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2화 〉 713.저희 담소를 나눠볼까요?
"하하하하하하 차 당주, 내 잔을 받게나!"
이재원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술잔을 들어올렸다.
한눈에 봐도 상당히 상기되어있는 모습이었다.
"감사합니다. 맹주."
계방당주 차도진은 무척이나 공손한 자세로 잔을 받들었다.
챙
이내 두 남자의 술잔이 부딪히며
청명한 물소리가 방안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두 남자는 단숨에 술잔을 비워버렸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이야, 우리 차당주는 화통하기까지 하는구만. 꽤나 독한 놈인데 그걸 한 번에 마시다니 말이야."
이재원은 감탄했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시중에서 파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독주였다.
그런 독주를 샌님같이 생긴 계방당주가 단숨에 마시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사내가 잔을 남기겠습니까? 그런 건 계집이나 하는 짓이지요."
"크하하하하하하 아주 말을 잘하는 구만. 그렇지. 사내라면 응당 그래야지!"
이재원은 마음에 든다는듯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남성 우월주의가 기저에 깔려있는 그의 발언이 무척이나 시원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새끼 좀 마음에 드네?'
이재원은 차도진에게 호감을 품었다.
말꼬라지나 행동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이유는 머리가 제갈찬만큼 잘돌아간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계략만 따지고보면 제갈찬은 차도진의 발끝만큼도 못따라갈 것이다.
같잖은 협의나 양심을 내세우는 제갈찬과 달리 차도진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무고한 희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을 새끼였으니까 말이다.
'계략 짜는 건 이새끼가 압승이지.'
그렇기에 마음에 들었다.
탐욕적이고 이기적이면서 머리가 잘돌아가는 차도진이 말이다.
"잔을 받으시지요."
그때 차도진이 술병을 들어올리며 입을 떼었다.
쪼르르르
그다음 이재원의 잔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였다.
"하하하하....고맙구려."
"별말씀을요."
이내 두 사람의 잔이 다시금 부딪히게 되었고
술자리가 점점 무르익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술자리가 지속되었을까
".....차당주."
이재원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차도진을 불렀다.
".....말씀하시지요."
차도진 또한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계방당주라는 자리에.....만족하시오?"
"......무슨 말인지....모르겠습니다.."
"일개 당주로서 그 자리에 있는 게 마음에 드냐는 말이오?"
".....마음에...든다라........"
그의 물음에 차도진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마음같아선 순찰 업무나 하는 계방당이 아닌 핵심인력들이 모인 사대당같은 곳에 들어가고 싶었다.
당의 힘에 따라 권력의 크기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밝혀도 되는 지 의구심이 들었다.
자신을 시험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고민을 하였다.
지금 이순간에는 어떤 대답을 해야하는 지에 대해서 말이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만족치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내 고민을 마친 차도진이 입을 떼었다.
고이 숨겨왔던 진심을 말이다.
"호오.....만족치 못한다?"
"남자로 태어났는데 이왕이면 수뇌부 중에서도 핵심이 되고 싶지 않겠습니까?"
차도진은 뜨거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의 눈빛은 권력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히죽
그 모습을 본 이재원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차도진의 눈빛에 담겨있는 야망이 그대로 전해진 까닭이었다.
이해가 되었다.
권력 유지를 위해 다른 이의 희생따윈 아무렇지 않아하는 차도진의 태도가 말이다.
그는 광인이었다.
권력욕에 미친 광인 말이다.
그리고
'미친놈은 이용해먹기가 쉽지.'
이재원은 눈을 반짝거렸다.
눈앞에 있는 광인에 대한 기대감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차도진이라면 쓸만할 것 같았다.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로서 말이다.
"차 당주."
이재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불렀다.
"말씀하시지요. 맹주."
"총군사는 어떻소?"
"......무슨 말씀인지..."
"말그대로의 의미오. 총군사의 자리를 내어준다면 어떨 것 같소?"
