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7화 〉 698.나만 살면 되는거야!
서신에 쓰여져있는 내용은 간단하였다.
당진설로 인해 당가와 천무맹은 동맹 파기 직전까지 몰렸고
동맹을 파기하기 싫다면 천무맹주인 자신이 직접 대가리를 박고 사과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개같은 여편네가!'
이재원은 인상을 있는대로 구기기 시작하였다.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분노가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어찌 이런 말도 안되 개소리를 지껄일 수 있다는 말인가
'네놈도 내가 우스운 것이냐? 독왕!'
이재원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우웅
더불어 살기가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당진설에 대한 짜증
당가에 대한 분노
독왕에 대한 괘씸함이 맞불려 살의를 만들어낸 까닭이었다.
"제갈찬!"
이재원은 한쪽에서 조용히 시립하고 있는 제갈찬을 불렀다.
"말..말씀하시지요"
"수뇌부들을 소집하시오!"
이재원은 살기 어린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네에?!"
그의 말을 들은 제갈찬은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으로 반문하였다.
"당장!"
이재원은 고압적인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아...알겠습니다."
제갈찬은 곧바로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곧바로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시발새끼가 사람을 건드려?"
그가 사라지자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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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
천무맹을 지탱하는 기둥이라고 일컬어지는 수뇌부들이
각자 자리를 지키며 얌전히 앉아있었다.
맹주가 나타나길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그를 기다렸을까
"군사."
이내 잠자코 있던 팔복당주 허삼관이 총군사인 제갈찬을 불렀다.
"말씀하시오."
한쪽 구석에 조용히 시립해있던 제갈찬이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맹주는 대체 우리를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셈인가?"
허삼관은 짜증 어린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불현듯 소집되어 맹주를 기다린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맹주는 나타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짜증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허삼관의 물음에 제갈찬은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이재원이 언제 나타날지 군사 그 자신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사과가 아니오. 맹주가 언제쯤 모습을 드러낼지에 대한 대답이오."
허삼관은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제갈찬의 태도에 답답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성질머리가 더럽군."
그때 허삼관의 귓가에 날선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뭐라!?"
그 목소리를 들은 허삼관은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친맹주파의 수장이자 활빈당의 당주인 이대곤이었다.
"기다리다보면 어련히 오지 않겠소? 어찌 그리 인내심없이 성질을 부린단 말이오? 애새끼처럼"
활빙당주 이대곤은 조롱기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애새끼? 지금 말 다하셨소?"
허삼관은 인상을 와락 구긴 채 언성을 높였다.
선을 넘는 이대곤의 발언에 짜증이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뜻대로 안된다고 성질을 부리는 게 애새끼가 아니면 뭐라는 말이오?"
"활빈당주께서는 참으로 속이 없는 것 같소."
"속이 없다?"
"그대가 자리에 착석한 지 벌써 반 시진이나 지났소. 그런데도 맹주를 그리 두둔하니 어찌 속이 있다고 할 수 있겠소?"
허삼관은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맹주께서 늦는다면 그만한 일이 있는게 아니겠소? 생각이란 걸 하고 말하는게 어떻겠소?"
"늦는다면 소집을 늦추는 게 수순 아니오? 이건 기본 예절에 대한 부재가 아니오?"
"지금 맹주를 예의가 부족하다며 깎아내리는 것이오?"
이대곤은 따가운 시선으로 허삼관을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예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소?"
"지금 말다했소!?"
그의 말을 들은 이대곤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신앙처럼 믿으며 존경해마지 않는 천무맹주였다.
그런 천무맹주를 욕보이는 허삼관의 태도를 도저히 넘길 수 없었다.
"왜 그리 발끈하시오? 누가보면 활빈당주께서 욕을 먹은 줄 알겠소?"
하지만 그런 이대곤의 발끈에도 불구하고 허삼관은 여전히 조롱기 어린 어투로 말을 이었다.
"맹의 수장을 욕보이는데 어찌 맹원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소!"
