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8화 〉 729.그는 내 스승이오. 그리고 원수기도 하지.
"..........."
"..........."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남자의 말을 끝으로 하수련이 입을 꾹 다물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그런 하수련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녀의 입이 열리기를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네요."
이내 하수련이 입을 떼었다.
"기껏 생각한게 발뺌이오?"
그 모습을 본 남자는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생각해낸 게 아니에요. 진심으로 무슨 말씀인지 알 수가 없어서랍니다. 천무맹주께서 연쇄 간살범이라뇨? 정의구현 단체이자 무림을 구한 대영웅이 그런 일을 벌일 리 없지 않나요?"
하수련은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는듯이 말이다.
'약파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남자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순진함을 가장하여 질문을 회피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치미 뗄 것 없소. 이미 다알고 찾아왔으니."
"대체 뭘 알고 찾아왔다는 거죠?"
하수련은 샐죽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그대들이 이재원의 범행 사실을 전부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하수련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매음굴을 관리하는 건 하오문이라고 들었소. 틀리오?"
"맞아요."
그의 물음에 하수련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매음굴을 관리하는 건 하오문의 업무였다.
폐쇄적이고 치안이 좋지 않은 매음굴의 특성상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며면 개판이 날게 분명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오문이 매음굴을 관리한 지 얼마나 되었소?"
".........하오문이 제남에 자리를 잡은 후 부터예요."
"자리를 잡은 시기는 언제오?"
"...이십 년 전이에요."
"공교롭게도 천무맹과 비슷한 시기에 제남에 자리를 잡았구려."
그녀의 말을 들은 남자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게 어쨌다는 거죠?"
"이십 년 전부터 매음굴을 관리했다면 그곳에 매번 간살된 시체가 버려졌다는 것 또한 잘알고 있구려?"
"글쎄요?'
하수련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거짓말이군."
남자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매음굴에 버려지는 시체만 일년에 수십 구에요. 어떻게 일일히 기억할 수 있겠어요!?"
거짓이 아니었다.
매음굴에는 한 해에만 수 십구의 시체가 생겨난다.
하오문에서 매음굴을 관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매음굴은 여전히 위험한 곳이었다.
인생 막장의 하류인생들이 모인 채 지지고 볶고를 반복하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레 범죄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고 살인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편이었다.
"기억할 수밖에 없지 않소?"
남자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간살된 시체가 생길 때마다 고이 보관했다 천무맹에 양도했을테니까"
간살된 시체는 언제나 천무맹 측에 양도가 되어왔다.
시체가 훼손되지 않도록 암묵적으로 보호한 채 말이다.
"그걸 어떻게!?"
그녀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오문이 간살된 시체를 보호한 후 양도했던 일은 집법당과 하오문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런 정보를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아는 사람 중에 관계자가 있어서 말이오."
남자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사건 관계자가 있었다.
누구보다 사건에 밀접한 관계자가 말이다.
"저희는 그저 시체를 보호하다 양도했을 뿐이에요."
이내 하수련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말이 바뀌는구려? 아까는 기억나지 않는다더니...."
남자는 말꼬투리를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정말 그게 다예요.....범인에 대해선 아는 게 전혀 없어요."
"이상하지 않소? 하늘에 귀가 달렸다하여 천이天耳라고 불리우며 땅에 눈에 지안地眼이라고 불리우는 하오문이 이십여년 동안 셀수도 없이 많은 간살을 일으킨 범인에 대해 알지 못하다니 말이오."
남자는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하오문이 범인을 특정했음에도 모르는 척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하오문 입장에서 간살 사건은 무척이나 거슬리는 사건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천무맹이 매음굴 운영에 개입할 명분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범인을 찾으려고 하였을 것이다.
목격자를 찾으려고 하였을 것이고
증거를 수집하려고 하였을 것이며
제남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현장 부재를 증명하였을 것이다.
오로지 범인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하오문이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범인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서 말이다.
어찌 이상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
남자의 말을 들은 하수련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되는 변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개새끼도 영역을 침범당하면 거칠게 짖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무림 문파가 영역을 침범당했는데 침묵을 하다니?
지나가던 개도 안믿을 소리였다.
"애초에 어린 계집이 문주로 있는 하오잡배들의 문파예요. 그런 곳에서 어찌 천무맹조차 잡지 못했던 범인을 특정했겠어요?"
하지만 그녀는 다시금 발뺌하였다.
스스로는 물론 사문인 하오문을 비하하면서까지 말이다.
"알고 있지 않소? 누가 범인인지."
남자는 그런 하수련의 발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하였다.
"진실을 말해주셨으면 하오."
마치 다알고 있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소협."
이내 하수련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세상에는 모르는 게 나은 진실도 있는 법이에요."
"그걸 판단하는 건 본인이오. 그대는 그저 알고 있는 정보를 내뱉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오."
"죽을 거예요."
하수련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진실에 다가가는 순간 소협은 죽고 말거예요."
그녀는 떨리는 눈동자로 남자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그 또한 본인의 선택이오."
"당신만 죽는 게 아니라구요! 하오문이 결단날 수 있단 말이에요!"
하수련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전대 하오문주 때부터 수십 년간 봉해온 추악한 진실이었다.
오직 하오문을 지키기 위해서
모두가 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지켜주겠소."
남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는 눈빛으로 하수련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누가요? 당신이요? 허! 정체도 제대로 밝히지 않는 당신을 제가 뭘 믿겠어요? 아니 무엇보다 당신이 우릴 지킬 힘이 있다고 어떻게 믿죠?"
하수련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고함을 내질렀다.
