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6화 〉 797.더 높은 분을 모셔올 생각입니다.
외빈실
도지휘사 이검한은 근엄한 표정을 지은채 상석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편에는 도지휘첨사 주태와 도지휘동지 황걸이 공손한 자세로 시립해있었다.
세 사람은 침묵을 지킨 채 그저 가만히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모든 일의 당사자가 돌아오기를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참으로 오래기다리게 하는군."
도지휘사 이검한은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도착을 알린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찌 코빼기도 모습을 내비치지 않는다는 말인가
짜증이 절로 치밀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제 딴에는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때 뒤편에서 시립해있던 도지휘동지 장걸이 입을 데며 말을 이었다.
"기싸움? 한낱 야인 따위가 도지휘사인 본관과 말인가?"
그 말을 들은 이검한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한낱 야인에 불과한 장선우와 정2품 도지휘사인 자신의 신분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라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별볼 일 없는 이가 어찌 자신과 기싸움을 한다는 말인가
"배운 거라곤 주먹질밖에 없는 놈이 뭘 알겠습니까?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결국엔 비굴한 모습으로 방에 들어오게 될테니 말입니다."
장걸은 화가 난 이검한을 살살 달래기 시작하였다.
필요이상의 화를 잠재울 요량이었다.
"쯔쯧, 내 이래서 무림인이라는 족속들을 싫어한다네. 싸움질 좀 하는 것 가지고 세상이 다 제것인냥 오만하게 구니 말이야."
이검한은 연신 혀를 차기 시작하였다.
"황제 폐하께서 왜 무림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이검한은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무례하고 무식한 무법자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황실의 행태가 이해가 가지 않은 까닭이었다.
"이 넓디 넓은 중원 땅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황제 폐하의 영면한 판단이 아니겠습니까? 무법자들끼리 서로 죽이며 견제를 한다면 오히려 황실 입장에선 이득일테니까 말입니다"
"전부 죽여버리면 되는 것을 뭣하러 그리 번거롭게 한단 말인가?"
도지휘사 이검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황제의 방식이 비효율이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자신이었다면 군사를 일으켜 그들을 완전히 복속시키고 원하는대로 주물렀으리라
짐승 같은 무림인들에겐 누가 우위에 있는지 서열을 확실히 확립시켜주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훨씬 더 나은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말입니다. 저도 이해가 안됩니다."
도지휘동지 장걸은 이검한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입을 떼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만 비위를 맞추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역시 자네도 그리 생각하는군."
그 대답이 마음에 든 것일까
이검한은 흡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만 그리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무림인들은 허울 좋은 파락호에 불과합니다."
"하하하하하 자네의 통찰력은 가히 속을 뻥 뚫어주는구만!"
그렇게 두 사람이 무림에 대한 비난을 이어갈 때쯤이었다.
끼이이익
갑자기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가 이검한의 귓가를 자극하기 시작하였다.
이검한은 재빨리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무척이나 익숙한 남자의 모습을 말이다.
"파락호라는 말은 참으로 마음이 아프군요. 양민들을 해한 적도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남자, 선우는 외빈실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흥, 그건 모를 일이지."
이검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도지휘사께서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신 분이군요."
"난 본디 무림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네. 무림인이라고 자처하는 놈들치고 진실된 놈들은 없으니 말일세."
"도지휘사께서는 편견을 가지고 계시군요."
선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이검한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편견이 아니고 사실일세."
그 눈빛을 마주한 이검한은 지지않겠다는듯 눈을 부라리며 그를 응시하기 시작하였다.
이내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히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되었을까
"올려라."
이내 이검한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쾅
쾅
그러자 뒤편에 있던 주태와 장걸이 각각 거대한 궤짝을 하나씩 집은 뒤 탁상 위에 그대로 올려놓았다.
그다음 궤짝을 그대로 열어버렸다.
그러자 수북히 쌓여져있는 금자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정확히 금자 열 다섯관일세."
이검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일주일이면 체면 치레하기 충분한 기한이라고 생각하네. 그렇게 기다려줬으면 자네의 면도 어느정도 섰겠지. 그러니 가져가도록 하세. 그리고 공표하는 걸세. 의천맹이 세워질 곳은 남창이 아닌 제남이라고 말일세."
