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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700화 (701/1,419)

〈 700화 〉 701.전부 대출해주세요.

질근 질근

당진설은 손톱을 질근거리기 시작하였다.

무언가 고심하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이 개같은 새끼를 어떻게 처리하지?'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자신을 비참하게 버려버린 이재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전부 폭로해버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까지 자신이 은폐해준 사건들을 전부 폭로하는 방법이었다.

그가 이십여년 간 벌여온 끔찍한 간살사건은 물론 당가를 견제하기 위해 언가주를 종용하였던 일까지 전부 말이다.

'......무리야.'

하지만 이내 당진설은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내젓기 시작하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폭로가 역효과가 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당가는 자신을 내친 상황이었다.

아직 소문이 퍼지진 않았지만 분명 내부적으로 결정된 사안임이 틀림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이재원에 대한 폭로를 해봤자 신빙성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 내쳐진 것에 대한 복수로 이재원을 모함한다고 여길 것이 분명한 것이다.

'....증거를 남기지 않은게 한이구나.'

게다가 증언을 뒷받침할 마땅한 증거조차 없었다.

사건을 은폐할 때 목격자는 물론 관련된 모든 자료를 페기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완전한 인멸을 위한 최선의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그 행동이 최악으로 다가왔다.

완벽한 인멸로 인해 오히려 이재원을 끝장내버릴 기회마저 잃어버린 탓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당진설은 맹독을 품은 독사처럼 독기 어린 눈빛을 반짝거렸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재원은 벌을 받아야했다.

제 안위를 위해 자신을 비참하게 내던져버린 것에 대한 벌을 말이다.

'끝장을 낼수는 없지만 충분히 흔들 수는 있다.'

당진설은 뱀같은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이재원을 사회적으로 말살을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실질적인 증거들이 전부 인멸된 까닭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뒤흔들 수는 있었다.

여론을 이용하면서 말이다.

'일단 돈부터 구해야겠네.'

당진설의 눈빛이 차갑게 반짝거리기 시작하였다.

**********

만금전장 성도지부

"후아아아암~"

만금전장 성도지부장인 석겸은 길게 하품을 하였다.

점심을 먹고나니 나른함이 미친듯이 몰려온 까닭이었다.

껌뻑 껌뻑

그의 눈빛이 쉴새없이 껌뻑거리기 시작하였다.

나른함이 심화되어 졸음으로 바뀐 까닭이었다.

석겸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오랜만에 잘 수 있겠는데?'

석겸의 입가에 부드러운 호선이 그려졌다.

요근래 불면증으로 잠을 통 이루지 못한 석겸이었다.

그런데 오후의 나른함이 그 불면증을 잠시 가라앉혀준듯하였다.

'베개..........베개..'

석겸은 책상 안에서 조그마한 베개를 꺼내었다.

털썩

그리고 이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털썩

그다음 미련없이 책상에 엎어져버렸다.

그러자 푹신한 베개의 감촉의 석겸의 안면을 자극하기 시작하였다.

석겸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크어어어어어~"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석겸은 코를 골며 단잠을 만끽하기 시작하였다.

쾅 쾅 쾅 쾅

"지부장님!"

그때 누군가 집무실 문을 거칠게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다급한 목소리로 말이다.

"크어어어어"

하지만 이미 깊은 잠에 빠져버린 석겸은 그런 다급함을 가뿐히 무시한 채 꿈속을 유영하기 시작하였다.

직접 흔들어 깨우지 않는 이상

깨지 않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진 것이다.

벌컥

"지부장님!!!!!"

그때 갑자기 문이 열어젖혀지더니 한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성도지부의 부지부장인 도일출이었다.

그는 무척이나 다급한 목소리로 지부장인 석겸을 불렀다.

하지만 그런 도일출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석겸은 단잠에 빠져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왜 오늘 같은 날 처자고 지랄이야!'

도일출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평소에는 불면증으로 짜증 부리기 일쑤인 인간이

오늘처럼 필요한 날에 숙면을 취하니 괜스레 부아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흔들 흔들

"일어나십시오! 지부장님!"

도일출은 이내 석겸을 붙잡고 흔들어 깨우기 시작하였다.

오랜만에 드는 숙면임을 알기에 깨우면 뒈지게 혼날 걸 알고 있긴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적어도 석겸정도는 되는 이가 나서야할 정도로 거물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흐으으...으으.."

도일출의 격한 흔들림에 반응을 한 것일까

석겸이 신음성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일어나십시오!"

도일출은 석겸의 귓가에 고함을 내질렀다.

움찔

그 고함을 들은 석겸은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번쩍

그러더니 이내 눈을 번쩍 뜨기 시작하였다.

"............."

그다음 핏발 선 눈동자로 도일출을 노려보았다.

무슨 일이냐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급..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 기세에 압도가 된 것일까

도일출은 말을 더듬거리며 입을 떼었다.

"도일출."

"....말씀하십시오."

"같잖은 걸로 깨운거면 진짜 뒈진다?"

석겸은 으르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사흘만에 든 단잠을 깨운 도일출에 대한 분노가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충분히 깨울만한 사유였다고 생각합니다."

"뭔데."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네에, 대출을 요구하더군요."

"신분증이랑 담보 받고 알아서 처리하면 되잖아?"

석겸은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대출의 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았다.

검증된 신분과 담보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게....신용대출을 원하셔서..."

"신용 대출을!?"

도일출의 말을 들은 석겸은 놀란듯 눈을 휘둥그레떴다.

보통 신용 대출의 경우

웬만해선 신청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담보 대출과 달리 신용 대출은 그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기 그지 없었다.

그 사람이 가진 명성과 신용만을 믿고 돈을 빌려주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담보대출에 비해 이자율도 높았고 변제일도 촉박하기 그지없었다.

