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5화 〉 696.용서따윈 없다.
권왕拳王이 빙궁주에게 패하였다.
명료하지만 파격적인 소문이 중원을 들끓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경악스러운 소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권왕拳王이 누구란 말인가
지금은 고혼이 되어버린 천왕신권天王神拳과 더불어 주먹만으로 마귀들을 소탕하였던 절대강자가 아닌가
그런 그가 빙궁주에게 패배하다니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세인들은 의심을 하였다.
뜬소문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내 사람들은 소문이 사실임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소문의 당사자인 권왕拳王 언중기가 패배를 시인하고 곧바로 폐관수련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세인들은 경악을 하였다.
자존심 강한 언중기가 스스로 패배를 시인할 정도라면
변명의 여지없이 확고히 패했다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어찌 경악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세인들은 새롭게 등장한 절대자
빙궁주에게 주목을 하였고
그녀가 머무르고 있는 당가에 주목을 하였다.
그들의 행보에 따라 수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
질근 질근
당진설은 손톱을 쉴새없이 물어뜯기 시작하였다.
심리적인 상태가 불안하다는 증거였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당진설은 속으로 쉴새없이 욕지거리를 내뱉기 시작하였다.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초조함과 불안감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언중기가 패하였다.
그것도 변명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말이다.
이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당가주에게 빙궁주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긴 커녕 두 세력간의 관계를 더욱더 돈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어떻게..해야하지...대체...어떻게 해야하지.'
당진설을 머리를 굴리고 또 굴리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고심해보아도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현재 자신의 처지는 최악이었다.
무엇하나 계획대로 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언중기가 죽었다면!'
당진설은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만약 언중기가 빙궁주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면
여론을 조성하여 빙궁주를 공적으로 몰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마대전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서 정파의 거두를 죽인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몰고 올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무리였다.
언중기는 멀쩡히 살아서 언가로 되돌아가버렸다.
그리고 정식적으로 공표하였다.
빙궁주의 자비 덕분에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수습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개같은 새끼! 끝까지 방해를!'
그녀는 가문으로 돌아가 패배를 시인한 언중기를 욕하였다.
그가 쓸데없는 공표만 하지 않았어도 상황이 지금만큼 복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하지....대체 어떻게 해야하지.'
시간이 지날 수록 해결책이 나오긴 커녕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북해의 저력은 자신의 예상을 휠씬 웃돌았다.
그 괴물같은 언중기를 패배시켰다.
그 말인즉슨 빙궁주의 경지가 화경을 넘어선 현경에 다다랐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당가의 저력이 천무맹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현경의 고수는 존재만으로 모두를 압도하는 위대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둘이나 있는 당가를 천무맹은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고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빙궁주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당가주에게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짓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주제를 파악하라면서 말이다.
당가주 입장에서는 뼈째 갈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짓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기에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벌떡
그렇게 얼마나 고민했을까
이내 당진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앉아있어봤자 해결되는 것은 아무엇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
"기별도 없이 무슨 일이지?"
선우는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기별도 없이 다짜고짜 찾아온 당진설의 무례가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당진설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너와 내가 할 말이 더 남아있던가?"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을 반짝거리며 입을 떼었다.
당진설과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였다.
명백히 악의적으로 언중기를 북궁연에게 보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해코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그녀와 대체 무슨 말을 한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오라버니께 사과하고 드리고 싶어요."
당진설은 무척이나 공손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기존에 독기 어린 눈빛으로 쏘아보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 사과를 내가 받아들일 것 같더냐?"
선우는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설마하니 저 표독스러운 당진설이 곧바로 꼬리를 내린 채 찾아올 줄은 예상치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구나. 이제와서 두려움이라도 든 것이냐?"
"네에, 두려워요."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속내를 내뱉었다.
"어찌 두렵지 않겠어요? 당가의 저력이 천무맹을 뛰어넘어버렸는데 말이에요."
"그 두려움은 네가 감당해야할 일이다. 당진설."
선우는 그런 당진설을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당가를 적으로 돌린 장본인은 네가 아니더냐?"
"적으로 돌린게 아니에요....좀더 올바르게...당가가 운영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 올바름이라는게 당가의 독립을 막는 일이었더냐?"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당진설은 당가를 천무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고하였다.
그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올바른 운영을 바랬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저는....그저...오라버니께서....무모한 도전을....하려는 줄....."
"혀가 길구나."
선우는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네가 이토록 사족이 많은 줄은 처음 알았구나."
선우는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입을 떼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얼굴을 잔뜩 붉혔다.
모욕당했다는 생각에 어마어마한 수치심에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마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든 변명처럼 들리고 말테니까말이다.
"궁지에 몰렸다면 혀를 길게 빼지말고 좀더 진정성있게 행동하는게 어떻겠느냐?"
선우는 그런 당진설을 조롱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말로 떼우려고 하지말고 행동으로 보이라며 말이다.
털썩
그러자 당진설이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다음 천천히 허리를 숙여 바닥에 엎드리더니 이내 머리를 땅에 박았다.
"제가 잘못했어요. 오라버니. 부디 우매한 절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간절한 목소리로 사과를 하였다.
"참으로 가벼운 무릎과 머리로구나."
"대의를 위해선 몇 번이고 꿇을 수 있는 무릎과 머리입니다."
"네가 무슨 잘못을 하였는지는 알고 있더냐?"
"당가 가진 전력을 가늠치 못한 채 주제넘는 짓을 했어요.."
