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1화 〉 702.가장 무서운 이는 잃을게 없는 사람이랍니다.
성도 구석에 위치해 있는 삼평다관
그곳 이 층 구석에서 당진설은 여유롭게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흐으으음"
향을 맡고
후르릅
맛을 음미하였다.
탁
그리고 이내 차를 탁자 위에 올려놓은 뒤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듯이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끼이이익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가 다관에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당진설의 시선이 일 층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이내 볼 수 있었다.
저벅 저벅
걸어들어오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말이다.
정리 따윈 안되어있는 덥수룩한 머리
살기로 점칠되어있는 야수같은 눈빛
마치 남해의 뙤약볕을 그대로 받은듯한 구릿빛 피부
그리고 여기저기 흠집이 나있는 투박한 검까지
한눈에 봐도 위험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남자였다.
저벅 저벅
다관으로 들어온 남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너무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여유롭지도 않게 적당히 말이다.
저벅 저벅
다관 중앙을 지나
계단을 올라
이내 당진설의 코앞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왔군요. 혼주魂主"
"다관이 무척이나 조용하군요."
혼주라고 불린 히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대관했어요."
"이 큰 곳을 통째로 말입니까?"
"듣는 귀가 많아봤자 좋을 것 없지요."
"역시 주군께서는 통이 크십니다. 크흐흐흐"
혼주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왜 부른 것입니까?"
"해줘야할 일이 있어요."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죽이라고 하든 강간하라고 하든 멸문시키라고 하든 뭐든 이행하겠습니다."
혼주는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소문을 내주셨으면 해요"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소문이 말씀입니까?"
당진설의 말을 들은 혼주는 맥 빠진 얼굴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소문."
당진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
혼주는 내키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침묵을 하였다.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군요."
그런 남자의 의중을 알아차린 것일까
당진설은 그런 혼주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소잡는 칼로 닭은 잡으려고 하시는데 어찌 마음에 들 수 있겠습니까?"
혼주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자신들이 누구란 말인가
혼마魂魔의 무공을 전승한 지옥의 악귀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소문이나 내어달라니?
어찌 그런 잡배들이나 하는 짓을 시킨단 말인가
"하오문이나 흑도의 잡배들에게 의뢰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당신들이 아니면 안돼요."
당진설은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굳이 저희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당신들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당진설은 뱀처럼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리 말씀하시니 흥미가 동하는군요."
그 눈빛을 마주한 혼주는 흥미롭다는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마주하였다.
자신들 외엔 할 수 없는 일이라니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세히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전 천무맹주를 흔들 생각이예요."
"........진심이십니까?"
혼주는 다소 놀란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내가 허투루 말할 사람처럼 보이나요?"
"...그건 또 아니군요."
남자는 수긍하듯 말을 이었다.
세상 모든 일에 효율을 중시하는 당진설이었다.
그런 그녀가 시덥지 않은 농이나 지껄였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째서입니까?"
혼주는 의문 어린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천무맹주를 흔들겠다는 것은 곧 그를 적대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다.
천무맹주는 그녀의 남편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남편을 적대한다는 말인가
"팽 당했어요."
".팽을 당하였다?"
"그래요, 철저히 버려지게 되었지요."
당진설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저는 그에게 복수를 할 요량이예요. 그리고 그 복수를 위해 사냥개인 당신들을 철저히 이용할 심산이지요."
"이해가 되는군요. 왜 저희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는지 말입니다. 크흐흐흐"
혼주는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전말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어째서 그녀가 자신들과 같은 살인귀들을 공작원으로 쓰려고 하였는 지 말이다.
하오문이 아무리 하류 인생들이 모인 곳이라고 하더라도 제 목숨 귀한 줄은 누구보다 잘아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천무맹주를 적으로 돌리는 일을 할 리 만무하였다.
만금을 준다고해도 말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진설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질 질
그러다니 커다란 관하나를 가져와 남자의 코앞에 놓아두었다.