이검한은 선심썼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드르르륵
그리고 선우를 향해 궤짝을 그대로 밀기 시작하였다.
그의 코앞에 놓여질 수 있도록 말이다.
선우는 눈앞에 놓여있는 궤짝을 쳐다보았다.
누렇게 빛나는 금자들이 그의 시야에 가득히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궤짝 속에 있는 금자를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은 채 바라보았다.
스르륵
그리고는 그대로 손을 뻗어 궤짝 안에 있는 금자를 천천히 쓸기 시작하였다.
씨익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이검한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고고한 척하는 무뢰배를 돈으로 굴복시켰다는 생각에
어마어마한 쾌감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크크큭....결국 네놈도 사람이구나.'
그는 생각하였다.
그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확실하다고 말이다.
"대인."
그때 금자를 쓸고 있던 선우가 차분한 표정을 지은 채 천천히 입을 떼었다.
"왜 그러는가?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무언가 착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선우는 올곧은 시선으로 이검한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착각?"
"전 대인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습니다."
"뭐라!!"
"그러니 이 궤짝은 가져가시지요."
선우는 손을 들어 가벼이 궤짝들을 밀어버렸다.
드르르륵
그러자 궤짝들은 정확히 이검한의 코앞에서 멈춰서게 되었다.
"지금 내 명을 거역하겠다는 건가!"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습니까? 발언을 철회할 생각 따윈 전혀 없다고 말입니다."
선우는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네놈, 감당할 수 있겠느냐?"
이검한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기 시작하였다.
"뭘 말입니까?"
"날 적으로 돌리는 걸 감당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감당해야할 일이라면 얼마든지 감당하겠습니다."
선우는 대수롭지 않은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도지휘사야말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이검한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뭐라!?"
"저를 적으로 돌리는 걸 말입니다."
선우의 눈빛이 차갑게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광오하구나! 한낱 야인따위가!"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도지휘사는 어마어마한 모욕감을 느꼈다.
가장 하찮게 여기는 파락호 따위가 자신을 능멸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도지휘첨사! 도지휘동지! 저 자를 추포하여라! 내 저자를 옥에 처넣지 않는다면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이다!"
이검한은 잔뜩 화가난 기색으로 뒤편에 시립해있는 주태와 장걸에게 명을 내렸다.
스르릉
그리고 그 명을 받은 두 남자는 곧바로 검을 꺼내들었다.
그다음 천천히 선우에게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절 추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선우는 다가오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실로 자신을 제압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반항한다면 자네는 역적이 되는 걸세."
"황실의 지엄한 명을 거역한 역적이 말일세."
두 관리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 도지휘사의 명이 황실의 명이 되었습니까?"
"도지휘사는 황제 폐하의 명을 수행하는 황실의 관료일세. 그런 도지휘사의 말을 거역한다는 건 곧 황실의 명을 거역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지."
"하하하하......참으로 편리한 논리입니다."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부디 반항하지 말게나. 역적이 되기 싫으면 말일세."
"자칫 잘못하다간 자네로 인해 무림이 지워져버릴 수도 있다네."
두 관리들은 검을 서서히 들이대며 경고를 하기 시작하였다.
부디 반항을 하지 말라면서 말이다.
부웅
그리고 동시에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그의 팔다리를 노리고 말이다.
무력화시켜 단숨에 제압을 해버릴 요량인듯 하였다.
"거절하지요."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부웅
부웅
콰콰콰쾅
달려들던 두 관리가 그대로 뒤편으로 날아가면서 벽에 처박혀버린 것이다.
"이노오오옴!!!!!! 이건 황실에 대한 반역이다!"
그 모습을 본 이검한은 고함을 내질렀다.
한낱 야인 따위가 황제폐하가 직접 임명한 관리에게 해를 입혔다.
어찌 반역이라고 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당방위입니다. 검을 휘두르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네놈은 가만히 있어야했다! 저들이 무슨 짓을 하든 가만히 있어야했다는 말이다!"
