을 들은 주태는 얼굴을 부들부들 떨었다.
뻔뻔한 그의 말에 화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스르릉
그때 서량은 검대에서 천천히 검을 빼어들었다.
"쳐라."
그리고는 그대로 앞쪽을 바라보며 담담히 내뱉었다.
타타타탁
그러자 뒤편에 있던 금의위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주태와 장걸 그리고 병사들은 그런 그들을 향해 병장기를 뻗었다.
두 집단간의 난전이 시작된 것이다.
******
가장 처음 맞붙은 이들은 가장 선두에 서있었던 이들이었다.
병사의 길쭉한 창이 달려드는 금의위를 향해 뻗어나간 것이다.
병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창을 내질렀다.
쇄애애애액
바람을 꿰뚫는 소리와 함께 창이 뻗어나갔다.
'제발..제발 먹혀라!'
병사는 창을 내지르며 애원을 하였다.
부디 이 한 수가 통하기를 말이다.
서걱
하지만 그런 병사의 바램은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금의위의 검이 창대 끝쪽을 그대로 잘라버린 까닭이었다.
'아니!?'
병사의 눈이 휘둥그레해지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창날이 아닌 창대라지만 엄연히 철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쉽사리 베어져버린단 말인가
푹
"꺼윽!"
곧이어 검이 병사의 심장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병사는 의식이 흐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쑤욱
금의위는 이내 검을 곧바로 빼내었다.
쿵
그러자 병사의 신형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절명해버린 것이다.
"히이이이익!"
"흐윽!"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은 몸을 잘게 떨기 시작하였다.
어마어마한 공포가 전신을 휘감은 까닭이었다.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절명해버린 동료의 시체가 너무나 처참해보였기 때문이었다.
서걱
그때 또 다른 병사의 목이 날아가버렸다.
두려움에 떨다 그대로 목이 달아나버린 것이다.
"끄아아악!"
"아아아아악!"
이내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
.
.
.
.
챙
주태는 재빨리 검을 들어올렸다.
"오호, 한수 재간이 있군. 도지휘첨사. 절정 정도인가?"
그에게 검을 휘두른 서량은 재밌다는듯한 미소를 지은 채 물음을 던졌다.
"..........."
하지만 그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주태는 어떠한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그의 일검을 받아내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부들 부들 부들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이다.
"대답이 없구려. 말조차 섞기 싫다는 것인가? 아니면 일검을 받아내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연약한 것인가?"
서량은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주태가 자신의 일검을 받아내기 위해
온신경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대답할 여유따위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재밌었다.
지렁이를 밟으니 꿈틀거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퍽
그때 서량이 주태의 아랫배를 향해 발을 차올렸다.
"크으으으윽!"
주르르륵
그러자 주태의 신형이 사정없이 뒤편으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발에 담겨있는 경력을 도저히 버텨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잘 놀리던 입에 비해 형편없는 솜씨로군."
서량은 조롱기 어린 어조로 말을 이었다.
"꺼어억...꺼으윽.."
서량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주태는 속을 게워낼 뿐 어떠한 답도 못하였다.
내부로 침투한 경력이 내장이 뒤틀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스르륵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량은 가볍게 발을 튕겨 그의 지근거리에 접근을 하였다.
"장부는 어디있지?"
서량은 그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
주태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퍽
이내 그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버렸다.
"다시 묻지. 장부는 어디있지?"
".........."
퍽
이번엔 반대쪽이었다.
퍽
"장부는?"
퍽
"장부?"
서량은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하며
그를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거대한 폭력 앞에서도 주태는 굴하지 않았다.
장부를 넘기는 순간
모든 게 끝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퍽 퍽 퍽 퍽
시간이 지날 수록 고통의 세기는 더욱더 커져가기 시작하였다.
그저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온통 가득차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주태의 온몸은 피투성이로 완전히 변모해버렸다.
"독종이군."
서량은 귀찮음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상상이상으로 독종이었다
설마하니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고 있을 줄이야.
'아니면 똑똑한 것인가?'
아니면 머리가 잘돌아가는 놈일 수도 있었다.
장부가 자신들의 목숨줄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알고 있는 것이다.
"이봐, 도지휘첨사. 우리 솔직해지자고."
서량은 주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는 자네들을 살려둘 생각 따윈 없었다네. 이검한과 장부만 받고 그대로 살인멸구를 할 심산이었지. 그 사실은 자네도 잘알고 있었을 걸세. 그러니 이렇게 검을 빼들고 반항을 하였겠지."
