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2화 〉 723.너무 저열해서 귀가 썩을 것 같네요.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구려."
이재원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무심하게 대하던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네요."
그 모습을 본 주소양은 불편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답을 하였다.
이재원의 같잖은 태도에 썩 달갑지 않은 까닭이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내가 그리 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소?"
그녀의 불편한 기색을 눈치 챈 것일까
이재원은 직설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 일을 당했는데.....제가 어찌 맹주를 반가워하겠나요?"
주소양은 북풍한설처럼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과거 이재원은 주소양에게 폭행한 전력이 있었다.
그것도 여인에게는 생명이나 다름없는 얼굴을
자신을 막아선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그를 반겨줄 수 있겠는가
어불성설이었다.
"하하하하....미안하오..그때는 내가 너무 흥분했던듯 하오."
이재원은 사람좋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벌써 석달이나 가까이 되었는데....이제야 사과하시는 군요."
"내 그동안은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하였소."
이재원은 변명하듯 입을 떼었다.
"생각이 그렇게 깊으신 분인지 몰랐습니다."
주소양은 비웃음 섞인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명백히 비아냥거리는 말투였다.
'이 개같은 년이.'
그녀의 비아냥거림을 들은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이쪽에서 인심써서 사과를 해주겠다는데
사과를 받는 태도가 괘씸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정 폭력을 써야하나?'
이재원은 주먹을 말아쥐며 진지하게 고심을 하였다.
가정폭력이라는 훌륭한 처방으로 그를 옳게 만들어줄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니야..오늘은....져주자...'
하지만 이내 그런 마음을 잠시 접어두었다.
오늘은 그녀와 순수하게 화해를 하기 위해 찾아온 날이었다.
줘패기 위해 찾아온 게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소양을 팬다면 그녀를 지지하는 틀딱새끼들이 지랄발광할게 자명하였다.
안그래도 어수선한 상황에서 그런 개같은 상황은 미연에 방지해야했다.
"그 날의 일은 내게도 무척이나 큰 충격이였소...부인."
이재원은 짐짓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표정을 지은 채 변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인이......내가 아닌 다른 남자의 편에 서서...나를 막아섰는데....어찌 남편된 입장에서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있겠소?"
마치 어쩔 수 없었다는듯이 말이다.
그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코웃음을 쳤다.
간살범새끼가 꼴같지 않게 감성팔이를 하는 모습을 보니 우습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 뺨을 때린 건가요? 살갗이 터져나갈 때까지 말이에요?"
주소양은 힐난 어린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당시 그녀는 양뺨의 살갗이 터질 정도로 이재원에게 얻어맞았다.
자칫 했다간 여자로서의 인생이 끝날 뻔한 것이다.
"......지금은 멀쩡하지 않소? 다 내가 힘 조절을......."
이재원은 변명아닌 변명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반박할만한 말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 뺨의 상처가 사라진 건 장공자 덕분이에요."
주소양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재원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장공자라면....장선우를 말하는 것이오?"
"맞아요."
주소양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와락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듣기싫은 새끼의 이름이 언급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아니었어도....충분히 회복할만한 상처였소..."
이재원은 치솟아오르는 화를 가라앉히며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그건 모를 일이죠. 붉디 붉은 속살이 전부 드러날 정도로 맞았으니까요."
주소양은 여전히 비아냥거리며 말을 이었다.
변명으로 일관하는 이재원의 찌질함에 짜증이 올라온 까닭이었다.
"내 분명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어찌 이미 지나간 과거에 집착을 한다는 말이오!"
그녀의 비아냥거리는 태도에 짜증이 난 이재원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기껏 배려하여 사과하러온 자리였다.
누구보다 자존심 강하고 위대한 자신이 친히 고개를 숙이러 온 것이다.
감동의 눈물을 줄줄 흘려도 모자랄 판국에
어찌 저리도 무도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취한다는 말인가
"잊을 수 없는 과거도 존재하는 법이에요."
