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763화 (764/1,419)

〈 763화 〉 764. 내조

"지금 중요한 건 공석이 되어버린 천무맹주의 자리에 누구를 앉히냐예요."

주소양은 별빛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아가씨! 지금 천무맹을 존치시킬 생각인 것입니까!?"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을 들은 계상득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천무맹주의 자리에 누구를 앉히냐니?

그말인즉슨 천무맹을 존치하겠다는 말이 아니던가

"네에, 그럴 생각이에요."

주소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재고해주십시오. 아가씨! 어찌 이재원의 흔적이 남아있는 천무맹을 존치시킨다는 말입니다까!?"

천무맹은 이재원이 이십여 년간 군림해온 적폐집단이었다.

온갖 비리와 부정이 범람해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천무맹을 존치시킨다는 말인가

"저도 내키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주소양은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천무맹은 지난 이십여년 간 정파 무림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 천무맹을 한순간에 무너져내린다면 정파무림의 힘을 분산되버릴 게 분명해요."

주소양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천무맹은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정파무림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창립 이념자체가 협의 실현이었기에

정파에 적을 두고 있는 자들이라면

문파나 세가에 이권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레 모여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천무맹은 강해질 수 있었고

명실상부 최고의 단일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정파 무림인들의 단합을 이끌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천무맹이 하루아침에 해체를 하게된다면

한 뜻으로 모여들었던 정파인들은 뿔뿔히 흩어지게 될 것이고

정파의 단합력은 처참할 정도로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천무맹의 존치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천마가 부활하여 중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이상 말이다.

"꼭 천무맹이 아니여도 괜찮지 않습니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따르는 법입니다! 부정과 부패를 일삼았던 천무맹이 아닌 옛 무림맹의 영광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계상득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따르는 법이었다.

무림맹이라는 새 부대에 말이다.

천무맹의 잔존세력을 그대로 흡수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럴 순 없어요."

그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어째서 입니까!?"

그 말을 들은 계상득은 이해가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반문을 하였다.

무림맹의 부활을 막아서는 그녀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옛 무림맹을 그대로 세우려고 든다면 그에 반발하는 세력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을테니까요."

주소양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원로들에게 있어 무림맹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치있는 것이었지만

다른 이들까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림맹 또한 역사 깊은 조직 답게 특유의 적폐적인 면모를 충분히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불합리한 명령이라도 무조건적인 복종은 필수였으며

연공서열을 중시하였기에 능력보단 나이나 연배로 직급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변화보단 안정을 중시하였기에 적폐적인 부분까지 그대로 내버려두는 경우가 왕왕하였다.

그리고 그런 특성으로 인해 젊은 무인들은 무림맹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처음 천무맹이 창립된다고 하였을 때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하며 너도나도 천무맹으로 적을 옮기거나 입맹을 하게 된 것이다.

어찌보면 무림맹이 해체된 것은 마교 때문이 아닌 무림맹이라는 집단 자체의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림맹의 의지를 잇는다고 공표를 하고 천무맹을 흡수하여 무림맹을 세우려고 한다면 반발이 일어날 것이고

수많은 이들이 미련없이 떠날게 분명하였다.

분열을 가속시키는 최악의 수를 두게 되는 것이다.

".........하..하지만 아가씨....아가씨가 직접 공표를 하신다면 다른 젊은 무인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계상득은 여전히 미련이 남는 것인지

그녀를 설득하였다.

젊은 층에게 미움을 받은 무림맹이지만

이재원의 추악한 짓을 낱낱히 파헤친

무림의 협녀.

주소양이 나선다면 그들의 민심 또한 충분히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숙부님."

주소양은 그런 계상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따른 법이에요."

그러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떼었다.

"무림맹 또한 이미 헐대로 헐어버린 부대에 불과해요. 이제 그럼 새로운 부대에 따라야지요."

"..............아가씨."

주소양의 말을 들은 계상득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의도를 눈치챈 까닭이었다.

그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더이상 무림맹에 얽매이지 말라고

과거의 영광이 아니 현재의 상황에 집중을 하자고 말이다.

계상득은 말없이 주소양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자신에게 조언까지 해주는 그녀의 성장이

너무나 뿌듯하였기 때문이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리고 이내 계상득은 그녀에게 사과를 하였다.

포기를 한 것이다.

과거의 영광에 얽매이는 것을 말이다.

그러자 회의장 안의 분위기가 숙연해지기 시작하였다.

가장 열성적이고 열광적으로 무림맹의 부활을 갈망하던 이가 바로 계상득이었다.

그런 계상득이 무림맹의 재건을 포기 해버리니 다른 원로들 또한 납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주소양은 가벼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함을 전하였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입니다......고집을 부려 죄송합니다..아가씨."

계상득은 한층 정중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주소양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결국 자신의 말을 따라주는 그의 태도가 내심 흡족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본제로 넘어갈까요? 저는 천무맹의 존치를 위해선 공석이 되어버린 맹주직을 이대로 방치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전대 맹주였던 이재원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주소양은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숙부님들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그리고 좌중을 바라보며 의견을 물었다.

"저 또한 그리 생각합니다."

"아가씨 말대로 천무맹의 존치를 위해서라면 맹주직을 계속 공석으로 냅둘 수는 없지요."

"확실히 맹주는 맹원과 천무맹을 대표하는 직위니......공석이라면 자부심이라던가 사기라던가 뭐, 여러 방면에서 결핍될지 모르겠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다면 그땐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주소양의 말을 들은 원로들은 하나둘씩 말을 꺼내며 그녀의 말에 동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들 또한 수십년 간 정치밥을 먹으며 살아온 몸이었다.

