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3화 〉 784. 못 갈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회의실
원로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은 채 격렬한 토론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의천맹 정문쪽에 맹주의 동상을 세우는 걸세!"
계상득은 호기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동상을요?"
"본디 정문이라는 것은 곧 방문자들이 가장 먼저 지나쳐가는 곳이 아니던가? 그들에게 맹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걸세. 의천맹이 어떠한 곳인지 상기할 수 있도록 말일세."
계상득은 만면에 미소를 띄운 채 말을 이었다.
"흐음.....확실히 그런 의도라면 동상을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의천맹주라면 이재원이라는 흉악한 마귀를 처지한 대영웅이니까요."
이세진은 납득된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리기 시작하였다.
확실히 나쁜 계획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상징성으로서 천하제일인이자 대영웅인 장선우를 내세우는 방침은 말이다.
천하제일이란 무엇인가
무인으로 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동경하게 되는 위대한 것이 아니던가
영웅이란 무엇인가
사람들 가슴 속에 희망과 용기를 품어주는 선망의 대상이 아니던가
의천맹주 장선우는 이 두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최고의 인재상이었다.
만약 계상득의 말대로 의천맹주의 동상을 세우게 된다면
외적에는 상당한 홍보효과를 비롯하여 엄청난 신뢰감을 내보일 수 있을 것이고
내적으로는 맹원들에게 자부심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꼰대같은 계상득이 제안한 내용치고는 심각하게 좋은 것이다.
'이 꼰대가 웬일로 이런 의견을 냈대?'
이세진은 새삼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계상득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고루하기 그지없는 말을 짓거리던 계상득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겐가? 의천맹주라니?"
그때 계상득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듯이 말이다.
"네에?"
그 말을 들은 이세진은 당황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의천맹주의 동상을 세우자는 이야기가 아니였습니까?"
그다음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아닐세."
그의 물음에 계상닥은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입을 떼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세진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침묵을 하였다.
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고심에 빠진 것이다.
".............."
이내 두 사람 사이에서는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계상득 또한 입을 다물어버린 까닭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침묵이 흘렀을까
"혹여......계 원로께서 말하는 맹주라는게....."
이내 이세진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끝을 흐리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돌아가신 무림맹주가 아니겠는가?"
계상득은 당연하다는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까? 의천맹주도 아닌 무림맹주의 동상을 세우자니요?!"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이세진은 기겁하며 언성을 높였다.
의천맹에 무림맹주의 동상을 세우자니
이건 또 무슨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란 말인가
"아니, 왜 그리 기겁하는가?"
계상득은 영문을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계 원로님."
이내 이세진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계상득을 불렀다.
"왜 그러는가?"
"몇 가지 물어볼게 있습니다."
"말해보게나."
"혹여 날짜나 요일을 혼동하거나 그러십니까?"
이세진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흐음...나이가 들다보니 가끔 헷깔리기는 한다네."
"혹여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어렵거나 버겁게 느껴지십니까?"
"아무래도 이런 늙은 이에겐 새로운 것보단 익숙한 게 낫지 않겠는가?"
"음식의 맛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지십니까?
"아무래도 늙어서 그런지 자극적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더이."
"..............계 원로님."
계상득은 대답을 들은 이세진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아무래도 노망이 나신 것 같습니다......가까운 의원으로 가보심이....."
짜악
그때 계상득이 손을 들어 이세진의 뺨을 그대로 올려쳐버렸다.
"이 버릇없는 새끼가! 누구보고 노망이 들었대!?"
계상득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자신을 노망 난 늙은이 취급하는 이세진에 대한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노망이 난게 아니면 의천맹에 정문에 무림맹주의 동상을 세우자는 말이 왜 나옵니까! 무림맹주랑 의천맹이 무슨 상관있다고!"
뺨을 얻어맞은 이세진은 발끈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왜 못세워! 왜 못세워! 세울 수 있다! 세울 수 있단 말이다! 무림맹주는 무림을 위해 제 한 몸을 바친 위대한 영웅이 아니더냐! 그런 이의 의지를 잇는다는 게 뭐가 나쁘다는 말이더냐!"