"정신차리시오. 활빈당주. 천무맹주라는 직책은 천무맹을 대표하는 자리지. 천무맹을 지배하는 자리가 아니오. 그렇게 맹목적인 충심으로 대하니까 맹주가 우리를 우습게 보고 예의범절을 잃은 게 아니오?"
"지금 맹주가 늦는 이유가 본 당주 때문이란 말이오?"
"그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소? 어쨌거나 저쨌거나 맹주가 우리를 막대하는 건 그대처럼 맹목적으로 따르는 이가 있기 때문이 아니오?"
두 당주의 말싸움이 길어지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친맹주파와 반맹주파 사이의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하였다.
서로에게 쌓였던 불만이 물밀듯 차오르는 까닭이었다.
"진정..진정하십시오!"
총군사 제갈찬은 그들의 싸움을 만류해보려고 하였다.
회의가 시작하기도 전에 개판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밖으로 나오시오!"
"나오라면 못나올줄 알고!?"
하지만 두 세력간의 싸움을 심화만 될 뿐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아아..'
제갈찬은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도저히 지금 상황을 정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무겁기 짝이 없은 중압감이 회의장 전체를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크으윽!"
"커으윽!"
그러자 여기저기서 신음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온몸을 짓누르는 중압감을 견뎌내지 못한 듯 싶었다.
끼이이이익
그리고 이내 회의장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맹..맹주!"
남자를 알아본 군사가 다급히 소리를 내질렀다.
"여기가 회의장인지 시장통인지 도저히 구분이 안가는 구려."
회의장에 들어온 남자, 이재원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맹을 대표하는 수뇌부라고 하는 작자들이 싸움박질이나 하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다들 앉는게 어떻겠소?"
이재원은 담담한 시선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떼었다.
털썩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수뇌부들은 너도나도 자리에 착석하기 시작하였다.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위세가 그들을 압도한 까닭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수뇌부들이 자리에 착석을 하였다.
"이제야 회의장답구려."
그 모습을 본 이재원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내 일이 있어. 조금 늦었소. 사죄드리리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 이재원은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회의장에 지각 한 것에 대한 사죄였다.
".......반시진은 너무 과하였습니다. 맹주"
위세에 압도당했던 허삼관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서 말이오."
"그런 일이 있다면 미리 통보를 하거나 소집을 늦췄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너무 긴박한 일이라서 말이오."
이재원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미안한 기색 따윈 전혀없다는듯이 말이다.
'개같은 자식.'
그리고 그 태도는 허삼관의 짜증을 한층 더 증폭시켰다.
사람이 잘못을 했다면 미안한 마음이 있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저 태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급한 일이었으니 알아서 이해하라는 말이 아니던가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허삼관은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내가 모든 일을 그대에게 보고해야할 의무는 없지 않소?"
이재원은 그의 물음을 단박에 거절하였다.
이재원이 회의장에 늦은 이유는 집기구들을 때려부수며 분풀이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속이 차오른 분노를 식히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을 사실대로 말할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타당하게 늦을 이유인지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나에 대한 신뢰라는 것이 없는 것이오? 내가 시덥지도 않은 이유로 지각이나 하는 그런 무뢰배로 보이는 것이냐 이 말이오!"
이재원은 되려 적반하장으로 언성을 높였다.
또한 분노에 찬 시선으로 허삼관을 노려보았다.
그에게 압박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이재원의 분노 어린 시선을 마주한 허삼관은 말을 더듬거리며 입을 떼었다.
눈빛의 담긴 기세가 어마어마하였지만 할 말은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듣기 싫소!"
하지만 이재원은 그런 허삼관의 말을 중간에 잘라버렸다.
불리한 말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늦었거늘! 어찌 그리도 빡빡하게 타박을 한다는 말이오!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맹주의 업무는 많고 다양하오! 그런데 어찌 이해할 생각이 아닌 타박부터 할 생각부터 한다는 말이오? "
이재원은 속사포처럼 빠르게 그를 쪼아대기 시작하였다.