몇 몇은 무림맹 시절 고위직까지 올라갔던 이들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다.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선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만약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다면 그 집단은 오합지졸이 될 것이 뻔할테니까 말이다.

주소양은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준 원로들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계획대로 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재원을 대체하여 정파무림의 구심점이 될 만한 인물이라면 그만큼 파급력이 강한 인물이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들어도 그 이름을 모르지 않는 이가 되어야하지요. 그리고 이재원에 못지않게 강대한 인물이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무림에서 무력은 곧 권력이니까요."

주소양은 열기를 띈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전 검신劍神을 천무맹주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주소양은 별빛같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입을 떼었다.

"안됩니다!"

"그는 아직 어립니다! 어찌 모든 실권을 그에게 넘기려고 한다는 말씀입니까!"

"어불성설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원로들은 즉각적으로 반발을 하였다.

천무맹을 존치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시대가 원하는 것은 과거의 영광을 품고 있는 무림맹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납득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천무맹주 자리에 주소양이 앉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었다.

명분과 정통성이라면 차고넘치는 그녀였다.

그런데 어찌 검신에게 모든 실권을 다 넘겨줄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었다.

"조용"

그때 뜨거운 회의장의 열기를 관통하는 차분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계상득의 목소리였다.

가장 불같이 화를 낼 것 같았던 그가 되려 차분히 말을 꺼낸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원로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까닭이었다.

"아가씨."

장내가 조용해지자 계상득은 주소양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말씀하세요."

"저는 아가씨가 천무맹주의 자리에 앉았으면 합니다. 아니 비단 저 뿐 아니라 여기있는 원로들 전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맹주의 자리에 검신을 앉힐 생각을 한다는 말입니까?"

계상득은 차분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한텐 과분한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과분하지 않습니다. 아가씨께서는 전대 무림맹주의 딸이라는 정통성과 이재원의 악행을 서슴치 않고 고발한 의협심 그리고 강대하기 짝이 없는 무력까지 모든 것을 갖추신 분입니다. 그런 아가씨가 어찌 과분하다는 말을 입에 담는다는 말입니까?"

"숙부님, 지금 천무맹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쇄신입니다. 그전과는 다르다는 확실한 증거 말입니다. 그리고 그 쇄신을 위해선 새로운 얼굴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권력층이 아닌 새롭게 등장한 영웅이 말입니다."

"그 영웅이 검신이라는 말씀입니까?"

"네에,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온갖 고난을 겪으며 성장한 검신이라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한 무공을 갖춘 검신이라면, 천무맹의 쇄신을 위한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가씨께서도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무리예요. 저는 무림맹과 천무맹, 이 두 집단에서 권력층으로서 군림했던 몸이에요. 그런 어찌 쇄신을 위한 영웅이 될 수 있겠어요?"

주소양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자신은 쇄신에 걸맞는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간 권력의 달콤함을 누릴만큼 누린

적폐에 가까운 인물인 것이다.

그런 자신을 사람들이 납득할 리 만무하였다.

"검신이 아니면 안돼요. 꼭 그여야만 해요."

주소양은 결연의 의지가 담긴 눈빛을 반짝거렸다.

"..........그는 너무 어립니다."

정치력은 보통 나이에 비례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선우는 맹주라는 권력의 정점에 앉기에는 너무나 어렸다.

"나이는 중요치 않아요. 그 이재원도 이십대 때 맹주직에 앉지 않았나요? 그리고 모른다면 제가 옆에서 가르쳐주면 될 일이에요."

주소양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이가 어디있다는 말인가

모르면 가르쳐주면 될 일이었다.

게다가 그 멍청한 이재원조차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바로 천무맹주의 직함이었다.

사랑하는 낭군이 그 자리를 앉지 못할 이유따윈 없었다.

"................"

"..............."

주소양의 말을 들은 원로들은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납득은 되었지만 인정하기는 싫었다.

그렇기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그저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저는 아가씨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그때 잠자코 있던 이세진이 천천히 입을 떼며 그녀에게 동조하였다.

그녀의 주장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쇄신을 위해선 인물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그 인물로는 검신만큼 적정한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중원에 침입하여 당가를 멸문시킬 뻔한 마교를 몰아낸 젊은 영웅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재원을 꺾고 무림 최정상에 우뚝 선 천하제일인이기도 하였다.

그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천무맹을 쇄신 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조건이 있습니다."

그때 계상득이 천천히 입을 떼어내었다.

"조건이요?"

그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의아한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 검신이 맹주의 자리에 앉는다면 아가씨께서 고문으로서 그의 곁에 머물렀으면 합니다."

".........만약 검신이 자리에 앉게 된다면......저또한 그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저 또한 동의하는 바입니다. 쇄신에는 새로운 인물이 필요한 법이지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계상득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흔쾌히 동의를 하였다.

"저 또한 동의합니다."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검신만한 인물이 없지요. 하하하"

그리고 계상득이 동의를 하자 여기저기서 그에게 동조하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가장 폭급한 계상득마저 납득을 하니 다른 원로들도 납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주소양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게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조건이 붙긴했지만 결국 선우에게 천무맹을 통째로 갖다바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선우님이...기뻐하시겠지?'

그녀는 생각하였다.

내조란게 별게 아니라고 말이다.

그녀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더욱더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