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9화 〉 700.내가 혼자 죽을 것 같아?
"당진설은....맹주의 부인입니다.."
제갈찬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었다.
"잘안다네. 내 부인이지. 사랑하는 내 부인 말일세."
그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러니 남편을 위해, 대의를 위해 희생한다해도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을 걸세."
이재원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물론 말 자체는 부드럽기보단 흉악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말이다.
"............"
이재원의 흉악하기 짝이 없는 말을 들은 제갈찬을 입을 꾹 다물었다.
끔찍할 정도로 이기적인 이재원의 태도에 할 말을 잃어버린 까닭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멍을 때렸을까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면.....역풍을 감당치 못할 것입니다..."
제갈찬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괜찮네. 요는 아무도 모르면 되는 것 아닌가?"
이재원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만약 팽당했다는 것을 알게된다면 당 부인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실 겁니다."
"괜찮네. 지금 와서 누가 그녀의 말을 믿어주겠는가? 헛된 발악이라고 생각할 뿐이지."
그녀가 억울하다며 물 귀신처럼 행동했다해도 소용없었다.
어차피 개돼지같은 민중들은 자신의 편일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자네도 입 조심하게나. 낮말과 밤말은 각각 듣는 이가 따로있으니 말일세."
"............."
"내키지 않은가보군?"
제갈찬이 대답이 없자 이재원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의 물음에 제갈찬은 어두운 낯빛으로 대답을 하였다.
"하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네."
"........선택지는 있었습니다."
제갈찬은 조근거리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해결책이 있다?"
"당 부인에 보내온 서신에는 동맹 파기 철회를 위한 조건이 쓰여져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본 맹주보고 머리를 땅에 처박고 사과하라는 말인가?"
제갈찬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입을 떼었다.
그의 말이 너무나 무례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리 하셨다면......적어도 모두를 지켜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이재원은 언성을 높인 채 고함을 내질렀다.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지껄이는 제갈찬의 언행에
화가 치솟은 까닭이었다.
"그대는 본 맹주가 누구인지 잊어버린 것인가!?"
이재원은 분노에 찬 시선으로 제갈찬을 노려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천무맹의 맹주님이십니다."
"맞네! 본 맹주는 천무맹의 맹주일세! 맹원들을 대표하는 지고한 위치에 서 있는 존재라는 말일세! 그런데 그런 내게 머리를 처박고 사과를 하라고? 그게 정녕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재원은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를 내질렀다.
말을 하면 할 수록 흥분이 더해진 까닭이었다.
"잘못을 한게 있다면 반성을 하고 바로 잡는 것이 수순이 아닙니까....그런데 어찌 거짓으로 위장하고 회피를 한다는 말씀입니까"
"세상에는 몰라도 되는 일도 있는 법! 본 맹주에 기준에선 지금 이 사태의 내막은 몰라도 되는 일일세! 어찌 치부를 들춰서 맹주인 나를 깎아내린단 말인가!"
자신은 천무맹의 맹주였다.
단일 세력 최강의 집단이자 정파무림을 대표하는 정의구현 단체인인 천무맹의 맹주 말이다.
그말인즉슨 자신의 명예가 곧 천무맹의 명예란 말과 다름 없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어찌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일을 한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본 맹주의 명예가 떨어진다면 천무맹의 명예 또한 바닥까지 떨어질터! 자네는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인가?"
"만약 이 일이 밝혀진다면 더욱더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사실대로 밝히는 편이 오히려 나중을 위해선 더욱더 좋은 선택입니다!"
"안들키면 되지 않는가? 안들키면!"
이재원은 답답하다는듯한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천무맹에서 최고로 똑똑하다는 작자가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말을 지껄이니 짜증이 미친듯이 솟아났다.
그 명석한 두뇌로 자신을 지지하고 격려해줘도 모자랄 판국에 어찌 이리도 답답한 소리를 지껄인다는 말인가
'멍청한 새끼가. 꼬리 자르기를 할 줄도 알아야 훌륭한 정치인이 되는 법이거늘.'