"맞소. 말이 심했소! 팔복당주!"
"어찌 맹주를 그런 식으로 대한단 말이오!"
이재원이 허삼관을 쪼아대자 친맹주파의 수뇌부들은 너도 나도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하였다.
그를 지원사격할 요량이었다.
"............."
그에 반해 허삼관을 비롯한 반맹주파의 수뇌부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입을 연다면 허삼관과 함께 욕을 먹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불쾌하셨다면.....죄송합니다...하지만....제 의도가."
"제발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좀 하시오. 허 당주. 그렇게 이기적으로 살지 말고 말이오!"
이재원은 다시금 그의 말허리를 끊어버리고 제 할 말을 하였다.
변명할 여지조차 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허삼관은 이내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하는 척을 하였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무슨 말을 하든 소용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논쟁은 사실에 기반하여 의견과 첨언을 곁들여 말해야하는 법이었다.
그런데 이재원은 오직 순간의 감정에 입각하여 기분 나쁜 일에 대해 부각시키기만 하였다.
그런데 어찌 논쟁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기에 그저 입을 다물었다.
'좋아, 좋아,'
그 모습을 본 이재원은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반맹주파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허삼관을 닥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기싸움에서 완벽히 이긴 것이다.
'내 완벽한 논리에 논파당했군.'
이재원은 콧대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저 꼬장한 허삼관을 말빨로 이긴 것에 대한 자부심이 차올랐기 떄문이었다.
"자아, 이제 장내가 정리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용건을 밝히겠소."
이재원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당가에서 동맹 파기를 선포하였소."
"뭐..뭐라!?"
"네에에!?"
"아니, 맹주....어찌 그런.."
"동맹 파기라뇨!"
이재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내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러운 동맹 파기 소식에 당혹스러움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그게 정말입니까? 맹주."
그때 활빈당주 이대곤이 의혹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가가 어디란 말인가
이십여 년 동안 동고동락해온 든든한 우군이자 혼인으로 맺어진 혈맹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당가에서 어찌 동맹 파기를 요청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믿을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사실이다."
이재원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말도 안됩니다! 당가는 지난 이십여 년간 협력관계를 구축해온 우군이자 피로 맺어진 혈맹관계가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 그들이 동맹을 파기한다는 말입니까!?"
"그 혈맹 관계로 인해 모든 것이 우그러지고 말았다.
"네에?!"
"이번 동맹 파기에는 삼부인이 연관되어있다는 말이다!"
이재원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이대곤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당가의 혈족인 삼부인으로 인해 동맹 관계가 우그러졌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삼부인은 언가주를 사주하여 당가에게 압박을 가하려고 하였다. 당가가 천무맹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한 것을 두려워한게지. 하지만 그녀의 계획은 실패하였고 당가주는 그녀의 계획이 천무맹의 뜻이라 생각하고 동맹 파기를 주장한 것이다."
이재원은 당진설이 당가에서 저지른 일을 낱낱히 밝히기 시작하였다.
"아니! 그런?!"
"삼부인께서 그런 일을 벌였다는 말입니까!?"
"어찌 천무맹의 안주인이라는 신분으로 그런 일을!"
"그 독심이 두렵구나.....참으로 두려워.."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수뇌부들은 즉각적으로 반발하여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당진설의 추악한 계획에 치를 떨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친정을 권력욕 때문에 망치게할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이는 악녀라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래. 더 더 욕해라!'
그녀의 대한 비난이 거세지는 것을 본 이재원은 속으로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모든 잘못을 그녀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 사태에 이재원의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계획을 세운 것은 그녀였지만 그 계획을 승인한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언가주에게 서신을 보낸 것도 자신이었고 그녀를 당가로 보낸 것 또한 자신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잘못을 스스로 시인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날 경우
자신에 대한 악의적인 여론이 생길 게 불보듯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재원은 과감히 당진설을 버렸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욕받이이자 희생양으로 말이다.
오직 자신만이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나만 살면 되는거야!'
이재원은 차가운 눈빛을 반쩍거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