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9화 〉 730.당하고는 못사는 성격이라서 말이오.
"..............."
하수련은 황망한 표정을 지은 채 선우를 바라만 보았다.
도저히 믿기지 않은 충격적인 사실에 넋이 그대로 나가버린 탓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 그자체였다.
남자의 말들이 도저히 짜맞춰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천무맹주의 제자이면서 원수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천무맹주에게는 제자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누명을 쓴 채 무림공적으로 선포되었던 천중검天重劍 장삼
그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제자를 자처하다니?
그렇다면 장선우가 사실은 장삼이었다는 말인가
장선우를 연기하고 복수를 꿈꿔왔다는 말인가
모르겠다.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혼란스러운가보오."
선우는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혼란스러워요."
하수련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솔직한 속내를 내뱉었다.
천무맹주의 제자라는 한 마디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하였다.
하오문주인 자신조차 혼란케할 정도로 말이다.
"급하게 생각할 필요없소.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정리하시오."
"........고마워요."
하수련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거리며 감사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말없이 생각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할 요량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검신께서는.....장삼이신건가요?"
이내 하수련은 긴장 어린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맞소."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곧바로 답을 하였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이다.
".....역시..그렇군요.."
하수련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답을 하였다.
모든 조각들이 전부 알맞게 짜맞춰졌다.
그의 모든 말과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째서 그가 축융공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인지
어째서 간살사건의 진실에 대해 요구한 것인지
어째서 이재원을 범인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인지
어째서 하오문을 지켜줄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인지
어째서 이재원을 스승이자 원수라고 지칭했던 것인지
전부 다 알 수 있었다.
그가 장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재원의 안위를 위해
천무맹의 명예를 위해
희생당한 이재원의 대제자인 둔재 장삼말이다.
"믿어주시는 것이오?"
선우는 하수련을 바라보며 물었다.
"믿을 수밖에요.....검신께서 구태여 무림공적을 자칭할 이유 이유는 없을테니까요."
믿을 수밖에 없었다.
구태여 거짓으로 무림공적을 자칭할 이유 따위는 전혀 없을테니 말이다.
"그도 그렇군."
선우는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무림공적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오히려 그녀에게 신뢰를 줬다고 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는 말해줄 수 있겠소?"
선우는 이내 올곧은 시선으로 하수련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들이 알고있는 진실에 대해서 말이오."
"............어쩔 수 없네요."
하수련은 어쩔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가감없이 그대로 내보이며 신뢰를 얻은 검신이었다.
그런 그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했다.
".......말씀드리겠어요. 하오문이 감추고 있는 추악한 진실에 관해서 말이에요."
그녀는 담담한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십여 년동안 감춰왔던 모든 추악한 진실에 대해서 말이다.
*************
사건의 시작은
천무맹이 설립되고 정확히 일년 째가 되던 해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날
매음굴에서 한 여인의 시체 한 구가 발견되었다.
여인의 시체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온몸에 있는 구멍이라는 구멍은 전부 파열되어 핏물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고 팔다리가 전부 기형적으로 꺾여져있었다.
또한 목이 그대로 돌아가 있었는데
어찌나 많이 돌려놨는데 시체를 옮기는 과정에서 목이 그대로 떨어져나갈 정도였다.
한눈에 봐도 잔인하게 가지고 놀다 죽여버린 끔찍한 모습이었다.
처음 시체를 발견헀던 하오문도들은 곧바로 시체를 수습하였고
정체를 밝히기 위해 부던히 애를 썼다.
수많은 신상세명을 뒤져보며 조사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게 되었다.
피해자는 봉황당의 신입 당원으로 들어갔던 비연이라고 불리우는 여인이었는데
며칠전 관아에 실종신고가 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런 여인이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여인의 정체를 파악한 하오문은 시체를 그대로 집법당에 넘긴 후 자체적인 조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관리 구역에 천무맹이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이 쥐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하오문주의 적극적인 지도하에 하오문도들은 용의자를 특정하기 시작하였다.
목격자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 현장에 있던 증거들을 채집하기 시작하였다.
오직 범인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마땅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온 탓에 마땅한 증거를 채집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목격자 또한 보이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처음 일어났던 간살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고
하오문주는 분통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 귀가 달렸다하여 천이天耳라 불리우며
땅에 눈이 달렸다하여 지안地眼이라고 불리우는
하오문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첫 간살 사건이 마무리가 되고
몇 달이 흐른 뒤였다.
다시금 간살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처음 일어났던 사건과 무척이나 판박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말이다.
이번에도 시체는 매음굴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먼젓번처럼 시체에는 성적인 학대가 다수 포함되어있으며 목은 완전히 꺾여져있었다.
시체를 발견한 하오문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를 하였지만 허탕을 칠 수밖에 없었다.
증거와 목격자는 여전히 없었고 특정할만한 대상의 범위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오문주는 문도들에게 공식적인 추적을 공표하였다.
범인을 잡지 못하면 하오문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렇게 하오문과 간살범 사이의 보이지 않는 추적이 시작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추적은 무려 십오년 동안이나 이어지게 되었다.
증거와 목격자를 남기지 않는 범인의 용의주도함에 도저히 당해내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의미없는 추적이 이어지던 어느날이었다.
검제 윤제겸의 손녀가 간살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다.
당연히 천무맹은 난리가 나버렸다.
그동안 중소 문파의 제자거나 이름없는 무관의 출신의 여인들이 주로 간살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최상층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윤제겸의 손녀가 간살된 것이다.
