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7화 〉 798.용서는 없습니다. 도지휘사.
덜 덜 덜 덜
이검한은 쉴새없인 온몸을 떨기 시작하였다.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가 그의 온몸을 감싸버렸기 때문이었다.
'어..어째서!? 어째서 군주께서 여기에!?'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경화군주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말이다.
그녀는 분명 주화입마를 다스리기 폐관 수련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 제남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인가
'설...설마..가짜!?'
하지만 이내 이검한은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겉모습을 흉내낼 수 있을 지언정
군림하는 자로서의 위엄만큼은 결코 흉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있는 여인은 군림하는 자였다.
만인의 위에 서있는 지배자인 것이다.
"참으로 엉덩이가 무겁구나. 그대는 본녀가 보이지 않는 것인가?"
그때 그의 귓가로 경화군주의 차갑기 그지없는 음성이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자신을 마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인사도 없는 이검한을 타박한 것이다.
"구..군주를 뵙습니다!"
그 음성을 들은 이검한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무례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되었다. 고개를 들라. 엎드려 절을 받아봤자. 그리 기쁘지 않구나."
"죄...죄송합니다...경황이 없어...무례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고개를 들어올린 이검한은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조심스레 말을 내뱉었다.
"그것 뿐이더냐?"
경화군주는 그런 이검한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무슨 말씀인지..."
이검한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네가 저지른 무례가 그것 뿐이냐고 물었다."
경화군주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움찔
그 눈빛을 마주한 이검한은 몸을 움찔 떨었다.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온몸을 수십 수천개의 바늘로 찌르는듯한 압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모..모르겠습니다...부디...가르침을.."
이검한은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을 견뎌내며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꽤나 재밌는 말을 하더구나."
경화군주는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설...설마...대화를!?'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검한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신분과 권력이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하였는가?"
"그..그러니까..그..게.."
"오군도독부를 비롯하여 동창, 금의위까지 그대의 돈을 받아처먹지 않은 자들이 없다고 하였는가?"
".....오..오해입니다!...군주.."
이검한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오해라.........전부 그대가 한 말이거늘 어찌 오해라 말하는겐가?"
경화군주는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그러니까..허세를 부린 것입니다! 그저.....겁을 주기위해..있지도 않는 일을 꾸며낸 것입니다!"
이검한은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수습을 하지않는다면 목이 달아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어째서 저자에게 겁을 주려고 한 것이지?"
경화군주는 한 자리에서 얌전히 서 있는 선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자는...황실의 관리인 도지휘첨사와 도지휘동지에게 해를 가한 반역자입니다! 제 몸에 위해를 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필요이상으로 과하게 허세를 부렸습니다!"
이검한은 말을 요리조리 둘러대기 시작하였다.
선우에 대해 자연스레 깎아내리면서 말이다.
"그래?"
경화군주는 수긍한듯 대충 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천천히 선우를 바라보았다.
"그대는 반역자인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도지휘첨사와 도지휘동지를 해하였는가?"
"먼저 검을 휘두르기에 살기 위해 대응을 한 것 뿐입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경화군주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이검한을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하는군?"
그다음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전..전부 거짓말입니다! 먼저 공격을 가한 것은 저자입니다! 군주시여! 속지마십시오!"
이검한은 발악하듯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도지휘사."
경화군주는 그런 이검한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그대는 거짓말이 무척이나 서툴군."
그리고 이내 차가운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그게..무슨..."
"본녀가 정녕 아무것도 모르기에 그대에게 묻는다고 생각하는가?"
".................."
경화군주의 말을 들은 이검한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전부 들었던 것이다.
장선우와 자신이 나눴던 모든 대화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사실대로 모든 것을 고할 기회를 말이다.
그런데 그 기회를 전부 걷어차버렸다.
수습을 해야겠다는 다급함에 앞서서 말이다.
"그대는 죄가 크다. 도지휘사."
경화군주는 싸늘하게 식은 눈동자로 그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그대는 황실의 기관들을 뇌물로 매수한 것은 물론이고 무고한 백성에게 역적이라는 누명을 씌워 매장시키려고 하였다. 이는 그대를 황실의 관료로 임명한 폐하에 대한 모욕이며 제국에 대한 배신이다."
