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8화 〉 719.전 천무맹을 무너뜨릴 생각이에요.
또각 또각
주소양이 기품 어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뚝
이내 그녀는 커다란 대문 앞에 발을 멈춰서게 되었다.
"후우"
그녀는 긴장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심호흡을 하기 시작하였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심산인듯 하였다.
그리고 마음이 어느정도 가라앉았을 때
똑 똑 똑
그녀는 조그마한 주먹을 말아쥐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누구시오?"
그러자 대문 안에서 늙그수레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예요....."
주소양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소양이더냐?"
"네에.."
"들어오거라."
끼이이익
남자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소양은 곧바로 문을 열어젖히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내부 전경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그간 별일은 없었더냐?"
주소양이 안으로 들어오자 중후한 인상의 노인이 빙긋 웃으며 입을 떼었다.
오랜만에 보는 주소양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듯 보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대협."
주소양은 무척이나 공손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공손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노인은 전대 천월궁의 궁주이자 무림맹주였던 아버지의 오래된 지인이였으니까 말이다.
"대협이라니......너무 거리를 두는구나....예전처럼 숙부라고 부르려무나.."
노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주소양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다.
"제가 어찌...대협께..."
그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황송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전대 고수였던 아버지 보다 윗줄에 위치하고 있던 노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노인을 어찌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서운하구나......세월이 흘렀지만....난 여전히 널 친딸
처럼 여기고 있거늘....너는 그게 아닌듯 하구나."
노인은 서운함이 묻어나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비록 피가 이어져있지 않았지만 친딸처럼 여기던 아이였다.
그런 그녀가 되려 예의를 차리니 서운함이 물밀듯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런게....아니예요....."
주소양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게 아니면 예전처럼 불러다오."
".......숙부..."
이내 주소양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가 원하는대로 말이다.
"하하하하...좋구나!"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유쾌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상황이 꽤나 마음에 든듯하였다.
"우우.우.....우.."
무림의 대선배에게 낯간지러운 호칭을 칭했다는 사실에
괜스레 민망함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웃었을까
"그나저나 여기는 어쩐 일이더냐?"
이내 노인은 웃음기를 거둔 채 그녀에게 물었다.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다.
"......할 말이 있어요."
"할 말?"
노인은 의아하다는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전혀 예측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숙부."
"말하거라."
"숙부님께서는.....제 편이 맞으시죠?"
주소양은 긴장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당연하다마다. 내 어찌 네가 아닌 다른 이의 편을 들 수 있겠느냐?"
노인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답을 하였다.
오랫동안 딸처럼 여겼던 주소양이었다.
그런 그녀의 편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의 편을 든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제가 그 어떤 말도 안되는 말을 해도.....제 편을 들어주실 건가요?"
"넌 내가 아는 아이들 중 가장 현명한 아이란다. 네가 하는 말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해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녀가 커가는 모습을 갓난 아이때부터 봐왔던 노인이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누구보다 현명하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믿을 수 있었다.
그녀의 선택을 말이다.
"........후우우우"
확신에 찬 노인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고개를 푹 숙인 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또렷한 눈빛으로 노인을 마주하였다.
"숙부."
그리고 천천히 입을 뗴어내었다.
"전 천무맹을 무너뜨릴 생각이에요."
주소양은 결연에 찬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절 도와주시겠어요?"
주소양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너무 말도 안되는 소리였기에
혹여 노인이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도와주마."
노인은 망설임없이 곧바로 대답을 하였다.
"딸과 같은 너의 부탁인데 내 어찌 넘겨들을 수 있겠느냐?"
".......이유를 묻진 않으시나요?"
주소양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련히 알아서 말해줄까"
노인에게 천무맹을 무너뜨릴 이유 따윈 중요치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주소양이 자신에게 부탁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딸처럼 소중한 그녀가 말이다.
"........감사해요...숙부."
"말하지 않았더냐? 누구보다 현명한 네 부탁이라면 망설임따윈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노인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다는 생각에 가슴 깊은 곳에 벅찬 감정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이유가 궁금하진 않으세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궁금하긴 하단다...."
그녀의 말을 들은 노인은 속내를 슬쩍 내비치기 시작하였다.
궁금하긴 하였다.
별안간 천무맹을 무너뜨리고 싶다는 연유가 말이다.
하지만 구태여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현명하고 지혜로운 그녀의 생각이었다.
"말하고 싶을 때 말해도 된단다."
노인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지금 말하고 싶어요."
주소양은 또렷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숙부는......자격이 있으신 분이니까요."
노인은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천무맹이 무림맹의 후신임을 공식적으로 공표한 무림맹의 부맹주이자 현재는 공석이 되어버린 천무맹의 부맹주 자리까지 연임했던 맹의 핵심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격이라....맹을 버리고 떠난 내게 자격이 있다는 말이더냐?"
노인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충분해요...천무맹의 역사는 어찌보면 숙부로부터 시작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주소양은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만약 노인이 천무맹이 무림맹의 후신임을 정식으로 공표하지 않았다면 천무맹은 지금 이렇게까지 커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권력에 미친 수많은 문파들이 우후죽순으로 여러 단체들을 설립하였을 것이 뻔하였기 떄문이었다.
무림맹을 계승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말이다.
그런 와중 노인이 천무맹을 무림맹의 후신으로 인정하였고 천무맹은 무림맹이 구축해온 모든 것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보면 지금의 천무맹은 눈앞에 노인으로부터 시작했다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허허허허....그리 말한다면 자격이 없다고 할수도 없겠구나."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웃음을 흘리며 이내 수긍을 하기 시작하였다.