어찌 난리가 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당연히 제남은 뒤집어졌고 윤제겸은 한자루의 검을 들고 거리를 배회하며 범인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오문주 또한 이를 갈며 수사에 직접 착수를 하였다.
간이 배밖으로 나온 간살범에게 본때를 보여줄 심산이었다.
더불어 상할대로 상한 자존심 또한 회복시키고 말이다.
하오문주는 먼저 집법당에 시체가 양도되기 전
먼저 시체를 검수하고 사망추정시각을 알아내었다.
그리고 제남에 살고있는 모든 이들의 현장부재증명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사망 추정시각 당시 무엇을 하였는 지
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수사가 꽤나 난항을 겪었다.
인구만 따지면 수만에 이르는 대인원들을 일일히 조사하는 것은 무척이나 곤란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난항에 하오문주는 한 가지 꾀를 내었다.
따로 분류를 시킨 후 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절정 수준의 무력을 소유하고 있는 피해자를 죽일 수 있는 것은 동급의 고수밖에 없다고 가정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제남에 존재하는 절정 이상 무인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수천의 하오문도들이 밤을 새워가며 때로는 발로 뛰어가며 조사에 착수하기 시작하였다.
천이天耳와 지안地眼이라는 명성을 지키고자 말이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지 정확히 보름째 되던 날이었다.
별안간 하오문주는 수사를 중단해버렸다.
그리고 간살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말라며 엄명을 내렸다.
당연히 하오문도들은 반발을 하였다.
천이天耳와 지안地眼이라는 하오문의 자부심을 포기할거냐면서 말이다.
하지만 하오문주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국 하오문은 간살 사건에 대해 손을 완전히 떼게 되었다.
다시는 신경쓰지 않게 된 것이다.
"하오문주는 범인이 이재원이라는 사실을 알았군."
그녀의 설명을 들은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뒷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오문주가 별안간 간살 사건에 대해 손을 뗀 이유를
천이天耳와 지안地眼이라는 하오문의 자부심조차 포기한 채 말이다.
"맞아요........스승님께서는....당시 현장부재증명이 되지 않는 한 사람의 존재를 알고 있었어요.......바로.....천무맹주 이재원을 말이에요."
하수련은 침중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전대 하오문주는 제자인 그녀를 불러놓고 극비에 해당하는 모든 정보들을 전달해주었다.
단 하나라도 멋대로 발설한다면 피바람이 불 정도로 극비의 정보들을 말이다.
그리고 천무맹주에 관한 정보는 그 극비 중에서도 극비로 분류되는 정보였다,
발설하는 순간 하오문의 존망까지 갈릴 정도로 극비의 정보인 것이다.
".......그렇군."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과연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이재원이 연쇄간살범이라는 사실은 천무맹에 틀어박혀있었던 당진설조차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사실을 천이天耳와 지안地眼이라고 불리우는 하오문이 모를 리 없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했던 것이다.
문파의 존속을 위하여 말이다.
"........죄송해요."
그때 갑자기 하수련이 고개를 숙이더니 정중히 사과를 하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송구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옳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진실을 숨겼어요...."
그녀는 죄책감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결과적으로 모든 진실을 감췄기에 장삼은 범인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범인으로 몰렸을 때도 그들은 그저 침묵을 하였다.
진범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렇기에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문파의 존속을 위해 이기적인 선택을 한 자신이 말이다.
"되었소."
선우는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선택한 일이지 않소?"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들은 그저 살기 위해 발악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진실을 감췄다는 사실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였지만
어느정도 정상참작 될만한 이유기도 하였다.
이재원은 재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
그를 두려워하며 눈치를 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테니 말이다.
".......감사드려요."
하수련은 그의 넓은 아량에 감사를 표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때려죽여도 할 말이 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든 걸을 방관하기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연쇄간살범으로 몰렸을 때도
그가 무림공적으로 선포되었을 때도
그저 방관만 한 것이다.
당장 단매에 때려죽인다한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자료를 넘겨줄 수 있겠소?"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료라 하면..?"
"십오년 전 사건에 대해 기록해놓은 모든 문서 자료들을 말이오."
"............대중들에게 진실을 밝힐 심산인가요?"
하수련은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당하고는 못사는 성격이라서 말이오."
선우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굴하지 않을 무력과 담력까지 갖추지 않았소? 이제 필요한 건 그를 무너뜨릴 실질적인 증거 뿐이오."
선우는 분노가 서려있는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선우는 이재원을 완전히 몰살시킬 심산이었다.
사회적으로
육체적으로
전부말이다.
오직 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필요하였다.
하오문이 가지고 있는 직접적인 증거가 말이다.
"아무도 믿지 않을거예요."
하수련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비록...지금은..여러가지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긴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무림을 구한 대영웅이에요....게다가 마교토벌을 계획하고 있는 상태기도 하구요...그와 여론전으로 벌인다면 불리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이야 여러가지 악소문에 시달리고 있긴 하지만
그는 정의 구현 단체인 천무맹의 맹주이자
무림을 구한 대영웅이었다.
그런 그를 여론전으로 승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결국 대중들은 무림을 구한 대영웅을 택하게 될테니까 말이다.
"괜찮소."
선우는 올곧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여론을 뒤집을 만한 패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오."
그리고 이내 상쾌한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함이 느껴지는 청량한 미소를 말이다.
그리고 하수련은 그런 선우를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바라보았다.
그가 말한 여론을 뒤집을 만한 패가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당신은 무슨 생각인가요?'
하수련의 눈빛에 담긴 의문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