".......역시...그랬군."
그의 말을 들은 주태는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살려둘 생각 따윈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네도 잘알고 있을 걸세. 장부가 자네의 목숨줄이라는 사실을, 지금까지 살고 있었던 게 장부덕분이라는 사실을 말일세. 그렇기에 이렇게 강짜를 부리는 게 아닌가?"
"............."
주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은 까닭이었다.
"하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줌세. 이건 기회라네. 자네들의 목숨만으로 모든 일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말일세."
"....그게.....무슨....말이지?"
주태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자신들의 목숨만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라니
어찌 목숨을 잃는 것이 기회가 된다는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자네들의 목숨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말일세."
서량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설..설..마!?"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주태는 경악 어린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최악의 가정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맞네, 이렇게 비협조적이라면 자네들 뿐 아니라 자네들의 가족, 가문까지 모두 말살할걸세. 멸족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닌셈이지."
서량은 살가운 미소를 띄운 채 말을 이었다.
"어..어찌...인두겁을 뒤집어쓰고!"
그 말을 들은 주태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고함을 내질렀다.
"애초에 우리는 휘둘러지는 칼에 불과하다니, 칼에게 감정이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서량은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따위 말로 네놈들의 반인륜적인 행위가 합리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저 합리화에 불과하였다.
칼이기에 반인륜적인 짓을 저질러도 된다니
그저 양심의 가책과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핑계에 불과하지 않은가
"뭐, 이해를 바라는 건 아닐세, 그냥 알고만 있으라는 거지."
서량은 대수롭지 않은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쓰레기같은 자식!"
"뭐라고 칭하든 자네 맘대로 하게나. 그보다 선택해주지 않겠는가? 장부를 내놓고 그 비루한 목숨으로 마무리할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반항하며 가족과 가문까지 모두 잃어버릴 것인지 말이야."
서량은 차가운 눈빛으로 주태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서량의 물음에 주태는 침묵을 하였다.
고심에 빠져든 것이다.
어떠한 선택을 해야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도지휘첨사! 장부를 넘기게! 가족만큼은....가문만큼은....존속시켜야하지 않겠는가!"
"장부를 넘겨주십시오! 가족까지 죽이고 싶진 않습니다!"
"아내가 다음달이 산달입니다! 부디 아내와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도지휘첨사!"
그때 여기저기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이미 제압을 당한 도지휘동지 장걸과 병사들이 애원하는 목소리였다.
가족과 가문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크그윽...흐으윽...으으...."
그들의 애원을 들은 주태는 괴로운듯한 신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었다.
'대체...나는...여기서..어떻게..'
장부를 순순히 넘긴다면 저 역적같은 이들에게 굴복하는 것과 다를바 없었다.
폐하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장부를 넘기지 않는다면 가족과 가문이 완전히 멸해지고 말 것이다.
저들은 그런 재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자들이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고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황실에 대한 충정
그리고 혈육에 대한 정
사이에서 말이다.
"도지휘첨사!"
"도지휘첨사!"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결정에 수백 수 천명의 목숨이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정신마저 혼미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고민을 하였을까
"나..나는.."
이내 주태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결심을 끝마친 것이다.
장내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의 입에 집중을 하기 시작하였다.
"거절하겠소."
주태는 이내 말을 내뱉었다.
거절의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장내에 있는 모든 이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 장성하여 지금까지 잘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제국이라는 거대한 울타리와 폐하의 보살핌이 있던 덕분이오. 내 어찌 이런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오?"
주태는 올곧은 시선으로 서량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충신이 납셨구만."
서량은 어이없다는듯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다음 천천히 검을 들어올렸다..
"자네는 분명 극락에 갈걸세. 먼저가 친지들이 오면 반겨주게나."
쇄애애애애액
그리고는 그대로 휘둘러버렸다.
그의 목을 향해서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주태는 눈을 감았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기 위해서 말이다.
'죽어라!'
서량은 생각하였다.
곧있으면 목이 완전히 떨어져내려가고
피분수가 터져나올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우지끈
이변이 일어났다.
휘둘러졌던 검이 그대로 휘어지면서 팔을 칭칭 감기 시작한 것이다.
'뭐..뭐야!?'
갑자기 일어난 기이한 현상에 서량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충신을 죽이면 쓰나."
그때 그의 귓가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그대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누구냐!"
서량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무척이나 화가 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말이다.
"반갑다. 역적놈의 새끼들아."
남자, 선우는 차가운 미소를 흘린 채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