신용 대출에 대한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까다로운 절차와 높은 이자율 때문일까

일반적으로 신용 대출을 신청하는 이는 흔치 않았다.

차라리 집이나 땅을 담보로 빌리는 대출이 마음 편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안된다고 하고 돌려보내."

이내 석겸은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일반적으로 신용 대출은 지부장의 재량이었다.

그의 판단에 따라 반려될 수도 승인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석겸은 곧바로 대출 요청을 반려해버렸다.

담보 대출이 아닌 신용 대출은 변제 받지 못할 확률이 높은 편에 속하였다.

돈놀이를 업으로 하는 전장 입장에서는 장려해야할 업무가 아닌 것이다.

"........그건 무리일듯 싶습니다."

도일출은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왜 안돼? 지부장이 까라면 까야지!"

"아무래도.....손님측에서 불쾌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불쾌하던 말던 내 알바 아니다."

석겸은 단호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대출을 해주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묻어나 있었다.

".........아무래도 가보시는 게 나을 듯 싶습니다."

"무슨 천무맹주라도 왔냐? 뭘 그리 저자세를 취하고 있어?"

석겸은 자신에게 재차 권유하는 도일출을 바라보며 그에게 되물었다.

저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천무맹주는 아닌데......그 부인께서 오셨습니다."

"....응?"

"천무맹주의 삼부인이신 당진설 부인께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삼 부인께서!?"

석겸의 표정이 경악에 물들기 시작하였다.

********

"대출을 받고 싶어요."

당진설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대출이라함은....신용 대출을..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석겸은 무척이나 저자세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부지부장이라는 사람에게 전부 듣고 온거 아닌가요?"

"듣긴...들었지만....그....한 번 더 확인하는 차원에서...."

"저는 두 번 말하는 걸 싫어합니다. 지부장."

당진설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입을 떼었다.

"죄..죄송합니다."

그리고 당진설의 타박을 들은 석겸은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그녀의 눈밖에 나서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가 상전이네. 개같은 년.'

물론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지만 말이다.

".....금액은...얼마나 염두해두고 계신지요?"

석겸은 송구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얼마나 해줄 수 있죠?"

"......아시다시피 신용 대출이라는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용이라는 것은 본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이것 저것 따져야할 것도 많을 뿐더러......그만큼 심사 기간이 오래걸리기도 하고....이자율도 높으며...."

"됐고, 얼마나 해줄 수 있는지 그것만 말해줘요."

당진설은 듣기 싫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석겸의 말을 그대로 끊어버렸다.

'썩을 년이!'

그리고 그녀에 의해 말이 끊긴 석겸은 다시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녀의 까칠한 태도에 짜증이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당 부인께서 가진 신분이라면 대략 오만냥 정도 가능하십니다."

석겸은 나름 합리적인 계산을 도출하여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신용이라면 오 만냥 정도는 가능할듯 싶었다.

사실 개인적인 명성으로 따진다면 보잘 것 없는 그녀였지만

당가의 혈족이라는 신분과 천무맹의 안주인이라는 신분이 그런 그녀의 신용을 한 없이 높여준 까닭이었다.

"생각보다 적군요."

당진설은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적은 액수 실망스러운 감정이 든듯 하였다.

"당부인께서는 딱히 직업이 없지 않으십니까? 이정도도 상당히 높게 쳐준 것에 속합니다."

석겸은 실망하고 있는 당진설을 어르고 달래기 시작하였다.

행여나 행패라도 부리는 게 아닐까라는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제가 아닌 천무맹의 신용이라면 얼마까지 빌려줄 수 있지요?"

당진설은 궁금하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네에?!"

그리고 당진설의 물음을 들은 석겸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천무맹의 이름 값이면 얼마까지 가능하냐고 물었습니다."

".........천무맹의 이름값이라면....백만냥은....거뜬히 가능하다고 사료됩니다."

"전부 대출해주세요."

당진설은 통크게 말을 이었다.

"네에!?"

석겸은 그녀에게 되물었다.

설마하니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백 만냥 전부 대출해주세요. 천무맹의 신용으로 말이에요."

그녀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니.....백 만냥을 어디에다 쓰시려고.."

"그런 것까지 제가 말해야하나요?"

당진설은 날카로운 눈동자로 석겸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주제를 넘었습니다.

석겸은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주제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용서해드리죠. 저는 자비로우니까요."

당진설은 뱀같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자아, 그럼 이제 어서 대출을 해주세요."

".....그전에 확인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당진설은 궁금하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부인께서 천무맹의 신용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지 증명을 해주셔야합니다."

석겸은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천무맹의 안주인이라는 신분으로는 부족한 가요?"

"무리입니다. 좀더 명확한 자격을 증명해주십시오."

"좋아요."

석겸의 말을 들은 당진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품을 뒤적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 꺼내더니 그대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석겸은 그녀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물체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이내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올려놓은 것은 하나의 패였다.

승천하는 용이 양각되어있는 눈부신 은패 말이다.

석겸은 이 패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천..천룡패!?"

그렇다.

이 패의 정체는 천룡패天龍牌였다.

맹주를 대리하는 자임을 의미하는 권한 대행의 호패인 것이다.

"이정도면 충분한가요?"

당진설은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뱀같은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충분...충분합니다!"

석겸은 쉴새없이 고개를 주억거리기 시작하였다.

천룡패는 맹주의 권한을 대행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신분패였다.

존재만으로 보증이 되어주는 물건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대출이 가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 돈은요?"

"지금 바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석겸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재빨리 몸을 돌려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돈을 직접 가져올 심산이었다.

"천천히 다녀오세요."

당진설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만족스럽다는듯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위자료야. 이재원'

당진설의 눈빛에 저열하기 그지없는 독기가 서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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