이검한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삼족을 멸해주마! 네놈이랑 관계된 인간이라면 모두 갈기갈기 찢어죽이도록하겠다. 사내라면 거세를 시킨 후 팔다리를 자른 뒤 목을 매달아 죽일 것이며 계집이라면 팔다리를 자른 뒤 병사들의 노리개로 굴릴 것이다! 네놈과 관계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이검한은 살기가 가득한 눈빛을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멋대로군요. 멋대로 핍박해놓고 멋대로 죽이려고까지 하니 말입니다."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멋대로 해하려고 한 주제에 역적몰이를 하는 걸 보니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쩜 이렇게 쓰레기란 말인가
"그게 바로 신분이라는 것이고 권력이라는 것이다!"
"신분과 권력이 있다면 이렇게 멋대로 해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한 말이다! 황실이 내 뒤편에 있는데 내가 뭔들 못하겠는가!"
이검한은 당당한 태도로 언성을 높였다.
"황실에서 이런 모습을 알게된다면 참으로 실망이 크겠습니다."
"크크큭...황실에 알리기라도 할셈이더냐? 아서거라. 어떤 이들도 네 말을 들어주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이검한은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오군도독부는 물론 금의위에 동창까지 황실에 내 돈을 받아처먹지 않은 자들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대체 어느 곳에서 네놈의 말을 듣고 나를 대적한다는 말이더냐? "
정계 진출을 위해 그간 어마어마한 기름칠을 해놓은 이검한이었다.
그런 그를 적대할 인물은 황실에 존재치 않는 것이다.
"더 위에 있는 사람을 불러오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선우는 손가락으로 위로 쭉 뻗으며 말을 이었다.
"크하하하하하, 황제 폐하라도 모셔올 생각이더냐? 아니면 폐관 수련에 들어간 경화군주라도 모셔올 생각이더냐?"
선우의 말을 들은 이검한은 유쾌한듯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내뱉은 말이지만 희망고문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개소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오군도독부, 금의위, 동창 보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이는 단 두명 뿐이었다.
천자天子라고 불리우는 황제.
그리고 이연이 죽고 대장군으로 임명된 경화군주.
하지만 그 저 두 사람이 야인을 위해 나서줄 리 만무하였다.
고귀하고 위대한 혈통을 가지고 있는 거룩한 존재들이 어찌 한낱 야인 따위를 위해 친히 나선다는 말인가
"그럴 생각입니다."
그때 선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검한의 귓가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뭐..뭐라!?"
그 말을 들은 이검한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더 높은 분을 모셔올 생각입니다. 오군도독부보다, 금의위보다, 동창보다, 그리고 당신보다 까마득히 높은 위치에 있는 분을 말입니다."
선우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오싹
그리고 그 미소를 마주한 이검한은 왠지 모를 오싹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여유롭기 그지없는 선우의 미소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불안감을 자극한 것이다.
'허..허세다...분명...허세다...더 높은...위치에 있는 자라니...그런 자가...존재할 리 없다.'
이검한은 고개를 좌우로 힘껏 내저으며 애써 부정해보았다.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낱 야인 따위가 무슨 친분이 있어 황제 폐하를 모신다는 말인가
"노오옴! 허장성세도 정도껏 부려야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들어오시지요."
선우는 이검한의 말을 끊어버린 뒤 뒤편을 슬쩍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끼이이이이익
그러자 닫혀있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 여인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붉디 붉은 적발과 적미
용암처럼 진하기 그지없는 적안의 눈동자
이 모든 개성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여인의 외모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가히 신화 속에 나오는 여신을 방불케할 정도로 말이다.
여인은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상석에 앉아있는 이검한을 노려보았다.
분노로 가득 차 있는 눈빛으로 말이다.
덜 덜 덜 덜 덜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이검한은 온몸을 벌벌 떨기 시작하였다.
마치 사시나무가 떨리듯이 말이다.
저 여인의 정체를 너무나 잘알고 있는 탓이었다.
아니 알 수밖에 없었다.
중원에서 저런 개성을 가지고 있는 절색의 미녀는 그가 아는 한 단 한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황실을 지키는 방패이자
황실 최고의 전력으로 불리우는
여인.
"........경..경화군주...."
바로 경화군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