당진설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저벅 저벅
그러더니 엎드려있는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선우는 엎드려있는 당진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어요....부디....용서를 해주새요."
그녀의 목소리는 간절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애간장이 녹아질정도로 말이다.
"고개를 들거라."
"........오라버니."
선우의 말을 들은 당진설은 떨리는 눈빛으로 선우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눈빛 속에는 용서를 받을 지 모른다는 희망이 담겨있었다.
"설아"
"선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말씀하세요 오라버니."
"너는 인생을 참으로 쉽게 살려고 하는구나."
"..........네에?"
"가문을 멋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한 주제에 고작 사과 한마디로 끝낼 수 있을 것 같이라고 생각하더냐?"
선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당진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움찔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당진설은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그의 무저갱처럼 심유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심장이 덜컥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영리하다고 치켜세워주니 세상이 전부 네 마음대로 되는 줄 알았더냐?"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선우는 내력을 위협적으로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이내 방안은 무겁기 짝이 없는 중압감으로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크으으윽!"
당진설은 옅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어마어마한 중압감이 온몸을 압박하였기 때문이었다.
"용서따윈 없다."
선우는 선언하듯 말을 이었다.
"너는 이제 철저한 외인이다. 어디서 뭘하든 당가의 도움을 바래선 안될 것이다. 그리고 당가는 공식적으로 천무맹과의 협력관계를 파기할 것을 선언하겠다."
선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당진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오..오라버니 그건!"
"이 모든 일은 네가 저지른 일에 대한 결과이니. 달게 받도록 하라."
선우는 확정짓듯 말을 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결연에 찬 단호함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만약...그렇게 하신다면......당가에 대한 여론이...불리해질거예요."
당진설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든 그의 결정을 번복시켜려고 하는듯이 말이다.
"개의치 않는다."
선우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여론에 휩쓸릴 정도로 당가는 무르지 않다."
"민중들이 돌아선다면.....당가로서도....불리해질 수밖에 없어요...사업적인 측면이라던가......"
"현재 당가제 병장기는 황실과 납품 계약이 체결되어있는 상태다. 게다가 약재 유통 또한 당가를 대체할 수는 없다. 또한 이국과의 무역을 통해 상당한 흑자를 남기고 있는 상황이지."
".........."
"눈치를 보며 사업할 정도로 규모가 작지 않다는 말이다."
선우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동맹이 파기된다면.......천무맹과.....척을 지게 된다면....전쟁이라도 나게된다면.....마교에게만 좋은 일이 되고 말거예요..."
"상관없다."
"오라버니!"
"당가와 천무맹이 맞붙을 경우, 당가에 큰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더냐?"
선우는 궁금하듯 그녀에게 물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입을 꾹 다물었다.
피해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현경이라는 경지는 인간을 초월한 반선의 경지.
같은 현경이 아니라면 생채기조차 내기 힘들 것이다.
그런 고수가 두 명이나 있는 당가가 천무맹으로부터 피해를 입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당가는 천무맹과의 동맹을 파기한다. 이는 결정된 사항이고 번복은 없다."
선우는 선포하듯 말을 이었다.
"....오라버니.....부디.....부디..용서를.."
당진설을 애처로운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동맹이 파기된다면 천무맹의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게 된다.
전쟁 물자들을 보관해주고 거처를 마련해준 당가가 아니던가
그들이 등을 돌린다면 난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여론몰이를 통해 공개적으로 당가를 비난할 것이다.
대국적인 상황에서 개인적인 감정을 우선시하는 그의 태도를 말이다.
그리고 요구할 것이다.
동맹 파기를 철회하라고
민중을 등에 업은 채 말이다.
그런데 지금 태도를 봐선 여론 공작같은건 신경을 쓸 생각이 없는듯 하였다.
확고하게 동맹을 파기할 생각인 것이다.
그리고 만약 동맹이 파기가 확실히 된다면
비난의 화살은 자신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동맹 파기의 원인이 된 것은 모든 것을 계획한 사람이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제발.....용서해주세요...오라버니...제발.."
그렇기에 빌고 또 빌었다.
부디 용서를 해달라고 말이다.
만약 동맹 파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딸까지 비난의 화살을 피해갈 수 없게 될게 뻔하였다.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간절히 빌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이다.
"번복은 없다."
선우는 간절히 비는 당진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선우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동맹 파기가 그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지
순탄했던 삶이 얼마나 고되게 변할 지 말이다.
하지만 번복을 할 생각은 여전히 없었다.
죗값을 치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쿵
쿵
쿵
그때 갑자기 당진설이 바닥에 머리를 박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격렬하게 말이다.
"제발.....제발.....동맹파기만큼은....."
그녀는 눈물을 흩뿌리며 간절히 빌었다.
이대로 일이 마무리된다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바라만 보았다.
저 표독스러운 여자가 눈물을 줄줄 흘리는 모습을 보니
꽤나 통쾌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더 울어라.....더...더'
속으로 종용하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그녀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았을까
"그만."
이내 선우가 머리를 박는 그녀를 만류하였다.
그러자 당진설은 곧바로 바닥에 박던 머리를 멈춰세웠다.
"동맹 파기를 취소하고 싶더냐?"
"...취소하고 싶어요.....무슨 짓을 해서라도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정말인가요!?"
당진설은 화색이 된 얼굴로 그에게 되물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게.....무엇인가요!?"
"천무맹주가 직접 바닥에 머리를 박고 사죄를 한다면 동맹 파기를 없던 것으로 하도록 하겠다."
선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