이재원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차도진의 반응이 심히 궁금하였기 때문이었다.
"총군사의 자리는.....제갈찬이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 제가....."
"그럼에도 내가 그대를 앉힌다고 결심한다면 어떨 것 같소?"
이재원은 재차 물었다.
그의 탐욕적인 야망을 재차 확인할 심산이었다.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차도진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놓치지 않는다?"
"제게 온 기회를 꼭 부여잡고 상층부로 올라갈 것입니다."
차도진은 야망이 가득 서린 눈동자로 이재원을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정마대전의 영웅들과 이재원의 외척들이 선점하고 있는 상층부였다.
그런 곳에 외인으로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렇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안올 수 있는 기회였으니 말이다.
"..........."
이재원은 말없이 차도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읽어낼 수 있었다.
그의 눈빛에 서려있는 거대한 야망을 말이다.
"크하하하하하하!"
그리고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쓸만한 사냥개가 생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좋소! 아주 좋소! 내 한 번 기회가 온다면 큰 힘을 써보리라."
물론 기회는 만들어질 것이다.
마귀와의 전쟁에서 죽음이라는 것은 너무나 흔한 것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게 총군사 제갈찬이라고 해도 말이다.
'물갈이할 놈은 구했군.'
이재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안그래도 제갈찬을 대신할 인재를 찾던 그였다.
그런데 이렇게 딱 알맞은 인재가 나타났다.
어찌 만족스럽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벌떡
"감사합니다. 맹주."
이재원의 말을 들은 차도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내 허리를 푹 숙이며 감사를 전하였다.
예의바름을 넘어서 비굴하기까지 보이는 각도로 말이다.
"하하하하하하 우리 차 당주가 예의를 아는구만....아니 이제는 차 군사인가?"
그 모습을 본 이재원은 만족스러운듯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비위가 맞춰지는 것은 언제나 짜릿하였다.
그것도 저렇게 잘난 놈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자자, 그만 허리 펴고 잔이나 받게.....오늘은 삐뚤어질 때까지 마셔보는 걸세."
이재원은 술병을 들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맹주!"
차도진은 곧바로 대답을 하였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흐하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하"
이내 방안에는 두 남자의 웃음소리만 가득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
"딸꾹......딸꾹"
차도진은 연신 딸꾹질을 하며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이리저리 엇박자로 발을 이동시키면서 말이다.
"......너무...마셨군.."
차도진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입을 떼었다.
아무래도 맹주의 비위를 맞추느라 너무 무리를 한듯 싶었다.
"흐흐흐흐...."
하지만 그리 싫지 않은 기분이었다.
맹주의 비위를 맞추는 건 번거롭고 질색할 일이었지만
그만큼의 이득이 있던 탓이었다.
"총군사라......총군사라...."
차도진은 히죽거리는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며 읊조리기 시작하였다.
총군사 자리를 내어준다는 이재원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까닭이었다.
총군사 자리는 맹주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지고한 위치였다.
그런 위치에 올라간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온몸이 후끈 거리기 시작하였다.
"크흐흐흐흐흐"
애초에 중심층에 해당하는 수뇌부는 정마대전의 영웅정마 대전에 참전했던 영웅이나 이재원의 외척 가문들이 대다수 차지하고 있는 자리였다.
정마대전에 참전하지도 않았고 뒷배조차 없는 자신이 넘보기란 요원하기 그지없는 자리인 것이다.
그런데 기회가 생겼다.
권력의 중심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말이다.
"흐흐흐흐흐"
차도진의 웃음 소리가 더욱더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기분이 좋으신가봐요?"
그때 갑자기 그의 귓가에 부드럽기 그지없는 음성이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오싹
그리고 그 음성을 들은 차도진은 오싹함을 느꼈다.
말투는 부드럽고 상냥했지만 아무런 기척도 없이 자신의 근처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었다.
"누..누구냐!?"
깜짝 놀란 차도진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내 볼 수 있었다.
