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1화 〉 712. 복수를 해야하지 않겠어요?
모락 모락
차에 김이 모락 모락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후우~ 후우~"
주소양은 입김을 불어 차를 식혔다.
후르릅
그리고 향을 맡으며 천천히 맛을 음미하기 시작하였다.
꽤나 고급진 향이 그녀의 후각을 자극하기 시작하였다.
주소양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고루하고 편협한 무골인 줄 알았는데
나름 다도에 일가견이 있는 듯하였다.
"차 향이 좋군요."
주소양은 산처럼 커다란 남자, 현무당주 진강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진강은 무척이나 공손한 태도로 말을 받았다.
처음 주소양을 퉁명스럽게 대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져있는 상태였다.
그녀에게 저항조차 못하고 처맞은 후로 기가 완전히 죽어버린 탓이었다.
그 모습을 본 주소양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봤을 때만해도 시건방진 태도를 유지하는게 무척이나 거슬렸는데
이제는 어느정도 주제파악을 한듯 싶었다.
"얼굴은 괜찮으신가요?"
주소양은 얼굴을 퉁퉁 부어올라있는 현무당주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괜찮습니다."
물론 괜찮지 않았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콧대는 부러지기 직전이었고 이빨을 쉴새 없이 흔들렸다.
만신창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남자로서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괜스레 거슬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대부인......"
진강은 흡족하게 미소 짓고 있는 주소양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네에, 말씀하세요."
주소양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벽을 넘어선 것입니까?"
진강은 의문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주소양은 화경 상경에 경지에 다다른 무인이었다.
자신과 주소양의 격차는 고작 한 단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보여준 무공 수위는 화경 상경 이상이었다.
검조차 제대로 뽑지 않은 채 맨주먹으로 자신을 꺾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의문스럽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됐어요."
주소양은 고개를 살짝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계기라도 있었던 것입니까?"
주소양의 말을 들은 진강은 의문스럽다는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이미 이십여 년 전 정마대전 당시 화경 상경에 올랐던 주소양이었다.
그런 그녀가 불현듯 이십여 년만에 벽을 넘어섰다는 말을 들으니 의구심이 들었다.
"계기라....계기라고 할 만한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불현듯 갑자기 머릿속에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면서 깨달음이 몰려들었거든요."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사실 계기랄 것 도 없었다.
이재원의 팔이 잘리고 며칠 후 불현듯 깨달음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가 걷히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말이다.
"...........경축드립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진강은 진심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축하 인사를 건네었다.
격차가 벌어졌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들긴 하였지만
천무맹에 또다른 위대한 무인이 탄생했다는 사실자체는 벅참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고마워요. 현무당주."
주소양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방 안에는 무척이나 훈훈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나저나....할 이야기가 무엇이십니까?"
이내 분위기가 풀어지자 진강은 단도직입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용건으로 자신을 찾아왔는 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번에 가짜 장삼을 즉결처분했다고 들었어요."
"그리하였습니다."
진강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받았다.
"그에 관해서 자세히 듣고 싶어요."
"황삼에 관한 말입니까?"
"네에, 맞아요."
"어떤 부분을 자세히 듣고 싶은 것입니까?"
진강은 의문스럽다는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전부.....전부 말해주세요. 언제 모습을 드러냈고 어떤 행동을 하였고 어떤 말을 하였으며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까지 전부 말이에요."
주소양은 이지적인 눈빛을 반짝거리며 진강에게 되물었다.
"........그가 나타난 건 정확히 시월 삼일 신시정도였습니다....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부러 존재감을 과시하려는듯 요란하게 뛰어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마침 우연히 순찰을 돌던 제 눈에 띄게 되었고 그대로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진강은 기억을 더듬으며 천천히 그날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주구를 밝히라고 말했더니 거절을 하더군요. 그래서 분근착골을 이용하여 가벼운 고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곧바로 술술 불더군요. 천무맹주의 무공이 탐나 장삼과 내통을 하였다고 말입니다. 그 후는 아시는 것처럼......."
진강은 그날 겪었던 일들을 모조리 말하였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말이다.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는 못하였나요?"
"이상한 점 말씀이십니까?"
진강은 의아한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떼었다.
"네에, 예를 들어 어색한 움직임을 보였다던가.......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던가 뭐 그런 거요."
".의구심이라......"
그녀의 말을 들은 진강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듯 싶었다.
"아!"
그리고는 이내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무언가 걸리는 걸 찾은 까닭이었다.
"기억 나는 게 있나요?"
주소양은 별빛처럼 아름다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그에게 다시금 물었다.
"그러고보니 어색한게 몇 가지 있었습니다."
진강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제가 잡으러 갈 때까지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더군요. 마치 기다려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분근착골을 가하였을 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절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이해가 안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진강은 의구심이 들었던 부분을 천천히 풀어내기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무림공적과 내통한 변절자를 잡았다는 생각에 넘어갔던 부분이었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니 걸리는 게 몇 가지 있었던 것이다.
".............."
진강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고심에 빠진듯 말없이 침묵을 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현무당주."
이내 주소양은 현무당주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말씀하십시오."
"그대에게 협이란 무엇인가요?"
주소양은 꽤나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물었다.
"핍박 받는 약자들을 연민하며 강자에게 굴하지 않고 정의를 실현하는 일입니다."
"한 번도 그에 반하는 일을 저지른 적이 없는 건가요?"
"협이 아니라면 듣지도 보지도 행하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진강은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천무맹에 입맹한 이유조차 협이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행하지도 말라는 창립이념에 이끌려서 였다.
