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0화 〉 731.내 손을 잡으시오. 하오문주
"상황을 반전시킬 패라는 게 무엇이죠?"
하수련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그녀의 머릿속으론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재원은 이십여년 전 마교로부터 무림을 구하고 대영웅의 칭호를 받은 이였다.
또한 천무맹주로서 이십여 년동안 범접할 수 없는 명성을 쌓은 호인이기도 하였다.
비록 현재 여론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이십여년 동안 쌓아온 업적들이 철옹성처럼 거대한 신뢰를 쌓아버린 것이다.
그런 그를 상대로 여론전을 할 생각이라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않았다.
"궁금하시오?"
"궁금해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패가 무엇인지."
하수련은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별빛같은 눈빛을 반짝거리면서 말이다.
"조건이 있소."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뗴었다.
"그게 뭔가요?"
"나를 도와주시오."
"............"
선우의 말을 들은 하수련은 입을 꾹 다물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말에 미처 답을 하지 못한 것이다.
"....도와달라는 게 정확히 어떤 일인가요?"
그리고 이내 천천히 입을 떼었다.
"난 이재원을 완전히 몰살시킬 심산이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오."
선우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굳이 하오문을 찾아온 것이기도 하고 말이오."
".............무리예요."
하수련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떼었다.
"당신만 믿고 하오문의 존망을 걸 수는 없어요."
무리였다.
자신은 홀몸이 아니었다.
문도만 수십만에 이르는 하오문의 문주인 것이다.
그런 자신이 어찌 문파의 존망을 함부로 걸 수 있겠는가
"당신도 이재원의 몰락을 바라고 있지 않소?"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무슨 말씀을 하는 지 모르겠네요....저는 아무 생각도 없어요. 그가 몰락하든지 말든지 말이에요."
하수련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떼었다.
"거짓말."
선우는 단호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올곧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이다.
"그대도 이재원에게 원한이 있지 않소?"
"........... 알수 없는 말을 늘어놓으시는군요.. 저는 천무맹주와 접점이 없어요. 그런데 어찌 원한이 있을 수 있나요?"
하수련은 억울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마치 모함을 당한 사람마냥 말이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담담한 시선으로 응시하였다.
"하수란."
그리고 이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녀의 복수를 하고 싶지 않소?"
솨아아아아아
순간 하수련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살기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눈에는 살의가 담기기 시작하였다.
".........그 이름을 어떻게..알고 있는 거죠?"
그리고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수란은 십여 년 전 이재원의 아홉 번 째 부인으로 들어갔던 하수련의 언니였다.
그리고 부인들의 괴롭힘을 견디다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비사를 가진 여인이기도 하였다.
"과연 그대의 혈육이 맞는것 같구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을 듣고 확신할 수 있었다.
십여 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이재원의 아홉 번째 부인이었던 하수란의 동생이 분명하다고 말이다.
"대답해요!"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하수란에 관련된 비사는 철저히 비밀로 부쳐졌다.
이야기가 새어나간다면 천무맹주를 비롯한 부인들의 명예가 땅에 그대로 곤두박질칠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천무맹은 하오문을 통해 정보를 통제하였고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별안간 눈앞의 남자가 존재치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 언니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대체 누구죠!? 대체 누가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고 다닌거죠!?"
하수련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녀의 벗이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선우의 말을 들은 하수련은 짐짓 생각에 잠긴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서윤."
그리고 이내 하수련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언니에게는 하나 뿐인 친우가 있었다.
누구보다 아름답고 강인하다며 입 닳도록 칭찬했던
당가의 여걸
독서시 당서윤이 말이다.
"맞소."
선우는 그녀의 말에 수긍을 하였다.
하수란에 관련된 일화는 당서윤으로부터 들었던 일이었다.
아주 오래 전 옥령과 당대부인의 서열 싸움에 대한 조언을 들으면서 말이다.
"............."
선우의 말을 들은 하수련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살기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분노가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당서윤으로부터 그러한 사실을 들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전대 하오문주는 하수란의 비극을 그대로 묻어버렸다.
공론화가 될 경우
천무맹 측에서 하오문을 가만히 놔둘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묻어버렸다.
전대 하오문주는 하오문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제자의 비극을
그대로 없는 사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의 협조를 구하였다.
그 협조자에는 당서윤 또한 포함되어있었다.
그녀는 하수란의 누구보다 친한 친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녀가 하오문을 배신해버렸다.
하오문의 존망을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묻어놨던 불편한 진실을 그대로 발설한 것이다.
어찌 분노가 차오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미 지난 일이에요. 그리고 잊혀진 일이고요. 복수심따윈 없어요!"
이내 하수련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정녕 그리 생각하시오? 정녕 지난 일이고 잊혀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오?"
"벌써 십여 년이나 지난 일이에요! 게다가 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은 천무맹주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저 언니가 약한 사람이었기에 버티지 못하였기에 죽은 것 뿐이에요!""
하수련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거짓말이군."
선우는 담담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진심으로 그리 생각해요!"
"손이 떨리고 있소."
"뭐..뭐라구요!?"
하수련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그러자 선우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가리키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본 하수련은 대뜸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덜 덜 덜 덜
사시나무 떨듯 쉴새없이 떨리고 있는 손의 움직임을 말이다.
"이..이건.!"
하수련은 애써 변명하려고 하였다.
어떻게든 부정을 할 심산이었다.
"알고 있지 않소? 애초에 이재원이 반강제로 그녀와의 혼인을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선우는 올곧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알고 있지 않소? 이재원의 무관심이 그녀를 더욱더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말이오."