이재원은 속으로 제갈찬을 까대기 시작하였다.
나름 수뇌부라는 놈이 정치적인 입지를 생각지 않고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걸 보니 한심함이 절로 들었다.
"그대과 내가 입만 맞추면 들킬 일 따윈 절대 없을 것이오! 그걸 왜 모르는 것이오!"
"세상엔 절대라는 것은 없습니다. 맹주"
제갈찬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떼었다.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틀어질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사람과 관계된 일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제갈찬은 공손한 자세로 고개를 푹 숙였다.
"내게 현명한 판단은 이번 일을 덮는 것일세."
이재원은 제갈찬의 부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장을 이어갔다.
"맹주!"
"이미 맹주령까지 동원하여 처벌을 선포한 상황일세! 이제와서 말을 바꾸라고? 나를 얼마나 우습게 만들 셈인가?"
맹주령까지 선포하여 수뇌부들의 입을 틀어막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말을 바꾸는 것은 물론 잘못까지 시인한다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거대한 명성에 무너져내리는 것은 물론
이번에야말로 탄핵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분명 맹주를 비난하는 이가 늘어날 것입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내 명예를 깎아먹는 일이 어찌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란 말이오!"
이재원은 핏발 선 눈빛으로 제갈찬을 노려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본 맹주는 이미 결정을 끝마쳤소! 또한 번복할 생각 따윈 없소! 그러니 그대도 본 맹주의 의견에 그대로 따르시오! 토 달지 말고 말이오!"
"맹주!"
"입조심 하길 바라오. 만약 이 일이 밝혀진다면 피해를 입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닐테니."
이재원은 으르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대도 처벌이 정해질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지 않았소? 어찌 보면 공범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이 일이 밝혀진다면 그대는 물론 그대의 가문인 제갈가 또한 비난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이오!"
이재원은 제갈찬을 공범처럼 묘사하였다.
그의 입을 완전히 봉쇄하기 위해서 였다.
"..............."
"그러니 입조심하시구려. 어디서 입 잘못 놀리지 말고 말이오."
이재원은 경고하듯 말을 내뱉었다.
벌떡
그리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더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가보겠소. 어떤 게 정말 현명한 선택인지 잘생각해보시오."
그리고는 미련없이 회의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쾅
이내 문이 닫히고 이재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회의장 안에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갈찬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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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 또각
당진설은 천천히 걸음으로 가주전으로 향하기 시작하였자
당진철이 갑작스레 그녀를 호출하였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일까?'
당진설은 불안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당진철의 의중을 좀처럼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기 싫어.'
불안한 마음 때문일까
가주전으로 향하는 그녀의 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축생같은 표정을 지은 채 그저 나아갈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내 그녀는 집무실 문앞에 도달하게 되었다.
'후우'
문앞에서 멈춰선 당진설은 크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마음을 어느정도 진정시킬 요량이었다.
똑 똑
그리고 부드럽게 문을 두드렸다.
"누구냐?"
그러자 문 안쪽에서 차갑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당문의 가주인 당진철의 목소리였다.
"저예요....오라버니."
"들어오거라."
끼이이익
당진설은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책상에 앉아있는 당진철의 모습이 그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
"찾으셨다고....들었어요."
집무실로 들어온 선우는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천무맹에서 내게 서신을 보내왔다."
선우는 곧바로 용건을 꺼내었다.
"천무맹에서...서신이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아닌 당진철에게 서신을 보내온 천무맹의 행태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내용이 쓰여있는 지 아느냐?"
선우는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오싹
그리고 그 미소를 마주한 당진설은 웬지 모를 불안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어떤....내용..이죠?"
"모든 사태는 오로지 당진설, 너의 독단이고 천무맹과는 하등 상관 없는 일이라고 하더군. 그리고 당가와 천무맹 사이를 이간질한 네게 유폐형을 내린다고 하더군."