하오문에 들어와 자신과 대면한 이후 무엇 하나 제대로 밝힌 적 없는 남자였다.
사문과 별호는 물론 이름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은 남자인 것이다.
그런데 상황에서 대체 이 남자를 뭘 믿고 문파의 존망이 달린 진실을 내뱉는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대들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면 내게 모든 진실을 알려주겠소?"
그녀의 말을 들은 남자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믿음만 준다면 못할 것도 없지요."
그의 물음에 하수련은 흔쾌히 답을 하였다.
지킬 수 있다는 확신만 준다면 말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추악한 진실을 감추고 있는 건 하오문 입장에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리 없지.'
하수련은 확신을 하였다.
이 남자가 자신에게 믿음을 줄 수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상대는 중원에서 가장 강한 무인 중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중원에서 가장 강한 무인 집단의 수장이기도 하였다.
그런 이를 상대로 어찌 확신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하오문을 지켜줄 수 있다는 확신을 말이다.
"좋소."
남자는 시원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대답이 썩 마음에 든듯 탓이었다.
우우우우우웅
그리고 천천히 내력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뭘 할 셈이지..?'
그 모습을 본 하수련은 긴장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혹여 무력적인 협박을 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그를 주의깊게 바라보던 그때였다.
우드득 우드득
갑자기 그의 몸에서 골격이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얼굴이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하였다.
우드드득
처음에는 이마였다.
좁디 좁아 보기 싫었던 이마가 시원하게 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눈매였다.
새초롬하게 치켜떴던 눈매가 시원스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다음은 광대였다.
부담스럽게 튀어나왔던 광대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이내 보기좋게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다음은 입매였다.
살짝 돌출되었던 입매가 서서히 들어가며 고집있어 보이는 인상을 주는 입매가 완성되었다.
그다음은 턱선이었다.
얄쌍하여 야비한 인상을 주었던 턱선이 좀더 굵어지더니 호방한 인상을 주기 시작하였다.
우드드드득
그리고 온몸이 뒤들리기 시작하였다.
가슴, 팔뚝, 허리 ,허벅지 등 모든 부위가 부풀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삐쩍 말라 연약해 보였던 체형이 순식간에 잘단련된 무인의 체형으로 바뀌어버렸다.
우두두두둑
그렇게 얼마나 온몸이 뒤틀렸을까
이내 한 남자는 그녀에게 완전히 다른 모습을 내보였다.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바뀐 남자의 모습을 본 하수련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 잘알고 있는 얼굴이 눈앞에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검...검신劍神?!"
이내 하수련은 더듬거리며 천천히 입을 떼어내었다.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검신劍神이었다.
단칼에 이재원의 팔을 베어버린 남자이자
새로운 천하제일인으로서 명성을 갖게 된 남자.
검신劍神 장선우말이다.
"이 모습이라면 믿음이 가겠소?"
선우는 당혹스러워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끄덕 끄덕 끄덕
그의 물음에 하수련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리기 시작하였다.
검신의 보증이라면 믿음이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천무맹 한 가운데서 맹주의 팔을 잘라버린 검신劍神이었다.
이 남자의 보증을 어찌 믿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잘됐구려."
선우는 작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야기가 잘 풀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믿음을 주지 못할까 걱정을 하였소."
선우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검신劍神께서는 축융공을 익히신 건가요?"
그때 한참동안이나 입을 다물고 있던 하수련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의문이 담겨있었다.
"맞소이다."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그걸...?"
하수련은 의문스럽다는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그가 축융공을 익혔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축융공은 과거 천변색마가 익혔던 천축에서 건너온 역용술이었다.
골격은 물론 신장과 근육의 크기조차 바꿀 수 있다는 무림 최고의 역용술말이다.
그런 역용술을 장선우가 익히고 있다고 하니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오?"
"이상..할 수 밖에요....축융공이 적힌 비급은...과거 천변색마가 잡히고 나서....완전히 불태워졌다고 들었어요...."
과거 천변색마를 잡아죽였던 이재원은 수많은 이들 앞에서 축융공을 불태워버렸다.
다시는 똑같은 범죄가 일어나선 안된다고 천명하면서 말이다.
그후 축융공의 명맥은 끊겨버렸고 완전히 사장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축융공을 장선우가 난데없이 익히고 있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거 사실 불태우지 않았소."
"네에?"
"비밀 비동에 숨겨놓고 있더군. 수집품으로 말이오."
"그럴 수가....."
선우의 말을 들은 하수련은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그런 비사가 숨겨져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잠..잠깐만요."
그때 갑자기 하수련이 무언가 생각난듯 언성을 높였다.
"말해보시오."
"비밀 비동에 숨겨져있던 축융공을.......검신劍神께서 어떻게 익히신 거죠?"
그녀는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선우에게 되물었다.
그가 축융공을 익힌 과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재원이 만들어놓은 비밀 비동에 직접 들어간 적이 있었소."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검신劍神께서....그곳에 직접이오?"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검신이 비밀비동에 잠입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재원의 팔을 직접 베어버린 검신은 이재원과 친분이 깊지 않았다.
이재원이 직접 비동에 안내해주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비밀 비동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것이란 말인가
그녀는 고심에 잠겼다.
어떻게든 의문을 풀어내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의문만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고심을 하였을까
".........검신께서는 대체 천무맹주와 무슨 관계죠?"
이내 하수련은 결연에 찬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일련의 상황들을 관통하는 직설적인 질문을 말이다.
"그는 내 스승이오."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그게 무슨?!"
"그리고 원수기도 하지."
선우는 원한에 찬 눈빛을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