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9화 〉 770. 뱀의 유혹
".................."
회의실 내부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선우의 말에 열렬히 호응을 해주던 원로들이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어버린 까닭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선우가 꺼낸 제안이 너무나 예민하면서도 부담스러운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농이겠지?'
'설마......해본 말이겠지..'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닐까?'
원로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은 채 서로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하였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오랜 침묵이 흘렀을까
"......검신劍神이여......재고를 해보는 게 어떻겠는가?"
이내 계상득은 차분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물론 그의 표정은 사정없이 일그러져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는듯 하였다.
"아니요, 재고할 여지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천무맹이 들어선 뒤 이십여 년간 수많은 이들의 터전으로 자리잡은 제남일세. 그런데 만약 이렇게 갑작스럽게 맹을 이전한다면 수많은 반발을 야기하고 말걸세."
계상득은 담담한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맹의 위치를 이전하겠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천무맹이 들어서고
제남은 지난 이십여 년간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룩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발전과 더불어 수많은 사람들의 터전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불현듯 맹을 이전하겠다니?
제남의 발전 원동력은 천무맹의 존재 그 자체였다.
그런 천무맹이 이전한다는 것은 망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일인 것이다.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제남에 땅을 가지고 있는 자들
제남에 건물을 가지고 있는 자들
제남을 다스리고 있는 권력자들
제남을 거점으로 삼고 있는 수많은 상단들
제남에 거주하고 있는 수많은 양민들까지
다같이 들고 일어나 의천맹을 비난하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제남은 고향이자 삶의 터전일테니까 말이다.
"어마어마한 반발이 일어날 것이란 것은 저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바입니다. 하지만 충분히 감내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충분히 감내할 만한 일이다?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군. 나는 결코 찬성할 수 없네. 자네 말대로 맹을 이전하게 된다면 힘 없고 소외된 이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말걸세."
계상득은 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저랑 의견이 다르시군요."
선우는 그런 계상득을 올곧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맹의 이전은 오히려 힘 없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선우는 확신에 찬 눈빛을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계상득은 얼굴을 붉힌 채 언성을 높였다.
"맹이 이전한다면 맹을 따라왔던 수많은 상가들과 상단들 또한 이전을 하게 될 걸세! 그렇게 되면 제남에 자리를 잡았던 이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말일세!"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뭣이!?"
"그들 또한 상가과 상단들을 따라 이동을 하면 될텐데 대체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그게 말처럼 쉬운 말이 아닐세! 그들은 이미 터전으로서 제남에 자리를 잡았다는 말일세!"
"정녕 그리 생각하십니까?"
선우는 의혹 어린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뭐라?!"
"정녕 그들이 제남에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당연한 말이 아닌가! 그들은 제남에서 일하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고 있다네! 어찌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럼 묻겠습니다. 그들 중 집이 있는 자들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선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있는 자도...없는 자도...있지 않겠는가?"
그의 물음에 계상득은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몰랐다.
그들이 자가로 된 집을 소유하고 있는 여부를 말이다.
그렇기에 어림짐작하여 말하였다.
제남에 존재하는 노동자 수는 하늘에 있는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 이들 중에 집 한 채 있는 이가 없겠는가
그저 그렇게 생각하였다.
"틀렸습니다. 원로님."
선우는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원로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 제남에 있는 노동자는 수는 수 천 수만명일세! 그런데 어찌 집 한 채 있는 이가 존재치 않는다는 말인가!"
계상득은 언성을 높이며 선우의 말을 맹렬히 부정하였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찌 수만명에 이르는 이들 중에 집을 가진 이가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확률적으로도
통계적으로도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말이 되는 소리입니다. 원로님."
"그 근거가 대체 무엇이란 말이오!"
"집 값입니다."
"집값!?"
"현재 제남의 집 값은 일반적인 노동자의 월봉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가격으로 형성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일개 노동자가 집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제남의 집값은 비쌌다.
비싸도 너무 비쌌다.
일개 노동자의 월봉으로는 감히 바라보는 것조차 황송해질 정도로 말이다.
일반적인 서민 가구 기준 한달 생활비는 대략 은자 일곱 냥정도였다.
그 정도 금액이면 그럭저럭 굶어죽지 않는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남에서 하청 노동자의 평균 월봉은 대략 은자 열냥 정도였다.
생활을 하고나면 석냥 정도 저축하는 게 고작인 것이다.
그런데 제남의 평균 집값은 은자 삼천 냥을 훨씬 넘어섰다.
일반적인 서민 가구라면 팔십 년이 넘도록 입에 풀칠할 정도로 아끼고 아껴야 겨우 살 수 있는 것이 바로 제남의 집이었다.
그렇기에 제남에 일자리를 찾아온 노동자들은 달마다 월세를 지급하는 명목으로 집을 빌린다.
달마다 돈 나갈 구석이 또다시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하청 노동자들이 집을 가질 수 있겠는가
집값이 이렇게 말도 안되게 비싼데 말이다.
어불성설이었다.
선우는 장담할 수 있었다.
노동자들 중에 집이 있는 자는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집값이 오르기 전 제남에....땅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라면......."
"그런 이들이라면 이미 땅을 팔고 부자가 되었겠지요."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부자가 되었는데 뭣하러 노동을 하겠는가
땅과 건물만 굴려도 달마다 월세가 쏟아져나올텐데.