"뭐...뭐라고요!?"
당진설은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더불어 네 딸인 이현경은 후계 후보의 자격을 상실하고 너와 마찬가지로 유폐되어 다시는 천무맹을 밟을 수 없도록 조치한다고 하더구나."
선우는 담담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설아, 고작 이런식으로 버려지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였던 것이더냐?"
선우는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나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의 표정에는 이용당하고 철처하게 버려진 여동생에 대한 연민이 가득 하였다.
".............거..거짓말."
당진설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거..짓말이에요.....맹주가 저를.....저를....버릴 리 없어요."
그녀는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하였다.
"모두 오라버니가 꾸며낸 말이죠? 그럴 리 없어요! 맹주가 저를! 현경이를 버릴 리 없다고요!"
당진설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누구란 말인가
권력 최상층에 위치한 지고한 신분을 가진 이가 아닌가
그런 자신이 내쳐진다니?
그것도 이렇게 쉽게?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툭
선우는 품안에서 곱게 접힌 서신 한 장을 꺼내든 뒤 책상 위에 던졌다.
"직접 확인해보거라."
그 모습을 본 당진설은 빠르게 걸음을 옮겨 서신을 집어들었다.
촤르르르
그다음 서신을 펼친뒤 빠르게 읽어내리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런 당진설의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독사같은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내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하였다.
마치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아....아.......아아.."
이내 당진설은 허탈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앓는 소리를 연신 내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러운 충격과 배신감으로 인해 넋이 나가버린듯하였다.
"네가 노력하던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되었구나. 설아."
선우는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권력과 재력은 물론 가문까지 모조리 말이다."
선우는 안타까움을 빙자하여 그녀의 비참함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이번 사태로 인해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말이다.
".............."
그런 선우의 의도가 들어먹힌 것일까
그녀의 얼굴에 비참함이 더욱더 더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비참한 표정을 본 선우는 속으로 진한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이만 나가보는게 어떻겠느냐? 아무래도 마음 정리가 필요한듯싶구나."
그녀를 한창 감상하던 선우는 이내 축객령을 내렸다.
저 년이 궁상떠는 걸 굳이 지켜봐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당진설은 살짝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걸음걸이에는 힘이 전혀 없어보였다.
이내 그녀는 선우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처소로 들어온 당진설은 괴성을 내질렀다.
콰콰콰쾅
더불어 방 안에 있는 온갖 집기구들을 부숴버리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에 분노가 차오른 까닭이었다.
"이재원!!!!!!! 이 개같은 새끼가!!!!!"
당진설은 이재원에게 분노를 토해내었다.
그녀는 억울하였다.
이재원이 그 어떤 병신 같은 짓거리를 하고 온갖 개지랄을 떨어도 그를 감싸고 은폐하고 옹호해주었던 자신이었다.
그런데 이 병신새끼는 제 몸 하나 건사하겠다고 이런 자신을 미련도 없이 그대로 내쳐버린 것이다.
어찌 분노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은 그의 모든 것을 포용해주었다.
그가 수십 년간 아녀자들을 납치하고 강간하였을 때도
그가 병신같은 정책을 펼쳐 천무맹을 위기에 몰아넣었을 때도
장선우를 죽이려는 개짓거리를 하려고 하였을 때도
언제나 그의 편에 서서 조언해주었고 사건을 은폐시켜주었다.
그의 낙원같은 삶을 위해 모든 것을 포용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비참하게 내던져버렸다.
어찌 분노가 차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혼자 죽을 것 같아?'
혼자 죽을 생각 따윈 없었다.
자신은 뺨을 맞고 가만히 있을 정도로 얌전하고 지고지순한 여자가 아니었다.
은혜는 두 배
원한은 열 배로 갚는 당가의 여자인 것이다.
'너도 같이 죽는 거야. 이재원.'
당진설의 눈빛에 독기가 가득 서리기 시작하였다.
마치 독이 오를대로 오른 독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