계상득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그가 아는 위대한 영웅은 주소양의 아버지인 무림맹주였다.
그런데 어찌 그의 동상을 세울 수 없다는 말인가
"세우긴 뭘 세웁니까! 아주 무림맹을 승계한다고 대놓고 홍보 하시지 그러십니까? 만약 무림맹주의 동상을 세웠다간 젊은 무인들이 대거 이탈하게 될 것입니다!"
이세진은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애초에 무림맹을 승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방한 의천맹이었다.
무림맹에 반감을 품고 있던 젊은 무인들을 반발을 우려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무림맹주의 동상을 세우자니?
노망이 난게 아니고서야 어찌 저딴 개소리를 지껄인단 말인가
"홀로 철갑기병대에 맞선 무림맹주의 의협심을 무시하는겐가!?"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그런 말이 아니면 대체 뭔데 이새끼야!""
계상득은 잔뜩 흥분한 어조로 고함을 내질렀다.
"무림맹주의 동상을 세운다는 건 간접적으로 무림맹을 승계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저 무림 영웅을 기리자는 의미일세!"
"그럼 굳이 의천맹 정문에 세우지말고 계원로님 집에 뒷마당에 세우는 게 어떠십니까?"
"이새끼가!"
부웅
계상득은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도저히 분노를 참아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이세진은 살며시 고개를 젖혀 주먹을 피하였다.
맞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쭈? 피해? 네가 내 주먹을 피해?"
그 모습을 본 계상득은 더욱더 분기탱천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한 대 쥐어박히면 끝날 것을 굳이 매를 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만 좀 때리십시오! 저도 같은 원로인데 어찌 이렇게 애 다루듯이 한단 말입니까!"
"이새끼가 그래도!"
계상득은 다시금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이세진은 그런 계상득의 주먹에 맞서기 시작하였다.
이내 두 사람은 격렬하게 투닥거리기 시작하였다.
원로들은 그런 두사람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였다.
견원지간처럼 만날 때마다 으르렁거리는 두사람이었기에
저러다 말겠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네 집은 내놓았는가?"
"이미 팔았다네."
"벌써?"
"평균단가 아래로 매도를 하였더니 금방 팔리더이."
"것 참...나도 더 싸게 내놔야하나?"
"차라리 그러는 게 속 편하다네. 만약 의천맹 이전에 대한 소문이 퍼진다면 아끼려다 똥이 될 수도 있다네."
"안되겠구만. 나도 가격을 내려야겠네."
이내 두 사람을 제외한 원로들은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가기 시작하였다.
"그나저나 맹 이전은 어디로 가려나."
"이왕이면 장강 이남에 강소성이나 절갈성처럼 인구밀집도가 높은 곳이 좋을 것 같네. 어느정도 발달된 도시로 가야 품위가 살터이니 말일세."
"나랑 생각이 다르군. 난 하남이 좋을것 같네."
"하남이면 소림이 위치한 곳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그런 곳에 자리를 잡는단 말인가?"
"중원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던가? 소림있다고는 하지만 속세에 크게 관여하는 이들이 아니니. 오히려 그런 곳에 가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네."
"흐음...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구만. "
"나는 섬서가 좋다네. 가장 세련된 곳이 아니던가?"
"나는 고향인 호북이....."
"역시 호남이 좋지 않겠는가?"
이내 원로들은 저마다 원하는 지역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각자 마음에 드는 지역이 제각각인 까닭이었다
끼이이이익
그때 갑자기 회의장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모든 원로들의 시선이 문쪽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한바탕 싸움박질을 하고 있던 계상득과 이세진도
땅 투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원로들도
의천맹 이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원로들도 모두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새롭게 출범할 의천맹주의 모습을 말이다.
"이렇게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로님들."
이내 회의장 안으로 들어온 의천맹주, 선우가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었다.