편협하긴 하지만 오로지 협의만을 추구하는 남자인 것이다.
그런 그가 협에 반하는 일을 행할 리 만무하였다.
".............."
주소양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그의 뜨거운 눈빛을 응시하였다.
한점의 부끄러움조차 없는 멋진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주소양은 알 수 있었다.
그의 말에 거짓따위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군요."
이내 주소양은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품안에 손을 넣어 곱게 접힌 종이 한장을 꺼내었다.
탁
스윽
그다음 곧바로 탁자 위에 올려놓은 뒤 그대로 진강쪽으로 밀어보냈다.
"이게 무엇입니까?"
탁자 위에 올려진 종이를 본 진강은 의아한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읽어보세요."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말을 들은 진강은 곱게 접혀져있는 종이를 펼쳐 천천히 읽기 시작하였다.
"이...이건?!"
그리고 이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주소양을 응시하였다.
그의 눈빛에는 경악이 가득 서려있었다.
"대본이에요."
주소양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황삼은 장삼에게 의뢰를 받았던 게 아니에요. 장삼을 범인으로 만들고 싶었던 누군가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입니다."
주소양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대본이 그 증거죠."
"허...허허허.."
그 말을 들은 진강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적인 사실에 당혹스러움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일의 흑막이 장삼이 아니라니
황삼이 희생을 당한 피해자라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이건...어디서 난 것입니까?"
진강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확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황삼의 옷에서 발견 된 쪽지예요. 부인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몇 번이고 쓰고 읊조리며 외우기를 반복했다고 하더군요."
"......그런....그렇다면....정말....그는..?"
"네에, 그는 이용당하고 버려진 거예요.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서 말이에요."
주소양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그 말을 들은 진강은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하였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황삼의 어색했던 행동이 전부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부러 존재감을 과시하려는듯 요란하게 상업지구를 내달렸다.
진정 의뢰를 받은 입장이라면 그렇게 티가 나게 행동할 리 만무하였다.
그는 자신과 눈을 마주쳤음에도 도망가긴 커녕 일부러 자신을 기다리는듯 행동하였다.
마치 일부러 잡히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분근착골을 당했을 때 그는 배신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마치 사전에 합의된 내용과는 다르다는 것처럼 말이다.
"..........아"
진강은 탄성을 내뱉었다.
모든 조각들이 전부 하나로 맞추어졌기 때문이었다.
의구심이 전부 풀려버린 것이다.
자신은 이용당했던 것이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끄으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악!!!!!!!!"
이내 진강은 괴성을 터트렸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이용을 당하였다.
그것도 무고한 이를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평생토록 지켜오고 행하였던 협의가 비틀려버린 것이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다.
분노는 이내 살의가 되었다.
죽이고 싶었다.
자신을 이용하여 살인멸구를 가한 주모자를 말이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이내 방 안은 진강의 웅혼한 내력으로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진정하세요. 현무당주."
주소양은 그런 진강을 진정시키기 시작하였다.
지금 필요한 건 분노가 아니었다.
직관적이면서도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어찌.....어찌......제가 진정할 수 있겠습니까?.....제가...무고한 이를 죽였습니다......모든 게 연기인 줄 아는 순진한 이를 죽였다는 말입니다! 어찌.......어찌 제가..!"
진강은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끔찍하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모든 짓들이 말이다.
자기혐오가 올라왔다.
자괴감이 차올랐다.
그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래도 진정하세요."
주소양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직관적인 사고에요. 그런데 여기서 이성을 잃는다면 어쩌자는 건가요?"
주소양은 북풍한설처럼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하지만.."
"복수를 해야하지 않겠어요?"
"......복수 말입니까?"
"네에, 상황을 이렇게 만든 주구에게 복수를 해야하지 않겠어요?"
주소양은 살기 어린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진강은 이내 이성을 부여잡고 진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복수를 위해선 이성을 되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범인을 유추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죄송합니다......대부인...제가 너무 흥분한 듯 싶습니다."
진강은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충분히 이해해요. 개의치 마세요."
그녀는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물어볼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그날 그곳에 순찰을 간 건 명령이었나요? 아니면 자의였나요?"
"......친구에게....권유를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범행현장에는 범인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어서..."
진강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진강, 당신에게 하필 그 날 그 시각에 순찰을 돌도록 종용한 한 이는 누구인가요?"
"...........설마 그 친구를 의심하는 겁니까!?"
진강은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현재로선 그 친구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예요."
주소양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황삼이 나타날 날짜와 시각에 맞춰 정확하게 그를 순찰을 돌게 만든 이였다.
가장 유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말도 안됩니다. 그는......그런 이가..아닙니다."
진강은 부정을 하였다.
무려 십 년이나 연을 이어온 지기였다.
그런 이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지 만무하지 않은가
"진강."
주소양은 북풍한설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누구인가요."
우우우우우웅
그리고 이내 어마어마한 의지력이 방안을 뒤덮기 시작하였다.
답변을 회피하는 진강의 태도에 짜증이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허으윽..."
그리고 그 의지력에 감싸진 진강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항거할 수 없는 거력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말하세요..... 누구인가요?"
그녀는 경고하듯 다시금 물었다.
살기를 가득 담아서 말이다.
".........계...계..방당주......차도진...입니다."
그리고 그 살기에 압도당한 진강은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십년이나 연을 이어온 지기이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맹의 수뇌부로서 군림하고 있는 남자의 이름을 말이다.
"....차도진이라."
그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살기 어린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아무래도 다음으로 갈곳이 정해진듯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