덜 덜 덜 덜
이검한은 온몸을 벌벌 떨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죄를 조목조목 고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감당키 힘든 공포감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본녀에게 거짓을 고하여 그 죄를 뒤덮으려는 추악한 짓마저 저지르려고 하였다. 어찌 죄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죄..죄송합니다....군주...부디..부디....부디...용서를...제발.."
털썩
쿵
이검한은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 빌었다.
모든 게 들통난 이상
비는 것외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본녀는 그대가 한 성을 관리하는 도지휘사로서 적법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판단을 하였다. 그렇기에 그대가 가지고 있는 도지휘사로서의 지휘를 박탈하도록 하겠다. 뿐만 아니라 부정으로 쌓아온 그대의 재산을 전원 몰수하여 제국에 환원토록 하겠노라."
경화군주는 이검한의 용서를 사뿐히 무시한 채 제 할 말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선처를! 부디! 부디!"
쿵 쿵 쿵 쿵
그녀의 말을 들은 이검한은 바닥에 머리를 쉴새없이 찧으며 용서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도지휘사라는 직위
수만냥에 이르는 금력
이 모든 게 한순간에 없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어찌 용서를 구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거절한다! 끝까지 본녀를 기만하려들었던 그대에게 용서 따윈 없도다!"
경화군주는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선우를 곤란하게 만든 인간이었다.
어찌 이런 쓰레기같은 인간에게 선처를 해준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었다.
"군주! 재산을 몰수 당하고 직위가 박탈당하면 저는 죽습니다!"
이검한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녀에게 빌기 시작하였다.
도지휘사로서 근무하며 수많은 원한을 쌓아왔던 이검한이었다.
수많은 정적들을 모함하여 귀향을 보내었고
거부들의 재산에 자신만의 부가세를 매겨 더욱더 수탈하기도 하였으며
사파의 무뢰배들을 핍박하여 어마어마한 돈을 뜯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어떤 이들도 그에게 불만을 토로해내는 이들은 없었다.
도지휘사라는 권력이 그를 보호해주는 방패가 되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관직이 박탈되다니?
나가 죽으라는 말과 다름이 없는 소리였다.
"어째서 본녀가 그런 사정을 헤아려야하지?"
경화군주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참으로 매정하십니다! 어찌 그런 말을...!"
이검한은 상처받은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본녀는 그대보다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는 황족이다. 뿐만 아니라 그대보다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는 대장군이기도 하지. 신분과 권력이 있다면 멋대로 해도 된다고 한건 그대가 아닌가? 대체 뭐가 문제인거지?"
경화군주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준 것이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검한은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한 말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대는 한 가지 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그...그게..무엇입니까?"
"그대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황실에 적의를 드러냈도다."
"그럴..리 없습니다...황실에 적의를 드러내다니요!?"
이검한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황실에 적의를 드러내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누구보다 황실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자신이었다.
그런데 어찌 적의를 드러낸다는 말인가
"그대가 분명 말하지 않았는가? 장선우와 관련된 자들이라면 삼족을 멸하겠다고 남자라면 팔다리를 자른 뒤 목을 매어 죽이고 계집이라면 팔다리를 자른 뒤 병사들의 노리개로 던져주겠다고 말이다."
경화군주는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말이..어찌...황실에..대한..적의라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검한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장선우는 본녀의 부군이다. 그런데 어찌 황실에 대한 적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대는 본녀 뿐 아니라 황실까지도 멸하겠다는 말을 입에 담은 것이다!"
경화군주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검한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떡하니 하고 벌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한 까닭이었다.
장선우가
칼질이나 할 줄 아는
한낱 야인따위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여인의 부군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검한은 멍한 표정을 지은 채 허공을 응시하였다.
복잡해진 머릿속이 정리가 될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이검한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옆구리에 있는 칼을 빼어들었다.
그러자 날카롭기 그지없는 칼이 번쩍이기 시작하였다.
"무슨 짓이지?"
경화군주는 검을 빼어든 이검한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 목숨으로 모든 일을 끝내주셨으면 합니다."
이검한은 칼을 목젖에 가져다댄 뒤 말을 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결연의 의지가 가득 차 있었다.