"과거에 집착하는 일만큼 쓸모없는 일도 없는 법이오! 사람이 현재를 살아야지. 어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얽매인단 말이오!"
"우습군요. 그렇다면 맹주는 지난 과거의 일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얽매이지 않고 용서할 수 있는 건가요?"
"당연한 말이오!"
"그럼 맹주의 팔을 잘랐던 장공자를 용서할 수도 있겠군요?"
"그건 경우가 다르지 않소!"
이재원은 발끈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대체 뭐가 다르단거죠?"
"그는 내게 영구적인 상처를 입혔소! 또한 천무맹주의 권위에 실추시키기까지 하였소! 그런데 내 어찌 그를 용서한단 말이오!"
"맹주께서도 제게 상처를 입혔어요. 또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제게 폭력을 행사하여 천무맹의 안주인으로서의 권위를 실추시켰어요. 그런데 제가 어찌 맹주를 용서할 수 있겠나요?"
주소양은 이재원의 주장을 그대로 말만 바꿔 반박을 하였다.
"이이..이익!"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분통 터지는 표정을 지은 채 이를 갈기 시작하였다.
'이년이......미러링을!?'
한마디도 안지는 주소양의 태도에 분노와 짜증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맹주께서는 무척이나 앞뒤가 안맞는 비논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군요. 맹주의 잘못은 과거의 일이기에 쉽사리 용서가 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용서가 안되니 말이에요."
주소양은 한껏 비웃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하였다.
정곡을 찔렸기 떄문이었다.
그녀는 오직 자신만의 편의위주로 살아가는 이재원의 이중잣대를 정확히 찔러들어온 것이었다.
'어떻게...어떻게..네년이....나한테...'
그리고 그 정곡을 찌르는 그녀의 말을 이재원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분노를 느끼게 만들기 충분하였다.
무림에 떨어지고 언제나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이중적 잣대를 들이밀던 이재원이었다.
억지나 다름없는 짓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런 사실을 지적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그가 원하는대로 생각하는 대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본질이 정확히 꿰뚫리고 말았다.
분노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 말이 없나요? 제가 틀렸다면 반박을 해보세요. 맹주."
이재원이 말이 없자 주소양은 더욱더 비아냥대며 그를 자극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추악한 면모를 들춰내는데 거침이 없는 것이다.
".......주소양."
이내 이재원은 낮게 내리 깔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나를 자극하지마라."
우우우우우웅
더불어 기운을 조금씩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녀를 압박할 요량으로 말이다.
"저는 사실을 말한 것 뿐이에요. 틀린 말이 있다면 반박을 해주셨으면 해요."
하지만 그런 이재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주소양은 여전히 제 할 말만 할 뿐이었다.
그의 경고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듯이 말이다.
'이...이...시발년이!!!!!!!!'
그리고 그런 그녀의 태도는 이재원을 자극하기 충분한 모습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이내 이재원의 몸에서 거대하기 그지없는 거력이 뿜어져나오더니 방 안을 그대로 뒤덮으며 그대로 짓누르기 시작하였다.
********
들썩 들썩
흔들 흔들
방 안에 있는 수많은 집기구들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재원이 내뿜는 거력을 감당치 못한 까닭이었다.
"내가 말했을 텐데.....나를 자극하지 말라고 말이야."
이재원은 핏발 선 눈빛으로 주소양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넌 내 부인이다. 평생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무조건적인 내 편이란 말이다. 그런 네가 어찌 나를 이런 개같은 취급을 한다는 말이더냐?"
이재원은 가식을 뺀 솔직한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었다.
다른 사람은 배신하여도 그녀는 안되었다.
자신의 부인들만큼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여도 편을 들어주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자신을 적대적으로 대한다는 말인가
"지아비를 따르는 것은 계집의 본분이거늘.....어찌 그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냐?"
이재원은 분노가 서려있는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주소양은 그런 이재원을 담담한 시선으로 마주 보기 시작하였다.
아무런 말도 없이 말이다.
'겁먹었군.'
그 모습을 본 이재원은 생각하였다.