".............."
선우의 말을 들은 계상득은 입을 꾹 다물었다.
뭐라 반박할 말이 없을 정도로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제남의 땅값이 초월적으로 비싸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단 한번도 서민의 입장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는 이미 땅값이 오르기 전 땅을 선점해놓은 선구자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오늘 서민들의 실태를 직접 체감하게 되었다.
선우에 의해서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맹을 이전한다고 했을 때 가장 크게 반발할 이들은 땅과 집을 가지고 있는 지주와 건물주들입니다. 맹이 이전된다면 땅값과 집 값이 폭락을 할테니까요. "
선우는 계상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 감수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올바른 자정 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을테니까요."
"자정작용?"
"그렇습니다. 현재 제남은 투기가 너무 과열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이 입고 있지요. 아무리 일해도 집을 살 수 없으니 사람들은 박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작용으로 한탕을 노리며 동전으로 도박을 하거나 산속으로 들어가 중이나 도사가 되거나 아니면 별다른 노후 준비 없이 돈이 생기는 대로 그저 쓰기만 하는 위험한 방식을 고수하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전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천무맹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십 여년 간 제남에 쭉 자리를 잡고 있으니 집값과 땅값이 안오를래야 안오를 수 없었을테니까요."
선우는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선우의 말을 들은 계상득은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하였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천무맹의 존재가 역설적이게도 제남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현 상황에 만족하는 이들은 오직 지주와 건물주외엔 없습니다."
선우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그렇기에 자정이 필요합니다. 제남의 집값과 땅값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자정작용이 말입니다."
"그 자정이......맹을 이전함으로서 생긴다고 생각하는 겐가?"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맹을 이전한다면 분명 수많은 상가와 상단들 또한 맹을 따라 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고용되어졌던 노동자들 또한 미련없이 거처를 옮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제남에는 공급이 수요를 초월하는사태가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공급이 수요를 초월한다?"
"예에, 일자리가 없다면 노동자들이 제남에 몰릴 일이 없을테니........자연히 수요가 줄어들 수 밖에 없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집값과 땅값은 안정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우는 확신에 찬 시선으로 계상득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결국 집값과 땅값이 폭등하는 원인은
수요가 공급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해결책을 간단하였다.
수요를 줄여버려 공급이 남아돌게 만들면 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검신이여!........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주와 건물주들은 극심한 손해를 입게 될 것이오!"
계상득은 다급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손해가 아닙니다."
선우는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들은 이미 이십여 년간 천정부지로 뛰어버린 집값과 땅값을 통해 어마어마한 시세차익을 얻은 상황입니다. 이제와서 땅값과 집값이 폭락한다고 해서 크나큰 손해를 입지는 않을 것입니다. "
"..............."
선우의 말을 들은 계상득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지주들과 건물주들은 시세차익을 통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해놓은 상황이었다.
집값과 땅값이 떨어진다고 해서 손해가 그렇게 피해가 막심하지는 않은 상황인 것이다.
"이건 건강한 자정을 위한 첫 걸음입니다. 부디 원로님들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선우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을 이었다.
그들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부디 자신의 의견에 따라달라고 말이다.
원로들은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침묵을 하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동의하고 싶은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네의 제안대로 맹이 이전된다면 분명 제남 사정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말 걸세. 투기꾼들이 모여들 것이고 집값과 땅값이 천정부지처럼 치솟게 될거란 말일세.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해결할 심산인가?"
그때 잠자코 있던 이세진이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그 또한 맹의 이전에 대해선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투기 과열을 막을 수 있는 묘책이 있는지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맹이 이전한다는 말이 들려온다면 분명 여기저기서 투기꾼들이 몰려들게 뻔할 것이고 땅값과 집값을 천정부지처럼 치솟게 만들 것입니다."
선우는 동의한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재개발 구역에 투기꾼이 몰려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흘러들어오는 돈이 큰 만큼 큰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제남 못지 않은 살인적인 가격이 형성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한 가지 생각해둔 방법이 있습니다."
"생각해둔 방법?"
그의 말을 들은 이세진은 의문스러운듯 그에게 되물었다.
대체 무슨 방법을 생각해놨을 지
궁금증이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의천맹 일대에 있는 모든 땅들을 전부 사버리는 겁니다."
선우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땅을 임대형식으로 빌려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투기가 과열되는 일은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세진은 즉각적으로 반발을 하였다.
"투기 과열을 막으려면 의천맹 일대에 있는 노른자 위에 땅들을 전부 사야할 것이오! 그 평수만 따져도 족히 몇 백만평은 될터! 아무리 싸다해도 그런 넓다란 땅을 매입하는 것은 무리오!"
"공금으로 사면 됩니다."
선우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맹의 공금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금액이오!"
"빌리면 되지 않습니까?"
"대체 어디서 그런 막대한 금액을 빌려준다는 말이오! 그것도 이제 막 설립된 신생 단체에게 말이오!"
이세진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고함을 내질렀다.
의천맹은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 신생 단체였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운영될지 알 수조차 없는 그런 단체 말이다.
그런데 어떤 정신 나간 놈들이 이런 곳에 그런 거액을 빌려준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었다.
"사천당문."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뭐...뭐라?!"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세진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당가라면 의천맹에게 돈을 빌려줄 것입니다."
선우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찔함이 들 정도로 위험한 미소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