"당신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건가요!"
그녀도 알고 있었다.
십여 년 전 일어났던 비극의 원인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언니에게 일어났던 참상의 원인은
전부 천무맹주 이재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오문주를 협박해 반강제적으로 혼인을 치룬 것도 그였고
그 잘난 평등을 내세우며 괴롭힘을 당하던 언니를 방치하다시피 했던 것도 또한 그였다.
만약 그가 언니와 혼인을 하지 않았다면
만약 그가 언니를 진정으로 사랑했었더라면
언니가 궁지에 몰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재원이 언니를 죽인 원흉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당연히 알지는 못하오. 직접 겪은 일이 아니니 그대의 슬픔을 완전히 공감할 수조차 없소."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소. 당신의 가슴 속에 울분과 분노가 가득히 서려있다는 사실을 말이오."
선우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그대로 일어났다.
그다음 그녀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내 손을 잡으시오. 하오문주. 당신의 울분을, 당신의 분노를, 전부 털어버릴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겠소."
".............."
선우의 말을 들은 하수련은 말없이 그를 바라만 보았다.
잡고 싶었다.
미치도록
저 손을 잡고 싶었다.
저 손을 잡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울분과 분노를 모두 해소하고 싶었다.
하지만 잡아선 안되었다.
지금 자신은 하수란의 동생이 아닌
하오문주로서의 판단이 필요한 때 였으니 말이다.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하오문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어요."
하수련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먼저 말해주셨으면해요.......상황을 역전시킬만한 패가 무엇인지"
"패를 들어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이오?"
"네에, 당신의 무력만 믿고 냉큼 손을 잡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니까요."
하수련은 올곧은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얘 봐라.'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분명 언니에 대한 복수심으로 인해 감정이 상당히 상기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렸다.
뜨거운 감정과 냉정한 시선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재밌능 여자였다.
"좋소."
그녀의 말을 들은 이내 선우는 흔쾌히 수락을 하였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들고 있는 패가 그녀에게 먹혀들것이라는 자신이 말이다.
선우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리고 하수련은 그런 선우에게 집중을 하기 시작하였다.
***********
"하아암"
집법당 제 칠대의 부대주인 팽소는 크게 하품을 내쉬었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산더미같은 서류작업에 지루함이 몰려든 탓이었다.
'조금만 잘까?'
팽소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좌우를 살폈다.
그러자 이미 꿈나라에 가있는 동료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니기럴! 나만 안자고 있었네!'
그 모습을 본 팽소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괜스레 혼자만 열심히 일했다는 생각에 억울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남들 다 처자는 혼자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나도 잔다!'
쿵
이내 결심을 굳힌 팽소는 그대로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그다음 곧바로 눈을 감았다.
남들보다 더 일한 억울함을 잠으로 달랠 심산이었다.
끼이이익
그때 갑자기 그의 귓가에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망할 제대로 자지도 못했는데!'
그 소리를 들은 팽소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라는 것을 직감한 까닭이었다.
팽소는 재빨리 고개를 치켜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를 확인할 심산이었다.
"어..어?!"
그리고 이내 그는 멍청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선이 굵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
집법당 최고의 후기지수라고 불리우는 남자.
바로 천룡검 강명이었다.
당주의 명으로 지방으로 파견갔다던 그가 되돌아온 것이다.
"이새끼들이 개판이구만 개판이야! 당장 안일어나!?"
모습을 드러낸 강명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누워서 잠을 자고 있던 칠대의 대원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치켜세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팽소와 마찬가지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 또한 갑작스러운 강명의 등장에 당황을한 것이다.
보통 파견을 갔다가 들어오면 전날 미리 말해주는 것이 예의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이렇게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인가
"정신 안차려 이새끼들아!"
강명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대원들을 노려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대..대주..언제 오신 겁니까!?"
이내 그의 고함에 정신이 돌아온 팽소가 그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이제 막 도착했다"
강명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막 오셨으면.....좀더 쉬시지.왜 이곳에..."
"불만 있어?"
"그..그..불만은 아닌데...너무 갑작스러워서.."
"나 없는 동안 얼마나 해이해졌는지 궁금해서 먼저와봤다."
강명은 팽소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다 처자빠져 자는 게 참 가관이더라."
".............."
팽소를 비롯한 칠대의 대원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들 스스로도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없는 동안 얼마나 개판을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니들은 이제 뒈졌다고 복창해라."
강명은 그런 그들을 노려보며 으르렁 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마주한 칠대의 대원들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지랄같은 성질머리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고단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복귀 신고!"
그때 팽소가 생각난다는듯한 고함을 내질렀다.
"복귀 신고를 하셨습니까? 대주"
팽소는 식은 땀을 흘리며 그에게 물었다.
"아, 맞네."
그 말을 들은 강명은 생각난듯 탄식을 내뱉었다.
"복귀 신고하고 올테니까 튀지말고 기다리고 있어."
그다음 그대로 몸을 돌려버렸다.
끼이이이익
쾅
그리고 밖으로 나가더니 이내 거칠게 문을 닫아버렸다.
"후우"
그가 나가자 팽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지랄같은 새끼의 주의를 어찌어찌 돌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부대주님 이제 어떡해하죠?"
그때 옆에 있던 대원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겁을 집어먹은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당연한 걸 왜 물어?"
팽소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조기 퇴근이다. 다들 짐싸!"
튀는 것 외엔 선택지 따윈 없었다.
이내 칠대의 대원들 빠르게 짐을 싸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몸놀림에 나태함따윈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