"결코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부군인줄 알았으면.....그런 무례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그러니 제발.....저 하나로 끝내주십시오...부디..제 가문과...제 아내...자식만큼은.....부디.."
그는 빌고 또 빌기 시작하였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자신은 황족을 기만하였고 능멸하였다.
감히 황족에게 삼족을 멸하겠다는 말을 입에 담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책임을 져야했다.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자신 뿐 아니라 가문 전체에 역적이라는 죄목이 씌워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삼족이 멸해지고 말 것이다.
흔적도 없이
남김 없이 말이다.
그렇기에 막아야한다.
어떻게든 자신의 목숨만으로 끝내야하는 것이다.
"우습구나."
경화군주는 비웃음 섞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대의 목숨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냐?"
그녀는 싸늘하기 그지없는 시선으로 그를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그대의 목숨은 가치가 없다. 이대로 목숨을 끊는다한들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군주......부탁드리겠습니다..........제발......제발....나 하로 끝내주십시오......내...이리..빌겠습니다..."
이검한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관직을 박탈당해도 상관없다.
자신의 아들이
혹은 후손이 훗날 관직에 진출하면 될 일이니
재산은 없어도 된다.
얼마든지 다시 벌면 될터이니
하지만 가문이 멸문당하는 것은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모든 게 없어져버리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살았다는 흔적도
자신이 피를 이어받은 후손도
수백년을 이어온 가문의 역사도
전부 말이다.
그렇기에 울면서 빌 수밖에 없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제발 가문만큼은 보존해달라고 말이다.
경화군주는 담담한 시선으로 이검한을 바라보았다.
얼굴 곳곳에 눈물자국과 콧물 자국이 가득하였고
온몸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한 성을 총괄하는 지도자라고 하기엔 무척이나 초라하고 비루한 모습인 것이다.
"용서를 구할 대상이 잘못되었다. 그대가 용서를 빌 대상은 내가 아니다. 그대에게 직접적인 모욕을 당한 부군이지."
경화군주는 차분한 눈빛으로 이검한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부군이 그대를 용서한다면 본녀 또한 그대를 용서하겠다. 그리고 역적이라는 오명은 벗겨주도록 하지. 하지만 만약 부군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그대는 삼족이 멸하게 될 것이다."
경화군주는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입을 떼었다.
"아...알겠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이검한은 희망 어린 눈빛을 한 채 말을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돌려 한쪽에 얌전히 서있는 선우를 바라보았다.
"그.....그..."
이검한은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하였다.
그에게 곧바로 사죄를 하기 위해서 였다.
"......죄."
하지만 좀처럼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아직도 그가 천하디 천한 야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었다.
"죄....송합니다.."
이내 이검한은 개미가 기어가는듯한 목소리고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그의 얼굴에는 수치심이 가득 차 있었다.
"뭐가 말입니까?"
선우는 그에게 되물었다.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말이다
"제..제가...감히..부마도위를.....몰라뵙고..오해하여...큰..무례를...저질렀..습니다.......결코..고의가..아니였으며....만약...부마도위께서...이런 ..사실을 미리 알려주셨다면.....이와같은...일을..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본의 아니게...심려를...끼친 점...정말..죄송합니다...만약 기회를 주신다면..앞으로는 신중하게....처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검한은 구구절절 중얼거리며 사과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거 아십니까?"
그의 사과를 들은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뭐..뭘 말입니까?"
"사과할 때 들어가면 안되는 말이 있는거?"
"그..그게 무슨?"
"본의 아니게, 오해, 고의가 아니었다, 앞으로는 신중하게, 나만 잘못한 것은 아니다. 이런 말들을 내뱉으면 안된다고 하더군요. "
"왜인지 아십니까?"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들이 들어가는 순간 사과는 사과로서 본연의 기능을 잃게 되고 회피와 책임전가가 다분한 핑계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선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런데 도지휘사께서는 사과할 때 저 말들을 전부 사용하더군요."
선우의 눈빛이 날카롭게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이검한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실수를 하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용서는 없습니다. 도지휘사."
선우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검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표정을 마주한 이검한의 얼굴은 거무죽죽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