"어서오시게. 의천맹주."
"환영하오. 의천맹주."
"반갑네, 의천맹주."
그러자 여기저기서 그를 반기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예의바른 선우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든 까닭이었다.
그들의 인사를 받은 선우는 상석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털썩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앉은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날카로운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말이다.
그러자 원로들의 시선이 선우에게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
"다들 어림짐작하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왜 여러분들을 소집하였는지 말입니다."
선우는 원로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전할 장소를 찾았습니다."
선우는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러자 원로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설마하니 이렇게 빠르게 이전 장소를 물색할 줄은 예상치 못한 까닭이었다.
"다행히 괜찮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땅을 물색할 수 있었습니다."
"괜찮은 조건?"
이세진은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그가 말하는 괜찮은 조건이라는 게 뭘 뜻하는 지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네에, 비록 땅이 비옥하지 않아 농지로서 활용할 수는 없지만 땅 자체가 평평하고 단단하여 건물을 짓기 상당히 용이한 지역입니다. 게다가 강과 호수들을 끼고 있기에 수운교통을 통한 무역업 또한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사료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
"오호라"
그 말을 들은 이세진은 감탄했다는듯 탄성을 내뱉었다.
비옥하진 않지만 건물을 세우기 용이하다는 것과
강과 호수를 끼고 있어 수운 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쌉니다. 몇 백만평은 살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선우는 부드러운 미소를 띄운 채 말을 이었다.
"좋구나, 참으로 좋아, 어찌 그런 곳을 찾은 겐가!?"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계상득이 끼어들며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열심히 뒤적거리다보니 눈에 띄게 되더군요."
"역시 자네는 무공만 천하제일이 아니구만, 통찰력 또한 천하제일이야 하하하하하"
계상득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조건이 딱딱 들어맞는 곳을 찾아온
선우의 통찰력에 감탄을 한 까닭이었다.
이내 회의장 안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였다.
가장 꼬장꼬장한 계상득이 웃으니
분위기가 한층 풀어진 까닭이었다.
"그래서 그곳이 대체 어디인가?"
그때 이세진은 궁금하다는듯 선우에게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조건이 워낙 좋다보니 궁금증이 배가 된 까닭이었다.
"남창입니다"
그의 물음에 선우는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말이다.
사아아아악
"................."
순간 회의장의 분위기가 한없이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극도로 낮게 말이다.
호탕하게 웃고 있었던 계상득은 웃음을 멈추었으며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던 원로들은 순식간에 미소를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에게 질문을 던진 이세진은 그대로 입을 다물고 침묵을 하였다.
그가 꺼낸 남창이라는 단어가
원로들의 웃음기를 그대로 가져가버린 것이다.
"................."
이내 회의장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남...남창이라면......강서성에 있는 그 남창을 말하는 게 맞는겐가?"
이내 이세진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혹여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까닭에 확인을 해볼 요량이었다.
"맞습니다."
그의 물음에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긍정을 하였다.
완벽한 확인 사살이었다.
".......자네.....미쳤나?"
이세진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지극히 정상입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니, 자네는 미쳤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남창을 가자는 말을 한다는 말인가!?"
이세진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믿기지 않은 까닭이었다.
"집창촌과 빈민촌이 가득한 남창을 말일세!"
이세진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남창은 낙후돼도 너무나 낙후된 지역이었다.
농사를 짓지 못해 몸을 파는 빈민들
그들을 착취하는 살아가는 사파무리들
그리고 그 사파무리와 협업을 하는 부패한 공권력까지
온갖 오물 같은 인간들만이 모인 곳이 바로 남창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남창에 숭고한 의천맹을 이전한다는 말인가
의천맹 정문에 무림맹주의 동상을 세우자는 계상득의 헛소리 만큼이나 말도 안되는 개소리인 것이다.
"못 갈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선우는 반발하는 이세진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다 똑같이 사람 사는 동네인데 말입니다."
무척이나 대수롭지 않은듯한 표정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