그녀가 겁을 집어먹고 얼어붙은 게 분명하다고 말이다.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화경에 불과한 그녀와 달리 자신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현경의 경지에 다다른 반선이었으니까 말이다.
'알아서 기라고! 이 개같은 년아!'
이재원은 눈깔에 더욱더 힘을 주었다.
그리고 잡아먹을듯이 그녀를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기를 완전히 죽여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동안이나 눈싸움을 벌였을까
"저열하군요."
이내 주소양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경멸에 가득 찬 감정을 내비치면서 말이다.
"......뭐..?"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너무 저열해서 귀가 썩을 것 같네요."
주소양의 표정이 더욱더 차가워지기 시작하였다.
'저열..하다고?.....내가?'
그녀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어떤 처우를 받더라도 한 번도 자신을 욕한 적 없는 주소양이었다.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맹세코 비난이나 비하같은 말을 입에 올린 적 없는 그녀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자신을 비난하였다.
저열하다고
너무 저열해서 귀가 썩을 것 같다고 말이다.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제가 원한건 논리적인 반박이에요. 그런데 맹주께서는 순전히 개인적인 감정에 입각한 억지만 부리고 계시네요."
주소양은 멍한 표정을 이재원을 날선 목소리로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억지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무력을 앞세우다니요? 천무맹의 수장이라는 분께서 사마외도의 잡배들처럼 행동하다니요?. 어찌 이렇게 저열할 수가 있나요?"
주소양은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이재원에 대한 반발심이 극에 달한 까닭이었다.
".......지금..내가..사마외도의 잡배와 다를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냐?"
부들 부들
이재원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뭐가 다르죠? 저는 모르겠군요."
주소양은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녀의 미소에는 명백한 무시가 담겨 있었다.
뚝
그리고 그녀의 무시는 이재원이 부여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완전히 끊어지게 만들었다.
쇄애애애애애액
이내 이재원의 몸에서 뿜어나온 거대한 살의가 주소양을 그대로 덮쳐버렸다.
그녀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거대한 살의가 말이다.
'이 개같은 년이!'
이재원은 핏발 선 눈빛으로 주소양을 노려보았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무시였다.
수십 년 전
무림에 떨어지기 전
투명 인간 취급을 받으며 온갖 무시를 당하였던 이재원이었다.
등교를 해도 같이 가주는 이가 없었으며
인사를 해도 받아주는 이가 없었고
하루종일 아는 척 해주는 이 또한 없었고
하교를 해도 같이 가주는 이가 없었다.
무시를 당한 것이다.
온 세상에게 말이다.
그리고 부정당한 것이다.
존재자체가 말이다.
그렇기에 무림에 처음 떨어졌을 때
그는 기쁘기 그지없었다.
초라하고 볼품없고 무시당하던 현대와 달리
무림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봐주고 칭송해주며 사랑해주었다.
부정당한 존재가 긍정되어진 것이다.
그는 기뻐하였고 행복을 느꼈다.
다시는 무시 당하는 끔찍한 경험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주소양이 자신을 무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경멸하는듯한 시선까지 보내오고 있었다.
자신을 알아봐주고 칭송해주며 사랑해주어야할 존재가 말이다.
배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 배신감은 곧 살의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놔둘 순 없었다.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는 이곳에서 변절자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녀를 말이다.
만약 이대로 그녀를 방치했다간 그녀와 같은 변절자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다시 그 끔찍했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소양을 원래대로 되돌려야했다.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던 예전으로 돌아가기 전에 말이다.
우우우우우웅
이재원은 더욱더 거대한 살의로 그녀를 짓누르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기를 완전히 짓눌러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우우우우우웅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주소양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투기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살의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투기가 말이다.
'뭐..뭐야!?'
그 모습을 본 이재원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의지력으로 똘똘 뭉친 살의와 견줄 수 있을 정도의 투기를 내뿜는 그녀의 모습에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순간 이재원의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최악의 수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의지력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의지력뿐이었다.
그 말인즉슨
그녀 또한 의지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현경!?'
현경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이재원의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