"이게 뭡니까?"
혼주는 궁금하다는듯 당진설에게 물었다.
"열어보세요."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답을 하였다.
끼이이익
그 말을 들은 혼주는 천천히 관짝을 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관짝을 완전히 열어젖혔을 때
혼주의 눈이 휘둥그레해지기 시작하였다.
관짝을 열자 찬란한 은색 빛이 시야에 가득 메워졌기 때문이었다.
"..은자!?"
혼주는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백만냥 정도 될 거예요."
당진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혼주를 보며 입을 떼었다.
"이렇게 큰 돈을 어떻게 구하신겁니까?"
혼주는 의아한듯한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이재원에 의해 팽을 당한 당진설이었다.
그 말을 이제 지금까지 누려왔던 모든 특혜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대체 이렇게 큰 돈은 어디서 구한 것이란 말인가
이백만냥이면 웬만한 문파의 몇 년치 운영비 수준이었다.
"위자료예요."
당진설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위자료 치곤 상당한 액수군요."
"그와 산지 이십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요. 일년에 십만 냥씩 계산하면 어느정도 수지가 맞지 않은가요?"
"천무맹주는 생각보다 통이 크군요. 이런 어마어마한 금액을 흔쾌히 투척하다니 말입니다."
"그럴 리가요. 그이는 간이 콩알만한 찌질이랍니다. 게다가 욕심도 많아 제 돈 나가는 걸 목숨보다 두려워하는 소인배의 전형이지요."
당진설은 우습다는듯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 돈은 대체 어떻게?"
혼주는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제가 대출을 받았어요. 천무맹의 신용을 담보로 말이에요."
"......갚을 생각이 있으십니까?"
"위자료라니까요? 갚는 건 이재원이에요."
"크윽.....크하하하하하하"
이내 그녀의 말을 들은 혼주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독기가 가득 찬 주군의 행태에 웃음이 절로나왔기 때문이었다.
팽 당하기 직전에 먼저 선수를 쳐 신용대출을 받다니
대체 이건 무슨 미친 짓거리란 말인가
"아무래도 주군께서는 미치신 것 같습니다."
혼주는 웃음기 가득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후환이 두렵지 않으신 겁니까?"
"이미 모든 걸 잃은 몸이에요.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요?"
당진설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혼주, 잘들으세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는 무력이 강한 이도 명성이 높은 이도 재력이 많은 이도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도 아니예요. "
당진설은 올곧은 시선으로 혼주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가장 무서운 이는 잃을게 없는 사람이랍니다. "
그녀는 광기마저 엿보이는 눈빛을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흐흐흐흐흐.......틀린 말이 아니군요."
그리고 그 광기를 마주한 혼주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광기 어린 태도에 흥분이 잔뜩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어떤 소문을 내면 되는 겁니까? 말만 해주십시오. 바로 중원 전역에 퍼질 수 있도로 하겠습니다."
혼주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광기 어린 눈빛을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중원을 구한 대영웅을 나락까지 끌고간다고 생각하니
흥분이 미친듯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몰락"
당진설은 올곧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소문의 핵심은 이재원의 철저한 몰락이랍니다."
당진설은 진한 미소를 흘렸다.
모든 것을 까발릴 생각이다.
이재원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말이다.
*************
수십 장의 벽보가 붙여졌다.
제남의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상업지구 근처에 말이다.
대자보에 쓰여있는 내용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천무맹주 이재원의 수많은 악행들이 적혀져있었다.
처음 검제의 손녀를 간살을 하였던 일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아녀자들을 간살했던 내용들
그리고 제자인 장삼에게 누명을 씌우고 명예를 회복하려고 했던 일들
그후에도 제 버릇을 못고치고 간살을 일삼았은 것은 물론
증거 인멸을 위해 피해자를 마교의 주구로 몰아 가문을 멸문시켜버린 일
탄핵을 입에 담았다는 이유로 구자엽을 가문 째 멸문시켜버린 일
모든 일들을 마교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죄없는 이들을 통째로 죽여버린 일 등
셀수 도 없는 많은 악행들이 적혀져있었다.