마치 백합처럼 아름다운 귀부인의 모습을 말이다.
"대..대부인?!"
"반가워요. 계방당주."
차도진의 말을 들은 아름다운 귀부인, 주소양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었다.
마치 요염함과 농염함 그리고 청초함이 동시에 묻어나오는 이질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반갑니다...그런데..어쩐 일로?"
차도진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별안간 별다른 친분이 없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그녀의 행태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담소를 나누고 싶어서요."
주소양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그리고 주소양의 말을 들은 차도진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녀가 어떤 의도로 담소를 나누자고 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친분은 커녕 얼굴을 맞댄 것조차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주소양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건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그렇기 의심이 들었고 괜스레 불안감이 들었다.
어떤 꿍꿍이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죄송하지만.....보다시피....만취를 해서 말입니다."
차도진은 술을 핑계대며 거절을 하였다.
일단 자리를 회피할 심산이었다.
"어쩌죠? 저는 꼭 지금 담소를 나눠야하는데.."
그 말을 들은 주소양은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억지입니다....부인."
차도진은 당혹스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만취하여 자리를 피한다면 순순히 보내는 주는 게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이렇게 억지를 부린다는 말인가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주독을 전부 날려버리는 거예요. 그럼 멀쩡한 정신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럼 술에 취한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흐음."
차도진이 완강히 거부하자 주소양은 고민에 빠진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그러더니 이내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보내주려나 보군.'
그 모습을 본 차도진은 속으로 안도를 하였다.
그녀가 포기를 하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술을 깨게 해드릴게요."
주소양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네?"
그리고 차도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쾅
그리고 그 되물음을 마지막으로 차도진의 의식이 흐릿해지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레 전해져온 어마어마한 충격에 기절을 한 까닭이었다.
쿵
이내 차도진의 신형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버렸다.
무척이나 볼품없게 말이다.
주소양은 그런 차도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제야 원활하게 담소를 나눌 준비가 된듯 하였다.
덥석
그녀는 차도진의 목깃을 붙잡았다.
질질
그리고 질질 끌고 가기 시작하였다.
********
스르륵
이내 차도진은 스르륵 눈을 떴다.
그러자 시야에 흐릿한 여인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차도진은 안력을 더욱 돋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시야에 잡혔던 흐릿한 여인의 형상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대..대부인?!"
그리고 이내 경악을 하게 되었다.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여인이 대부인 주소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대부인이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말인가
"깨어났나보네요?"
주소양은 그런 차도진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아!"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차도진은 이내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을 기절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기절을 시킨 장본인이 주소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차도진은 잔뜩 정색을 하며 언성을 높였다.
다짜고짜 사람을 기절시키다니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말했잖아요. 담소를 나눠야한다고요."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기절해서 끌고 오다니요!"
"어쩔 수 없었어요. 그냥 가버리려고 하셨잖아요?"
"내 이 건에 대해선 정식으로 제소할 것입니다!"
차도진은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기 시작하였다.
누가봐도 무리수에 가까운 수작이었기 충분히 화를 낼 수 있었다.
만약 상황을 전해듣는다면 백이면 백 자신의 편을 들어줄테니 말이다.
"전 가겠습니다!"
벌떡
그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걸음을 옮기려고 하였다.
철컥
그때 그의 귓가에 기분 나쁜 사슬음이 들려왔다.
"응?"
그 소리에 의아함을 느낀 차도진은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발을 꽁꽁 묶고 있는 두터운 사슬을 말이다.
그 모습을 차도진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란 말인가
"혹시 도망갈까. 미리 묶어놓았어요. 원활한 담소를 위해서 말이에요."
주소양은 푸근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움찔
그리고 그 미소를 마주한 차도진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렸다.
그녀의 미소를 마주한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싹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저희 담소를 나눠볼까요?"
주소양은 그런 차도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흘렸다.
북풍처럼 시린 차가운 미소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