확실히 천무맹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해선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럼 이유나 들어보도록 하자꾸나. 어째서 천무맹을 무너뜨릴 생각을 하는 것이더냐?"
노인은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이제 천무맹에는 협俠이 완전히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주소양은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근 이십여 년 간 몸담고 있던 천무맹이었다.
그런 천무맹을 치부를 밝히는 일이 마음 편할 리 만무하였다.
"협이 사라져버렸다?"
노인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주소양에게 물었다.
뜨끔없이 협이 사라져버렸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현재 천무맹은 협을 추구하기 위한 정의 구현 단체가 아닌 위정자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정치단체로 변질되어버렸어요."
주소양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고한 이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은 물론 죽이는 일조차 서슴없이 행하는 인간 말종 집합체로 변모해버렸어요..."
주소양은 불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천무맹은 엄연히 정통으로 무림맹을 계승하는 집단이었다.
그런 천무맹이 위정자들의 놀이터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는 무림맹을 욕되게 하는 짓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은 그녀의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가꿔온 최고의 무림 단체였으니 말이다.
"..........그게 사실이더냐?"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노인은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협을 숭상하고 행하는 곳이
무림맹을 계승한다는 곳이
그런 추악하고 치졸한 일을 벌였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에요.......숙부."
주소양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그에게 사실대로 고하기 시작하였다.
이재원을 비롯한 수뇌부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 뿐인 대제자를 간살범으로 모는 것은 물론 후에는 무림공적까지 몰아 명예를 끝없이 실추시켰다는 사실을
천무맹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 가짜 장삼을 내세워 연기를 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무고한 목숨을 둘이나 거둬갔다는 사실을 등
지금까지 껶어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전해주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느꼈던 분노와 슬픔을 첨언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주소양은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하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은 전부 다하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선택은 노인의 몫이었다.
천무맹을 무너뜨리는 것에 대해 협조를 할 것인지
아니면 모르쇠 일관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것인지 말이다.
"......썩었군."
이내 그녀의 말을 들은 노인인 천천히 입을 떼어내었다.
그리고 느낌 바를 가감없이 그대로 말하였다.
썩었다는 말 외에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들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맞아요.....썩었어요......"
그 말을 들은 주소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받았다.
"그렇기에 물갈이를 할 필요가 있답니다. 썩은 부분을 완전히 도려낼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런 식이라면 천무맹을 무너뜨리는 게 아닌 수뇌부만 물갈이하는 게 낫지 않더냐?"
노인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숙부님, 저는 천무맹의 존재 자체를 사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어요."
주소양은 북풍한설처럼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용납할 수 없었다.
천무맹의 존재 사실 자체를 말이다.
협을 숭상하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은 천무맹이었다.
존재 자체가 수치가 되어버린 곳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천무맹을 가만히 냅둔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렇군."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수긍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본디 새 술은 새 자루에 담는 법이었다.
그래야만 맛과 향이 더욱더 깊어지는 것이었다.
이는 천무맹을 무너뜨려야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였다.
그녀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천무맹은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상태였다.
그런 천무맹을 억지로 유지한다고한들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바라봐 줄 리 만무한 것이다.
그럴 바엔 없애는 게 나았다.
"내가 뭘하면 되겠느냐?"
이내 노인은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이미 천무맹을 무너뜨리기로 결심을 마친 그녀였다.
그런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해야한다는 말인가
"과거 무림맹에 속해있던 수뇌부들을 전부 소집해주세요."
"전부 말이더냐?"
"지금은 그분들의 도움이 너무나 절실히 필요해요."
수뇌부들은 물갈이가 될 것이다.
더불어 천무맹을 몰아내고 무림맹을 계승하는 새로운 연합이 탄생할 것이다.
그리고 무림맹 소속이었던 수뇌부들은 그 새로운 연합의 간부로서 자리를 지키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뒤바뀌어버리는 것이다.
".....힘써보도록 하마."
그 말을 들은 노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무림맹에 속해있던 수뇌부들은 대다수 은거를 하거나 금분세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그들을 섭외하라고 하니 난감함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믿을게요.....숙부님."
주소양은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말을 이었다.
선우가 마음껏 날뛸 수 있는 판이 차츰차츰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서 와주세요......선우님....소첩은 선우님만 기다리고 있답니다.'
주소양의 눈빛에 그리움이 가득히 담기기 시작하였다.
**********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숙부님."
주소양은 꾸벅 인사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그래, 조심히 가보도록 하거라."
노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녀를 배웅하였다.
끼이이이익
쿵
이내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완전히 닫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노인은 아무 말이 없이 그녀가 사라진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놀랍군."
이내 노인은 차갑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주소양을 푸근하게 받아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재원......네놈의 바닥은 대체 어디인 것이냐?"
노인은 북풍한설처럼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설마하니 이재원의 밑바닥이 이리도 끝이 없을 줄은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저벅 저벅
이내 노인은 책상쪽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털썩
그리고는 곧바로 의자 앉더니 이내 붓을 집어들고 종이에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주소양에게 들었던 모든 것들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뚝
모든 사실을 적은 노인은 종이를 천천히 접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책상 서랍에서 봉투를 꺼내 그대로 넣어 밀봉시켜버렸다.
노인은 밀봉된 서신을 그대로 품에 넣으려고 하였다.
"....이름을 빼먹었군."
하지만 이내 동작을 멈추고 다시금 봉투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붓을 들어 봉투 한쪽에 이름을 쓰기 시작하였다.
고풍스러움이 절로 느껴지는 굵직한 글씨체로 말이다.
이내 봉투 한쪽에는 윤제겸이라는 이름이 적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