그리고 벽보를 읽은 세인들은 경악을 하였다.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벽보 속 내용에 대한 적나라함이
관계자가 아니면 도저히 쓸 수 없을 정도로 상세하였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는 말하였다.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모두 맹주를 음해하기 위해 수작이라고 말이다.
또 어떤 이들은 말하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고 말이다.
벽보를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듯 셀수도 없이 다양하였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모두가 동의하는 바도 있었다.
만약 벽보에 쓰여있는 내용 중 반 정도만 맞는다해도
이재원은 천하에 다시 없을 마두가 분명할 것이라고 말이다.
이내 천무맹의 무사들이 벽보를 일일히 수거해가긴 하였지만
사람들의 의혹까지 수거하지는 못하였다.
*********
회의장
그 안에 모인 수뇌부들은 각자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는 것이다.
이내 회의장 안은 썰렁하다고 느낄 정도로 오랜 침묵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쾅
이내 상석에 앉아있던 이재원이 주먹으로 거칠게 탁상을 내리쳤다.
그의 주먹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지금 뭐하자는 것이오!"
이재원은 수뇌부들을 돌아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대책을 내는 이가 한 명도 없냐는 말이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악행이 담긴 글귀가 담긴 벽보가 제남 곳곳에 붙여졌었다.
그것도 적나라할 정도로 상세하게 말이다
그리고 그 여파로 수많은 탄원서들이 천무맹에 빗발치기 시작하였다.
업무가 마비 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이재원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수뇌부들 중 입을 여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천무맹을 대표하는 맹주가 모욕을 당하였소! 그런데 그대들은 어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오!"
이재원은 답답함을 느꼈다.
제놈 새끼들 이득이 될 때나 피해를 입을 땐 조잘조잘 잘도 지껄이는 수뇌부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필요할 때가 되니까 누가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어찌 이리도 이중성이 강하다는 말인가
'시발 짱개 새끼들......착짱죽짱새끼들!'
착한 짱개는 죽은 짱개라더니
옛말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는듯하였다.
이새끼들도 죽여야 착해질듯 싶었다.
"........저어.."
그때 잠자코 있던 이대곤이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뭔가!"
".....벽보에 쓰여진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공식적인 발표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걸 내가 몰라서 이러는 줄 아는가?"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답답한 소리를 지껄이는 이대곤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사실이 아니라고 발표하면 뭐하는 가! 범인을 잡지 못하면 벽보가 또다시 붙여질텐데!"
".......대다수 맹원들은 그런 음해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의심이란 건 한 번 심어지면 끝도 없이 자라나는 법! 지금은 안믿는다해도 계속하여 그런 악의적인 내용을 접하게 된다면 진짜로 그리 믿는 이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말일세! 어찌 이렇게 생각없이 군다는 말인가!
이재원은 격앙된 어조로 그를 타박하기 시작하였다.
안그래도 짜증나 뒤지겠는데 답답한 소리까지 지껄이니
화가 미친듯이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범인을 특정하라는 말이오! 범인을!"
이재원은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해결책을 내놓으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소리를 내질렀을까
벌컥
그때 갑자기 회의장 문이 열리더니
말끔한 인상의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천무맹의 총군사인 제갈찬이었다.
"맹주! 큰일났습니다!"
그는 회의장으로 들어오자마자 고함을 내질렀다.
"무슨 일인가!"
"지금 제남 뿐아니라 산동성 전역에 벽보가 붙여졌다고 합니다!"
제갈찬은 다급한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뭐라!?"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의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제남 뿐 아니라 산동성 전역에 붙여졌다니
이게 무슨 개같은 소리란 말인가
이재원의 안면이 있는대로 구겨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